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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례 사설]주한미군 사령관의 오만과 월권

버웰 벨 주한미군 사령관의 부적절한 발언이 또 입방아에 올랐다. 그는 엊그제 미국 하원 군사위 청문회에서, 한국의 국방개혁 2020 계획을 비판하고 북한 관련 사안에서 한쪽으로 치우친 시각을 그대로 드러냈다. 그는 지난 1월18일 내외신 기자회견에서도 미군기지 평택 재배치 일정이 늦어지면 “이에 맞서 싸우겠다”고 과격하게 말해 물의를 빚은 바 있다.

한국에 주둔한 동맹군의 사령관이 공통 안보 현안을 두고 견해를 밝히는 일은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이 경우에도 한국 국민 및 정부·정책에 대한 존중과 군인으로서 절제가 전제돼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자칫 오해와 갈등을 낳아 동맹 관계에 상처를 줄 수도 있다. 지금처럼 한·미 두 나라가 앞으로 수십년을 내다보고 동맹 구조를 재편하고 있는 상황에서는 더욱 그렇다.

국방개혁 2020은 오랜 논의를 거쳐 이미 법안으로 만들어진 중장기 국방정책이다. 이를 두고 미군 사령관이 시비를 거는 건 내정간섭이다. 그가 제시한 논리도 앞뒤가 맞지 않는다. 그는 “북한군은 전투력을 창출할 수 있는 능력에서 아주 소외돼 있다”면서도 한국군 복무기간 6개월 단축과 중장기 병력 감축에 대해서는 ‘공동화’라는 용어까지 동원해 비판했다. 앞서 한국군의 전력을 높이 평가하며 전시 작전통제권 조기 이양을 주장할 때와도 상반되는 태도다. 미국이 자국산 첨단 무기를 팔기 쉽도록 하려고 국방개혁 2020에 시비를 건다는 의혹이 불거지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북한이 플루토늄 핵을 포기하기로 합의하더라도 고농축우라늄 핵 계획으로 무기급 핵무기를 만들 수 있을 것”이라는 그의 발언은 무책임하다. 근거를 대지 않은 건 물론이고 최근 미국 정부 고위 당국자들의 평가와도 크게 차이가 나기 때문이다. 대북 경협과 인도적 지원 물품이 원래 목적대로 사용되지 않을 가능성이 있다는 발언 역시 분수에 맞지 않는다. 그는 군인이지 정치인이 아니다.

벨 사령관의 말처럼 많은 한국인은 “더 대등하고 수평적인 동맹 관계를 추구”하고 있다. 하지만 그가 이런 추세를 충분히 인식했다면 이번과 같은 오만하고 월권적인 발언을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미국 정부는 군 고위 관계자들의 부주의한 발언이 ‘지난 수십년간 가장 성공적인 동맹’을 손상시키는 일이 없도록 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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