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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양전>! 9일(수) 저녁 8시 신사동 인디플러스!

너무 많은 일들이 있어서 몸이 몇 개라도 모자라겠다는 생각들 하시지요?
저도 그런 생각 많이 합니다만 
어느날 부터는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우연이라도 내 일상에서 어떤 만남이 있었다면
그것을 실마리 삼아 그 실타래가 풀려가는 길을 따라가겠다고.
밀양이라는 실을 발견하고 지금까지 따라가려고 노력하고 있는
저의 마음을 담아 아래의 글을 썼습니다.

내일 많은 분들이 함께 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이 글이 글을 읽으시는 님과 밀양을 연결하는 실마리일 수도 있지 않을까요? ^^
저로 말하자면 밀양에서 다큐멘터리 작업을 하고 있는
Kang Se-Jin의 직장동료였던 것이 실마리가 되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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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10월, 밀양에 갔다. 사실 처음부터 밀양에 가려던 건 아니었다. 세 아이를 키우는 동안 남편의 휴가일정에 맞춰 떠난 여행들은 집이 옮겨진 것일 뿐 사실 쉼은 아니었다. 그렇게 보낸 10년, 이제 막내까지 유치원에 다니고 있으니 며칠 만이라도 혼자 떠나는 여행을 하고 싶었다. 그러나 부산영화제를 즐길 요량으로 잡았던 휴가 계획은 밀양에 촬영할 사람이 필요하다는 소식에 급히 변경되었고 결국 생애 최초의 '홀로 휴가'는 부산이 아닌 밀양으로 가게 되었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가본 밀양은 아름다운 곳이었다. 넓지 않은 차도 양 편으로 작은 가게들이 오밀조밀 들어서 있었고, ‘송강호 거리’, ‘전도연 거리’라고 적힌 작은 간판들이 이 도시가 영화 <밀양>의 촬영지였음을 알려 주었다. 그러나 그 작은 도시의 평화는 송전탑 때문에 깨진 상태였다. 765kv라는 엄청난 용량의 송전탑이 들어선다고 하자 평생 일궈온 땅을 지키기 위해 주민들은 매일 전쟁을 치르고 있었다.


내가 '밀양765kV송전탑 반대대책위원회 미디어팀'의 임시 구성원이 되어 밀양 상동면 109번 공사부지에 올라갔을 때, 주민들은 손바닥 만한 내 작은 카메라를 반기며 눈물을 보이셨다. 마을 뒷산에 서는 송전탑을 막기 위해 주민들은 매일같이 1시간 넘게 산을 올랐다. 하지만 온 몸이 땀에 젖은 채 공사부지에 도착해보면 방패를 든 경찰들이 겹겹이 막고 있어서 공사 현장은 볼 수도 없었다. 가끔 할매 한 분이 “우리 산 얼마나 파헤쳤는지 보자” 하고 다가서면 경찰들은 방패로 물샐 틈 없는 벽을 만들어 할매의 앞길을 막았다. 그런 상황이 발생할 때마다 서너 대의 경찰 카메라들이 몰려들어서 주민들의 얼굴을 찍었다. 내 작은 카메라가 그런 경찰들을 찍기 시작하자 할매들은 “우리도 카메라 있다!”면서 가슴을 폈다. 다큐멘터리 감독이라는 내 직업이 그토록 쓸모 있다고 느껴본 것은 처음이었다. 그렇게 주민을 지키는 카메라가 되고 싶어서 나는 그 후로도 몇 번 더 밀양에 갔다.


밀양은 패배주의에 깊이 빠져있던 내 인생의 반가운 손님이었다. 세상을 바꾸겠다고 호언장담하던 20대가 눈 깜짝할 새도 없이 지나가버린 후, 세상보다 더 먼저 변해버린 내 안에는 패배주의 만이 남았다. 그리고 중년이 되어 밀양에 갔다. 그 곳에서 그 분들을 만났다. 그 분들의 물음은 소박하고 간결했다. 왜 우리 마을에 송전탑을 세웁니까? 왜 내가 농사짓는 땅을 빼앗습니까? 왜 내 갈 길을 막습니까? 길목이 막히면 주민들은 막힌 그 길 앞에 앉아서 그렇게 물었다. 해가 저물면 집에 돌아갔다가 다음 날이면 다시 그 자리에 앉아서 주민들은 묻고 또 물었다. 흉년이든 풍년이든 늘 씨를 뿌리고 추수를 하는 농부의 방식 그대로 주민들은 멈추지 않고 질문을 했다.


2013년 10월 첫 방문 이후, 여섯 번을 더 밀양에 갔다. 처음 나는 주민을 지키는 카메라가 되고 싶었다. 경찰만 주민을 채증하는 게 아니라 주민측 카메라도 경찰을 채증한다는 사실은 주민들에게 힘을 주는 것같았다. 그 사실이 기뻤다. 주민들은 송전탑 건설 예정지에 지은 움막에서 생활하고 있었고 밀양에 가면 ‘밀양 765kv송전탑반대 대책위원회’가 정해주는 움막에서 주민들과 함께 지냈다. 어떤 움막은 전기와 수도가 들어와있어 잠자리만 불편한 정도였지만 어떤 움막은 전기와 물이 없어서 ‘어쩔 수 없이’ 친환경적으로 지내야했다. 특히 단장면 용회마을 101번 움막은 30분 정도 가파른 산길을 올라야했고 전기나 수도시설이 없었기 때문에 자연의 힘으로만 살아야했다.


