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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을 재구성하지 않는 부모

그날은 참 아침부터 이상했다.

땅콩과 꼬봉 의 어떤 덧글을 보고 약간 기분이 상했고

인디다큐페스티발 1회 영화를 보러 갔는데 상영시간이30분 앞당겨있어서 못들어갔다.

난 시간이 남아 사무실에 들러 잠깐 정리를 하고 갔는데....

나중에 보니 상영시간표 1페이지에 시간변경알림 스티커가 조그맣게 붙어있었다.

난 그것을 보지 못했던 거다.

어린이집에서 그냥 영화관으로 갔으면 볼 수 있었을 <외가>.

 

<외가>끝난 후 극장에 들어가 <엄마의 영화>를 보고나와

 전화기를 켰더니 여러 통의 전화가 와있었다.

그중 어린이집에 가장 먼저 전화를 했더니 앵두의 분리불안증세가 심하다 했다.

한 달 가까이 적응프로그램을 함께 했는데 문제가 생긴 것이다.

3월 2일부터 1주일동안은 함께 어린이집에 출근하여 점심 먹기 직전에 돌아왔고

3월 9일부터 2주일동안은 같이 출근하여 10시반까지 같이 놀다가 이별,

잠깐 볼 일을 보고 12시 20분, 점심 식사 후 데려왔다.

3월 24,25일은 같이 출근하여 10시 반까지 같이 놀다가 잠깐 외출 후 3시에 데려왔고.

27일에는 출근할 때 잠깐 함께 놀다가 9시쯤 어린이집을 나왔다.

이로써 4주간 적응프로그램은 끝이 나는 듯했다.

떨어질 때 많이 울기는 했으나 앵두는 그렇게 적응하는 듯 했다.

 

그런데....적응 마지막날인 27일, 앵두의 분리불안이 심하다는 전화를 받은 거다.

너무 멀리 떨어져있는 나 대신 가까이 있는 남편이 잠깐 어린이집에 들러

점심 식사와 낮잠을 지켜보았다.

나는 낮잠과 간식을 끝낸 후인 4시까지 어린이집으로 가기로 했다.

약간 늦은 4시 30분 경에 어린이집에 들어서니 앵두는 선생님 품에 조그맣게 안겨있고

선생님들이 걱정스런 목소리로 "사고가 있었다"고 알려주었다.

앵두가 물렸다 한다. 나는 정말 화가 났다.

물렸다는 사고의 내용이 아마 화를 더하긴 했었겠지만

사실 나는 그동안 정말....심하게 스트레스를 받는 중이었다.



지금 앵두네 '반짝이는 햇살'반에는 8명의 아이들이 적응하는 중이다.

총 정원은 10명인데 그 중 2명은 작년부터 다녔기 때문에 신입원아는 8명이다.

아이들의 사정에 따라서 보호자가 함께 적응기를 거치는데

부모가 오는 아이는 앵두를 포함 2명, 나머지는 할머니나 이모가 왔다.

알고 보니 적응기를 함께 거치는 보호자들이 바로 주양육자였다.

앵두 외에 다른 한 집 또한 오후에 데려가는 사람은 할머니였다.

10명 중 5명이 외동이였고 10명 중 부모만 아이를 돌보는 이는 2명이었다.

10명 중 8명의 아이들이 부모 외에 조부모, 이모, 외숙모 등이 함께 했다.

이 비율에 대해 놀라움을 표하자 어린이집 선생님은 말씀해주시길

부모 특히 엄마가 주양육자인 집 아이들은

이 월령에 어린이집에 애를 맡기지 않아서일 것이라고 알려주었다.

 

나의 스트레스의 주원인은 앵두를 문 Y라는 아이로부터 기인한다.

그애는 3월 2일부터 아이들을 때렸다.

분쟁 중에 때리는 것이 아니라 그냥 아이들을 때리고 다녔다.

밀고 할퀴고...

다들 각자의 놀이감을 가지고 놀고 있을 때 그 아이는 뺏는 것만 했다.

뺏고 나면 흥미를 잃어서 다른 아이 것을 뺐고...그러고 다녔다.

먹는 시간이 되면 그 애는 우유든 물이든 꼭 식판을 엎었다.

그리고 좋아하는 음식인 고기 외에는 뭐든지 뱉었다.

밥상을 펼치면 항상 밥상 위에 발을 올려놓았고 힘은 새서 밥상을 밀었다 끌었다 했다.

