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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람시 『옥중수고』의 레닌주의 정치사상
한동백 | 집행위원
제1강
그람시의 정치 및 철학사상을 파악하는 데서 가장 흔히 거론되며 읽히는 문헌은 『옥중수고』이다.
1926년 11월, 그는 파시스트 사법당국의 탄압으로 레지나 코엘리(Regina Coeli) 감옥에 수감되었으며, 최종적으로 투리(Turi) 감옥으로 이감, 사망하기까지 약 11년 간 파시스트 당국의 집요한 감시 아래에 있었다. 『옥중수고』는 파시스트 정권의 광포한 인권 유린 시기, 옥중에서 문건 작성 허용 조치(1929년 2월)가 이루어진 후 그가 저술한 옥중 단편을 선별한 것이며, 그 수록 문서의 편집 형태와 순서 배치는 편집본마다 다르다. 문헌의 이러한 발생적 특성은 각기의 장단을 불러왔다: 장점은 수고에 포함된 각각의 주제에 대한 그람시의 사상을 개별적으로, 빠르게 습득할 수 있는 형식이라는 점이다; 단점은 그가 다룬 각각 영역의 논설을 수미일관한 체계로 모아내기 어렵고, 다양한 역사가, 특히 베네데토 크로체(Benedetto Croce)의 역사철학을 극복하는 과정의 독해가 추가적인 철학적 학습을 요하며, 마지막으로 그의 분석이 당대의 이탈리아의 역사적 특수성에 크게 빚지고 있다는 것이다.
『옥중수고』의 문장적 난해함은 수고의 문장이 불구하고 파시스트 정권의 검열을 피하려는 의도로 개념의 부분적인 변형화를 거쳤다는 것, 투옥과 감시라는 매우 어려운 조건에 더해 충분한 문헌을 구할 수 없었던 상태에서 작성되었다는 것, 마지막으로 그람시의 본래 문체의 이탈리아적 성격이 불러온 결과이다. 그러므로 우리 동지들이 그람시의 문헌을 읽는 데서 수고에 정리되지 않은 채 드러나 내용을 체계화하는 방식으로 ‘소화’하여 정치 일선에서 유효한 전술 이론으로 활용하고자 한다면 매우 난감해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반면 분산된 영역에서 도드라지는 개념 일부를 선별하여 자신의 주장을 강화하는 데에 그람시를 활용하고자 하는 수정주의 지식상에게 『옥중수고』는 보고(寶庫)일 것이며, 이는 실지 지식사적으로 매우 부적합한 방식으로 반복되었다.
이러한 조건에서 나는 국내에서 가장 대중적인 번역서의 원 편집본이 선별한 단편과 영역본에 실린 단편을 국내의 정치적 제 조건에 맞게 선차적으로 다루어 그람시 사상에서 기초적인 것이 될 만한 내용을 재차 선별하고 이를 집약하여 총 여섯 강의의 형태로 투쟁의 일선에 보급하고자 한다. 그러므로 앞으로 이어질 내용이 엘리트주의적으로 의도된 복잡함을 추구하는 무리가 사상을 다루는 방식─특정한 문구나 용어 집착하여 과도한 추측을 담고 거기서 다시 어떠한 ‘해석’을 낳아 그것으로써 글의 분량을 쓸데없이 늘어뜨리는 행태, 온갖 ‘연구자’의 논문을 찾아내어 아무런 해석 과정 없이 주석을 난잡히 추가하는 것은 앞으로 이어질 글에서 찾아보기 힘들 것이다. 한편으로, 나는 이 글을 향후 교육 사업을 거듭하여 얻은 실천의 경험에 근거하여 지속적으로 내용과 문체를 보완해 나갈 것이다.
§ 1. 그람시가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에서 제시된 집단의지의 단일 인격, 즉 〈대장(condottiere)〉에 착안하여 시민사회의 역관계의 구체적 양상을 해명하려 했음은 여러 단편에서 반복적으로 확인할 수 있다. 그에게서 시민사회란 토대와 상부구조를 잇는 중간 지대이며, 이 지대에는 수많은 사적 조직체가 서로 얽혀 있다. 이 사적 조직체는 언론, 교육기관, 명목상의 정치조직 등을 망라한다. 이 영역은 그 의식적인 성격으로 인해 종종 상부구조와 동일시된다.