나는 밀양에서 여러 가지를 알았다. 전기가 누군가의 고통이 될 수도 있다는 사실도, 그리고 내 직업이 엄청나게 많은 전기를 필요로 한다는 사실도. 네 번째로 밀양을 찾았을 때 101번 움막을 배정받은 나는 경찰이나 한전직원과의 충돌에 대비해 배터리를 아껴야했다. 산 위에서 촬영 없이 며칠을 보냈던 그 때, 비로소 소중한 사실 하나를 알았다. 밀양에 간다는 것은, 또는 밀양을 산다는 것은, 송전탑을 반대하고 반핵 싸움을 벌인다는 것 이상의 의미를 가지고 있었다.


구미현 님을 따라하며 며칠을 살았다.아침에 눈을 뜨면 쌀을 씻어 밥을 하고 쌀뜨물로 설거지를 한다. 물이 부족하니 설거지 하는 방법도 특별하다. 반찬은 기름기 없는 음식 위주로 만들고 가끔 기름기 있는 반찬을 먹고 나면 종이로 그릇을 닦은 후 설거지를 한다. 1.5리터 PET병 절반이면 한 끼 설거지를 할 수 있었다. 밤이 되면 일찍 잠자리에 든다. 잠자리에 들지 않더라도 전기 없이 할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일은 대화이다. 이마에 단 등산용 작은 전등이나 촛불의 부드러운 빛, 혹은 달빛에 의존해서 서로의 얼굴을 보고 도란도란 나누던 그 밤의 대화들.


그렇게 며칠을 지내다 집으로 돌아오면 내가 얼마나 전기를 많이 쓰고 사는지, 내가 얼마나 물을 낭비하고 있는지 몸으로 느끼게 된다. 당연한 풍경으로 알았던 도시의 휘황찬란한 불빛들에 가슴이 조마조마해지고 한여름에 긴 옷을 준비해야만 하는 지하철 안의 과한 냉기에 속이 쓰라리다. 밀양에 간다는 것, 밀양을 산다는 것은 그렇게 소비와 안락과 풍요에 중독되어있는 삶에 대해 돌아보게 만든다.


전교조 선생님과의 만남을 통해 교사를 희망했고 스스로가 전교조 선생님이 되어 학교를, 아이들을, 교육을 고민했던 이계삼 선생님은 말한다.
“석유에 중독된 삶, 소비와 안락 속에서 내팽개쳐진 인간의 품위, 만연했던 우울증과 비만, 일탈과 폭력, 석유 이후의 세계에서 전쟁과 추락의 격랑이 기다릴 것은 분명하지만, 다른 한편 이 거대한 전환의 시대는 우리에게 새로운 삶을 시작할 기회가 되기도 하는 것이다. 부디, 이 모든 일들이 너무 늦지 않기를.(청춘의 커리큘럼, 148쪽)” 
석유 대신 전기를 넣어도 달라질 것 하나 없는 문장이다.


그리고 2014년 6월 8일, 다섯 번째 밀양방문의 도착지는 위양마을 127번 움막이었다. 행정대집행을 며칠 앞두고 127번 움막에 머물던 마을주민 정임출 님은 움막 바깥에 비를 피할 수 있는 비닐 장막을 쳤다. 장태선님을 비롯한 몇몇 연대자들의 도움을 받으며 비닐 장막을 치던 정임출 님은 말했다. 
“하루를 더 살더라도 오는 손님들 한 데서 자게 할 수는 없으니까.”


그로부터 나흘 후 127번 움막은 강제철거되었다. 그 날 많이 울고 많이 분노했지만 그것이 끝이라는 생각은 아무도 하지 않았다. 7개 마을에 농성장은 새로 꾸며졌고 그곳은 이제 사랑방이자 교육의 장이고, 게스트 하우스이자 식당 노릇을 할 것이다. 연대단체 회원들이 송전탑 반대 주민들이 생산한 농산물을 사는 '미니팜 협동조합-밀양의 친구들'이 만들어지고 1구좌에 1만 원의 기금을 내면 수확한 농산물을 받을 수 있는 ‘한 평 프로젝트’도 진행된다. 또 <밀양 인권 침해 종합보고서>를 발간하고, "마을공동체 파괴 기록과 증언"과 백서를 발간할 것이다. 송전탑 반대운동은 이제 생명 가꾸기 운동으로 진화하고 있는 것이다. 몇 번을 물러서고 몇 번을 뜯기더라도 ‘나의 마음은 지지 않았다’고 말하는 밀양 주민들은 그렇게 내 인생의 반가운 손님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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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 그러니까 수요일 저녁 8시에 
인디플러스에서 <밀양전> 상영합니다.
인디플러스는 3호선 신사역 1번 출구로 나오셔서 조금만 걸어오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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