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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와 공급, 그리고 생산비 - 임금노동과 자본 II

수요와 공급, 그리고 생산비 - 임금노동과 자본 II

<소개글>

 인간에게 지워진 원죄로 인해 노동자는 노동할 수 밖에 없으며 누군가에게 고용되어 살아가야 한다는 윤회의 쳇바퀴에서 자유롭지 못합니다. 생산수단을 가지지 못한 사람이 자본주의 사회 한국에서 삶을 꾸려가는 방식은 누군가에게 고용되어 노동력을 판매하는 것입니다. 노동으로 살아가는 사람인 이 노동자는 자신에게 지워진 멍에를 가장 빠른 시간내에 벗고자 하루를 노동하고 10년을 노동합니다. 고용되는 자는 노동자이고 고용하는 자는 자본가입니다. 자본가는 자본을 가지고 노동자를 고용하여 생산을 하여 이윤을 사적으로 자신의 수중에 축적해 갑니다.
 자본주의 하에서 노동자는 하루를 단위로 재생되어야하며 또한 자신같이 노동으로 살아가는 부류, 노동자 집단을 재생해내야 합니다. 인간은 사회와 연결되어 생활하고 있으므로 이 단순한 법칙에 근거하여 살아가게 됩니다.
 자본주의 하에서의 모순은 생산이 사회적으로 이루어지는데 반해 사회적으로 생산해 낸 생산물은 개인의 수중으로 집중된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사적으로 소유됩니다.

  노동자가 윤회의 굴레에서 벗어나고자 개인적으로 힘을 다할 수록 자신을 자유롭게 하기 보다는 오히려 더욱 속박하게 됩니다. 자유롭고자하는 노력으로 노동자는 더 많이 일하고 더 오랫동안 일하고 더 강도높게 일합니다. 자신들의 그러한 수고와 노력을 하는 바로 그러한 전략과 행동으로 인해 누군가는 거대한 부를 축적하게 된다는 것을 노동자는 간혹 자주 잊어버리곤 합니다. 오랜 기간이 흐른 후 노동자는 자신과 가족의 몸뚱아리를 남기게 됩니다. 한국에 자본주의가 시작된 이후부터 적지않은 시간이 흘럿고 세대가 지나고 강산이 여러번 변했음에도 여전히 절대다수가 노동자로 살아가고 있다는 것, 이러한 구조가 변함없이 이어지고 있다는 것은 노동자 자신들의 존재가 현실을 실천적으로 증명하고 있는 것과 같습니다. 이것을 추론하면 한국에 자본주의 사회가 계속되는 한 - 누군가에게 고용되고 고용하는 임노동 관계가 계속되는 한 - 속박은 변함없을 것임을 내다볼 수 있게 됩니다.

 노동자가 임금 중 일부를 모으는 것을 자전거에 빗대어 보겠습니다. 어떤 사람이 자전거로 전속력으로 달려 10KM안밖의 속력으로 질주를 한다고 했을 때 다른 사람이 자전거로 12KM안밖의 속력으로 달리고 있다는 것은 앞 사람보다는 빠른 것입니다. 그러나 100KM로 달리는 자동차의 속력으로 이윤을 축적해가는 것에 비한다면 그것은 매우 느린 것입니다. 자전거는 자신의 동력으로 운동하고 자동차는 화석연료인 타자의 동력으로 운동하므로 쉬 지치지 않습니다. 노동자가 생산해낸 소득물은 노동자 자신에게 쌓이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 타인에게 쌓이게 됩니다. 허나 불행하게도 노동자는 이러한 사실에 대해 인정하고 싶어하지 않아합니다. 더욱 패달을 힘차게 밟아 자신을 혹사시키며 청년기, 장년기를 보내며 그러한 결과 노동자는 인생전반을 소비하게 됩니다.

 허나 인간은 지적인 존재입니다. 원래는 자연이었던 인간이 자연으로부터 발전하여 자연 자신이 스스로를 인지하는 단계에 도달하고, 다시 자연법칙을 발견하고 자연을 분석하여 정복하였듯이 지적인 능력은 자연을 인간에게 유용한 무엇으로 만드는 데에만 쓸모있던 것은 아닙니다. 호모사피엔스는 사회, 즉 인간 자신에게도 자연에서와 마찬가지의 일정한 발전법칙, 사회법칙이 존재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노동자가 노동함으로써 삶을 꾸려내는데에 지적인 능력이 쓸모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지적인 능력은 자신을 둘러싼 사회와 사회내에서의 지정학적 위치를 파악하고 스스로가 속한 집단(계급)의 행복을 통해 자신의 행복을 거머쥐게하는 데도 쓸모있습니다. 노동자는 개인이지만 사회속에서 살아가며 자본주의 사회체제에 종속된 사회적 개인이기 때문입니다.

