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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주의 인격의 형성·발전과 계급투쟁


민주주의 인격의 형성·발전과 계급투쟁


한동백 | 집행위원

 

경제·정치 영역에서의 논쟁이 인간의 본질, 또는 인격에 관한 논쟁으로 발전해 가는 상황에 직면하는 것은 노동계급이 이데올로기 영역의 계급투쟁을 전개하면서 빈번히 직면하는 현상 하나이다. 우리가 부르주아와 대립하면서 논하고자 하는 주제경제·정치·사회 심지어 군사 우리가 직관적인 수준에서도 정리할 있는 모든 영역과 직접적으로 관련된 논의 인간의 특수한 활동을 산실로 지니고 있다는 점은, 즉자적으로 계급적인 이데올로기 투쟁이 역사적 시기에서 인격의 구체적 내용과 인격 발전의 규제 원리에 관한 주제로 전화하는 것이 필연적임을 보증하고 있다. 인격의 발전 방향 관한 쟁론은 대자적인 것으로서의 계급적인 이데올로기 투쟁에서 중핵의 영역을 구성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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즉자적인 계급투쟁은 아직은 투쟁의 방법과 추이가 자신의 부정항(否定項)의 객관적 발전 과정노동운동에 대한 우익 언론, 어용 지식인의 선전·선동, 근로대중 내부에 광범위하게 퍼진 노동운동 혐오 정서 등과 매개되지 않은 계급투쟁을 뜻한다. 이러한 경향은 시작점으로서 자기의 부정 속에서 자기를 간취하지 않은 투쟁 단계에 속하며, 그렇기에 투쟁에서 아무런 동일적인 규정적 역할을 할 수 없다. 예컨대, (좌우경을 막론하고) 경제주의·조합주의적 경향에서 노동조합의 경제 투쟁은 전체 정치의 판도에 놓인 주체 역량과 군중의 실지 이념적 수준을 가늠하거나 계산하지 않는 것으로 수렴하고, 이러한 일련의 무대책은 투쟁의 성격과 관련한 실재적인 계급적 독자성의 내용 형성을 방해한다. 생동하는 계급적 역관계, 군중적 지반의 운동 판도, 세계관의 인식적 내용의 발전 경향에 대한 상(像)을 결여한 채 단지 노동조합의 기술적 관습에 매인 곳에는 변혁적 학습의 그 어떠한 기반도 존재하지 않으며, 따라서 계급적 독자성의 사상적 기초도 존재하지 않는다.

 

이는 노동자들이 기초적인 생활 투쟁즉, 투쟁을 ‘선도’하는 그룹에 속하여 활동하는 모든 경험으로 이루어진으로 하여금 자기의 구체적 대립자를 경유하여 자기를 인식할 수 없게 한다.

 

이와 똑같은 방향에서 즉자적인 조합 운동은 적대 세력의 선전 전술을 충분히 고려하지 않는다. 이러한 경향은 (우익이 흔히 조장1하는) 노동조합에의 ‘도덕적’ 시선에 체계적으로 대응할 그 어떠한 대중적 및 자체의 정신적 기반도 존재하지 않으므로 경제 투쟁에서 장기적인 성과를 가져오기 힘들다. 이는 노동조합이 단지 조합 내부의 문제에 골몰하는 것이 아닌, 군중과 연결되어 조합의 선진 분자의 지도 아래에 군중의 세계관에 민주주의적 인격을 형성·발전해 나감이 요구되는 것을 보여준다. 이 사업은 오직 노동계급의 당과 긴밀한 연락을 취하는 속에서 전개될 수 있다.

 

계급투쟁의 대자적인 발전 단계는 자기 부정의 총체성 속에서 자기의 역사적 사명을 정립하고 이러한 사명으로써 자기의 동일성을 규정하며, 그렇게 함으로써 동시에 자기와 동일적이지 않은 것에 배타적인 독립성을 전제한다. 이 독립성은 투쟁의 기술적 측면만이 아니라 투쟁의 의식적 전제조건 전반을 스스로 창출해 낸다. 예를 들어 대자적인 계급투쟁에서 노동계급의 윤리란 외부의 ‘지식인’에서 취해진 것이 아니며, 그것은 철저히 노동계급의 이익에 복무하는 모든 행동 방침의 정수(精髓)이다. 이 정수는 자체의 경험, 자체의 실천, 자체의 지성적 작업으로써 형성하며 발전한다. 자체의 발전 순환 구조가 성립되어 있지 않다면 계급투쟁의 양극에서 한쪽은 즉자적인 것이므로 이 즉자적인 한쪽은 단지 즉자적인 운동만을 할 뿐이다. 이러한 운동은 다른 극에 의해 정립될 뿐, 그 극에 규정적인 어떠한 것으로서 맞서 있지는 않다.