...... 앵두는 그 애 옆자리에 앉았다.

앵두의 식판도 한 번 엎었다.

 

그 애의 할머니는 지방에서 올라오셔서 적응기를 함께 하셨다.

그 애의 부모들은 산후조리가 끝난 후 외가에 아이를 놓고 서울로 떠나왔다고 한다.

2년여동안 할머니 할아버지와 함께 지내던 그 아이는 어린이집 입소와 동시에

서울로 올라온 것이다.

2주일동안의 속성 적응기를 거치고 할머니는 자기 집으로 내려갔다.

한 때는 연민을 느끼기도 했다.

낮엔 어린이집에서, 밤엔 집에서 새롭게 적응기를 거치는 그 아이가 안쓰럽기도 했고

아마도 생애 처음으로 누군가를 책임져야 하는 그애의 부모들 또한 안되어보였다.

 

하지만 내 동정심은 거기 까지이다.

낮 동안 어린이집에 함께 있어보면 동정심은 곧 바닥을 드러내고

방향을 알 수없는 분노가 스물스물 피어오른다.

책을 던지고 손톱으로 얼굴을 할퀴고 식판을 엎고 놀이기구를 던지는 그 애.

먹을 시간이 되면 선생님이 일일이 떠먹여줘야하는 그 애.

하루에 두번은 옷을 갈아입혀야하는 그애. 수시로 음식을 뱉는 그애.

하루에 네 번은 대변을 보는 그 애.....

영아반의 아이 대 교사 비율은 5:1이다.

내가 보기에 그애는 세명 몫은 하는 것같았다.

그만큼 다른 아이에게 미치는 교사의 손길은 줄어든다.

 

밤이면 나는 집에 돌아와서 그 애와 그애 부모에 대한 불만을 털어놓았다.

누가 누구에게 자랐든 누가 무슨 일을 하든 그건 중요하지 않다.

함께 키운다는 것?

그건 정말 '함께'키워야하는 것이어야 한다. 

아이를 낳은 부모로서의 최소한의 역할은 있어야 한다는 말이다.

내가 보기에 그애 부모는 보육교사에게 너무 많은 짐을 지우는 것같았다.

부모와 보육교사의 관계에서 약자는 보육교사이다. 내가 보기엔 그렇다.

생활을 재구성하지 않으려면 아이를 낳지 않았어야 하는 거 아닌가?

그 몫이 어디로 가는 건데?

'함께 사는 세상'이라는 건 정말이지 함께 노력하는 것이지

자기 몫의 노력은 쏙 빼놓고 타인의 시간에 묻어가서는 안되는 거 아닌가?

 

촬영감독이 오지 않는 날, 가끔 촬영의 필요성을 느끼기도 했었다.

하지만 나는 절대 카메라를 들지 않았다.

자기가 아닌 카메라 뷰파인더를 보고있는 엄마를 보며

아이가 촬영을 거부했던 경험은 이미 하돌 때 겪었다.

나는, 내 영화는 내 아이들의 눈물을 딛고 서있다.

하지만 손이 모자라는 보육교사를 대신해 Y에게 밥을 떠먹여주고 Y의 손을 씻기노라면

앵두가 무슨 생각을 할지 잠깐 궁금하기는 했다.

그래도...앵두는 잘 견뎌주었다.

 

금요일, 어린이집에 도착했을 때

걱정스런 얼굴로 '사고가 있었어요'라는 말을 들었던 그 순간,

이빨자국이 나있는 앵두의 얼굴을 보는 그 순간,

앵두의 옆에서 천연덕스러운 얼굴로 놀고 있는 Y의 얼굴을 보는 순간,

나는 정말이지 머리속이 하얗게 바래는 분노를 느꼈다.

선생님에게 그애 부모의 전화번호를 달라고 말했다.

선생님들은 자기들이 이야기를 하고난 다음에 그 애 부모가 전화를 할 것이라 말했다.

 

아이에게 옷을 입히고 떠나오면서 말했다.

나 말고 앵두의 아빠에게 전화를 하라고 말하라고.

이 상태에서 그애 부모의 전화를 받기는 힘들 것같다고.

한달 가까운 시간 동안 나는 몇 번이고 생각했다.

이제 주양육자로 바뀐 저애의 부모가 제발 한 시간만이라도 와서 있어보았으면.

적응하는 것만으로도 힘에 겨운 아이들에게

당신의 아이가 가하고 있는 저 폭력을 보라고.