시민사회에서 계급적 집단의지의 응집적 내용인 〈대장〉은 국가에 현실적인 영향을 가한다는 점에서 매우 중요한 요소이며 모든 정치 분석에 현실성을 부여한다. 그는 다음과 같이 적는다: “대장은 ‘집단의지’의 상징을 각오에 찬 것으로서, 그리고 ‘신인동형동성설(神人同形同性說)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특정한 정치적 목표를 지향하는 하나의 집단의지가 형성되는 과정을 보여주는 데에서 마키아벨리는, 길게 꼬여가는 논술이나 행동 방식의 원칙이나 기준에 대한 현학적인 분류들에 의존하지 않았다.”1
마키아벨리의 학설에서 집단의지의 형성과 연계되는 부위에 대한 그람시의 지대한 관심은 그가 시민사회에서 단지 우연적인 성격을 띠고 형성되다 흩어지는, 일시적인 집단의 형성이 아니라 강력한 목적의식과 결합력을 가진 정치적 조직체를 형성해 나가는 데서 작동하는 그 보편적 연관을 파악하는 데에서 노동계급 운동의 구심을 찾으려 했음을 파악할 수 있게 한다. 즉, 이로써 그는 “분산되고 흩어진 사람들에게 작용하여 그들의 집단의지를 일깨우고 조직하는 정치이념의 본보기”2를 이탈리아의 특수한 조건에서 현실성으로서 상승시키고자 한다.
§ 2. 집단의지란 다름이 아니라 정치운동에서 의식적으로 관철되는 〈연속성(continuita)〉이다. 정치적 현상으로서의 〈연속성〉이란 무엇인가? 하나의 사물, 관계, 현상을 구체적으로 파악하기 위해서는 일차적으로 관찰된 대상의 현실적 대립물을 구해야 한다. 그람시는 조르주 소렐(Georges Sorel)이 제출한 총파업으로서의 〈신화(mito)〉에 내재한 근본적 한계를 지적3함으로써 이를 마키아벨리가 뛰어들어 그 스스로 동화된 군중, 즉 “어떤 ‘일반적인’ 군중이 아니라 마키아벨리 자신이 지금까지의 주장을 설득해 낸 군중”4을 정치적 행위의 동력으로 삼는 운동과 대립시킨다. 이는 매우 중요한데, 왜냐하면 소렐의 ‘신화’가 군중의 가장 기회주의적인 측면의 원천인 자연발생성을 기반으로 하는 만큼, 그것이 특정한 목적에 귀속된 채 체계적이고 일관된 프롤레타리아 정치운동을 전혀 기대할 수 없음을 폭로하기 때문이다. 이는 “사전에 수립된 모든 계획은 유토피아적·반동적”5이라는 소렐의 견해에 대한 그람시의 공격에서 명확한 것으로 된다.6
“이제 모든 ‘논리적’ 주장은 바로 군중 자신의 자기성찰이─곧 대중적 의식 속에서 진행된 내적인 추론이며 결론은 절실한 긴급성의 외침이다─된다.”5 여기서부터 “정열은 논의 자체에서부터 ‘정서’·열기·행동을 향한 열광적인 갈망으로 변하여 간다.”3 이때 ‘정열’에서 ‘열광적인 갈망으로 상승·전화하는 경로는 하나의 정열에서 다른 중대한 정열로 옮겨가는 것이 아니라 무질서에서 의식적으로 무장한 질서 있는 정치의 군대로 발전함을 뜻함은 자명하다. 여기서 그람시는 “군중 자신의 자기성찰”을 언급하였는데, 이는 정치적 각성을 위한 여러 가지 경험과 과학적 이데올로기 내화의 투쟁을 모두 포괄하는 것으로서 내내 그의 단편에서 다른 표현으로 강조된다.