 결국 지적능력은 현실의 틀거리안에서 적응해가는데도 쓰이지만 사회구조/사회체제를 자신에게 적합한 형태로 변화시키는 데에도 이 능력을 작동시킬 수 있습니다. 노동자는 현실을 조합해내므로서 나와 가족의 안위에만 몰두하는 것뿐 아니라 외적 상황에도 안테나를 드리우게 됩니다. 자신이 일정한 법칙이 있는 사회구조 속에서 운동하는 존재임을 깨닫고 자신과 같은 부류(계급)가 있음을 인정할 수 밖에 없게 되며 계급이 공통적으로 겪는 사항들이 자신과 무관하지 않음을 알게 됩니다.

  이제 마무리입니다. 노동하는 사람이 어떻게 윤회의 사슬에서 벗어나 자유를 획득할 수 있게 될 것인가가 우리의 질문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호모사피엔스가 장구한 세월동안 숙고하여 왔던 것들, 어떤 (지적) 축적물들을 남겨놓았는데 그것을 습득할 필요가 있으며, 숙고와 진보의 그러한 결과로 현실사회가 어떠한 단계에 도달해 있는지 우리는 먼저 파악할 필요가 있습니다(그러므로 한 개인은 어떠한 현실지형, 어떠한 현실상황에 처해 있는가 ...). 마치 사칙연산과 이차함수를 배우는 것이 미적분을 이해하는 데 기초가 되는 것과 같습니다.

 이하는 칼 맑스의 '임금노동과 자본'으로 맑스가 1847년 12월에 브뤼셀 독일 노동자협회에서 한 강연을 정리한 글이라고 합니다.
 참고가 되었으면 합니다.


 
 상품의 가격은 무엇으로 결정되는가
 
 사는 사람과 파는 사람 사이의 경쟁에 의해, 공급에 대한 수요의 관계, 수요에 대한 공급의 관계에 의해 결정된다. 상품의 가격을 결정하는 경쟁은 세 측면을 갖는다.
 
  똑같은 상품을 서로 다른 판매자들이 공급한다. 똑같은 품질의 상품을 가장 싸게 파는 사람이 나머지 판매자들을 누르고 최대의 판로를 확보한다는 것은 분명하다. 이처럼 판매자들은 판로, 즉 시장을 찾아서 앞다투어 투쟁한다. 그들은 모두 팔기를 바라고, 될 수 있는 대로 많이 팔기를 바라며, 될 수만 있다면 나머지 판매자들을 밀어내고 혼자서 팔기를 바란다. 따라서 제각기 다른 사람보다 싸게 판다. 그래서 판매자들 사이에 경쟁이 일어나고, 그 경쟁은 공급하는 상품의 가격을 떨어뜨린다.
 
 그러나 구매자들 사이에서도 경쟁이 일어나며, 이것은 다시 공급되는 상품의 가격을 올린다.
 
  끝으로 구매자와 판매자 사이의 경쟁이 일어난다. 전자는 될 수 있는대로 싸게 사려고 하고, 후자는 될 수 있는 대로 비싸게 팔려고 한다. 구매자와 판매자 사이에서 벌어지는 이 경쟁의 결과는 앞에서 제시된 경쟁의 두 측면이 서로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느냐에 따라 달라지게 된다. 즉 경쟁이 구매자 진영에서 더 심한가, 아니면 판매자 진영에서 더 심한가에 달려 있는 것이다. 산업은 두 진영의 군대를 싸움터에 끌어들여 서로 싸우게 하며, 그들 각자는 또 자기 군대의 대열 안에서도 전투를 치른다. 자기 대열 안에서 난투극을 가장 적게 벌이는 군대가 상대를 누르고 승리한다.
 
