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리반, 다시 문을 열다!

나의 화분 2011/11/30 15: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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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가세입자의 권리를 되찾아 다시 문을 여는 두리반
 

 
☀ 오픈 날짜: 2011년 12월 1일 목요일 오전 11시
☀ 장소: 서울 마포구 서교동 370-5
☀ 내용: 두리반 재오픈과 의의
☀ 주최: 두리반대책위원회
☀ 연락처: 두리반 02) 333-4113
 

 
상가세입자의 권리를 되찾기까지 과정

2007년 가을부터 건설사는 두리반이 위치한 동교동 167번지 일대를 매입합니다. 졸지에 생계터전을 잃게 된 상가세입자들에게 건설사는 이사비용만을 제시합니다. 공영개발이 아닌 민영개발이므로 건설사의 행동은 합법적입니다. 하지만 두리반은 잘못된 개발법의 희생양이 될 수 없다면서 이를 거부합니다.

2009년 12월 24일, 두리반은 건설사에서 보낸 30여 명의 용역들에 의해 내동댕이쳐집니다. 건설사와는 단 한 차례의 대화도 없었습니다. 영업을 시작한 지 5년도 안된 삶의 터전이 오직 힘으로 짓밟혔습니다. 가정은 파괴됐으며 살길은 막혔습니다. 죽는 길밖에 없다면 한은 풀고 죽어야 할 게 아닌가. 모욕을 당해 욕스럽게 됐다면 그 분함이라도 알려야 할 게 아닌가. 오직 그 생각으로 유채림 안종녀 부부는 2009년 12월 26일 새벽부터 두리반으로 들어가 철거농성을 시작했습니다.

농성을 하는 동안 돈에 눈먼 막개발의 폐해에 대해 알렸습니다. 강자에겐 법이지만 약자에겐 살인도구일 뿐인 개발악법에 대해 알렸습니다. 악무한으로 치닫는 사회에 함께 맞서자고 연대를 호소했습니다. 벗들과 동료작가들이 두리반을 찾았습니다. 지역주민과 진보정당 사람들이 두리반을 찾았습니다. 다큐멘터리 감독들과 홍대 앞에서 활동하는 인디뮤지션들이 두리반을 찾았습니다. 한국기독교장로회 총회와 촛불을 켜는 그리스도인들이 두리반을 찾았습니다. 두리반은 놀라운 위력을 드러내기 시작했습니다. 희망은 함께할 때 오는 것이고, 투쟁은 즐겁게 할 때 승리한다는 말처럼, 두리반은 넘치는 힘으로 희망을 안고 즐겁게 굴러갔습니다.

농성을 시작한 지 7개월째인 2010년 7월 21일, 건설사는 전기를 끊어 연대의 고리를 끊고자 했습니다. 그러나 더 많은 이들이 두리반과 함께했습니다. 건전지촛불을 보내왔고, 태양광 발전기를 보내왔고, 일간지에 의견광고까지 후원해주었습니다. 두리반은 어두웠으나 더욱 열광적으로 뛰었습니다.

건설사는 농성을 시작한 지 1년이 지난 올해 1월부터 대화를 시도합니다. 폭력의 방식으로는 더 이상 해볼 수 없다고 판단했던 모양입니다. 두리반대책위원회는 대화에 응합니다. 올 초부터 시작해 6월 초까지 무려 여섯 달 동안 협상테이블에서 머리를 맞댔습니다. 협상타결은 6월8일에 이루어졌습니다. 두리반 농성을 시작한 지 531일 만이고, 전기가 끊긴 지는 324일 만입니다.
 
다시 문을 여는 두리반

두리반에선 처참한 폭력사태가 단 한 차례도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전적으로 문화예술운동의 힘이라 하겠습니다. 합의사항 중 가장 중요한 것은 생계터전인 두리반을 원래의 자리 근처에 다시 열 수 있도록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대한민국이라는 사막에서 당장 우물을 파고 다시 물을 길 수 있도록 한다는 합의였습니다.

그 합의안대로 두리반은 홍대 앞에 두리반만한 장소를 마련하여 오픈합니다. 8월 말부터 오픈할 자리를 알아보았으나, 맞춤한 자리를 구하는 게 쉽지는 않았습니다. 특히 두리반과 함께한 뮤지션들의 공연, 작가들의 낭독회, 다큐 상영공간을 염두에 둔 자리는 권리금만 2억이 넘었습니다. 엄두를 낼 수 없었습니다. 급기야 지난 11월 7일, 칼국수보쌈전문점으로서의 두리반만이라도 오픈하기로 하고, 마포구 서교동에 둥지를 마련했습니다. 이제 내부공사를 끝내고 2011년 12월 1일 오픈합니다.

가슴이 벅차오릅니다. 일차로는 네 식구의 생계터전이되, 그동안 연대해온 이들에겐 약속의 터전이기도 한 두리반! 농성이 장기화될수록 두리반은 이 땅의 철거민들에게 상징이 되어갔습니다. 명동3구역이 두리반 식구들을 통해 힘을 얻고 협상을 일궈냈습니다. 현재는 북아현동 상가세입자들이 두리반의 응원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막개발에 맞서는 상징으로서의 두리반은 반드시 재오픈을 해야만 그 의미를 살릴 수 있습니다. 철거농성의 최종적 승리는 협상타결이 아닌 두리반 재오픈에 있기 때문입니다. 그 약속을 지키게 되어 가슴 벅차지만, 철거업체 적준의 폭력에 노출돼 있는 북아현동 상가세입자들을 떠올리면 지금도 몹시 고통스럽습니다.

