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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책] 사람들 사이로

[새책] 사람들 사이로
(이미지프레스 엮음 / 청어람미디어 펴냄)
 
2007년 02월 14일 (수) 14:42:52 이창길 기자 ( photoeye@mediatoday.co.kr)
 

   
   
 
다큐멘터리 사진가 네트워크 ‘이미지프레스’가 무크지 2호 ‘사람들 사이로’를 펴냈다. 사진가들의 영원한 주제가 될 수밖에 없는 ‘사람’을 다양한 사진작업에 담아냈다.

얼굴을 통해 드러나는 동시대 사람들의 삶과 역사, 눈물과 웃음은 강한 호소력을 던져주고 있다. 노순택은 ‘마음에 새긴 물음표 하나, 대추리·도두리의 늙은 농부들에 대한 보고서’, 이상엽은 ‘사할린에서 만난 한인들, 오해 또는 진실’, 이재갑은 ‘아직 끝나지 않은 그들만의 전쟁, 혼혈인’, 에서 사람의 얼굴을 통해 시대를 읽어내고 있다.

그 방식은 다를지라도 사람의 몸짓과 삶에 대한 응시가 드러나는 사진에는 깊은 울림이 있다. 추모특집으로 마련된 ‘사진가 전몽각의 윤미네 집’에는 갓 태어난 아기 때부터 어른으로 성장해 결혼할 때까지 자신의 딸과 가족을 찍은 아버지의 사랑이 진하게 녹아 있다.

최초입력 : 2007-02-14 14:42: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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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 품 같은 고향 영영 떠난다니” 눈시울만

“어머니 품 같은 고향 영영 떠난다니” 눈시울만
[이주 합의 대추리 가보니] “울며 겨자 먹기”…설 커녕 인적 뚝
 
 
한겨레  
 
 
» 미군기지 확장·이전 반대 투쟁의 구심점이었으나 지난해 결국 강제 철거된 경기 평택시 팽성읍 대추분교의 잔해가 마치 폭격을 맞은 듯 대추리 겨울 들녘에 널브러져 있다. 미군기지의 확장·이전을 둘러싸고 빚어진 주민과 정부의 갈등은 3년6개월 만인 지난 13일 ‘이주 합의’로 일단락됐다.
 
모두가 떠나가야 할 너른 들판. 누렇게 말라 비틀어진 갈대와 잡풀이 뒤엉켜 세찬 겨울바람에 흔들렸다. 새벽녘까지 추적추적 내린 겨울비 탓인지 방패를 든 전경들 어깨 너머로 보이는 마을은 더욱 을씨년스러웠다.

설을 나흘 앞뒀지만 마을 어디에서도 명절 분위기는 느껴지지 않았다. 이맘때면 방방곡곡 어디서나 볼 수 있는 ‘고향 방문을 환영합니다’라는 펼침막조차 눈에 띄지 않았다. 폭격을 맞은 듯한 건물 잔해, 폐허로 방치된 농가의 깨진 유리창, 인적 없는 골목을 누비며 외지인을 향해 꼬리를 흔들거나 짖어대는 강아지…. 2007년 2월14일 오전 경기 평택시 팽성읍 대추리의 풍경이다.

바로 하루 전, 마을 주민들은 어쩔 수 없이 정부와 이주에 합의했다. 하지만, 고향을 떠나야 하는 노인들은 깊은 상실감과 절망의 늪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분노도 컸다. 여느 때 같으면 기자들을 만나 푸념도 하고 한숨도 짓던 마을 노인들은 “이제 다 끝났는데 사람 취급도 못 받는 우리에게 뭘 더 얘기하라는 것이냐”며 노인정 문을 굳게 닫아걸었다.

4대째 살아온 고향을 떠나야 하는 방효태(71)씨는 “강아지 이사하는 것도 아니고 나가기로만 합의하면 어떻게 하란 말이여”라며 “17살 때 미군기지 때문에 이곳으로 쫓겨와 50년 넘게 자갈밭 갈아놨는데 이제 어머니 뱃속 같은 이곳을 영원히 떠나야 하다니 어찌할 줄 모르겠다”고 말끝을 흐렸다. 그는 “농사야 쇠뼈다귀 울궈먹듯 하는 것인데, 여기 있는 사람들이 나가서 무엇을 해먹고 살란 말이냐. 다리 뻗을 만하면 쫓겨나고 살 만하면 내몰리는 처지가 너무도 비참하다”며 가슴을 쳤다.

