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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쿠스 VS460

경산이주노동자센터소식지 1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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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쿠스 VS460

 

                                                                  - 신은정(공공노조 경상병원분회 분회장)

 

지난 2월 겨울 경상병원이 파산되고 투쟁을 시작했는데 벌써 10월이고 가을이다.

 

텔레비전과 신문에서는 가을산마다 단풍놀이 온 관광객들로 발 디딜 틈 없이 북적거린다는 내용이 주요 기사로 보도된다. 알록달록한 단풍 사이로 보이는 등산로를 따라 단풍에 색이라도 맞춘 듯 화려한 등산복 차림의 사람들이 그득한 장면이 뉴스와 함게 화면을 채우고 있다.

 

고용승계를 요구하고 민주노조 사수를 목표로 투쟁을 하다보니 나는 요즘 경산과 울산을 왔다갔다 하는 차안에서 가을을 맞고있다. 고속도로를 따라 심어진 나무들이 물들어가는 것을 보면 벌써 가울이구나 싶고 울산 중앙병원 앞 농성장에 부는 바람에 옷깃을 여미며 가을이 깊어감을 실감한다. 가을을 만끽한다기보다는 다가올 겨울을 걱정한다는 것이 맞을 듯하다.

 

중앙병원 한 귀퉁이에 자리를 깔고 농성을 하고 있자면 응급환자를 실은 구급차가 농성장과 인접한 응급실 앞에 주차하곤 한다. 또 진료 받으러 오는 환자들을 실은 승용차들이 차마 병원 로비 입구와 가까운 응급실 앞에는 차를 세우지 못하고 멀찍이 인접 도로에서 환자를 하차시키는 모습이 자주 눈의 띠곤 한다.

 

하루는 여전히 농성하고 있는 내 앞으로 까맣고 윤기가 좌르르 흐르는 차가 가을 햇살을 받아 번쩍이며 지나가더니 응급실 앞을 지나 로비입구 바로 앞에 떡하니 섰다. 차를 잘 모르는 내 눈에도 꽤 값나가는 차임이 분명해 보였다. 차가 섰나 싶자 운전석에서 사람이 내리고 차 앞주둥이를 삥 돌아 반대편으로 가더니 너무도 공손히 허리를 숙이며 차 뒷문을 열었다. 뒷문으로 사람이 완전히 내릴 때까지 숙여진 허리는 그대로였고 손잡이를 잡고 있는 손도 그대로였다. 내린 사람은 중년의 남자였다. 한 쪽 손에 지팡이를 짚고 있었지만 걸음이 그리 불편해 보이지는 않았다. 그 중년의 남자는 천천히 걸어서 병원 안으로 들어갔다.

 

운전기사 -운전자가 하는 행동이 왠지 드라마에 나오는 개인 운전기사와 똑같이 행동해서 그렇게 생각됐다- 는 다시 차에 오르더니 차를 후진해서 도로로 빼더니 자동차 면허시험의 'T-코스' 엽습하듯 차 꽁무니부터 병원 입구로 밀어 넣었다. 주차장으로 갈려고 방향을 바꾸는구나 했는데 그 검은 차는 그대로 병원 입구를 막고 멈추어 섰다.

 

주변의 있던 조합원들이 말해줘서 그 차가 에쿠스 4600cc 라는 걸 알았다. 집에 와서 검색해보니 1억이 좀 넘는 차였다. 그 차가 주차되어 있는 앞바퀴 밑 바닥에는 구급차 주차지라는 글자가 선명하게 써 있었다. 그런데 그 차가 서 있는 상당한 시간 동안 병원직원 어느 누구도 차를 정해진 주차장에 옮겨줄 것을 요구하지 않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주변에 나와 쉬고 있던 환자들과 조합원들이 그 에쿠스 VS460 주변을 에워사고 시커멓게 썬팅되서 안이 들여다 뵈지 않는 창문에 얼굴을 갖다 대곤 감탄사를 연발했다. 멋지다거나 부럽다거나 언제 저런 차 함 타보나 하는 것이었다.

 

에쿠스 VS460 을 처음 가까이서 본 나는 왠지 화가 났다. 처음에는, 구급차가 응급환자를 싣고 들어오는 공간임에도 로비 입구와 가까운 곳이기에 그곳에 주차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여기는 것에 화가 났다. 그러다가 그 이유가 왠지 비싼 차라서 당연히 그렇게 해도 되는 것처럼 여기는 당당함에 화가 났고 그 차에 대해 아무런 제제도 하지 않는 병원 직원들 때문에 화가 났다. 에쿠스 주인이 기사딸린 그 차를 소유하기 위해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노동력을 착취하고 남의 것을 빼앗았을까 하는 생각에 화가 났다. 번쩍거리는 에쿠스 VS460을 만들기 위해 기름땀 흘렸을 노동자들을 생각하니 화가 났다.

 

왠지 그 자리에 서있는 에쿠스 한 대가 자본주의의 모순을 상징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문득 지나치게 민감하게 반응한다는  생각에 정신이 들어 스스로 쓴 웃음을 지었지만 그 에쿠스는 그 곳에 서있는 내내 내 눈과 마음을 불편하게 만들었다.

 

에쿠스를 타기위해, 더 넓고 비싼 집에 살기위해, 명품을 입고 걸치기 위해 인생을 허비하게 만드는 세상이 나를 화나게 하고 한편 무섭다는 생각도 들게 한다.

 

에쿠스를 바라보며 화를 내다 웃다 했지만, '모두가 욕심없이 필요한 만큼만 가진다면 우리가 바라는 세상이 될것' 이라는 내용의 글을 어디서 읽었던 기억이 되살아났다.

 

우선은 함께 고생하는 조합원들이 안정된 일자리로 돌아가는 것 외에는 뵈는 것이 없지만 에쿠스 VS460에 대한 기억은 이후로도 계속 나를 고민하게 만들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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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은정님은 현재 민주노총 공공노조 의료연대대구지역 지부 경상병원분회장입니다. 경산의 유일한 종합병원인 경상병원을 경영진의 비리로 어려움을 겪다가 결국 파산을 했고 이후 경상병원분회와 경북일반노조는 '경상병원정상화를 위한 공돋투쟁본부'를 만들고 새로운 인수자로 나선 의료법인 정안재단(울산중앙병원 운영)과 고용승계, 단협승계, 노조인정문제를 둘러싸고 힘겨운 싸움을 하고 있습니다. 이 싸움의 맨 선두에 서서 열심히 활동하는 신은정님을 응원합니다. 또한 어려운 가운데서도 경신지역 이주노동자들과 연대하기 위해 지난 달부터 후원회원에 동참해 주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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