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드바 영역으로 건너뛰기

두근거림

저번 주 목요일 아침, 양치질을 하려고 몸을 숙이는데 심장이 크게 한 번 두근거렸다.

'두근거림' 이라는 단어만 들으면 설레임이 연상될 가능성이 있으니 

좀더 정확하게 말하면 숨이 가쁠 때 심장박동이 빨라지는 것같은

아니 좀더 정확하게 말하면 초조함이 극에 달했을 때의 답답함 같은 거.

가슴이 철렁할 때의 그 상태랑 비슷.

목요일에 한 번 그러고 말아서 그냥 잊고 말았는데 주말에는 여러 번 그랬다.

일요일 밤에 자려고 누웠는데 그 증상이 오래 나타나서

문득 '이 밤에 심장이 멈춰버리는 건 아닐까'하는 걱정.

심장이 멈추면 안되지.

남편과 함께 꼭꼭 약속한 게

은별이가 스무살이 될 때까지는 

우리 아이들이 심리적 독립을 이루기까지는

어른으로서, 보호자로서, 부모로서 보호막의 역할은 완수하자는 거였으니까.

아버지가 너무 일찍 돌아가셔서 오빠랑 언니들이 고생을 많이 했다.

엄마와 오빠와 언니들의 헌신 덕분에 나는 부족함없이 자랐지만 

지금도 오빠와 언니들에게서 어떤 결핍같은 것이 느껴질 때가 있다.

사람은 제 나이에 하고 싶은 걸 다 하면서 살아가는 게 맞다.

언니 오빠가 겪은 일들을 우리 아이들에게 겪지 않게 하기 위해서

나는 오래오래 살 거다.

자는 은별의 보드라운 몸을 안으니 가슴에 뜨거운 물같은 게 차올랐다.

오래오래 살아야지. 부모라면 그래야지.

 

월요일 아침에도 증상은 여전해서 아침 식탁에서 남편에게 그 얘기를 하니

혹시 고민이 있는지, 마음을 불편하게 하는 일이  있는지 물었다.

다정도 병이어라.

아니, 마음에 깊은 고민이 있을 때, 불안과 초조함이 극에 달했을 때

몸이 나타내는 증상이,

마음은 가만 있는데 나타나.

라고 내가 분명이 말했는데 그렇게 물으니 헛웃음이 났다.(뭘 들은 거야)

 

나는 이런 두근거림에 익숙해.

너무나 엄했던 아버지 때문에.

아버지의 호통과 버럭질은 예측이 불가능했거든.

남편은 "그 때 아버님이 힘드셔서 그랬을 거야"라며 아버지 쉴드를 쳤다.

나는 아버지 이야기를 하려는 게 아니라

그 때의 그 불안상태랑 비슷하다는 얘기를 하고 싶은 거야.

아버지가 왜 화를 내는지, 언제 화를 낼지를 몰라서

조마조마 불안불안해 했을 그 어린애를 생각해봐.

내가 열살  때 아버지가 돌아가셨으니 

그 불안해하던 어린애는 아마 훨씬 더 어렸겠지.

추정할 수 있는 이유는 몇 개 있어.

일단 아버지는 무릎을 꿇고 앉아서 조용하고 깨끗하게 밥을 먹기를 원했어.

밥풀이나 국물을 흘리면 여지없이 호통이 날라왔거든.

뭐 그리고 말년에 인생이 잘 안풀린 거지.

오빠나 큰언니는 늘 옷을 맞춰입거나

그 시골에서 서울애처럼 잘 차려입었대잖아.

아이들은 태어났는데 인생이 잘 안풀리니 스트레스가 많았었나보지.

아버지는 정말  무서웠어.........

더 말해 뭐하겠어. 그런데 오빠는 늘 아버지가 나를 예뻐해서 자전거 뒤에 태우고 다니셨대.

나는 전혀 기억이 나지 않는데 말이야.

국민학교 들어가기 전에 한글을 뗄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는

아버지가 무서웠기 때문이야.

학교에 들어가기 전, 그 겨울에 

한 달만에 나는 한글을 뗐고 언니들의 교과서를 읽으면서 놀았어.

 

그 두근거림.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나니 그 두근거림이 사라졌어.

아버지 장례를 치르는 동안 나는 더이상 가슴이 두근거리지 않아서 너무 좋았거든.

아버지가 돌아가셔서 정말 기뻤지.........

그 기쁨이 어른이 된 내게 상처로 남아서 영화까지 만들었잖아.

 

이상하게 기억의 재료들이 몰리고 있다.

일단 심장의 두근거림이 그랬고

오빠가 아이들 읽으라고 보내준 책들이 그렇다.

나 어릴 적엔 도시로 유학가있던 오빠가 한 권씩 사다주던 책들 밖에 없어서

나는 늘 책에 목이 말라있었다.

아버지가 돌아가시던 날,

나는 도시에서 전근을 온 전투경찰대 대장네 집,

그집 딸의 방에 있는 계몽사 세계문학전집에 빠져있었다.

그토록 많은 동화책이 책장 가득 꽂혀있는 걸 보고

너무나 황홀해하며 책을 읽고 있었다.

이번에 오빠가 보내주신 책은 그 때 그 책들의 개정판인 듯했다.

두 개의 상자에 가득 들어있는 책들을 꺼내보자니

열살 그 날, 그 방의 공기까지 기억이 났어.

나는 왜 그 집에 가있었을까? 그 집엔 동갑내기 친구도 없었는데.

어쨌거나 나는 그 집 딸의 방에서 혼자 그 책들을 읽고 있었어.

그 때 동네 아주머니가 나를 찾으러 왔지.

빨리 집에 가보라고, 아버지가 많이 편찮으시다고.

나는 아픈 아버지보다 책읽기를 중단해야한다는 사실이 슬펐다.

집에 돌아오니 아버지는 피를 토하고 있었다.

온 집안에 퍼져있던 크레졸 비누냄새.

 

대학시절 과외를 다니다보면 여지없이 꽂혀있던 

계몽사 세계문학전집.

나는 과외를 끝내고 집에 갈 때마다 아이들에게 책을 빌리곤 했다.

톰 아저씨의 오두막집, 80일간의 세계일주, 독일동화집.....

어디를 펼쳐도 삽화까지 외울만큼 많이 봤으면서도

나는 보고 또 봤다.

내게 책 속 이야기들은 잃어버린 유년의 평화,

뭔가 그 비슷한 것의 원형이었던 것같아.

지금 생각해보면 그렇다.

 

아버지는 46세라는 젊은 나이에 돌아가셨다.

그러고보니 내가 올해 46살이네.....

두근거림은 다행히 병은 아니었고

몸이 좋아지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현상이라고 한다.

나는 46세를 넘어서 56세를 넘어서 86세까지 아니 그보다 더 오래오래 살것이다.

지금까지 영화를 만들고 있는 올해 87세의 아녜스 바르다처럼

죽는 날까지 카메라를 놓지 않을 거야.

그래서 지금 이렇게 열심히 치료하고 있는 거야.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