기척이 있는 집 문을 두드려 만난 김아무개(80) 할머니는 “이 나라에서 백성 취급을 받으며 살 수 있는 날은 내 평생 없는 것 같다. 떠난다는 말만 들어도 가슴이 떨린다”며 눈물을 글썽였다.

이름을 밝히길 꺼린 주민대책위원회 관계자는 “비록 정부와 합의는 했지만 마을 주민들의 충격은 누구도 헤아릴 수 없을 것”이라며 “힘의 논리와 시간적 압박에 못 이겨 이뤄진 이주 합의여서 안타깝고 억울하다”고 말했다. 그는 “주민 대부분이 70살을 전후한 노인들인데, 이주단지로 지정된 곳은 주변이 양계장과 목장, 과수원 등으로 둘러싸여 사람 살기에는 적합하지 않다”며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합의가 이뤄졌다”고 전했다.

오는 17일 900회를 맞는 미군기지 확장·이전 반대 촛불집회장인 대추리 농협 창고 앞에서 만난 문정현 신부는 “폭력으로 시작한 미군기지 이전 작업은 마을 주민은 물론 국민 모두에게 좌절과 분노만 남기게 됐다”고 목청을 높였다.

미군기지 반대를 알리는 깃발이 여기저기 나부끼는 대추리에 곧 찾아올 ‘마지막 설날’은 ‘까치 설날’만 있을 것 같았다. 평택/글·사진 김기성 기자 player18@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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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땅 뺏긴 죄인” ‘고향의 봄’ 哭소리

“고향땅 뺏긴 죄인” ‘고향의 봄’ 哭소리

“이번 설이 마지막이네요. 고향을 빼앗긴 죄인들이 무슨 낯으로 조상님을 뵐 수 있겠습니까….”

설을 나흘 앞둔 지난 14일 경기 평택시 팽성읍 대추리. 미군기지 이전으로 다음달 말 4∼5대째 살아온 고향을 떠나야 하는 주민들은 깊은 한숨을 쏟아냈다. 마지막까지 고향을 지키다 쫓겨나는 46가구 주민 130여명의 표정에서 명절 분위기를 느낀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했다.

 
▲ 지난 14일 밤 대추리 주민들이 마을 농협창고에 모여 문정현 신부의 반주에 맞춰 ‘고향의 봄’을 부르며 설움을 달래고 있다.

“죽어서도 조상님 뵐 낯이 없어요…”

전경들이 겹겹이 둘러싼 대추리 삼거리를 통과해 마을에 들어서자 무거운 적막감이 어깨를 짓눌렀다. 불도저와 굴착기로 갈아엎은 농토는 흉하게 속살을 드러냈다.

유리창이 깨진 폐가에는 주인 잃은 개들만 을씨년스럽게 짖어댔다. 이곳이 220여가구 600여명이 오순도순 살았던 마을이라고는 상상하기 어려웠다.

평생을 이 곳에서 살아온 조윤호(70) 할아버지는 “1952년에는 평택기지를 만든다고 미군에 쫓겨났는데 이번에는 우리 정부에 쫓겨난다. 평생 사람 취급 못 받고 쫓기는 신세가 서글프다.”며 가슴을 두드렸다.

이어 “서울에 살고 있는 세 자녀와 손주들이 설에 내려 오는데 마지막으로 고향의 모습을 보여주게 돼 마음이 아프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마을회관에서 소주잔을 기울이던 엄팔복(71) 할아버지는 “말로만 국민을 위한다는 정치인들 중에서 우리를 위해 진정 싸워준 이들이 얼마나 있었냐.”고 넋두리를 쏟아냈다.

