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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리핑 꼬라지 하고는-_-

절차적 민주주의, 해묵은 국가난제를 해결하다
 
[국정브리핑 2007-03-09 18:00]

 

 

19년간 9번의 좌절. 우리사회의 최장기 미해결 과제였던 방사성폐기물 처리시설이 마침내 경주로 결정되는 데 걸린 시간과 시행착오다. 정부는 1986년 원자력위원회에서 방사성폐기물 관리시설을 짓기로 결정한 이후 경북 울진·영덕·영일, 충남 안면도, 인천 굴업도, 전남 영광, 전북 부안 등 전국 각지를 돌며 부지선정에 나섰지만 번번이 실패를 맛봤다. 주민들과 환경단체의 거센 반발과 사회적 혼란이 겹쳐 중도포기를 거듭했다.

실패과정에서 정부는 다양한 해법을 내놓으며 돌파구를 찾았다. 주민들의 반대를 최소화하기 위해 선정과정을 철저히 비밀에 붙이기도 했다. 후보지를 여러 곳을 정해 반발을 무마하려고도 해 보았다. 지역민심을 달래기 위해 현금지원과 양성자가속기 유치 등 당근책도 내놓았다. 그러나 주민동의라는 관문에서 번번이 막혀 갈등이 확산됐고, 사회적 혼란이 반복됐다. 그사이 정책 담당부처는 과학기술부에서 산업자원부로 바뀌었고, 사업 추진방식도 정부 결정 → 사업자 주도 → 지자체 자율유치 순서로 변경되는 우여곡절을 겪었다.


■ 결과보다 대화와 타협의 과정이 중요

9번의 쓴 경험을 통해 정부가 얻은 교훈은 ‘결과’보다는 주민의 여론을 수렴하고 동의를 얻는 ‘과정’이 더 중요하다는 사실이었다. 경주 방폐장 부지선정은 그 실패의 교훈을 거울삼은 학습효과가 일궈낸 성과물이다. 비록 힘들고 어렵더라도 절차를 밟으면서 주민들과 대화하고 토론하는 과정을 통해 해결의 실마리를 찾은 것이다.

방사성계기물 처리시설 부지선정은 우리사회의 최장기 갈등과제였다. 전북 부안에서 주민반발을 초래한 부지선정은 2005년 11월 주민투표 과정을 거쳐 경북 경주로 최종 결정났다.

경주 원전센터 선정과정에서 실무를 총괄했던 산업자원부 조석 에너지 정책기획관은 이를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사회갈등은 ‘강한 정부’만이 해결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강한 정부의 의미가 달라지고 있는 것이죠. 과거에는 행정력·물리력을 바탕으로 힘으로 밀어붙이는 게 강한 정부였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결과보다는 과정을 중시하는 게 강한 정부입니다. 이해관계 단체와 끊임없이 대화하고 토론하면서 양보하고 타협하는 과정이 곧 정책추진 동력인 셈이죠. 경주가 부안과 달랐던 것은 바로 이점입니다.”

과거 대규모 국책사업은 정부가 결론을 내려놓고, 지자체와 주민을 설득하는 방식으로 추진하는 경우가 많았다. 진행과정에서 이해관계자 그룹의 반발이 커지면 여론 달래기용 당근책을 내놓고, 물리적 충돌로 이어질 경우 강경대응의 채찍을 쓰는 식이었다. 이런 해결방식은 처음에는 약발이 먹혔으나, 반복되면서 정부와 이해단체간의 신뢰를 무너뜨리는 부작용으로 작용했다. 원칙없는 대응에 집단 이기주의까지 겹치면서 사회적 혼란은 가중됐다. 그러는 사이 우리사회가 해결해야 할 숙제는 하나 둘씩 쌓여 온 게 사실이다.


■ 원전센터에서 항운노조 상용화 까지

원전센터 건설, 새만금 간척사업, 경인운하 건설사업 등이 대표적이다. 참여정부 들어서도 평택 미군기지 이전 사업, 항만노무공급 체계 개혁, 경부고속철도 천성산 원효터널 공사, 서울 외곽순환도로 사패산 터널공사 등을 놓고 갈등이 빚어졌다. 사업의 필요성이나 정당성은 인정하면서 다양한 이해관계가 맞물리면서 갈등양상이 심화되고, 결국 사업이 표류하는 혼란이 지속됐다.

