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드바 영역으로 건너뛰기

이런 날도

1년 전

 

하은:(쑥스럽게 웃으며) 엄마, 오늘 성적 발표났는데 나 19등 했다.

나: 잘했네~

하은:우리 반 몇 명인지 안 물어봐?

나: 몇 명이야?

하은:21명

 

나:......

하은:......

 

나: 그런데 하은아, 괜찮아. 엄마도 1등 해본 적 있는데 그거 별거 아냐.

      우리 집 가훈이 '행복하게 잘 살자'니까 니가 행복하면 되는 거야. 알았지?

 

자, 이 정도 쯤에서 뭔가 촉촉, 감동, 이런 분위기가 형성되었다,

라고 말할 수 있었으면 좋겠지만 하은이 웃으며 말했다.

 

엄마, 우리 담임 선생님이 그러는데 엄마, 아빠들은 맨날 자기들은 1등 했다고 하는데

그거 다 뻥이래.

 

급당황 속에서 대화는 그렇게 급 마무리.

 

그리고 1년후,

어제 상영 땜에 강릉에 있는데

저녁에 하은이가 전화를 했다.

한옥타브 올라간 들뜬 목소리로 하은은

작년 자기반 1등보다 시험을 잘 봤다는 소식을 들려주었다.

 

우리 하은이가

그렇게 기뻐하는 걸 본 건 아주 오랜만이었다. 

나는 일단은 하은이가 나한테 전화를 걸어준 게 너무 고마웠다.

틱틱거리는 말투 때문에 몇 번 언쟁을 했었고

그래서 나는 하은이가 이제 사춘기인건가, 이제 나 싫어하는 건가

그런 걱정에 빠지곤 했는데

기쁨에 찬 하은이는 여전히 사랑스럽고 어리고 순진한 나의 첫 아이였다.

 

그리고.. 1등 때문이 아니라

자기의 성취에 기뻐하는 하은이와 함께 기뻐해주고 싶었다.

그리고.... 이제 하은이도 그 질서에 자기 몸을 맡기게 된 것에 대해서

나는 어떤 태도를 취해야하는지 판단이 서질 않는다.

......

 

나도 공부 열심히 해서 1등 장학금 타는 걸로 화답을 해야할 듯. ^^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