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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학교오는 길에 슬럼프라는 말이 떠올랐는데...

갑자기 그게 그냥 쓰이는 용도 말고 다른 뜻이 더 있지 않을까 궁금해졌다.

6시간의 수업을 마치고 이제사 찾아본다.

"산사태에 의한 붕괴물질의 이동현상"

이런 뜻이 있고 "심신의 상태 또는 작업이나 사업 따위가 일시적으로 부진한 상태"

그리고 이어지는 이런 뜻. " 주식의 폭락이나 경제 불황, 불경기 등의 경제 현상"

그러니까 지금 나는 슬럼프는 아닌 거다.

 

<아이들>의 상영이 거의 끝난 것같다.

간헐적으로 상영요청이 있긴 하지만 이젠 특별한 일이 되었다.

감독들은 보통 이럴 때 다른 영화 준비에 들어간다.

나는 지금 공부를 한다.

오랜만에 서울국제여성영화제에 가서

영화들을 많이 봤다.

할 일이 많았지만 일이야 항상 많은 거고 영화제는 가끔 오는 거니까.

<랜드 레이디>, <여성예술혁명>, <달빛 아래에서-야간고등학교의 기억>,<왕자가 된 소녀들>

볼 수 있어서 기뻤던 영화.

더 많은 영화를 봤지만 마음에 들었던 건 이렇게 네 편.

영화제에 세 번 가서 8편을 보고 나서 4편이 좋았단 말은 엄청난 행운의 다른 표현이기도.

 

어제는 아이들을 봐야해서 두 편만 보고 집에 돌아왔는데

피치&캐치 뒷풀이하느라 푸른영상 동료들이 다 모였다고 한다.

강화로 돌아오는 길에 전화를 받았다.

혹시나 영화제에 있지 않냐는 문의전화.

나는 집으로 오고 동료들은 치킨을 먹었다고. 당연히 맥주&소주도 마셨겠지. 부럽...

 

낮부터 내내 간질간질하게 올라오는 마음을 꾹꾹 누르고 있었는데

동료가 물었다. 

"영화 만들고 싶지 않아?"

 

만들고 싶어.

세상의 모든 꺼리들이 눈에 담기고 있어. 

'우리마을'에서 흙집 짓는 고등학생들,

온수리 식당에서 서빙하는 아주머니,

맨날 바가지요금을 뒤집어써야하는 반려동물 의료체계,

집앞 낚시터에서 끊이지않고 일어나는 분쟁......

소품일수도 있고, 교육물일 수도 있고, 휴먼다큐일 수도 있고

그게 장르도 내용도 정말 다양하겠지만

통장을 탈탈 털어서 새 카메라를 사고

내 몸의 일부처럼 그걸 만져가며 영화만들고  싶어.

......

......

그런데 일단

숙제를 해야겠지?

그러려고 지금 여기 앉아있는 거니까.

돌아갈 곳이 있어서 다행이야.

그렇게 생각하고 열심히 공부하자.

 

<여성예술혁명>의 대사 하나를 메모하기 위해 글을 쓰기 시작했다.

"역사는 너무 연약하다. 시간을 견딘 사실만을 가지고 쓰는 거니까"

두번째 문장, 확실하지 않지만

어떤 의미인지는....알겠다.

잊고있었는데 사실 나는 사학도였고

역사학과에 가기 위해서 나를 믿었던 담임선생님과 온집안 식구들에게 거짓말을 했었다.

학교에서 원서를 쓰고나서 지원하는 대학에 가서 바들바들 떨리는 손으로 도장을 찍고 과를 바꿨었는데.

그렇게 갔긴 했는데....역사에 대한 공부를 했느냐하면 또 그건 아니고...

아니다. 역사에 대한 공부, 많이  했다.

강의실에서 배우지 않았을 뿐.

<여성예술혁명>은 역사 다시 쓰기에 대한 영화이다.

예술사가 삭제해버린 여성예술가들의 이야기.

눈물을 글썽거리거나 쿵쿵거리는 심장에 손을 대보면서 그러면서 본 영화.

표현할 수 있고, 기억할 수 있는 매체를 가지고 있다는 일은 얼마나 멋진 일인지.

좀더 섬세한, 강력한, 매체를 갖기 위해 지금 나는 충전중.

그렇게 견디는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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