 

즉자적인 것에서 대자적인 것으로 나아가는 도정에서 개체적이고 집단적인 모든 수준에서 이데올로기적 지도의 문제가 핵심적임은 굳이 논증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레닌은 이미 계급투쟁에서 전투적 유물론의 의의를 다음과 같이 강조하였다: “러시아에서 아직도 비(非)공산주의 진영 출신의 유물론자들이 있으면 확실히 앞으로 꽤 오랫동안 존재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철저하고 전투적인 유물론의 모든 신봉자들을 소위 교양있는 사회의 철학적 반동과 철학적 편견에 대항하여 싸우는 일에 참가시키는 것은 우리의 절대적인 임무이다. … 아버지 디츠겐[P. J. Dietzgen]은 … 현대사회의 철학 교수들이 사실상 대부분의 경우 ‘교권주의라는 학위를 가진 고용자’라고 말했는데, 이는 부르주아 국가들에 팽배해 있고 그 나라의 과학자와 정치평론가의 주목을 받는 철학적 조류에 대한 근본적인 마르크스주의의 시각을 정확하고 적절히 표현한 것이다.”2​ 그람시는 “거기[각각의 세계관]에 체계적인 통일성을 부여하여 세계의 가장 진보적인 사상이 도달한 수준으로까지 고양”3하기 위한 지적·도덕적 지도의 창출을 보다 진보한 계급투쟁의 선결과제라고 매우 옳게 지적한 바 있다. 즉 실천에서 제기되고 발견되어야 할 이데올로기 투쟁의 내용은 “독일 고전 철학에 포함된 사상을 역사주의적으로 발전시켜, 그것을 군중으로 확산한 세계관과 ‘양식’의 형태로서 수용하고 적극적 행위 규범으로 개조할 수 있는 것”4이어야 한다. 오늘날 이 지도는 민주주의 인격의 함양을 노동계급의 이해와 일치시키고, 이를 제국주의의 야만성에 대한 적대를 내화하는 형태로 상승시키는 정연(井然)한 교육선전으로서 발현한다.

계급적 토대 속에서 발전해 가는 인격, 그리고 그것이 자기 자신의 계기에 역작용하는 실제 관계들의 구체적 내용이 무엇인가 하는 문제, 그리고 그러한 내용이 군중과의 접촉에서 어떠한 위력을 떨칠 수 있는가는 비단 오늘날에 와서 새롭게 제기된 문제는 아니다. 한 계급의 이해관계를 직접적으로 대변하는 것과 인간 본질에 관한 물음이 항상 맞짝으로 엮인 이와 같은 현상은 이미 공상적 사회주의자들이 오래전에 다룬 바 있으며, 적지 않은 진보적 이데올로그가 천착했던 문제였다. 리차르드 이바노비치 코솔라포프(Richard Ivanovich Kosolapov)는 이에 관해 다음과 같은 역사적 예를 들고 있다:

“공상적 사회주의자들을 괴롭히곤 했던 공산주의에 대한 반론 중 하나는, 만약 필요에 따른 분배의 원리가 도입된다면 사회는 게으름으로 인해 멸망하리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누가 일하고 싶겠는가?’라고 부르주아 이론가들은 전통적 문제를 제기한다. 18세기로 거슬러 올라가서 영국의 진보적인 정치 평론가 윌리엄 고드윈은 그의 저작 『정치적 정의에 대한 연구(An Inquiry Concerning Political Justice)』에서, “평등한 체계는 사람들에게 상당한 지적인 개선이 이루어질 때만 확립될 수 있다”고 말했다.”5

계급투쟁은 인간의 특질을 지닌 계급 간 적대를 다루며, 계급 적대는 그러한 적대를 필연적인 것으로 뒷받침하는 사회적 관계사적 소유로부터 재생산되고, 적대적인 생산 관계는 노동을 통해 자연과 매개하는 인간적 활동에 근거해 있다. “역사과정의 본질은 사회적, 역사적 매개물에 의한 독립된 주체들의 사회적으로 규정된 활동의 실천적 상호 작용”6이다.