 시장에 100꾸러미의 면화가 나와 있는데, 살 사람은 1000꾸러미를 바란다고 생각해 보자. 이 경우에는 수요가 공급의 10배나 된다. 따라서 구매자들 사이의 경쟁이 아주 치열할 것이며, 그들은 각각 한 꾸러미라도, 될 수만 있다면 100꾸러미 모두를 혼자서 차지하려 할 것이다. 이 예는 멋대로 꾸며 낸 것이 아니다. 상업의 역사를 보면 면화가 흉작일 때 서로 동맹을 맺은 몇몇 자본가들이 100꾸러미가 아니라 지구상의 면화 재고량 모두를 다 사들이려고 한 시기가 있었다. 따라서 이와 같은 경우에는 어떤 한 구매자가 면화 꾸러미를 비교적 더 비싼 값에 사들임으로써 다른 사람들을 물리치려고 할 것이다. 적군의 대열 속에서 치열한 격투가 벌어지는 것을 보고 자신들의 100꾸러미가 모두 팔릴 것을 확신한 판매자들은 상대편에서 앞다투어 가격을 올리고 있는 순간에 내분을 일으켜 상품 가격을 떨어뜨리는 일이 없도록 조심할 것이다. 따라서 판매자 진영 안에는 갑자기 평화가 찾아온다. 그들은 냉철하게 팔짱을 끼고 마치 한 사람처럼 단결하여 구매자들과 대립한다. 그리고 무슨 일이 있어도 꼭 사야겠다는 사람들조차 그 이상은 더 못 내겠다는 명확한 한도를 제시하지 않는 한, 그들의 요구에는 한도가 없을 것이다.
 
 따라서 어떤 한 상품의 공급이 이 상품에 대한 수요보다 적을 때에는, 판매자들 사이의 경쟁이 아주 미약하거나 전혀 일어나지 않는다. 판매자들 사이의 경쟁이 줄어드는 만큼, 그것에 비례해서 구매자들 사이의 경쟁은 심해진다. 그 결과 상품 가격은 많든 적든 뚜렷하게 올라간다.
 
 잘 알려진 대로 정반대의 결과를 가져오는 정반대의 경우가 더 자주 일어난다. 공급이 수요를 훨씬 더 넘어서는 경우에는 판매자들 사이의 필사적인 경쟁, 구매자의 부족, 상품을 헐값으로 팔아 치우는 사태가 일어나는 것이다.
 
  그러면 가격의 오름과 내림이란 무엇을 뜻하며, 높은 가격과 낮은 가격은 무엇을 뜻하는가? 모래알도 현미경으로 보면 커 보이고 탑도 산과 비교하면 낮은 것이다. 그리고 가격이 수요와 공급의 관계로써 결정된다면, 수요와 공급의 관계는 무엇으로 결정되는가?
 
  길 가는 부르주아 가운데 아무나 붙잡고 한번 물어 보자. 그는 잠시도 주저하지 않고, 마치 또 하나의 알렉산더 대왕처럼 이 형이상학적 매듭을 구구단으로 끊어 버릴 것이다. 그는 우리에게 이렇게 말할 것이다. 만일 내가 파는 상품을 생산하는 데 100 마르크가 들었고 내가 이 상품을 팔아서 110 마르크를 받는다면, - 물론 1년이 지난 뒤에 - 그것은 얼마 안 되는 공정하고 적절한 이득이다. 만일 내가 교환을 통해서 120, 130 마르크를 받는다면, 그것은 높은 이득이다. 그리고 만일 내가 200 마르크씩이나 받는다면, 그것은 엄청나고도 굉장한 이득이다. 그러면 부르주아에게 이윤의 척도 노릇을 하는 것은 무엇인가? 그의 상품의 생산비다. 그가 이 상품을 정해진 양의 다른 상품들, 생산하는 데 더 적은 비용이 들어간 상품들과 교환했다면, 그는 손해를 본 셈이다. 또 자기 상품을 정해진 양의 다른 상품들, 생산하는 데 더 많은 비용이 들어간 상품들과 교환했다면, 그는 이득을 본 셈이다. 그리고 그는 자기 상품의 교환 가치가 영(零) - 생산비 - 보다 낮은가 높은가 하는 정도에 따라 이득의 오르내림을 계산한다.
 