5대째 이 곳에 터전을 일군 최중교(49)씨는 더욱 답답해 했다. 마침 이 날은 할아버지 제사를 모시는 날. 장손인 그는 “합의를 했다고 하지만 사실 정부가 우리를 포위해 협박하면서 단념시킨 것이나 다름없다.”면서 “일부러 자식들도 부르지 않고 아내와 단 둘이 마지막 제사를 올리기로 했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남은 46가구 3월말까지 이주

이웃들이 하나 둘 떠난 뒤 마지막까지 대추리를 지켰던 46가구도 다음달 말까지 인근 노와리와 남산리로 이주하기로 지난 13일 정부와 합의했다.

그러나 합의에 대한 불만과 삶의 터전을 빼앗겼다는 무력감, 외지인에 대한 경계심은 마을의 공기를 더욱 냉랭하게 만들었다.

충남 예산에서 여섯 살때 이사를 왔다는 박갑순(53·팽성주민대책위원회 기획부장)씨는 어렸을 때 비가 조금만 와도 논이 온통 물바다로 변했다고 말했다. 행여 둑이 넘칠까봐 주민들이 온 몸으로 막으며 지켜낸 땅이라고 당시를 떠올렸다. 그는 “정부와 합의는 했지만 3년 6개월이나 되는 길고 긴 싸움 속에서 힘의 논리와 시간적 압박에 못 이겨 이뤄진 것이어서 억울할 뿐”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마을 어귀에서 만난 최모(71) 할머니는 “지금까지 남은 이들은 이주하면 당장 소작지을 땅조차 없어 공공근로라도 나서야 할 이들이 태반인데 ‘보상금으로 억만장자가 됐다.’고 일부 언론이 악의적으로 보도하는 것을 보며 눈물을 흘렸다.”고 하소연했다.

이날 밤 주민들이 그동안 모임장소로 이용했던 농협창고에 모여 2년전 대추리로 이사와 주민과 함께 이전 반대 투쟁을 벌여온 문정현 신부의 아코디언 반주에 맞춰 ‘고향의 봄’을 부르며 마지막 정리 모임을 끝냈다. 처량한 아코디언 가락에 맞춰 노래를 부르는 주민들 사이에서는 간간이 고향을 잃는다는 설움이 흐느낌으로 울려 퍼졌다.

“나의 살던 고향은 꽃피는 산골….”

글 평택 임일영 류지영 손형준기자

argus@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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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들은 무서워-_-

들소리에서는 지난번 노인대상 미디어교육을 끝내고

이번에는 동네 아이들을 대상으로 미디어교육을 준비하고 있다.

어제는 우리 모두를 공포에 떨게 했던 아이들과의 첫 대면! 오리엔테이션이 있던 날;;

 

오리엔테이션을 몇일 앞두고 나서부터 난 이 일을 어찌하나,,라는 생각에 시달렸다.

아이들과 함께 무엇을 한다는 것은 생각만해도 아득한 일이다.

더구나 이 동네의 말썽꾸러기 녀석들

아우 이름 말 안해도 알 그 녀석들 생각하니 눈앞이 깜깜해진다.

 

역시,

첫 모임은 난항이었다.

아이들은 단 1분도 어떻게든 이야기를 해보려고 하는 우리에게 집중하지 못했다.-ㅅ-

캠코더와 디카 중에서 무얼 배우고 싶은지,

어느 시간이 좋은지, 그 어느 질문에도 대답하지 않은 채 아이들은

앞에 펼쳐져있는 간식거리인 오뜨와 카스타드에만 집중했다.

 

참다못한 넝쿨 기자,

'너희들이 이렇게 계속 대답 안하면 우리들 마음대로 다 정해버린다?'

넝쿨님 또 흥분하셨다. -_-

 

그러자 제일 형인 선민이가 말했다.

"그건 인권침해잖아요!!"

 

당황한 넝쿨.

'아니, 저 그러니까, 너희가 이야기를 도무지 하지 않으니까,

우리는 그렇게 생각할 수 밖에 없잖아~~ (급 고분고분)'

 

나뷔가 썼음.

깔깔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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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소리 후원계좌는

국민은행

632902-01-107134

이하연

 

 

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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