 

마르크스와 엥겔스가 독일 진정사회주의의 내재적 모순을 폭로하면서 세워놓은 사회적 작용의 일반적 운동 형태인 사회적 관계는 상대적으로 독립된 주체를 정립하고 또 이에 대해 독립된, 즉 자립화한 힘으로서 작용한다. “사회가 황폐해져서 이런 사회를 이루는 개인에게서 온갖 결함이 생겨난다는 사실은 우리가 경험하고 있다. 사회는 이런 개인에서 분리되어 자립화되며 고유한 힘으로 개인을 황폐화한다.”7 인격과 사회는 상호 작용한다. 즉 역사적으로 규정되어 있는 사회적 관계는, 인간적 활동을 포괄하는 특수한 가상태(假想態)라고 할 특수한 인격, 즉 특수한 내용과 형식을 지니는 자립화된 인격을 정립하고, 인격은 다시 그것에 자립화한 사회적 작용력에 대상화되어, 그것에 종속된다. 따라서 인격은 일차적으로, 사회적 관성과 그 물리력에 타성적이다. 이러한 종속의 결과로서 다시 합법칙적으로 (역사적으로 규정된 사회적 관계의 내용을 반영하는) 새로운 인격이 정립된다. 이 과정에서 자연적 존재로서 인간 본연을 구성하였던 개별적인 자연적 실존은 사회적인 것으로 이행한다.

이처럼 계급투쟁을 안으로 근거하는 역사적-사회적 규정성은 인격의 구체적 내용을 형성하면서, 또 그것과 결부되어 있기에, 인격 발달의 전 역사적 측면과 분리된 계급투쟁의 실제적 내용이란 존재할 수 없다. 따라서 우리가 모든 인간적 활동의 표현을 계급의 영역에 둔다 하더라도 계급투쟁의 개별 영역에서 인간의 본질에 관한 문제가 다루어질 필요가 계속 되살아나기에 이른다. 예를 들어, 역사적 생산양식의 발전 속에서 인간은 어느 계급을 막론하고 자연을 자기의 목적에 맞게 재전유하는 데서 일정한 성과를 거두었다. 그러나 그 양식이 모두 사적 소유에 기초한 착취 사회인 한에서 역시 인간은, 계급을 막론하고 자신을 향한 자연과 사회의 대상적 작용, 소외를 피할 수 없었다. 소외는 인간과 자연, 생산물, 사회제도, 그리고 인간 간 관계의 개별적 내용을 규정하는 측면으로 현상하였다. 인격의 이러한 형성 및 발전 과정은 계급 투쟁에서도, 각 대립하는 계급 간에 부착된 동일한 규정을 통해서도 관찰된다. 가령 자본가계급과 노동계급은 그 계급적 특질이 다르지만, 인간이라는 점에서 같으며, 그 계급적 특질 역시 동일한 인간적 토대, 즉 인간이라는 유(類)적 토대 위에서 형성된다. 이 보편적인 인간적 토대가 자립화한 사회의 규정력을 받으면서, 어떻게 하여 구체적 계급성을 정립하며 또 그럴 수 있었는지 파악하는 것이 중요한 과제이다. 즉, 귄터 구체(Günter Gutsche)가 언급한 바 그대로 ”마르크스-레닌주의의 전체 체계 내에서 마르크스주의 인격 연구가 갖는 중요성은 무엇보다도 그것이 군중이 점차 사회발전의 주체적 요인으로 되어가는 과정의 본질적인 측면을 포착하고 있다는 사실에서 도출”8된다. 