 우리는 이미 수요와 공급 사이의 변동 관계가 때로는 가격을 올리고 때로는 내리며, 때로는 낮은 가격, 때로는 높은 가격을 형성하게 한다는 사실을 보았다. 만일 공급이 부족하거나 수요가 지나치게 늘어나서 어떤 상품의 가격이 올라간다면, 어떤 다른 상품의 가격이 반드시 그만큼 떨어진다. 왜냐하면 상품의 가격이란 그것이 다른 상품들과 교환되는 비율을 화폐로 표현한 것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비단 한 자의 가격이 5마르크에서 6마르크로 올랐다면 은의 가격은 비단에 비해 떨어진 것이며, 또 그와 마찬가지로 예전 가격에 묶여 있는 다른 모든 상품들의 가격도 비단에 비해 떨어질 것이다. 이제 똑같은 양의 비단을 얻으려면 교환할 때 더 많은 양의 다른 상품을 주어야 한다. 한 상품의 가격이 오르면 그 결과는 어떻게 되겠는가? 많은 양의 자본이 번창하는 산업 부문에 몰릴 것이며, 자본이 이처럼 더 유리한 산업 영역으로 몰려드는 사태는 그 부문에서 얻는 이득이 보통 수준으로 떨어질 때까지, 아니 오히려 그 생산물의 가격이 과잉 생산 때문에 생산비 밑으로 떨어질 때까지 계속될 것이다.
 
 반대로 한 상품의 가격이 그 생산비 밑으로 떨어지면, 자본은 이 상품을 생산하는 데서 손을 뗄 것이다. 한 산업 부문이 더 이상 시대에 맞지 않아서 몰락할 수밖에 없는 경우를 빼면, 자본의 이 같은 도피는 그 상품의 생산, 즉 공급을 줄일 것이며, 이것은 그 공급이 수요와 맞아떨어질 때까지, 따라서 그 가격이 다시 생산비 수준으로 오를 때까지, 아니 오히려 공급이 수요보다 더 적어질 때까지, 즉 그 가격이 다시 생산비보다 더 오를 때까지 계속될 것이다. 왜냐하면 한 상품의 시가(時價)는 늘 생산비보다 높거나 낮기 때문이다.
 
 우리는 자본이 한 산업 영역에서 다른 영역으로 끊임없이 흘러 들어가거나 흘러 들어오는 것을 본다. 높은 가격은 지나치게 심한 유입을 낳고, 낮은 가격은 지나치게 심한 유출을 낳는다.
 
 우리가 문제를 다른 관점에서 볼 경우, 공급뿐만 아니라 수요도 생산비에 의해 결정된다는 사실을 보여 줄 수 있겠지만, 그러나 그렇게 되면 우리가 다루는 주제에서 너무 멀어지게 된다.
 
  우리가 방금 본 바와 같이 수요와 공급의 변동은 한 상품의 가격을 늘 다시 생산비로 되돌려 보낸다. 상품의 실제 가격은 늘 생산비보다 높거나 낮다. 그러나 오르내림은 서로 상쇄되므로, 얼마 동안 산업에서 나타난 썰물과 밀물을 합산해 보면 상품은 그 생산비에 따라 교환되며, 따라서 그 생산비에 의해 결정된다.
 
 이처럼 생산비에 의해 가격이 결정된다는 것을 (부르주아)경제학자[옮긴이 주: 부르주아 경제학의 경제학자, 주류 경제학의 경제학자, 이하 동일]들과 같은 의미로 이해하면 안 된다. (부르주아)경제학자들은 상품의 평균 가격이 생산비와 같다고 말하며, 이것은 법칙이라는 것이다. 가격의 오름은 내림으로 또 내림은 오름으로 서로 상쇄되는 이 무정부적인 운동을 그들은 우연으로 여긴다. 그러나 다른 (부르주아)경제학자들이 그렇게 하고 있듯이, 똑같은 권리로 가격의 변동을 법칙으로 여기고 생산비에 의한 가격 결정을 우연으로 여길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변동, 즉 자세히 살펴보면 끔찍하기 짝이 없는 황폐화를 수반하며 마치 지진처럼 부르주아 사회를 기초에서부터 뒤흔드는 이 변동 과정 속에서만 생산비에 의한 가격 결정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이러한 무질서 운동 전체가 부르주아 사회의 질서다. 이 같은 산업의 무정부 상태의 과정 속에서, 즉 이 같은 순환 운동 속에서 경쟁은 말하자면 한 극단을 다른 극단으로써 상쇄한다.
 
