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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 품 같은 고향 영영 떠난다니” 눈시울만

“어머니 품 같은 고향 영영 떠난다니” 눈시울만
[이주 합의 대추리 가보니] “울며 겨자 먹기”…설 커녕 인적 뚝
 
 
한겨레  
 
 
» 미군기지 확장·이전 반대 투쟁의 구심점이었으나 지난해 결국 강제 철거된 경기 평택시 팽성읍 대추분교의 잔해가 마치 폭격을 맞은 듯 대추리 겨울 들녘에 널브러져 있다. 미군기지의 확장·이전을 둘러싸고 빚어진 주민과 정부의 갈등은 3년6개월 만인 지난 13일 ‘이주 합의’로 일단락됐다.
 
모두가 떠나가야 할 너른 들판. 누렇게 말라 비틀어진 갈대와 잡풀이 뒤엉켜 세찬 겨울바람에 흔들렸다. 새벽녘까지 추적추적 내린 겨울비 탓인지 방패를 든 전경들 어깨 너머로 보이는 마을은 더욱 을씨년스러웠다.

설을 나흘 앞뒀지만 마을 어디에서도 명절 분위기는 느껴지지 않았다. 이맘때면 방방곡곡 어디서나 볼 수 있는 ‘고향 방문을 환영합니다’라는 펼침막조차 눈에 띄지 않았다. 폭격을 맞은 듯한 건물 잔해, 폐허로 방치된 농가의 깨진 유리창, 인적 없는 골목을 누비며 외지인을 향해 꼬리를 흔들거나 짖어대는 강아지…. 2007년 2월14일 오전 경기 평택시 팽성읍 대추리의 풍경이다.

바로 하루 전, 마을 주민들은 어쩔 수 없이 정부와 이주에 합의했다. 하지만, 고향을 떠나야 하는 노인들은 깊은 상실감과 절망의 늪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분노도 컸다. 여느 때 같으면 기자들을 만나 푸념도 하고 한숨도 짓던 마을 노인들은 “이제 다 끝났는데 사람 취급도 못 받는 우리에게 뭘 더 얘기하라는 것이냐”며 노인정 문을 굳게 닫아걸었다.

4대째 살아온 고향을 떠나야 하는 방효태(71)씨는 “강아지 이사하는 것도 아니고 나가기로만 합의하면 어떻게 하란 말이여”라며 “17살 때 미군기지 때문에 이곳으로 쫓겨와 50년 넘게 자갈밭 갈아놨는데 이제 어머니 뱃속 같은 이곳을 영원히 떠나야 하다니 어찌할 줄 모르겠다”고 말끝을 흐렸다. 그는 “농사야 쇠뼈다귀 울궈먹듯 하는 것인데, 여기 있는 사람들이 나가서 무엇을 해먹고 살란 말이냐. 다리 뻗을 만하면 쫓겨나고 살 만하면 내몰리는 처지가 너무도 비참하다”며 가슴을 쳤다.

기척이 있는 집 문을 두드려 만난 김아무개(80) 할머니는 “이 나라에서 백성 취급을 받으며 살 수 있는 날은 내 평생 없는 것 같다. 떠난다는 말만 들어도 가슴이 떨린다”며 눈물을 글썽였다.

이름을 밝히길 꺼린 주민대책위원회 관계자는 “비록 정부와 합의는 했지만 마을 주민들의 충격은 누구도 헤아릴 수 없을 것”이라며 “힘의 논리와 시간적 압박에 못 이겨 이뤄진 이주 합의여서 안타깝고 억울하다”고 말했다. 그는 “주민 대부분이 70살을 전후한 노인들인데, 이주단지로 지정된 곳은 주변이 양계장과 목장, 과수원 등으로 둘러싸여 사람 살기에는 적합하지 않다”며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합의가 이뤄졌다”고 전했다.

오는 17일 900회를 맞는 미군기지 확장·이전 반대 촛불집회장인 대추리 농협 창고 앞에서 만난 문정현 신부는 “폭력으로 시작한 미군기지 이전 작업은 마을 주민은 물론 국민 모두에게 좌절과 분노만 남기게 됐다”고 목청을 높였다.

미군기지 반대를 알리는 깃발이 여기저기 나부끼는 대추리에 곧 찾아올 ‘마지막 설날’은 ‘까치 설날’만 있을 것 같았다. 평택/글·사진 김기성 기자 player18@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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