§ 3. 〈현대군주(principe moderno)〉는 이러한 정치적 조직체의 보편적 자기 연관 체계, 즉 “이미 인정받았으며 또한 어느 정도까지는 행동을 통하여 스스로를 확인한 하나의 집단의지가, 그 속에서 하나의 구체적인 형태를 취하기 시작하는 유기체 또는 복합적 사회 요소일 수밖에 없다.”9 그리고 “역사는 이미 이러한 유기체를 보여주었는데, 그것이 바로 정치정당(partito politico)─보편적·전체적으로 되고자 하는 집단의지의 효소들이 함께 모인 최초의 세포─이다.”10
결국 그람시의 정치사상에서 〈현대군주〉는 다름이 아니라 〈정치정당〉의 운동이다. 〈정치정당〉의 근대사적 모범 사례는 그에 따르면 프랑스의 자코뱅 세력이었다. 아쉽게도 “이탈리아에서는 늘 그러한 효율적인 자코뱅 세력이 부족하였으며 또 구성되지도 못하였다.”11 그는 이렇게 된 조건을 이탈리아의 강력한 농촌 부르주아의 존재에서 찾고 있으며, 또 이러한 악조건을 해소할 긍정적인 것을 “공업생산분야에서 적절한 발전을 얻었고 또 일정 수준의 역사·정치적 문화를 습득한 도시 사회집단들의 존재”12에서 찾는다. 그렇지만 “거대한 농민대중이 이들과 동시에 정치 생활로 분출되어 들어오지 않는다면 국민적·군중적 집단의지의 형성과 발전은 절대적으로 불가능하다.”13 이는 노동계급이 집단의지를 형성해 나가는 실질적 주력으로 됨에 있어 특수한 조건에 따라 그보다 보조적인 성격을 띠는 집단 및 역량의 힘을 유기적으로 묶어 내야 한다는 중대한 과제가 필연적으로 제시될 수밖에 없음을 밝히고 있다. 이와 같은, 특수한 조건에 근거한 주동적 확장력 없이 지속적이고 유기적인 운동을 해 나간다는 것은 그에게 상상할 수 없는 것이었다. 역사적으로, 그람시는 이와 관련하여 이탈리아 공산주의 운동에서 아마데오 보르디가(Amadeo Bordiga)의 교조주의적 노선의 한계를 다음과 같이 지적하였다:
“당 중앙에서 공식적인 결의에 따른 대규모 행사가 아닌 한, 당의 활동과 내부 생활에 군중이 참여하는 것은 당의 단결과 중앙집권제에 대한 위협으로 여겨졌다. 당은 혁명적 군중의 자발적 운동과 중앙의 조직 및 지도 의지가 상호 수렴에 이르는 변증법적 과정의 결과로 여겨지지 않았다. 그것은 단지 공중에 붕 떠 있는, 자립적이며 자체 발전하는 무언가, 즉 혁명의 물결이 정점에 달했을 때, 혹은 당 중앙이 공세에 나서기로 시작하고 군중에게 몸을 숙여 그들을 각성시키고 행동으로 이끌 때 군중이 우르르 합류하게 될 무언가였다. 당연히 일이 이런 식으로 진행되지 않았으므로, 중앙이 아무것도 알지 못하는 사이에 기회주의적 감염 영역이 확산하였다.”14
이처럼 〈정치정당〉은 광범한 군중 사이에서 일어나는 자발적인 운동, 심지어 비록 공산주의적 의도에 대부분 합치하지 않는 흐름마저 당의 심층과 부단히 연결하여 시민사회 전반에 견고한 대중적 전선을 치면서 장기적으로 산개한 자발적 운동에 일치점을 내재해 나가는 운동이다. 반대로 자발적 운동과 단절된 채, 자립화한 내부의 원환(圓環)에서 부유하며 짜인 섬유 덩어리를 군중에게 일방적으로 내려 먹이는 ‘혁명적 정당’은 전혀 현실적인 〈정치정당〉이라 할 수 없다.
결과적으로 〈정치정당〉은 다음의 세 영역으로 이루어질 수밖에 없다: 1. “일반적·평균적인 사람들로 이루어진 대중적 요소”15; 2. “중요한 응집적인 요소”16; 3. “중간적인 요소”3.
첫 번째 요소는 창조적 정신이나 조직역량의 형태에서 참여가 이끌어지지 않으며, 일차적으로 충성과 규율이라는 형태를 취한다. 이 요소는 이들을 집중시키고, 조직하고, 훈련시키는 누군가가 있는 한에서만 세력이 된다. 이러한 응집력이 없다면 이 요소는 흩어져서 무기력하게 되고, 결국 아무것도 아니게 된다. 두 번째 요소는 별것 아니거나 아무것도 아닐 세력들의 복합체를 효율적이고도 강력하게 만든다. 이 요소는 “대단히 응집적이고 집중적이며 규율 잡힌 힘을 지녔으며”3 또한 “혁신의 힘을 지녔다.”3 세 번째 요소는 첫 번째 요소와 두 번째 요소를 잇는 역할이다. 이들은 지식 분자와 관료들로 구성되어 있다. “두 가지 사이의 접촉을 외형적으로만이 아니라 도덕적·지적으로 유지한다.”3
두 번째 요소는 수적으로 매우 적으며, 당에서 이 요소를 지속적으로 보충해 주지 않는다면 당은 연약한 공격에도 쉽게 무너질 수 있다. 그러므로 이 요소는 정당에서 부단히 제 특성을 재생산하기 위한 갖가지 방법을 모색해야 하고 이를 달성해야 한다. “투쟁에서의 패배는 언제나 염두에 두어야 하는 것이므로, 스스로를 계승할 자에 대한 준비는 승리를 위한 활동과 똑같은 정도로 중요하다.”21
대자본은 〈정치정당〉을 갖지 않으며, 그저 유동적인 조건에 맞게, 자신들의 이해에 가장 적합한 정당을 택함으로써 사회적 영향력을 유지하려 하는데, 여기서 그들의 계급적 본질에 적대적인 정당은 당연히 배제된다. 그러나 그들은 긴박한 상황에서 특정 정당을 배타적으로 지원하는데, 이는 일반적인 상황에 비추어 보았을 때 상대적인 차이를 가질 뿐이다.