  따라서 우리가 보는 바와 같이, 생산비에 의한 상품 가격의 결정은 그 상품의 가격이 생산비 이상으로 오르는 시기가 그것이 생산비 이하로 떨어지는 시기에 의해 상쇄되는 방식으로, 또는 그 반대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물론 이것은 공산품 하나하나마다 해당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산업 부문 전체에만 해당한다. 따라서 이것은 개별 산업가 한 사람 한 사람에게 해당하는 것이 아니라 산업가 계급 전체에만 해당하는 것이기도 하다.
 
 생산비에 의한 가격 결정은 상품을 생산하는 데 필요한 노동 시간에 의한 가격 결정과 똑같다. 왜냐하면 생산비는 첫째, 원자재와 도구의 마모분으로, 즉 그 생산에 얼마만큼의 노동일이 들었고 따라서 얼마만큼의 노동 시간을 나타내는 공산품으로 이루어지며, 둘째, 바로 시간이 그 척도가 되는 직접적 노동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상품의 가격을 일반적으로 규제하는 바로 그 일반 법칙이 당연히 임금, 즉 노동의 가격도 규제한다.
 
  노동의 임금은 수요와 공급의 관계에 따라, 즉 노동력의 구매자인 자본가와 노동력의 판매자인 노동자 사이의 경쟁이 어떠냐에 따라 때로는 오르고 때로는 내릴 것이다. 임금의 변동은 대체로 상품(옮긴이 주: 생활수단) 가격의 변동에 상응한다. 그러나 이러한 변동 속에서 노동의 가격은 생산비에 의해, 즉 노동력이라는 상품을 만들어 내는 데 필요한 노동 시간에 의해 결정된다.
 
 그러면 노동력의 생산비란 무엇인가?
 
 그것은 노동자를 노동자로 유지시키고 또 그를 노동자로 길러 내는 데 필요한 비용이다.
 
  따라서 어떤 노동을 길러 내는 기간이 짧으면 짧을수록 그 노동의 가격, 즉 임금도 낮아진다. 숙련 기간이 거의 필요하지 않고 단지 노동자의 육체적 존재만으로도 충분한 산업 부문에서는 노동자를 만들어 내는 데 필요한 생산비가 거의 생명과 노동 능력을 유지하는 데 필요한 상품에만 국한된다. 그러므로 그의 노동의 가격은 필요한 생활 수단의 가격으로 결정된다.
 
 그런데 여기서 또 한 가지 주목해야 할 점이 있다. 공장주는 자기 생산비와 이에 따른 생산물 가격을 계산할 때, 노동 도구의 소모분을 계산에 넣는다. 예를 들어 그가 어떤 기계를 사는 데 1000마르크를 들였고 또 이 기계는 10년 동안 쓰고 나면 닳아 없어진다면, 그는 10년 뒤에 이 기계를 새 것으로 바꾸려고 해마다 100마르크를 상품 가격에 포함할 것이다. 마찬가지로 단순한 노동력의 생산비 속에는 노동자 종족이 번식하고 또 닳아 없어진 노동자들을 새로운 사람들로 교체할 수 있기 위한 비용, 즉 대를 이어 가는 비용이 포함되지 않으면 안 된다. 따라서 기계의 마모와 마찬가지로 노동자들의 마모 또한 계산에 포함된다.
 
  따라서 단순한 노동력의 생산비는 노동자의 생존비와 대를 이어 가는 비용으로 귀착한다. 이러한 생존비와 대를 이어 가는 비용의 가격이 임금을 이루는 것이다. 이렇게 결정되는 임금을 최저 임금이라고 한다. 생산비에 의한 상품 가격의 결정이 일반적으로 그렇듯이, 이 최저 임금은 개별적인 개인이 아니라 유(類) 전체에 대해서 타당한 것이다. 노동자 개개인, 수백만의 노동자들이 생존하고 대를 이어 갈 수 있을 만큼의 보수를 받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노동자 계급 전체의 임금은 변동 속에서도 이 최저치에 일치하게 된다.
 
 임금과 다른 모든 상품의 가격을 규제하는 가장 일반적인 법칙을 알아보았으므로, 이제 우리는 우리의 주제를 좀 더 자세히 다룰 수 있을 것이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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