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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스 타기

저번 주 토요일이 부산영화제 마감이었다.

나레이션 자리를 잡아놓고 조연출이 사운드를 만지는 동안에 잠깐 잤다.

자려고 한 게 아니라 자막 체크를 하고 있었는데 조연출이 깨웠다. 잠이 든 것이다.

금요일 아침에 하돌이 새벽에 나가는 남편을 붙들고 자기도 지금 어린이집에 가야겠다고 떼를 쓰고

그 와중에 나도 새벽에 잠이 깨어서 하루가 피곤했다.

도저히 시간이 안나서 남편에게 저녁에 아이를 좀 봐달라고 해서 수요일에만 오던 걸

목요일에도 와줬고, 금요일 아침에 미사가 있기 때문에 새벽에 나가던 길이었다.

남편이 나간 후 눈물 흘리는 하돌에게 물었다. 왜 그래, 지금 시간에 어린이집은 문을 안열었어.

하돌이 말했다. 버스타는 게 너무 힘들어.


더위가 오기 전까지 우리들은 어린이집까지 걸어다녔다.

버스로 두 정거장이라 아이들이 걷기에 가까운 거리는 아니다.

앵두는 유모차에 태우고, 하돌은 유모차에 손을 얹고 그렇게 다녔다.

여름이 되어갈수록 집에 돌아오면 녹초가 되었고 그래서 우리는 버스를 타고 다니기로 했다.

버스는 시원하고 빨리 가지만 몇 분동안 모두 긴장해야 한다.

빨리 타지 않으면 호통을 듣고, 자리도 잡기 전에 출발하기 때문에 넘어지기 쉽다.

내릴 땐 또 버스카드를 찍어야하기 때문에 미리 가있어야 한다.

아직 어린 앵두는 혼자 서있기 힘들기 때문에 내내 안고 있어야하고

안고, 짐을 가진 채로 흔들리는 버스 안에서 균형을 잡고, 하차벨을 누르고 버스카드를 찍은 후

버스가 멈추면 얼른 내려야한다.


예전에 참세상에도 글을 썼지만 버스운전자들 정말 너무한다.

하지만 그게 버스운전자 개인의 선택이 아니란 걸 알기 때문에 정말 화가 난다.

어제 하돌은 급기야 넘어졌다. 그런데 어제 버스는 정말 심했다.

어른인 나도 손잡이를 꼭 붙잡은 채 넘어지지 않기 위해 애를 썼다.

보통은 앞문에서 탄 후 뒷문으로 가야하는데 뒷문으로 갈 수조차 없게 빠르고 흔들렸다

어렵사리 벨은 누르고 버스가 서자 "잠깐만요!"하고 뒷문으로 걸어가는데

정말 잽싸게 걸어가는데 그 새를 못참고 뒷문을 닫고 출발하려고 하길래

큰소리로 "문열어주세요!!"소리쳤다.

아마 그순간 아저씨가 출발했으면 나는 버스 안에서 난동을 부렸을 거다.


항상 중요한 건 역관계다.

다행히 어제 버스 안에서 많은 아저씨들이 같이 동조해주었다.

일행이 아닌 듯 보이는 세명의 아저씨들이 각각 넘어진 하돌을 일으켜서 자리에 앉혀주고

앵두를 안고있는 내게도 자리를 양보해주었다.

잠깐 앉았다 내리는데 정말 번개같이 내리는데

그 버스아저씨는 얼마나 급했는지 그냥 출발하려 했다.

문 열어주세요!라고 말하는 순간, 아저씨들이 문 열어달라고 같이 소리쳐주었다.

다행히 돌아오는 길, 집앞 골목 옆에 깨금이 열려있어서 아이들이랑 따서 집에 와서 먹었다.


기회가 되면 버스에 대해서 한 번 꼭! 심층탐구를 해봐야겠다.

올 봄에 버스아저씨랑 버스에 타서부터 내릴 때까지 쉬지 않고 싸움을 했다.

내가 버스를 타려고 내려섰는데 나보고

 "아줌마, 그렇게 내려서있으면 어떡해요? 할머니 힘드시잖아요" 하는데 기가 막혔다.