§ 4. 〈현대군주〉는 군중을 두 가지 기본 요점─“[‘집단의지’]의 조직가인 동시에 그것의 적극적·눙동적 표현인 국민적·민중적 집단의지의 형성, 그리고 지적·도덕적 개혁”22의 틀이 되어야 한다. 중요한 것은, 여기서 “국민적·민중적 집단의지의 형성, 그리고 지적·도덕적 개혁”이 “사회적·경제적 분야에서 자신들의 위치를 개혁·변화시키지 않는다면”3 일어날 수 없다는 데에 있다. 다시 말해, “지적·도덕적 개혁은 경제적 개혁의 강령과 연결되어야”3 하며, “진정, 경제적 개혁의 강령이야말로 바로 모든 지적·도덕적 개혁이 표현되는 구체적 형태이다.”3
§ 5. 모든 〈정치정당〉은 불가피하게 치안 유지적인 성격─특정한 역사적 체제에서 통용되는 질서, 법적 수단과 여러 관념 형태들─을 띤다. 이는 타도해야 할 체제에서의 치안 유지에도 요지부동하게 내재해 있는 자체 변증법적 속성에서 연유한다.
그람시는 이 속성에 근거하여, 치안 유지적인 성격에 대항하는 세 가지 영역을 다음과 같이 나열한다: 1. “그 법으로 인해 지위가 박탈된 반동적인 사회 요소”26; 2. “그 법이 억제를 가하는 진보적인 사회 요소”3; 3. “그 법이 대변하였다고 보이는, 문명의 수준에 아직 이르지 못한 요소.”3 예컨대, “지위를 박탈당한 반동적 제 세력을 법의 울타리 속에 가둬 두고자 할 때, 그리고 뒤처진 군중을 새로운 법의 수준으로 끌어올리고자 할 때 그 기능은 진보적이다.”3 반대로 “역사의 생명력을 억제하고, 이미 지양된 반역사적인, 그리고 비본질적인 것이 된 법을 계속 유지하고자 할 때 그 기능은 반동적인 것이다.”3
§ 6. 때에 따라 ‘매우 전투적인 양상’으로 재생되는 ‘이론적 생디칼리즘’의 갖가지 실천태는 가장 맹렬한 경제주의이며, 이는 본질적으로 역사적 특수성에 따라 개별적 형태를 취한 자유방임 자유주의에 불과하다.
