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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주간 정치신문-사노위 : 18호>2011년 영국 런던 사태 신자유주의 공세 30년, 민중의 좌절과 경제공황의 필연적 귀결

2011년 영국 런던 사태


신자유주의 공세 30년, 민중의 좌절과 경제공황의 필연적 귀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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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8월초 영국의 수도 런던에서 시작된 일련의 폭동 사태는 영국을 충격과 공포로 몰아넣었다. 8월 6일 밤부터 시작된 폭동사태는 런던 전역의 빈민촌을 휩쓸고 전국으로 확산되어 8월 9-10일에는 중부 버밍햄, 리버풀, 맨체스터까지 도시폭동의 영향권에 휩쓸었다. 이탈리아를 방문 중이던 데이비드 카메론 총리가 급거 귀국하고, 윔블던 구장에서 열릴 예정이던 영국과 네덜란드 국가대표 팀의 축구경기가 취소되기도 했다.


이번 폭동으로 5명이 사망하고, 민간인 16명과 경찰 186명이 부상당했다. 경찰은 3,100여명을 체포했고, 1,000명 이상을 기소했다. 영국보험협회에 의하면 이번 폭동으로 인한 약탈과 방화로 피해액이 2억 파운드(한화로 4천억원)로 추정된다.


발단과 확산, 주요한 양상


사태의 발단은 8월4일 북부런던 토튼햄에서 런던광역경찰이 불법무기 소지혐의로 마크 더건에 발포하여 치명상을 입힌 사건이었다. 8월 6일 피해자의 가족과 친구들이 발포에 대한 평화적 항의시위를 벌였지만, 지역경찰은 무책임한 태도로 항의를 무시했고, 그날 밤부터 5일간 영국 전역을 휩쓴 폭동이 시작되었다.


8월 6-7일은 런던광역시의 빈민지대, 즉 해크니, 우드그린, 엔필드타운, 폰더스엔드, 월덤스토, 이슬링턴, 브릭스턴 등으로 폭동이 확산되었다. 8월 8일에는 런던을 벗어나 버밍행, 리버풀, 노팅햄, 브리스톨, 메드웨이, 레시스터 등 중소 도시들에서 폭동이 발했다. 그리고 8월 9일에는 영국 제2의 도시인 맨체스터 중심부와 샐포드에서도 대규모 폭동이 발생했다.


이번 폭동은 주로 빈민지대 흑인 청년들이 주도했으며, 기본적으로 누적된 경찰폭력에 대한 분노가 폭발했다. 폭동은 주로 경찰폭력에 대한 가두전투(8월 8일밤 해크니 지역), 주요쇼핑지대 상점에 대한 약탈과 방화 등의 형태를 취했다.


원인을 둘러싼 공방


들불처럼 번져나가는 폭동사태에 당황한 데이비드 카메론 총리의 보수-자민(Con-Dem) 연립정부는 대규모 경찰력 투입, 대량체포 등 강경진압에 나섰다. 이를 뒷받침하듯이, 주요 제도언론은 갱들의 범죄행위와 빈민가의 범죄문화를 폭동의 근본원인으로 지적하면서 폭력배들의 범죄행위를 비난하기 급급했다.


또한 이른바 여론조사를 이용하여 범죄행위, 갱문화 등이 폭동의 주된 요인으로 꼽고, 공공예산삭감, 실업, 인종갈등, 경찰의 대응미숙 등을 보조적 요인으로 보고 있다. 그러나 주요언론은 1990년대 이래 경찰폭력으로 인한 민간인 사망자인 1,500명을 육박하는 데서 드러나듯이, 부패와 인종주의적 경찰폭력의 구조적 문제는 지적하지 않았다.


하지만 편파적 여론조사 결과에 대한 비난이 일면서, 현재의 경제상황, 실업과 공공서비스 삭감, 사회적 배제, 빈곤, 빈부격차, 항위시위에 대한 정권의 무시, 청소년센터 등의 폐쇄 등도 폭동의 원인으로 제시되고 있다.


그중에서 특히 영국의 청년실업 문제는 심각하다. 전국적으로 5명중 1명이 실업이고, 수도 런던의 경우 4명당 1명 꼴이다. 특히 흑인의 경우 실업률은 50%를 넘는다. 거기에 보수-자민 연립정권이 추진한 교육지원수당(EMA) 폐지와 대학등록금의 3배 인상은 청년들의 미래를 봉쇄하고 있다.


폭동과 자본주의, 그리고 좌파의 과제


자본주의와 폭동은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 노동력 착취에 기반한 자본주의는 노동자계급의 도시집적, 즉 도시화를 촉발하고, 도시의 슬럼화는 폭동의 온실이 된다. 그리고 폭동의 방아쇠는 언제나 경찰의 폭력이다.


영국은 자본주의의 모델임과 동시에 끊이지 않는 폭동의 무대였다. 러다이트 폭동과 1819년 피털루 폭동에서 대처정권을 몰락시킨 1990년 폴택스 폭동에 이르기까지 폭동은 이어졌다. 뿐만 아니라 20세기를 지배한 제국주의 본산 미국의 역사도 1965년 와츠폭동과 1992년 LA 폭동에 이르기까지 수천 건의 폭동으로 점철되었다.


또한 최근 10년만 보더라도 파리외곽을 불바다로 만들었던 2005년 방뢰폭동, 2008년의 그리스 폭동 등 자본의 천국에서도 폭동은 예외가 아니다. 오히려 최근의 경제공황에 맞물려, 폭동은 더욱 빈번하게, 더욱 광범하게 나타날 수밖에 없는 구조를 갖추고 있다.


본질적으로, 자본주의 체제 아래서 폭동은 마약에 찌든 거리 폭력배들의 무차별 폭력과 약탈이 아니다. 그것은 현상일 뿐이다. 폭동은 본질적으로 사회적으로 배제되고 소외된, 힘없는 자들의 자연발생적 저항이다. 따라서 본질적으로 사회적 모순과 현상에 대한 저항의 성격을 갖지만, 동시에 한계와 위험을 내포하고 있다. 즉 자본주의와 체제에 대한 불만으로 인종주의적 폭력과 파시즘의 유혹으로부터 자유롭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번 영국폭동이 사회주의자를 포함한 좌파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가? 먼저 좌파 역시 폭동의 정치적 책임으로부터 자유롭지 않다. 제도정치나 운동/조직에서 기층대중의 요구와 이해가 전혀 반영되지 못하는 상황에서, 좌파정치와 노동운동의 무기력은 폭동이 자연발생적 저항의 주요한 형태로 나타나게 하기 때문이다.


전 지구적 경제위기 아래서 조직된 좌파나 노동자들의 투쟁은 대안부재와 투쟁력 결핍으로 발생한 정치적 공백을 자연발생적 폭동이 메우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그럼에도, 폭동의 계급적 성격을 폭로하고, 폭동의 뿌리는 실업과 빈곤, 억압, 더 나아가 자본주의 체제 자체에 있음을 선동하는 것, 폭동의 자연발생성과 기층대중의 분노를 보다 조직적인 대중투쟁으로 조직하고 이를 투쟁조직으로 전환시키는 것은 좌파의 과제이다.


원영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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