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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용) 나는 왜 녹색주의자가 되었는가?

나는 왜 녹색주의자가 되었는가

 

우리는 억압의 요인을 한 가지에서 찾는 단순한 논리를 더 이상 믿지 않는다.
남성 우월주의, 국가주의, 생산지상주의가 자본주의에서 필연적으로 파생된
것만은 아니다. 변혁의 주체로서의 프롤레타리아의 중심성도 더 이상 믿지 않는다.
공산주의에서 말하는 '새로운 예루살렘'도 믿지 않는다 절대권력을 지닌 국가도
두려운 대상일 뿐이다. 특히 생산력의 증대는 더더욱 우리를 두렵게 한다.

 

'우리'는 누구인가? 우리들 대부분은 잊혀진 좌파의 후손들이다.
스파르타쿠스, 토마스 뭔처, 그라쿠스 바뵈프와 로자 룩셈부르크의 그늘진 영광말고,
현재 적색 진영에 남아 있는 것이 과연 무엇인가? 이 사람들이 더 이상 우리의
가치 속에 등장하지 않는 것은 안타까운 일일 수도 있다. 정치에서 이 기치는
필요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복잡한 세상에서 영웅이나 성인에 대한 열광과
믿음이 오히려 끔찍한 결과를 가져올 수도 있다.

 

적색에 대한 찬양을 단념한 지금. 그렇다면 어떻게 사람들을 정치에 끌어들일
것인가? 그 첫 시도는, 이전의 '노-자 대결' 이라는 중심 투쟁과 더불어
'제2의 전선'을 형성하는 것이었다. 여성주의와 생태주의가 바로 이에 속했다.
그러나 이는 중심 투쟁에 종속되어 있었던 탓에 변혁의 잠재력이 크지 못했다.
1970-80년대로 들어서자 유럽과 미국에서는 이른바 '무지개 정치'가 등장하였다.
노동자, 여성, 농민, 청년, 동성애자, 생태주의자, 제3세계 민중 등을 모두
역사 주체로 한데 묶은 것이다. 이들은 각자에게 가해지는 특수한 억압에 맞서
싸우지만, 또한 함께 모여 싸울 필요도 있었다. 이것만으로도 이미 한 발짝
앞으로 발전한 것이었다.

 

그러나 이와 같은 '포스트모더니즘적인 콜라주'는 한계를 갖고 있다. 우선
무엇보다도, 각 사회운동들 사이에 존재하는 모순에 대해 침묵할 수 밖에 없었다.
사실 노동운동은 여성주의적이거나 생태주의적이지 못했다. 이처럼 각 사회운동
사이에 존재하는 모순 때문에 필연적으로 각 운동이 수렴될 수 없었다. 이 같은
수렴이 이뤄지려면 일종의 '사회적 생산', 즉 새로운 패러다임과 새로운 정치적
구호가 창출되어야 했다.

 

나는 정치적 생태주의가 바로 각자의 희망을 조화시킬 수 있는 사상의 틀과
패러다임이 될 수 있으며, 녹색정치가 그 기조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녹색 정치는 하나의 패러다임이 아니라 포괄적인 가치들이 모두 모여 있는 우산,
내지는 무지개를 잡아내는 장치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적어도 정치적
생태주의는 적색과 구조적으로 비교 가능한 하나의 패러다임을 창조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즉 구체적인 현실에 굳건히 뿌리를 박고 생산지상주의가 보여주는
'현 문제들'을 분석하고 최대한 효과적으로 해결하기 위해 투쟁하는 것이다.

 

해야 할 일이 너무도 많다. 적색에서 멀어지고 있는 나의 친구들에게 다음과 같은
점을 말하고 싶다. 적색을 변화시키겠다는 허망한 꿈을 좇거나 협소한 적색과 녹색
그룹의 주변에 머무러기보다는 - 신의를 저버릴 수 없어 적색을, 현실적으로는
녹색을 선택해서 - 생태주의자들과 함께 사회적, 전세계적 차원의 노력을 강조하는
녹색 패러다임을 갖고서 앞으로 나아가자는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억압받는 자들의
투쟁에 대한 신의를 지키는 진정한 길이라고 나는 믿는다.

 

녹색희망 뒷 표지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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