이러한 과정을 거쳐 인격은 계급적 관계에 의해, 즉 이 관계로부터 자립화한 단순 사회적 범주 규정들동시에 오로지 그러한 계급적 관계로부터 그 자립화의 근거가 설 수 있고, 또 그것이 그 자립화를 강화하는 관계를 자기 내에 함유하는 것들, 예컨대 인간’, 인간의 본성’, 인륜’, 도덕 등의 대중적으로 거론되는,  정의되는 표현 형태로 드러나기에 이른다. 그것은 단순히 ‘주관적인 오류’로부터 비롯된 것이거나, 그러한 오류의 일종으로 취급하고 말아야 할 현상이 아니라, 생산력과 생산 관계 간 모순의 자기 전개, 그리고 이에 기초한 계급 대립의 발전 국면에서 형성되어 가는 (객관적인 것으로서) 인격의 발생과 발전 경향에 대한 주관적인 형태로서의 대자적인 직접적 규정성으로 취급되어야 한다. 즉 그것은 초역사적인 것역사적인 생산양식을 ‘초월’해 있는 ‘인간 실체’나 ‘인간 본성’ 아니며, 여러 발전 국면을 거쳐 실재화되어 있는 계급적 관계의 직접적 표현 형태와 나란히 서 있는, 그리고 대상적이라 있는 살아 있는 역사적 실재로서 정립·발전한 인간 본질 영역을 표지해 주는 인간의 대자적 양식의 내용적 부면(部面)이다. 그러므로 오늘날 심리학과 정신철학의  문제에 유물론적 해답을 주는 것은 투쟁의 사활을 가르는 것이라 있다. 우리는, 현시대에서 최대 강령적 요구를 성취하기 위한 도정에서 필연적으로 수반할 개량 및 그것이 사회주의 제도와 연결되었을 때의 윤리적 취급 방식에의 구체적 분석을 제출해야 할 것이다. 예컨대 노동생산성이 명확히 그렇지 않은 경우보다 낮을 것으로 예상되는 장애인의 노동 및 노동력에 대한 경쟁주의, 자본가적 규율은 왜 부당한가? 사회주의 세계의 강고함을 전제한 모든 답변은 필요하긴 하나, 그것만으로는 잠정적인 효과만 가져다 줄 수 있을 뿐이다. 우리는 이러한 질문에 양적 변화질적 비약의 통일적인 숙고의 결과로서의 윤리적 구조물을 사회에 제출할 수 있어야 한다.

관념적인 형태로서의 인격도 그것이 한 사회에서 대중적 영향력을 지니는 순간 물질적인 힘으로 전화되어, 그것 관념의 발생적 계기였던 객관적인 경제적 토대와 계급투쟁의 원리에 대해 역사적인 자기 지위를 강화한다. 예를 들어, 최소 강령적 요구의 달성을 위해 민중에의 여러 형태의 복리증진 강화를 요구하였을 때 부르주아 이데올로그 및 그에 영향을 받는 자들은 다음과 같은 ‘인격 원리’를 강변할 것이다: “그들의 빈곤과 어려움은 순전히 그들 의지의 박약에서 기인한다.” 그러나 객관적으로 존재하는 인격 원리가 이와는 정반대를 지시하고 있음을 공산주의자가 해명, 이를 대중적으로 설득해 내고, 이러한 인격 원리를 이해한 속에서 그것이 이해된 인격에 논리적으로 적절한, 연결된 자아에 조응하는, 정치적으로 성숙한 실천을 감행하는 인격이 굳건해지면 더이상 착취자들은 이를 무시할 수 없다. 이는 이제 실지 현실적인 강압력으로 작용한다. 그러나 현시대에서는 여전히 일반적으로 이러한 것들은 물질적 힘을 갖는 지배 이데올로기로 된다. 인격과 의식 형태 간 상호 연관이 더욱 복잡해지면서 인간 행동 양상을 다루는 무수한 과학 분야가 발전하게 되었다. 관련 분야 중에서 특히 철학에서 다루어지는 모든 인식 발전의 합법칙성에 관한 내용, 그리고 심리학은 인간 관계를 근거하는 본질적이라고 할 물질적 생산 과정의 발전 양상, 이에 기반한 역사적인 사회적 관계에 상대적으로 외재하여 자립화한 인간 특질들을 직접적으로 다루고 있다. 이는 다시 서로에 대해 적대적인 계급 간 투쟁의 자료로 활용된다.