공공정책을 둘러싼 사회갈등이 어떤 상처를 남기는지는 ‘부안사태’를 통해 확인한 바 있다. 사회적 비용 지출은 물론 물리적 충돌로 인한 이해당사자간의 상처까지 막대한 국력소모의 후유증을 낳았다. 정부는 부안사태를 계기로 사회적 대화를 통한 갈등해결의 중요성을 확인했다. 비록 시간이 걸리고 과정이 험난하고 비용이 들더라도 대화하고 타협하면서 정부를 신뢰할 수 있도록 기반을 만드는 게 중요하다는 깨달음이다. 단순히 해결방식을 바꾸기 보다 문제해결을 위한 철학과 원칙을 새롭게 정립한 것이다.

지난 4년간 정부는 결과보다는 과정을 중시하는 원칙을 지키며 해묵은 사회 갈등과제를 하나씩 해결해 왔다. 원전센터 건립 문제는 주민투표(2005. 11)로, 항만노무공급체계는 상용화 협약을 노조원 투표를 통해 해결했다. 새만금 간척사업과 천성산 터널공사(2006.6)는 절차를 중시하면서 사법부의 판단을 통해 해결됐다.

특히 경주 원전센터 부지 선정과정에서는 이전과 다른 갈등해결 접근법을 확인할 수 있다. 정부는 주민과 자치단체를 요구를 수렴해 고수하던 정책방향부터 바꿨다. 안전성이 검증된 중·저준위 방사성폐기물 관리시설을 우선 추진하고, 사용후 핵연료 처리는 시간적 여유를 갖고 논의하기로 분리결정을 내렸다. 가장 큰 걸림돌이었던 주민들의 불안부터 해소한 것이다.

아울러 정책내용이 사업추진 과정에서 변화되지 않도록 절차를 명문화하면서, 지역에 대한 지원사항을 특별법에 담았다. △주민투표 의무화 △3000억 원의 특별지원금 지급 △연평균 85억 원의 반입수수료 지원 △한국수력원자력 본사이전 등이 그 내용이다. 정책을 신뢰할 수 있도록 법으로 보장한 것이다. 특히 주민의 동의 없이는 부지선정이 불가능하다는 점을 고려, 주민투표를 의무화하면서 자치단체장이 지방의회의 사전 동의를 얻어 유치신청을 하도록 절차의 민주성을 대폭 강화했다.

사업방향과 절차를 먼저 제시한 후에 부지를 선정하는 과정을 공개적으로 진행했다. 각계 전문가 17인으로 부지선정위원회를 만들어 부지선정 기준을 마련하고, 부지의 적합성을 검증하게 함으로써 사업을 중립적으로 관리하게 했다. 이는 곧 정부는 방식과 지원조건을 제시하고 선택은 자치단체와 주민들이 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100년 동안 지속돼온 항만노무공급 체제 개혁도 노사의 끊임없는 대화와 타협과 정부의 중재로 개혁의 물꼬를 텄다. 항운노조 채용비리가 불거지면서 노조의 독점적 노무공급 체계를 개편해야 한다는 공론이 확산된 지 2년여 만에 부산항에서 처음 상용화 협약이 노조의 투표(2006.11)결과 77.1% 찬성으로 통과됐다.

상용화 협약의 타결은 갈수록 치열해 지고 있는 항만간의 경쟁속에서 과거의 인력공급 체계로서는 더 이상 생산성을 확보하는 데 한계가 있다는 데 노사의 공감대다 형성됐기 때문에 가능했다. 항운노조원은 일용직 근로자에서 항만하역회사의 정규직원이 되어 근로기준법 등 노동관련 법령의 적용을 받게 되고, 그로 인해 고용보험 등 4대 보험, 유급휴가 혜택 등 법적·사회적·경제적 지위 보장을 택했다. 하역회사는 인력관리 등 부두운영에 대한 자율성이 확대로 인한 물류비 절감, 장비 현대화를 촉진할 수 있는 여건을 조성을 택했다. 결국 노사가 조금씩 양보하면서 상생할 수 있는 지점을 찾은 것이다.

새만금 간척사업과 천성산 터널 공사는 법적 절차를 통해 긴 갈등에 마침표를 찍었다. 단군 이래 최대 국책공사라는 평가를 받은 새만금 사업은 착공 → 중단 → 재개 → 중단의 가시밭길을 15년 동안 걸어오다, 지난해 대법원의 확정판결(2006.3)로 논란이 종식됐다. ‘도룡농 소송’과 지율스님의 단식으로 중단됐던 천성산 터널공사도 대법원이 기각결정(2006.6)으로 공사재개가 결정됐다.

