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드바 영역으로 건너뛰기

[펌]반성문 쓰는 마음으로 만들었습니다

“반성문 쓰는 마음으로 만들었습니다”
[인터뷰]다큐멘터리 ‘워낭소리’ 이충렬 독립 PD
2009년 01월 20일 (화) 23:55:34 김고은 기자 nowar@pdjournal.com

“우리를 키우기 위해 헌신했던 이 땅의 모든 소와 아버지들에게 이 작품을 바칩니다.”

〈워낭소리〉는 ‘착한’ 다큐멘터리다. 엔딩크레딧이 올라가기 직전 흐르는 자막만큼이나 착하고 소박한 정서를 가졌다. 큰 욕심 없다. 설명조의 내레이션도 없다. 시종 소처럼 우직하고 착실하게 감정을 쌓아올린다. 그러면서도 끝내 할 말은 다 한다. 그래서 눈물을 쥐어짜는 장면이나 관객을 초조하게 하는 갈등 없이도 충분히 감동적이다.

지난 15일 개봉된 〈워낭소리〉는 팔십 평생 땅을 지키며 살아온 최 노인 내외와 그들의 베스트 프렌드이며, 최고의 농기구이고, 유일한 자가용인 마흔살짜리 소의 우정과 헌신에 관한 이야기다. 연출·구성·편집을 맡은 이충렬 PD는 15년 동안 방송 다큐멘터리만 만들어온 독립 PD다. 〈워낭소리〉는 “감독님” 소리보다 “PD”라는 말이 듣기 편하다는 이 PD가 처음으로 선보인 극장용 장면 다큐멘터리다.

   
‘고개 숙인 아버지’가 화두였던 IMF 당시, 이 PD는 아버지를 소재로 다큐멘터리를 만들자고 결심했다. 아버지의 모습을 떠올리다 이내 자연스럽게 소까지 연결됐다. “아버지와 소를 동일하게 봤죠. 헌신하는 모습이나 우직하고, 말없이 일하는 모습이 닮았잖아요.”

그의 관심사는 “올드(old)하면서도 핸디캡이 있는 아버지”였다. 과거 〈고향은 지금〉과 같은 프로그램을 연출한 덕분에 네트워크는 탄탄했다. 이장과 부녀회장을 수소문해 ‘아버지’와 ‘소’를 찾아다녔다. 횡성, 남해, 진도 등 우시장 주변도 뒤졌다. 그러다 2005년 축협 관계자로부터 얘기를 듣고 지금의 최 노인과 소를 만날 수 있었다.

그렇게 기획에만 무려 5년이 소요됐다. 설상가상 방송사는 편성을 확정해주지 않았고, 제작사는 주인이 바뀌었다. 열악한 환경이었지만, 그는 일단 부딪혔다. “할아버지와 할머니, 소에 대한 정보 없이는 시작할 수 없겠다 싶었죠. 그래서 기다리며, 인터뷰를 했어요. 그러다보니 일상이 보이더군요. 느릿느릿한 걸음걸이에서도 ‘관계’가 보이기 시작했어요.”

이 PD는 ‘관계’에 천착했다. 할아버지와 소의 관계, 할아버지와 할머니의 관계 등 미시적인 관계에 대한 것들을 쌓아갔다. 그는 “할아버지는 촬영을 잘 모르세요. 카메라가 다가가면 사진 찍는 줄 알고 가만히 계시곤 했죠. 핸드헬드(카메라를 직접 들고 찍는 기법)는 포기해야 했어요. 투샷, 롱샷으로 가니 오히려 자연스러워지더군요. 그렇게 감정들을 단층처럼 쌓아나갔습니다”라고 전했다.

핸드헬드를 포기하는 대신 할아버지와 소가 자주 다니는 길목에 카메라를 설치해 그들의 ‘관계’를 지켜봤다. 〈워낭소리〉의 모든 장면은 기다림 끝에 얻어진 장면들인 셈이다.

   
▲ '워낭소리'를 연출한 이충렬 독립 PD ⓒPD저널

촬영하는 내내 “상황에 개입하지 않겠다”고 다짐했던 이 PD지만, 할아버지가 새끼소에 의해 넘어질 때는 카메라 안으로 뛰어들 수밖에 없었다. 그 장면을 정지화면으로 처리한 것은 효과가 아니었던 것이다.

울컥한 장면도 있다. “소가 죽기 전 할아버지가 나뭇짐을 직접 매고 가던 모습이나, 소가 쓰러지자 일으키며 욕을 뱉는 장면이 있습니다. 단순히 부리는 가축이 아니라 마음을 담아 대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죠.”

소가 죽은 뒤,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걱정된 건 그래서였다. “할아버지와 소, 할머니는 연대적으로 결합돼 있었어요. 소가 죽은 것은 할아버지의 영적 상대가 죽은 것과도 같죠. 정말 필요한 존재가 없다고 느끼는 슬픔, 그 상태를 담고 싶어서 할아버지가 워낭(소의 귀에서 턱 밑으로 늘여 단 방울)을 들고 있는 모습을 마지막 장면으로 처리한 겁니다.”

“최근 두 분 다 건강이 안 좋아지셔서 걱정”이라고 덧붙인 이 PD는 언론을 향해 두 노인의 삶에 지나치게 관심을 갖거나 개입하지 말아 줄 것을 당부하기도 했다. “언론과 인터넷에 노출돼 그 분들의 삶이 훼손되지 않았으면 합니다. 촬영 전에도 자녀분들에게 약속을 드렸어요. 편하게 일하실 수 있도록 지켜드리고 싶습니다.”

이 PD는 이번 작품을 “반성문을 쓰는 마음으로 만들었다”고 말한다. “일하고 늙고 사라진다는 존재론적인 의미를 반추해보고자 했다”면서 하지만 “가장 중요한 건 헌신”이라고 설명했다. “아버지, 어머니의 헌신을 통해 부모가 나를 지키기 위해 무엇을 어떻게 했는가를 떠올려보는 성찰의 시간을 만들고자 합니다.”

〈워낭소리〉는 지난 15일 단 7개의 스크린에서 개봉했지만, 입소문을 타 20여개 상영관으로 확대됐다. 공동체 상영을 통해 지역 관객들도 꾸준히 만날 계획이다.

상복도 터졌다. 2008년 부산국제영화제 PIFF 메세나상(최우수 다큐멘터리상)과 서울독립영화제 관객상을 수상한 〈워낭소리〉는 세계 최고의 독립영화제 ‘선댄스 영화제’에 한국 최초로 다큐멘터리 경쟁부문에 초청됐다. 누구나 부러워할만한데 그는 “방송에서 인정받고 싶지 영화 쪽에서 인정받고 싶은 건 아니”라며 겸손해 한다.

다음 작품에 대해서도 말을 아꼈다.

“너무나 과분한 관심과 대접을 받아서 사실 다음 작품 얘기를 하기가 부끄럽습니다. 다만 ‘소소함의 위대함’을 알았다는데 의미를 두고 싶네요. 욕심 안 부리고, 일상의 사금파리 같은 것들, 주변 삶의 언저리를 찾아볼 계획입니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