그러므로 우리가 계급 적대의 영역에 들어서는 순간, 항상 인격을 다루어야 하는 상황에 직면할 수밖에 없다. 사회진보에 관한 모든 문제 제기와 이와 관련한 모든 활동에 우리가 들어서는 순간, 우리는 불가피하게 ‘계급적 수사’와 동떨어져 있을 영역에도 발을 들이게 된다. 이러한 양상은 앞서 언급한 그대로, 계급적 관계에 근거하고 있으며, 동시에 그부터 자립화하는 양상이다. 그것은 전자의 측면에서 적대적인 계급적 관계에 의해 발전을 이루는 것이며, 또한 후자의 측면에서 상대적 자율성을 지니는 현상이다. 예를 들어, 피착취 계급이 계속하여 전면적으로 제기하는(또한 이 계급을 향한), 계급 착취와 피착취에 관한 지배 이데올로기의 갖가지 ‘대응’ 현상특히 사회보장을 둘러싼 개량의 시도에서 노동계급이 성과를 내는 데에 장해 요인으로 되는 자본의 ‘인간 본성’의 논리이 없었다면, 계급과 인격의 상호 연관이 지니는 구체적인 사실이 연구되어야 할 사회적 자극이 상실되어 그것은 투쟁에서 그 어떠한 중요성도 담지할 수 없었을 것이다. 객관적인 계급 대립의 발전 양상은 확실히 현 시대에서 자본주의-제국주의적 노예 인격민주주의적 인격의 차이를 정립하는 주·객관적 토대로 기능한다. 동시에 그것은, 그것이 역사적 실재성을 획득하는 순간 인류사회를 구성하는 별도의 객관적 영역으로 승격되어 독립적인 의미를 지니는 연구 대상이다. 모든 사물 규정, 현상은 내면과 외면이 통일되어 있으며, 이때문에 대상의 보편적이고도 필연적인 연관을 파악하기 위해선 그 대상의 내면과 외면을 모두 파악해야 한다.

보리스 티그라노비치 그리고리안(Boris Tigranovich Grigoryan)은 인간 연구의 중요성을 다음과 같이 환기하고 있다:

“인간을 그 모든 표현과 삶의 관계에서 철학적으로 연구하고, 인간에 대한 철학적 이론을 마르크스주의 철학(변증법적 유물론)의 특수분과로 발전시키는 일은 오늘날 공산주의 건설의 중심적 과제들 중 하나, 즉 인간의 전면적이고 조화로운 발전이라는 과제를 다루는 데서 절박한 필요로서 다가오고 있다. 그와 같은 과제는 인간의 본성과 삶의 목적에 대한 과학적, 철학적 이해와 정확하게 일치하는 토대 위에서만 해결될 수 있고 또 그렇게 되어야만 한다.”9

마르크스와 엥겔스는 『독일 이데올로기』에서 공동체즉 공산주의 사회의 건설과 자유로운 인격 형성의 관계에 관해 다음과 같이 언급한 바 있다:

“노동 분업을 통해 인격의 힘(관계)이 사물적 힘으로 전환한다는 사실은 그 사실에 대한 일반 관념을 머리에서 제거함으로써 제거될 수는 없다. 오히려 이 사실은 오로지 개인이 이러한 사물적 힘을 다시 자신 아래로 종속하고 노동 분업을 제거함으로써 제거될 수 있다. 이는 공동체 없이는 가능하지 않다. 공동체 속에서 비로소 모든 개인은 자신의 소질을 모든 측면에 따라 완성할 수단을 얻는다. 그러므로 공동체 속에서야 비로소 인격의 자유가 가능해진다. … 종래 공동체를 대신해왔던 것 곧 국가 등에서는 인격의 자유가 다만 지배계급의 상황 속에서 성장한 개인에게만 그리고 이 개인이 지배계급에 속한 자인 한에서 현존했다. 이 겉보기 공동체는 원래는 개인의 결합으로 형성된 것이지만, 항상 개인에 대립해 자립적인 힘으로 되었다. … 개인은 항상 자신에게서 출발했다. 물론 이 개인은 독일 이데올로그들이 말하는 순수한 개인이 아니라, 주어진 역사적 조건과 상황 속에 존재하는 개인이다. 역사가 발전하는 도정에서 또 노동 분업 안에서 불가피하게 일어나는 사회적 관계의 자립화 때문에 한편으로는 인격적 존재로서 각 개인의 삶과 다른 한편으로는 어떤 노동 부분과 그것에 속하는 조건 아래 종속하는 존재로서 각 개인의 삶 사이에 차이가 생겨난다.”10