경제주의는 여러 양상으로 나타나는데, 그것은 부르주아 정부와의 일체 협력을 맹렬히 반대하였던 이탈리아 사회당의 ‘비타협주의파’와 같은 부류부터, “상황이 나빠질수록 더 좋다”는 식의 가속주의, 당을 더욱 확장된 노동조합으로 여기는 태도 등 다양하다. 레닌은 이미 이와 같은, “순수한 노동운동”을 추구하던 ‘혁명주의’에 대해 다음과 같이 일갈한 바 있다:31
““경제주의”가 드러난 최초의 문헌에서 이미 우리는 너무나 독특한, 그리고 현재의 사회민주주의자들 사이에 나타나고 있는 견해차를 전부 이해할 수 있을 만큼 특징적인 현상을 볼 수 있다. “순수한 노동운동”을 지지하고, 프롤레타리아 운동과의 가장 긴밀하고 가장 “유기적인”(『노동자의 대의』의 표현이다) 관계를 지지하는 자들, 비노동자 지식인(사회주의적 지식인이라 할지라도)이라면 다 반대하는 자들은 자신들의 입장을 옹호하기 위해 부르주아적 “순수한 노동조합주의자들”의 논거에 의거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이 그것이다. … 이는 노동운동의 자생성에 굴종하고 “의식적 요소”, 즉 사회민주당의 역할을 축소하는 것은 그것이 어떤 것이든─당사자가 원하든 그렇지 않든 아무 상관없이─그 자체로 노동자에 대한 부르주아 이데올로기의 영향력을 강화함을 뜻한다는 것─『노동자의 대의』는 이를 결코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을 보여주고 있다.”32
그람시에 의하면 경제주의적 ‘분석’에는 다음과 같은 가설들의 검토가 부재한다: 1. “운동을 추종하는 군중의 사회적 내용”33; 2. “이 군중은 세력들의 균형에서─새로운 운동이 등장했다는 바로 그 사실이 증명하듯이 이미 변화 과정에 있는 균형이다─어떠한 기능을 수행했는가?”3; 3. “일반적인 동의를 얻은 운동 지도자들이 제시한 요구들의 정치적·사회적 뜻은 무엇인가? 이 요구들은 얼마나 실제적인 필요에 일치하는가?”35; 4. “그 수단들은 제기된 목적에 부합되는가?”36; 5. “오직 최종적인 분석에서, 그것도 도덕적인 것으로서가 아니라 정치적으로 그러한 운동은 반드시 악용되여 그 운동을 추종한 군중들이 기대한 것과는 전혀 다른 목적을 위해 봉사할 것[인가?]”3
경제주의자들은 사실상의 분석 없는 선언에 만족하고, 이 선언에 현실을 꿰맞추려 한다. 그러나 이러한 선언은 그들이 역사 발전의 ‘순수한’ 법칙이라고 여기는 것 중에서도 가장 추상적인 일반성을 추려내 여러 수사를 집어넣은 것에 불과하며, 이러한 일반성이 기계론적인 방식으로 반복될 것이고, 그때가 도래했을 때 과장된 행동의 개시가 모든 문제를 해결하리라고 믿는다. 그러므로 “[보편적] 조건들을 만들기 위해 사전에 조장·계획하고자 하는 인위적인 노력은 모두 쓸데없는 짓일 뿐 아니라 또한 유해한 것이기도 하다는”38 자세를 취하며, “이러한 숙명론적 신념과 나란히, 무장투쟁의 규정적 특성에 맹목적이고도 무분별하게 의지하려는 경향도 존재한다.”3
§ 7. 특정 시기의 역사에서 활동하는 제 당파의 역관계를 정당하게 분석하기 위해서는 토대와 상부구조의 관계라는 문제를 건들지 않을 수 없다. 그람시는 이와 관련해서 두 가지 원칙을 다음과 같이 제출한다: 1. “어떠한 사회도, 그것을 이루는 데서 필요하고도 충분한 조건이 이미 존재하지 않았거나, 아니면 최소한 그 조건이 생성되어 발전하기 시작하지 않는 과제를 스스로 제기하는 일이 없다.”40 다시 말해, 역사적 사회형태의 자기 순환에서 인간의 의지, 실천을 매개로 하며, 이러한 것이 없는 무기(無機)적이고 자동적인 사회-역사적 발전 과정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이는 역사적 유물론이 고전적 목적론과 숙명론과 본질적인 차이를 가지는 지점이다; 2. “어떠한 사회도, 그 사회의 내부 관계 속에 잠재된 모든 생존형식을 먼저 다 발전시키기 전에는 붕괴하지 않으며, 다른 것으로 교체되지도 않는다.”41 요컨대, 한 사회구성체의 내적 모순은 모순을 야기하는 (현실적이고 가능한 모든) 요소의 고도 발전을 요구하며, 이것이 충족되지 않는다면 새 사회로의 이행은 다소 우연적이다.