그러나 여전히 해결해야 할 사회 갈등과제도 산적해 있다. 10년간 논란을 빚어온 경인운하 건설 문제나 홍수 방지효과를 놓고 논란을 벌이고 있는 한탄강댐 건설은 여전히 매듭지어지지 않고 있다. 정부가 추진하는 국책사업이외도 자치단체를 중심으로 추진중인 다양한 사업들이 둘러싼 갈등사례를 고려하면 아직 가야할 것은 멀다.

■ 원활한 갈등관리 및 해결 시스템 마련 고민

사실 사회 갈등은 어느 정부 때나 있었다. 달라지고 있는 것은 갈수록 그 양상이 복잡하고, 장기화 되고, 사회적 마찰을 동반하고 있다는 점이다. 정부 일방통행식 갈등해결은 경제성장과 소득수준 향상이 유일한 목표이던 때에는 통했다. 이 과정에서 정치·사회적 민주주의에 대한 요구는 통제되고 억압받았던 게 사실이다. 삶의 질, 문화 및 환경 등에 관한 사회적 욕구는 산업화 이후에나 해결해야 할 과제라는 암묵적 동의가 형성된 점도 작용했다.

그러나 1987년 민주화 이후 억눌렸던 사회적 욕구가 분출되면서 정부 일방주의나 법 만능주의로는 사회 갈등을 해결할 수 없는 현실적 환경변화가 일어났다. 다양한 사회 주체들이 자신의 권리를 이익과 권리를 주장하면서 이해관계를 조정해야 하는 일은 무엇보다 중요해 졌다. 더욱이 세계화·개방화의 흐름이 가속화되고, 1990년대 후반 IMF 경제위기를 거치면서 우리 사회가 마주한 대내외 환경변화는 어느 한 두 집단의 양보와 노력만으로 해결할 수 없는 난제를 만들고 있다. 양극화, 저출산 고령화 등이 대표적이다.

문제는 내외부의 환경과 이해관계는 복잡다단하게 변화하고 있지만, 이를 조정하거나 해결할 수 있는 제도적 기반은 취약한데 있다. 무엇보다 갈등해결에 필요한 자원과 역량이 정부, 민간, 사회공동체 등 다양한 이해관계 그룹으로 분산돼 있지만, 이들 간의 협력체제는 미흡한 상태다. 그 결과 노사관계를 비롯한 주거환경, 난개발 등 다양한 부문에서 공공정책 추진과 이해당사자들의 충돌은 반복되고 있다.

정부는 그동안 변화하는 사회·경제 환경에 맞춰 갈등을 조정할 수 있는 다양한 협력체계와 대화시스템을 구상하고 만들어 왔다. 2004년에는 한국노총과 경총과 더불어 ‘일자리 만들기 사회협약’과 ‘반부패투명사회 협약’을 체결했고, 2006년에는 ‘저출산·고령화 대책 연석회의’를 출범시켜 사회협약 이끌어 냈다. 그러나 추진과정에서 참여주체간의 신뢰부족과 참여부족으로, 어렵게 성사된 합의사항이 의미있는 효과를 거두지 못한 경우도 많았다.

대통령 자문 지속가능발전위원회는 갈등조정특별위원회를 만들고, 국책사업을 둘러싼 공공갈등을 해결하기 위해 ‘공공기관의 갈등관리에 관한 법률안’을 만들어 국회에 제출(2005. 5)했다. 법안은 △공공정책이 국민생활에 중대하고 광범위한 갈등을 유발할 우려가 있다고 판단되는 경우 공공기관장이 갈등 영향분석을 실시할 수 있도록 하고 △갈등관리를 위한 조사·연구·교육훈련·공공기관의 갈등관리 지원 등을 위해 갈등관리지원센터 설립 △갈등조정을 위해 필요하다고 판단되는 경우 갈등조정회의를 설치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이 법안은 아직까지 입법화되고 있지 못하다.

갈등과제의 해결은 그 사회의 문화적 성숙도와 직결돼 있다. 자신의 주장만 펴면서 상대방의 얘기를 듣지 않는 언쟁이 대립과 반목을 낳는 것처럼, 수많은 이해관계가 걸린 사회 갈등과제에 대해 양보와 타협이 없다면 해답이 구해질리 만무하다. 정부는 갈등을 해결하는 시스템을 만들고, 이해 당사자는 여기에 참여하면서 합리적 타협점을 찾아가는 문화 성숙이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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