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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얼음판을 걷듯

** 매일매일 작업일지 쓰기 

 

** 살얼음판을 걷듯 조심조심. 상념에 빠져들면 안됨.

그러니 굽이굽이 펼쳐지는 상념을 빨리 이곳에 털어내고 머리속을 비운다.

 

오늘은 늦었다. 

급하면 여유가 없어진다. 여유가 없어지면 세상 모든 일에 영향을 받는다. 

9시까지 작업실에 가려면 온수리에서 30분에는 출발해야 하는데 그러지 못함.

막내를 후문 앞에 내려주는데 보통 보호자들은 아래 주차장으로 빙 돌아서 내려주게 되어있다.

앞에 어떤 부모가 주차장으로 빙 돌아가는 길을 막고서 자기 자식을 내려주는 중.

그래 당신이 아이를 먼저 내려주고 빙 돌아서 나가는 걸 선택할 수는 있겠지만 

길을 막을 것까지는 없지 않나?

조금만 더 앞으로 가서 내려준다고 당신 자식 발에 병이 나나?

이런 몰지각이 참 싫음.

 

강화읍으로 가는 길은 1차선이라 복불복.

앞에 농기계차가 있으면 앞질러 가면 되지만

느리게 가는 차가 있을 땐 그냥 따라가게 된다.

만약에 한 대만이라면 앞지를 수도 있겠지만 

두 대 세 대 그렇게  줄줄이 가고 있으면 그냥 포기하고 간다.

그래도  괜찮아. 느리게 가는 게 내 탓은 아니니까.

2011년 2월, 처음 운전을 시작했을 때

강화읍 가는 길에 내가 그랬으니까.

나는 아무리 빨리 달리려해도 시속 40km를 넘지 못했다.

40km를 넘으면 너무 빨라서 무서웠다.

그 때 뒤에서 빵빵거리던 차들.

하지만 진땀이 나도 어쩔 수 없어 나는 나의 속도로 갈 수밖에 없었고

그래서 그 후, 남편이 느린 앞차에게 불평을 할 때면 

조수석에 앉은 나는 이런 부탁을 하곤 했다. "나라고 생각해줘"

그 때 이후로 앞에 차가 없고 뒤에 차가 있으면 불안하다.

느리게 가더라도 앞에 차가 있으면 그 차에 속도를 맡기면 되거든.

 

아침의 이기적인 부모 때문에는 약간 짜증이 났지만

느리게 가는 파란색 스파크를 보면서는 짜증 대신 회상을.

작업실에 도착하니 9시 10분.

다행히 10분 밖에 안늦었다.

별 일이 없는 한 9-6로 칼같이 작업을 하는 게 나의 목표.

더 기쁜 소식은 작업실을 바꿀 수 있게 된 것.

 

건물의 주인인 학자들은 아주 젠틀한 중년남성들인데

나는 조심스럽고 그들은 수줍다.

작년 예술인인 사진작가에게 내가 파견될 곳에 대해서 문의를 하며

"파견예술인들을 혹사시키는 곳도 있다던데 그 곳은 어땠나요?"

라고 물으니 사진작가는

"다들 학자들이라 아주 양반들입니다"라고 말해주었다.

학자들은 친절하고 예의바르며 약간 수줍어하는 듯하다.

그래서 그 파장을 받아 나도 조심스럽다.

답사 촬영을 하던 첫 날, 학번을 물어보시길래 말씀드렸더니

85학번인 팀장님은 "89들은 자식같아요"라고 웃으셨다.

맞아요. 제가 대학에 들어갔을 때 85학번  대학원생들이 조교였어요....라고 웃었다.

사실 나 고등학교 때 역사학자가 되고 싶었었는데

내가 꿈을 이뤘으면 이 분들 같은 모습이었을 거다.

중년남성 공포증이 있는데 이 분들은 병원 선생님과 분위기가 비슷해서

대화를 하다 보면 기분이 좋아진다.

 

이 분들은 전망이 가장 좋은 방을 내게 배정해주었다.

사무국장님은 "이 곳이 우리 사무실과 가깝고, 화장실도 가깝고, 전망이 좋습니다"

라고 하셨는데 그 말씀은 맞는데

햇빛이 너무 많이 드는 거다.

전기세 걱정없이 마음껏 쾌적하게 쓰라고 하셨지만

문제는 내가 없을 때.

롤스크린을 내리고 있어도 햇빛 때문에 온도가 올라가게 되면

기자재에, 하드에 무리가 갈 수 있다.

촬영본이 들어있는 하드는 우리한테는 생명만큼 중요한 것.

 

마스크 쓰고 에어컨 틀고 열심히 작업하다

멀리 벤치에서 사무국장님이 담배피우는 걸 보고 얼른 가서 방 이야기를 했다.

사무국장님은 "그럼 하드를 제 방에다가 갖다두시면 제가 잘 봐드릴께요" 하셨는데

"제가 작업을 걸어놓고 퇴근하는 경우도 있어서요....."라고 하니

얼른 알아들으시고 "그럼 불편하지 않으시면 방을 바꿔드릴까요?"라고 해서

네네네!! 하고 좋아함.

 

아침에 '늦었다!' 하면서 뛰어오는데

경비팀 직원분들이 이사하셔야죠? 해서

좋아라 하며 방 옮김.

이 방은 인천문화재단 아티스트 레지던스로 쓰던 곳이었다 한다.

책상을 옮겨 주시면서 경비팀 직원분은 

"화가가 짐만 갖다 놓고 한 번도 안왔어요"라고 말씀하심.

 

사실 이 방보다 더 작고 더 어두운 방을 골랐는데

청소하시는 분이 "밖에 실외기가 있어서 너무 시끄럽다"면서 

이 방이 더 좋다고 권해주심.

짐을 다 옮겼고 모든 기자재 세팅이 다 끝난 후

다시 한 번 다짐.

지금은 상념같은 건 싹 흘려버리고

선을 정리하듯 기계적으로 움직일 때.

 

새로 산 도시바 4테라 하드에 촬영본을 다시 백업받음.

그새 촬영본이 1테라가 넘었다.

백업이 끝나면 컨버팅을 해야한다.

아침에 맥프로를 옮겼으면 노트북으로는 백업을 하고 맥프로로는 컨버팅을 할 수 있었는데.

아깝다.

 

기념사진1. 정리전 책상

사용자 삽입 이미지

 

어지러운 선들을 하나하나 정리해서 제 용도에 맞춰서 꽂거나 리본으로 묶는다.

나는 이런 일들이 좋다.

컴퓨터를 조립하거나 기자재를 세팅할 때,

슬롯에 카드를 끼워넣고 컴퓨터를 켰을 때 씽 하고 돌아가는 소리

본체가 카드를 인식할 수 있도록 드라이버를 찾아 깔고 컴퓨터가 새로운 기능을 얻는 순간

그런 순간들이 재미있어.

 

기념사진 2. 새 작업실 전망.

사용자 삽입 이미지

가장 해가 안드는 방을 찾아 다니다보니 뱀파이어가 된 느낌.

건물주인들은 잘 이해가 안 갈 거다. 하하

저희가 좀 그렇습니다.

 

가장 효율적인 동선을 고려해서 백업 책상과 집필 책상을 구분해서 정리함.

10시 50분까지 모든 세팅이 끝났고 원래 11 시까지만 이 글을 쓰려고 했는데

17분 초과.

이제부터 열심 작업!

 

 

 

오늘 할 일

1. 2015년 이후 촬영본 백업, 2카피.

2. 인권포럼 원고, 서울상영회 원고 완성

3. 서울상영회 상영작들 모두 모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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