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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격

에어콘 켜고 자다 사람이 죽은 사건이나 버스 폭발사고 이야기를 듣고 나면 아무래도 잠을 설친다.

에어콘 켜고 자고, 버스 타고 다니니까. 애들하고.

요즘 날씨가 더워서 저녁에 집에 돌아오면 온도가 34도 정도 된다.

강화의 저녁은 시원하기 때문에 서울의 온도에 적응하기 힘든 점도 있지만

더우면 앵두의 아토피가 더 심해지기 때문에 목욕을 시킨 후 시원하게 해줘야 한다.

조금이라도 더우면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기 때문에 온도에 신경을 써야한다.

우리마을 주교님은 "너네는 너무 막내한테 예민해. 그게 아이한테 좋은 게 아니란다" 하시지만

일단 아기가 잠을 설치고 덩달아 부모도 잠을 설치니 어쩔 수가 없다.

그래도 오늘 아침처럼 앵두가 "아 피곤해~" 하고서는 잠이 덜깬 얼굴로 밥을 먹는다든지

어제 응가 마렵다고 하고서는 아기변기를 쓰라니까 "아빠 깨울까봐"

어른변기 쓰려는 모습을 보다보면 뿌듯하다. 재미있기도 하고.

그렇게 주어진 테두리 안에서 기쁨을 느낀다.

 

빨간경순의 영화를 볼 때면 항상 해방감이 느껴진다.

구성의 흔적을 느낄 수 없는 자유로운 얼개 안에서 할 얘기를 명확히 펼쳐놓는 그 솜씨가 부럽다.

<쇼킹 패밀리>를 볼 때 가장 많이 느꼈던 건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자격이었다.

아무나 이야기를 할 수 없는 거다.

2000년에 내가 속성으로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또 아이를 낳고...

세 번이나 계획하지 않은 아이를 낳으면서 그 때마다 불가항력적이었던 상황을 떠올려보면

나라는 사람은 이야기의 자격이 있나 하는 생각까지 든다.

예전 동료가 1차 가편집본을 보고 나서 해준 멘트 중에 그런 게 있었다.

"아기 키우기의 어려움을 토로하면서 애를 셋씩이나 낳은 이유가 뭔지 이해가 안된다"고.

나도 이해가 안된다, 라고 말하면 너무 무책임하겠지?

하지만 피임을 하지 못해서 아기를 낳는 사람이 적진 않단 말이다.

 

인터넷 소식 중에 두살 먹은 둘째는 흉기에 찔려서

엄마, 아빠, 첫째는 투신을 해서 죽은 일가족 이야기를 보았다.

증언할 수 있는 사람이 아무도 없어서 진실은 미궁에 빠져있지만

정황 중에 첫아기 백일에 둘째아기를 임신해서,

그리고 출산 후 연년생을 키우는 걸 너무 힘들어했고

그래서 외할머니집 근처로 이사까지 하면서 나름대로 노력을 했었던 것같다.

그런 이야기들을 듣는데 찡~했다.

왜 그렇게 사냐고 한심해할 사람들도 분명히 있겠지만 나는 그 부부가 안쓰럽고 안타깝고..

그리고 이해가 갔다.

 

다른 맥락으로 썼겠지만 비올의 글에서 문득 눈에 들어왔던 말처럼

"논리적으로는 이해못할 바가 없는데 마음은 못 받아들이는"

그래서 논리적으로는 이해가 안되지만 마음이 시키는 대로 했던

그런 일들이 내 삶에서는 참 많았던 것같다. 

그래서 지나온 길을 바라보면 나의 선택이 의외였던 경우가 많다.

그렇게 돌아온 길을 하나씩 하나씩 정리하다보면

일관성도 없고 논리도 없고 주장도 없고.... 한심하기도 하다.

그런 한심함을 설명하려니 구차하고

그러다보니 알맹이는 없어지고.....그렇다.

 

하늘 하돌 앵두와 함께 지내는 시간이 늘 좋은 것만은 아니지만

아이들이 있어서 좋다.

그런데 그 이야기만 하다보면 다른 이야기들을 놓치게 된다.

예를 들어서 아이키우는 즐거움을 이야기하다보면

저출산이나 가부장제, 보육환경에 대해서 아무 얘기를 하지 않았음에도

현재의 상황들을 옹호하는 맥락으로 읽혀지게 된다.

99% 그럴 것이다.

그렇다고 내가 선 자리는 여기인데 다른 이야기를 할 수는 없잖아.

그건 자격이 안되거든.

 

다른 데에 에너지를 쓸 틈이 없어서 침묵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침묵의 가해'로 읽혀지는 것처럼.

나의 영화도 위험하다.

 

<엄마...>를 만들 때 알았다.

내가 아기를 업고 찍은 건 중요하지 않다.

흔들리는 카메라는 부실한 촬영일 뿐이고

괜히 그 상황을 얘기했다가는 구차해질 뿐이다.

혼자서 세 아이를 돌보는 일에 익숙해지니 이젠 일상일 뿐이다.

올 초에 걱정하는 내게 둘째언니가 "다 그렇게 살아.너는 이제 평범해지는 것 뿐이고"라고 말했을 때

매정하다고 느껴지기도 했지만 그게 사실인 거다.

나의 인물(뮤즈? 사회적 배우?)이 없는 상황에서 나의 이야기만으로 끌고가는 건 쉽지 않다.

무엇보다 나는 그 모든 고비를 넘어와서 평온해진 상태인 거다.

다시 그 시절로 돌아가 이야기를 좀 하다보니 사람들이 그런다.

'쿨하고 나이브하게' 이야기를 해야해. 안 그러면 오바하는 것처럼 느껴지거든.

쿨하고 나이브하지 못한 사람이 그렇게 이야기를 풀어가려니 죽을 맛이다.

무엇보다 그러다보니 내가 생생하게 느꼈던 이야기들을 하나씩 하나씩 포기하게 된다.

왜냐하면 그런 상황에서 그런 느낌을 받았다는 것 자체가

내가 쿨하고 나이브하지 못하기 때문이거든.

 

Moon대표가 지금 이러고 있는 것도 넣어야해, 라고 하지만 구차할 따름이다.

특별하지 않은 삶이다.

Moon대표처럼 밤늦게까지 작업할 수 있다면 좋겠지만 그렇지 못한 조건은 받아들여야할 뿐.

새벽에 일어나서 잠깐 구성안을 손보고

아침 준비해서 공부방으로, 어린이집으로 아이들을 보내고

그리고 사무실에 앉아서 6시까지 일을 하고, 그리고 다시 집으로 돌아가는 이 일상은

사실 내가 몰랐던 것뿐이지 다들 그렇게 살아가고 있는 거다.

아주 오래전에 그런 생각을 했었다.

잊지 말아야겠다고, 생생하게 다 기억을 해서 나는 영화를 만들 거라고.

박완서선생이 소설에서 그랬던 것처럼 나도 그래야지! 불끈 다짐했던 적이 있다.

하지만 이젠 다 부질없는 것같다.

누군 안 그러고 사는 줄 알아? 자기의 그늘이 가장 짙은 법이고 항상 자기만 특별해보이지...

 

자....

이 늪에서 빠져나갈 방법은 과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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