그러니까 자기는 선한 뜻으로 저 앞쪽에 있는 할머니 앞에 세우려고 했는데

내가 내려서서 못했다는 거다. 졸지에 할머니보다 먼저 타려는 얌체 아줌마가 되었다.

그 때 나는 하돌이 열이 나서 아프다는 얘길 듣고서 약을 갖고 어린이집에 가는 길이었다.

배차간격이 15~20분이라는데 웬일인지 그날은 40분을 기다려야했다.


 그래서 말했다. "아저씨, 회사에 들어가셔서 5612 아저씨들끼리 합의를 하세요.

정해진 자리에 세우면 누가 뭐래요? 정류장은 여긴데 저 앞쪽에 세우거나 저 뒤쪽에 세우면

안그래도 자주 안오는 버스, 놓치기도 한다구요. 저는 아저씨가 멈추시길래 내려선거거든요"

한동안 입씨름을 하고 있는데 어떤 아주머니가 나를 말렸다.

"아니 생각해서 그러는데 왜 그래요?"

아주머니, 그 말투가 생각해서 하는 말투였어요?

그 아주머니 말씀, "원래 성격이 그런 것같은데 이해해야지요"

내가 버스운전자 성격까지 이해해야 하는지?

버스가 늦게 온 것에 대해서 아주머니 또 말씀하신다. "원래 이 버스는 잘 안와요. 이해해야지"

그 아주머니의 이해심에 필받은 버스아저씨가 말했다.

"내 참 더러워서!"


그러니까 나는 말이다 언젠가 젊은바다가 말해주었던 "개인과는 대화하고 시스템과는 싸우고"

에 입각해서 절대 신고같은 건 안하려고 했는데 그날 불편신고엽서를 뽑아서 내렸다.

뭐 그렇다고 신고를 하진 않았다. 최소한 며칠동안 그 기사 마음이 불편했으면 싶었다. 

그러기나 했을까?

대신 속으로 이렇게 말했다.

너 말이야, 조심해. 최소한 앞으로 비슷한 상황이 벌어졌을 때 말을 가려서 하라구.

 

가끔씩 권력을 생각한다.

이것도 권력이라서 바로 앞에서 뛰어오는 걸 보면서도 그냥 간다.

버스정류장에서 10미터도 안떨어져서 신호대기에 걸려있는데도

태워달라고 하면 모른척한다. 그래서 이젠 그런 구차한 짓 안한다.

그런 식으로 할거면 자기네도 좀 시간 좀 지키고 항상 제 자리에 세우고 그러지.

여러 번호의 버스가 주루룩 서있는 경우에는 버스정류장에서 한참 뒤에 있는데도

승객을 내리거나 태우게 한다. 그러면 또 애들 데리고 뛰어야한다.

원칙을 지키거나, 이해심을 가지거나.

그 중에 아무것도 아니면서 자기들 마음대로 한다.

아니, 사실 자기들 마음대로가 아니라 아저씨들 나름대로 원칙이 있을 거다.

문제는 승객의 입장에서는 버스번호로 버스의 경향을 판단한다는 거다.

경험상 461번 버스는 대부분 규칙을 잘 지킨다.5612는 정말 개판이다.

5524? 최악.

이렇게 노선으로 경향을 파악할 수 있는 걸 보면

이건 버스운전자 개인의 문제가 아닐 확률이 크다.

그럼 어떻게 할까?

문제는 우리 하돌이 버스타는 것에 대해서 지독하게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는 거다.

앵두를 업으면 한 손이 자유로워져서 하돌의 손을 잡아줄 수 있겠지만

요즘은 의자에 오래앉아서있어서 걸어만 다니는 데에도 허리가 아프다.

 

약한 사람들의 사정이 헤아려지는 세상은 쉽게 오지 않을 것같다.

강화의 버스는 더 심하다는 얘기를 들었다.

그래서 운전을 하는 거고 그래서 차를 사는 거다.

결국은 그래서 아기를 안낳는 거다. 알겠어, 이 멍청이들아?

출산장려금으로 해결안되는 것들이 엄청 많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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