이러한 기초 위에서 사회-역사적 발전 과정이 상대적으로 영속적인 운동인 〈유기적 운동(movimento organico)〉과, 급성적이고 폭발적이며 일시적인 운동, 즉 〈국면적 운동(movimento di congiuntura)〉으로 나뉨을 파악해야 한다. 〈국면적 운동〉 역시 〈유기적 운동〉으로써 촉발되나 아주 폭넓은 역사적 의미를 지니지 않으며 “세세하고 일상적인 성격을 띤 정치적 위기”42를 야기할 뿐이나, 〈유기적 운동〉은 그 발전 수준 여부에 따라 “사회·역사적 위기를 일으키며 거기에는 공인(公人)과 최고 지도자들을 넘어서 더 폭넓은 사회집단이 문제가 된다.”3 특히 발전된 자본주의에서 사회혁명은 사회-역사적 발전 과정의 이러한 성격이 매우 도드라지며, 〈국면적 운동〉의 희석화도 상당하다. 실질적으로 이러한 정치적 공간에서 계급의 필연적 배치, 힘의 관계는 사회모순이 점층적으로 쌓이고 있는 〈유기적 운동〉의 영역을 원인으로 가지며, 〈국면적 운동〉은 오히려 우연적인 징후에 불과하다. 예를 들어, “프랑스는 1789, 1794, 1804, 1815, 1830, 1848, 1870년 등 그 간격이 계속 길어지면서 발생한 격동들로 점철된 80여 년을 보낸 후에야 이제 약 60여 년에 이르는 안정된 정치 생활을 누리는 것이다.”44 즉, 프랑스 혁명은 1789년에 시작되고 머지않아 완수된 것─이 혁명이 초기에 이루고자 했던 목표를 달성하는 그 시점─이 아니라, 〈유기적 운동〉으로서의 점증적인 발전 과정이 있고 난 후에야 비로소 특수한 주체적 역량이 확고하게 형성되면서 완수된 것이었다.
그러므로 공황이론의 측면에서도 급성적인 것으로, 즉 국면적인 것으로 보이는 사태의 배후에서 모순이 점증되어 가는 영역 전반을 보는 것이 중요하다. 그람시는 매 시기 정치 영역에서 표지되는 조건에 맞는 전술을 채택하여 이것이 일정 수준 성과를 가져올 때 비로소 “‘국면적’인 지형(地形)”45을 획득할 수 있다고 한다. 여기서 ‘국면적’인 지형은 〈유기적 운동〉과 대립물로서의 〈국면적 운동〉이 아니라, 〈유기적 운동〉의 매 발전 수준에서 사회형태의 교체를 야기하는 조건의 성숙이 주체적 역량으로써 추동되었을 때 전선이 굳어지며 확대된 상태를 뜻한다. 반대로 외양상 ‘원인’인 〈국면적 운동〉에만 주목하여 우경 또는 좌경 기회주의에 빠졌을 때는 “뱀이 뱀을 부리는 사람을 물게 된다.”46
§ 8. 한편 힘의 관계, 즉 세력 관계의 분석에서 “물질적 생산력의 발전 수준은 여러 사회계급이 출현하는 기초를 제공하고, 각 계급은 생산 자체 속에서 한 기능을 대표하며 특정 위치”47를 지니며, “이 관계는 바꿀 수 없는 현실이다.”3 아무도 사회경제적 보편적 연관 및 객관적 법칙에 따라 운동하는 공장, 고용인, 도시, 도시인구의 수효를 바꿀 수 없다. 아무도 특정 순환 국면에서 일정 정도 이윤율의 형성, 생산물의 과잉 정도, 자본주의적 확대재생산에서 수요와 공급의 불비례성 정도를 바꿀 수 없다. “이러한 기본적인 자료를 연구하면 어느 특정한 사회에 변화를 위한 필요충분한 조건들이 존재하는지 아닌지를 알 수 있다.”3 우리는 이를 흔히 객관적 조건이라 한다.
이에 이어 그람시는 주체적 조건에 관해 언급한다: “여러 사회계급이 성취한 동질성·자기의식 및 조직의 정도에 대한 평가”3, 여기서 가장 초보적인 것은 “경제적·조합주의적 수준이다.”3 예컨대, “어떤 직업적 집단의 성원들이 그 집단의 통일성과 동질성에 의하고, 또 그 집단을 조직해야 할 필요를 의식하지만, 그 의식은 아직 더 넓은 사회집단에까지는 미치지 못한다.”52 이에 이은 두 번째 단계는 “의식이 어떤 사회계급의 모든 성원 간 이해(利害)의 연대성에까지 미치게 된 계기”53인데, 이 국면은 여전히 순수하게 경제적인 분야에 한정되어 있다. 그러나 이 단계에 도달하면 입법 및 행정 권력에 접근할 수 있는 권리를 얻게 된다. 세 번째 단계에 이르러서는 “한 집단이 스스로의 조합주의적 이익이 현재와 미래의 발전 과정에서 지금까지의 순수 경제적인 계급의 조합주의적 한계를 벗어나 다른 종속적 집단의 이익이 될 수도 있고 또 되어야 한다는 것을 의식하는 계기이다.”3 이것은 “순전히 정치적인 국면이며, 구조로부터 복합적인 상부구조 영역으로의 결정적인 이행을 나타내는 국면이다.”3 이 국면에서 가장 중요한 지점은 “지적·도덕적 통일성도 확보하고, 조합주의적이 아닌 ‘보편적’ 지평 위에서 수행되는 투쟁을 둘러싼 여러 문제를 제기하며, 결국 한 기본적 사회집단의 일련의 종속적 집단들에 대한 패권(egemonia)을 창출”3한다는 것이다. 이때 “지배 집단은 종속적 집단들의 일반적인 이익과 구체적으로 통합”3되어 있다. 여기서 지배 집단이란 한 사회구성체에서 시민사회의 〈패권〉을 얻은 기본적인 계급, 즉 일정 궤도 내에서 〈패권〉 행사가 가능한 상태의 프롤레타리아와 부르주아 진영을 뜻한다.58 프롤레타리아의 정치적 의식이 성숙하지 못했던 자본주의 형성기와 발전 초기에는 봉건지주 세력과 부르주아 세력이 지배 집단으로 되었다. 세 번째 단계에 진입했을 때 사회의 기본 계급은 그 정치적 목표의 실현을 위한 여정에서 종속적 집단의 이해관계와 유기적인 통일을 이룬다. 물론 이 통일은 여전히 불안정한 균형으로 되어 있으나, 조합주의적 한계로부터는 자유롭다.