한 번 눈으로 들여다보라고.

그리고 당신의 아이가 저런 행동을 하면서 표출하고 싶은 게 뭔지

한 번 알아보라고. 최소한 그런 노력을 해보라고.

 

나는 선생님들에게 말했다.

그애 부모에게 하루라도 어린이집에 와서 좀 보시라고.

그리고 어린이집 교사들과 함께 훈육에 대한 계획을 세워보시라고

그것이 내 요청사항이라고 말씀드렸다.

저녁 때 그애 엄마가 전화를 했다.

"아이가 할머니한테 커서 버릇이 없다"고.

바쁘다는 핑계로 아이를 돌보지 않아서 미안하다고 다음 주부터는

부모 중에 한 사람이 함께 하겠다고 했다.

 

Y의 부모가 너무 살기 힘들어서

조금의 시간도 못낼만큼 가난한 분들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아이들의 적응을 위해 벽에 붙여놓은 가족사진 중에서 Y네 집은 특별했다.

그애의 부모는 화려한 파티복과 턱시도를 빼입은,

보통의 돌사진보다는 더 돈을 들였을 사진에서 환하게 웃고 있었다.

말하자면 가난때문에 아이에게 시간을 할애못하는 집은 아닌 거다.

 

그애의 부모가 아이의 마음을 함께 들여다보는 일을 시작한 것을 환영하고 싶다.

하지만 가끔 우리들은 본의 아니게 누군가의 마음에 상처를 입힌다.

'할머니한테 커서 버릇이 없다'라는 저 표현을 쓴 이유가 미안함 때문이라는 걸 알지만

잘못되었다.

저 말은 '할머니 손에 큰' 많은 아이들에 대한 오해를 유포한다.

마찬가지로 '아이에 맞추어 생활을 재구성하고, 모든 안테나를 거기 세우는 엄마들이 얼마나 끔찍한 존재인지, 다 알면서 왜그러세욤.-_- 애들도 끔찍해 한다구열- ㅋ'라는

어떤 이의 표현은 참으로 잘못되었다.

저 덧글을 쓴 사람이 알고 있는 사람이 '어떤 엄마'였을 수도 있다.

그러면 그 엄마 얘기를 하면 된다.

'엄마들' 이런 표현, 함부로 쓰지 말라는 거다.

 

'생활을 재구성하지 않는 부모'에 대해서라면 몇몇을 안다.

하지만 난 별로 상관하고 싶지않다.

그들이 자기의 아이를 어떻게 키우든 그건 자기 선택이니까.

내가 이 곳에 글을 올리면서 불만을 토로하는 경우는

누군가가 '자기 생활을 재구성하지 않았기 때문'이 아니라

'생활을 재구성하지 않는 부모'중의 어떤 사람이

내 생활에, 내 아이에게 피해를 입혔기 때문이다.

함부로 '엄마들' 이며 '~엄마' 일반을 거론하며 도매금으로 넘기지말라고.

이건 감수성, 인권감수성의 문제인 것같다.

100명중에 99명이 비슷한 경향을 보이더라도 집단화하지 말라.

 

최근 하늘은 버스카드를 몇 번 잃어버렸다.

함께 다니는 애가 가져갔다.

최초에 하늘은 '엄마,00이가 오늘 내 버스카드 줏어줬다. "라고 말했는데

며칠 후에 또 없어졌다고 하길래 최초에 버스카드를 잃어버렸다 찾은 정황을

자세히 물어보았다.

00이가 "우리 버스타고 가자" 해서 하늘이 가방을 열어보았더니 카드가 없더란다.

그런데 00이가 "내가 아까 떨어져있는 거 줏었어" 하고 버스카드를 돌려주더란다.

내가 혹시 모를 의심을 하자 남편이 뭐라 해서 생각을 접었는데

며칠 후 하늘이 "엄마 00이가 내 버스카드 가져갔었대. 오늘 돌려줬어" 했다.

내가 "왜 가져갔대?" 하니까 하늘이 말이

"그애가 아빠가 없잖아" 하는 거였다.

남편은 그 상황에 대해서 "우리 하늘이 참 생각이 깊어"라고 흐뭇해했지만

나는 무척이나 불쾌했다.

 

나는 아빠없이 자란 아이이다.

열 살 때 아빠가 돌아가셨고 엄마는 사소한 잘못도 크게 꾸짖었다.

"어디 가서 홀어머니 자식이라는 소리 듣는다"면서.