“인격성은 철저히 특정한 계급 상황을 통해 제약되고 결정”11된다. 계급투쟁에서 노동계급의 당파성을 견지하는 것과 역사적 도정에서 전개되어 온 인간적 주체 정립착취 사회 내 혁명 투쟁에서든, 공산주의 건설 과정에서든 인격의 전면적 발달을 통해 전개되는 과정을 실천과 이론을 통해 일치시켜 모든 변혁 실천의 당위를 객관적 토대 위에 세우는 것이 현 시대 노동계급에게 제기되는 절실한 과업이다. 이는 세계 진보적 민중의 투쟁이 과거보다 다양하고 복잡한 양태를 띠는 속에서 그 운동 각각의 목적성에 보편적인 것으로 내재해 있는 구체적 동일성인 인격의 발전 방향을 파악하는 것이 중요한 과제로 되는 상황에서 노동계급에게 절실히 요구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에리히 한(Erich Hahn)의 다음과 같은 언급은 여전히 사회혁명의 성취에 있어 매우 중요하다: “현재의 세계사적 상황은 한편으로 인류 전체가 역사적 행위의 실질적 주체로서 점점 더 요구되고 있으며, 또한 [인류 전체가] 그러한 하나의 주체로 발전하는 과정에 있다는 점에서 과도기적 성격을 띠고 있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계급이나 국가, 민족과 민족 공동체, 심지어 국가집단이 여전히 역사적 실천의 결정적 주체로 될 수 있다. … 점점 더 선명해져 가는 인류의 이해관계와, 이에 비해 좁은 의미로서의 행동에 대한 인류의 제한된 선택 사이에는 모순이 남아있다. 인간의 이익과 계급의 이익은 변증법적 관계에 있다. 그것들은 추상적인 방식으로 서로 동일시되어서 안 되며, 또한 단지 대립적이며 상호 배타적인 것으로 생각되어서도 안 된다. … 역사적 진보는 본질적으로 계급이 인간의 욕구 실현을 위한 실천적이고 지적인 주체로서 등장했다는 사실에 기초하여 이루어졌다.”12

인류의 발전해 가는 염원에서, 제국주의 시대에서 진보적 인격 발전의 보편적 원리를 파악해 내고, 이에 기초해 낡은 체제에 대한 사회혁명의 의지로 상승시키고자 하는 과업이는 사회의 근본 변혁을 위한 모든 계급 투쟁이 인간에 대한 사물 및 착취적인 관계 규정의 지배로부터의 자유, 인간성을 복원하기 위한 여정임을 명확히 하고, 이를 지반으로 하여 공산주의 건설과 인류 전체의 이익의 일치성을 확보하고자 하는 중요한 작업이다. 노동계급이 이데올로기 투쟁에서 고지를 점하기 위해서는 사회의 근본 변혁으로 나아가기 위한 모든 투쟁의 제 문제를 계급 적대의 생동한 표현으로서의 경제적·정치적 사태와, 그 적대에서 계급 간 구체적 동일성을 규정하는 것, 즉 인격과 그것을 창조하고 또 그것을 자기의 필연적 계기로 삼는 사회적 관계 간 상호 연관이 갖는 내용을 충분히 분석하고, 두 영역을 통일하여 군중에게 알릴 수 있어야 한다. 그러므로 노동계급은 현 시대에서 사멸해 가는 자본주의 생산관계가 생산력의 발전을 억압하는 것만큼 보편적인 인격 발전을 어떻게 억압하는지 구체적으로 밝혀내어야 한다. 특히 유물론적 심리학과 인식론, 사회학의 발전은 이 과업을 성취하는 데서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다. 루시앙 세브(Lucien Sève)는 인격성을 둘러싼 이데올로기 투쟁의 중요성을 다음과 같이 강조하였다:

“정치적 문제 이상의 것은 적어도 부분적으로 수백만 명의 사람들에게 영향을 끼치는 심리학적 문제이다. 이 경우, 마르크스주의의 엄격함에도 불구하고, 정치 투쟁은 때로는 오직 진정으로 과학적인 심리학에 근거할 수 있을 때에만 그 목표를 달성할 수 있음을 인식해야 한다. 드골주의 국가 권력의 학교 정책과 1960년대의 "푸세 계획(Fouchet-Plan)"에 맞서 프랑스 제 민주 세력이 투쟁한 매우 중요한 예를 들어 보겠다. … 전체 교육 시스템은 민주적으로 인식되는 국가 발전의 요구 사항을 충족시키지 않은 채 치열한 독점 경쟁에 참여하고 있으며 국민 대중의 자녀 교육에 대한 권리는 전혀 신경 쓰지 않는 대기업의 노동 정책적 요구를 엄격하게 충족시키는 방식으로 개혁되어야 했다. 그러므로 개혁은 사회적 불평등을 악화시킬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이는 계급 정치의 이름으로 공개적으로 일어나서는 안 되었으며, 오히려 국민 대중의 자녀가 일반적으로 “자녀 교육에 관한 권리를 행사할 만큼의 재능이 없다”는 “객관적인” 구실 하에 이루어져야 했다. 여기서 독점자본의 정치는 대규모 교육 책략의 형태를 취한다. 그러나 교육학은 당신이 원하든 원하지 않든 정치와 심리학의 분리될 수 없는 통일체이다.”13

더 나아 노동계급은 모든 과업의 수행에서 또한 항상 사회의 물질적·정신적 풍요와 관련하여, 착취 계급이 (그러한 풍요에 의해 형성되고, 또 그러한 풍요를 합목적적으로 이루게 할) 인격의 내용적 발전을 억압하는 낡은 생산양식을 고수하고 있음을, 그리고 그 방식이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폭로해야 한다. 이는 궁극적으로 공산주의적 인격이 자본주의적 기구를 통해 재생산되는 인격과의 관계에서 어떠한 우월성을 지니는지, 그리고 그것이 전체 사회 법칙의 운동 경로에 어떠한 힘을 가하고, 그러한 힘과 강하게 상호작용하는 사회가 자본주의에서의 그것과 대비해 개개인의 삶에서 어떠한 진보적인 특성이 존재할 수 있는지에 대한 체계적인 탐구로 이어질 것이다.<>

 

2024년 9월 23일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1. 자세한 내용에 대해서는 조해람, 「‘귀족노조 담론’ 누가, 왜 퍼뜨리나 봤더니···“보수정권 권력 강화용”」, 경향신문, 2025년 1월 7일.를 참조하라.텍스트로 돌아가기
  2. V. I. Lenin, 「전투적 유물론의 의의에 관하여」, 『레닌언론저작집 (하)』, 정용준, 배진호 역, 서울: 말길, 1992, 571.텍스트로 돌아가기
  3. A. F. Gramsci, 『그람시의 옥중수고 2: 철학·역사·문화편』, 서울: 거름, 1999, 162.텍스트로 돌아가기
  4. 위의 책, 190.텍스트로 돌아가기
  5. R. I. Kosolapov, 「노동에 대한 자극과 인간의 본질」, 『인간의 철학적 이해』, 한국철학사상연구회 인간론분과 역, 서울: 새날, 1990, 108.텍스트로 돌아가기
  6. 위의 책, 118.텍스트로 돌아가기
  7. MEW, Bd. 3, Berlin: Dietz-Verlag, 1978, 451.;『독일 이데올로기』, 제2권, 이병창 역, 서울: 먼빛으로, 2019, 947-8.텍스트로 돌아가기
  8. G. Gutsche, “Persönlichkeit als Subjekt des gesellschaftlichen Fortschritts”, Deutsche Zeitschrift für Philosophie, 22 (5), 1974: 617.텍스트로 돌아가기
  9. B. T. Grigoryan, 「철학과 인간」, 『인간의 철학적 이해』, 1990, 147.텍스트로 돌아가기
  10. MEW, Bd. 3, 74-76.; 『독일 이데올로기』, 제2권, 1335-6.텍스트로 돌아가기
  11. Ibid., 76.; 위의 책, 1337.텍스트로 돌아가기
  12. E. Hahn, “Menschheitsentwicklung und Klasseninteressen”, Deutsche Zeitschrift für Philosophie, 36 (8), 1988: 676-7.텍스트로 돌아가기
  13. L. Sève, Marxismus und Theorie der Persönlichkeit, Frankfurt/Main: Verlag Marxistische Blätter, 1973, 13-4.텍스트로 돌아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