마지막으로 그는 ‘군사적 세력들의 관계’에 진입하는데, 이 관계는 다시 ‘기술-군사적’ 특성과 ‘정치·군사적’ 특성으로 나뉜다. ‘기술-군사적’ 특성은 세력의 군사적 활동에서 말 그대로 기술적 수준을 아우르며, ‘정치·군사적’ 특성은 군사적 활동에서 정치적 입지의 형성 과정 전반을 아우른다.
세력 관계에 관한 구체적인 분석에서 중요한 것은 이러한 분석이 매 시기마다 “실천적인 활동, 또는 의지의 노력에 도움이 될 때라야 의미를 갖는다는 점”59이다. 이는 필요한 상황에 언제든 동질성, 응집력, 자각성을 유지하거나 또 그걸 강화해 나가면서 투쟁에 임할 수 있도록 체계적이고 끈질기게 작업을 해 놓는 일이다.
§ 9. 흩어진 것이 없다면 응집된 것도 있을 수 없다. 그람시는 “‘자생적’인 운동을 무시한다거나 경멸하기까지 하는 것, 다시 말해 그 운동에 의식적 지도를 부여한다거나 그 운동을 정치 속으로 끌어들여 더 높은 단계에 도달하게 하는 것에 실패한다는 것은, 자주 매우 심각한 결과를 낳을 수 있다”60고 경고한다. 전개되어 나가는 시기마다 끊임없이 ‘자생적’ 운동이 성장하고 쇠퇴하는 속에서 공산주의자가 다루어야 하는 현실적인 문제가 포함되어 있다. 이는 군중의 하위 계층의 부위에서 쉬이 체감할 수 있는 어떠한 종류의 억압이 임계점을 넘어 실재한다는 징후를 보여주는 것이다. 촉박한 것은, 이러한 ‘자생적’ 운동은 그 의식적 특성상 반동 세력이 유용하게 활용할 수 있는 정치적 자원으로도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요컨대 “경제위기는 한편으로 하위계급들 사이에서의 불만을 일으켜 자생적인 대중운동을 촉발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정부의 객관적 약화를 틈타 쿠데타를 일으키고자 하는 반동적 집단들의 음모에도 이는 좋은 기회로 된다.”3
§ 10. 이른바, “비잔틴주의(bizantinismo)”는 특정 상황에서 유효성이 입증된 보편적 연관의 정신적 구조물을 어느 상황에나 동일한 형태 그대로 적용하는 오류를 뜻한다. 우리가 어떠한 보편적 연관을 발견했고 그것을 정식화하였을 때 이 이론이 유용한 것으로 되기 위해서는 첫째로 “그 이론적 진리가 처음에 발견되었던 상황과는 다른 상황의 구체적 현실을 더 잘 이해하는 데에서 촉매제가 될 수 있는”62지가 검증되어야 한다. 둘째로 “이론적 진리가 그처럼 구체적 현실에 대한 더 정확한 이해를 도와주고 촉진하되, 그러한 기능이 그 이론이 그 현실 속에서 자신을 구체화할 수 있는 능력에서 비롯된 것인”3지가 확인되어야 한다.