그건 너무나도 가혹한 것이다.

어떤 이가 눈에 선 행동을 한 것은 그저 그 사람이기 때문일 뿐이다.

물론 그 이가 속한 사회적 조건이 많은 영향을 미칠 것이다.

그렇다고 그 이의 조건을 따지면서 비판하거나 이해하려는 행동은 잘못된 것이다.

 

마찬가지로 '~엄마'라는 이름으로 덤터기를 씌우지 말아달라.

나는 "'아이에 맞추어 생활을 재구성하고, 모든 안테나를 거기 세우는 엄마"

이기도 하고  "아이에 맞추어 생활을 재구성하지 않은 엄마"이기도 하다.

지금 이 시간, 놀아달라는 아이들에게 책을 읽으라고 하고 글을 쓰고 있기도 하고

무엇보다....

앵두가 물린 그 날, 1시 상영작 <잘했어요?>만 보고 돌아왔으면 되었다.

나는 세시 상영작들 중 두 편을 보고 3시 30분에 극장문을 나섰다.

30분이면 될 줄 알았는데 1시간이나 걸렸고 나는 4시 30분에 어린이집에 들어섰다.

앵두가 물린 건 내가 도착하기 바로 직전이었다 한다.

 

내가 3시 상영작 중 일부를 보지 않았다면

내가 그냥 세진의 영화만 보고 나왔다면

내가 조금만 더 뛰었다면....

Y의 부모에 대한 분노와 스스로에 대한 분노는 비슷한 강도로 내 마음을 어지럽힌다.

아이를 업고 공부방에 왔을 때, 공부방 선생님이 상처를 보고 흉터걱정을 하여

아이를 업고 병원까지 뛰어가면서 나는 Y의 부모보다는

앵두의 엄마인 나, 스스로에 대한 분노와 책망 때문에 괴로웠었다.

아마도 흉터가 남는다면 나는 평생을 자책하며 살아갈 것이다.

긴 세월이 흘러 더이상 만나지 않을 그 아이와 그 아이의 부모는 쉽게잊을 것이다.

그것보다는 영화 몇 편 더보려고 했던 나에 대해서

아이를 위해 생활을 재구성하지 않은 나에 대해서

나는 곱씹으며 후회하고 가슴을 치며 괴로워할 것이다.

 

어쨌든...

그저 바라는 건 어떠한 상황에서라도 누군가들을 뭉텅이로 지칭하지 말아달라는 거다.

해를 넘긴 '전화논쟁' 혹은 '엄마 논쟁'에 대해서

얼마 전 우연히 다시 듣게 되었다.

사무실 '정'이 말해주길 자기는 그 논쟁은 모르는데 이야기를 들은 적은 있다고.

'그 논쟁이 참 유의미한 논쟁이었는데 감정적인 몇 사람 때문에 아쉽게 되었다'고

난 아마 감정적인 몇 사람 중에 한 사람일 것이다.

나는 그날 약간 취해있었기 때문에 왜 내 마음이 상한 건 중요하지 않은 거야?

뭐 그러면서 서운함을 내비치긴 했지만

그 논쟁이 나에게 변화를 주긴 했다.

 

어쨌든 나는 그 일 이후로 '착한 척', '이해하는 척' 하는 사람이려고 했던

내 스스로에 대해서 돌아보게 되었고

이런 글도 쓴다.

기분이 나쁘면 나쁘다고 이렇게 쓰려고 한다.

내 글이 또 누군가의 기분을 나쁘게 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하지만

하지만...어쨌든 난 누군가를 범주화, 집단화시키고

그 집단을 싸잡아서 몰아가는 행동은 하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중이다.

내가 '장애코드로 영화읽기'를 하면서 항상 노력하는 바가 그런 것이다.

 

가부장제 사회에서 아버지가 없는 아이든,

전업주부이든, 아이를 내팽개치고 새벽까지 술을 마시는 엄마이든,

어린이집에 아이를 맡기고 일하는 엄마든,(이건 다 나의 모습이다)

그건 나를 구성하는 수많은 특성 중 하나일 뿐이고

그 중 하나로 나를 설명하기는 힘들다는 것을 알아줬으면 한다는 거고

비슷한 태도로 타인에 대해서도 이해하려고 노력했으면 한다는 거다.

 

의도하지 않는 언어에 상처받는 일은 그만 하고 싶다.

언어선택에 신중을 기하는 센스~

를 부탁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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