특정한 시기가 지나면서 우리에게 익숙한 상황이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것 같지만, 자본주의 생산관계의 내재적인 순환 구조는 일정 순간마다 동일한 상황을 재현하는 원동력을 끊임없이 제공한다. 이는 형태만 다를 뿐, 자연계에도 동일하게 나타나는 현상이다. 그러므로 자연이나 사회상태에 관한 보편적 연관의 지식을 습득하는 것은 중요한 일이다. 그러나 예컨대 중화반응에서 수반되는 화학적 반응의 원리를 산과 염기와 무관한 화합물의 결합에 그대로 적용하여 현상을 해명하려 한다면 이는 크나큰 오류일 것이다. 마찬가지로 경기 순환에서 호황기일 때에 노동력의 일시적인 과수요에 이르러 임금이 상승하는 현상으로서의 보편적 연관의 관계 규정들은 불황에서 임금의 움직임을 해명하는 데 전혀 적용할 수 없을 것이다. 이처럼 이미 획득한 정신적인 보편적 연관 또는 이 연관의 부분을 현상에 적용하는 데서, 이 지적 체계의 그 발생적 계기로서 대상의 특수성을 고려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러므로 보편적 연관의 형태를 띠는 전술적 지침은 항상 우리가 딛고 서 있는 땅의 특수성과 결합된 채 이해되어야 한다.
2025년 1월 11일
- A. F. Gramsci, 『그람시의 옥중수고 1: 정치편』, 제3판, 이상훈 역, 서울: 거름, 2006, 131.
- 위의 책, 132.
- 같은 책.
- 위의 책, 133.
- 위의 책, 134.
- 그는 이에 대해 다음과 같이 적는다: “그 결과 모든 게 비합리적인 것의 개입, 우연(베르그송적인 뜻에서의 ‘생의 약동(lan vital)’ 또는 ‘자연발생성’에 맡겨졌다.” (같은 책.) 그리고 이러한 즉흥적인 행위는 “거의 대부분의 경우 복구와 재정비에나 적합한 것이지 새로운 국가, 또는 새로운 국민적-사회적 구조를 기초하는 데에는 부적합하다.” (위의 책, 137.)
- 위의 책, 134.
- 같은 책.
- 위의 책, 136-7.
- 위의 책, 137.
- 위의 책, 141.
- 위의 책, 141-2.
- 위의 책, 142.
- A. F. Gramsci, “Letter to Togliatti, Terracini and others (9 February 1924)”, Selections From Political Writing 1919-26, London: Lawrence & Wishart, 1978, 198.
- 『그람시의 옥중수고 1: 정치편』, 2006, 168.
- 위의 책, 169.
- 같은 책.
- 같은 책.
- 같은 책.
- 같은 책.
- 위의 책, 170.
- 위의 책, 143.
- 같은 책.
- 같은 책.
- 같은 책.
- 위의 책, 172.
- 같은 책.
- 같은 책.
- 같은 책.
- 같은 책.
- 위의 책, 181-2.
- V. I. Lenin, 『무엇을 할 것인가』, 최호정 역, 서울: 박종철출판사, 1999, 48.
- 『그람시의 옥중수고 1: 정치편』, 2006, 187.
- 같은 책.
- 위의 책, 187-8.
- 위의 책, 188.
- 같은 책.
- 위의 책, 189.
- 같은 책.
- 위의 책, 200.
- 위의 책, 200-1.
- 위의 책, 201.
- 같은 책.
- 위의 책, 204.
- 위의 책, 202.
- 위의 책, 203.
- 위의 책, 205.
- 같은 책.
- 같은 책.
- 같은 책.
- 같은 책.
- 위의 책, 205-6.
- 위의 책, 206.
- 같은 책.
- 같은 책.
- 같은 책.
- 같은 책.
- 이에 관해 그람시는 다음과 같이 적는다: “우리의 조사가 근거해야 하는 정치-역사적 기준은 다음과 같다: 계급은 두 가지 방식으로 지배적이다. 즉 “지도적”이고 “지배적”이다. 그것은 동맹 계급을 이끌고, 반대 계급을 지배한다. 따라서 계급은 권력을 잡기도 전에 “지도”할 수 있으며(이를 해야만 한다), [당연히] 권력을 잡아 지배적인 지위에 서 있을 때에도 계속해서 “지도”한다.” (A. F. Gramsci, Prison Notebooks, Vol. 1, ed. J. A. Buttingieg, NYC: Columbia University Press, 1975, §44.)
- 『그람시의 옥중수고 1: 정치편』, 2006, 210.
- 위의 책, 228.
- 같은 책.
- 위의 책, 231.
- 같은 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