다시 문을 여는 두리반은 막개발의 희생양인 모든 철거민과 연대할 것입니다. 상징은 보리바쿠에 들어 있을 때가 아니라, 물처럼 흐를 때 힘을 발휘합니다. 두리반은 두리반식구들과 함께 쉼 없이 막개발의 급소를 찌를 것입니다. 오픈 파티에서 나누게 될 칼국수와 보쌈은 급소를 찌르는 힘이 될 것입니다. 오픈 파티에서 하나씩 갖게 될 건전지 촛불은 급소를 찌르는 칼이 될 것입니다.
 
투쟁방식의 새로운 전형을 만들어낸 두리반

재오픈하게 된 두리반이 철거투쟁의 전범은 아닙니다. 다만 이정표 역할을 할 뿐입니다. 권리를 빼앗긴 철거민들이 얻어맞고 발버둥 치면서 권리를 되찾는 방식은 미개한 방식입니다. 이제는 정부나 지자체가 개발이익에 눈멀어 막개발을 선동할 게 아니라, 기존의 생명들이 보다 나은 삶을 얻도록 하는 개발로의 전환이 이뤄져야 합니다. 이를 위해 폭력과 PF자금으로 밀어붙이는 개발 대신, 전문 개발기획자가 장기적이고 다각적인 형태로 계획하는 개발을 촉구합니다.

두리반이 투쟁의 방식을 한 차원 끌어올린 것은 분명합니다. 몸을 다치는 밑바닥 투쟁 대신 끝없이 언론에 알리고, 문화예술로 승화시켜나간 과정은 향후 모든 권리투쟁의 전범이 될 것입니다. 실제로 반쪽의 승리였지만, 명동3구역의 투쟁은 두리반투쟁을 접목해 얻어낸 승리였습니다.

두리반대책위원회:

김성섭(보임기획 대표, 성미산주민대책위),  김은영(한국교회인권센터 사무국장),  김종수(촛불을 켜는 그리스도인들 집행위원장),  윤성일(민주노동당 마포구위원장),  정경섭(진보신당 마포구당원협의회 위원장),  조약골(인권활동가),  최헌국(예수살기 총무),  황규관(한국작가회의 자유실천위원회 위원장)
 
 
두리반 사태일지

2009년 12월 25일 밤 유채림 안종녀 부부 철판을 뜯고 두리반 안으로 진입, 농성 시작.26일 오후 2시경 인천작가회의 이사들 찾아와 지지농성을 벌이기 시작. 이때부터 인천작가회의 식구들과 유채림의 모교 동문들이 돌아가면서 번을 서주기 시작
2009년 12월 28일 인천작가회의, 한국작가회의 자유실천위원회 공동명의로 ‘소설가 유채림의 삶터, 두리반 식당을 빼앗지 말라’는 성명서 발표
2010년 1월 11일 엄보컬·김선수의 「하늘지붕음악회」 시작.
2010년 2월 23일 화요일부터 독립영화 ‘푸른 영상’에서 「화요 다큐상영회」 시작
2010년 2월 마지막주 토요일부터 홍대 앞 인디밴드들 「사막의 우물 두리반」 공연 시작
2010년 3월 둘째주 금요일부터 「칼국수음악회」 시작
2010년 4월 26일 「51+두리반」 공연 앞두고 건설사가 두리반 뒤편 한옥 철거를 강행하려 하자, 두리반대책위원들 마포경찰서 항의 방문
2010년 5월 1일 「51+두리반」 공연이 낮 12시 30분부터 이튿날 새벽 3시까지 진행. 62개 밴드가 두리반 뒷마당, 두리반 건물 지하, 3층에서 동시 공연. 3,000여 명이 공연관람
2010년 7월 7일 한국작가회의 주관 월 1회 「두리반 문학포럼」 시작.
2010년 7월 21일 두리반 단전
2010년 7월 26일 마포구청 도시계획과에서 단전사태 해결을 촉구하는 농성 시작
2010년 8월 1일 박홍섭 마포구청장의 “두리반 사태 해결 때까지 전기 공급하겠다”는 약속을 받고 농성을 풀고 두리반으로 돌아옴. 저녁 때 구청에서 경유발전기 보내옴
2010년 8월 3일 박홍섭 구청장 경유발전기 돌릴 연료비 지급 불가 선언
2010년 8월 11일 두리반 농성 231일, 두리반 단전 22일을 맞아 국가인권위에서 기자회견 을 열고, 인권위 사무총장을 만나 인권위 조사관의 불성실을 질타함
2010년 8월 17일 전기 공급을 촉구하는 ‘573인 선언’ 의견광고를 경향신문에 게재
2010년 8월 27일 두리반 사태에 대한 ‘111인 작가선언’을 한겨레신문에 게재
2010년 11월 10일 〈1월11일〉동인들이 두리반에서 「불킨 낭독회」 개최
2011년 1월 7일 두리반대책위원회와 건설사가 기독교회관 인권회의실에서 첫 대면. 두리반대책위는 건설사의 사과와 두리반이 다시 문 여는 것이 목적임을 밝힘
2011년 4월 30일 지난해에 이어 「51+두리반」 개최
2011년 5월 15일 두리반대책위와 건설사 직원들이 홍대 앞의 상가를 직접 돌아보면서 시세를 확인
2011년 6월 8일마포구청 회의실에서 두리반대책위와 건설사간 협상조인식
(기존의 두리반을 기준삼아, 장소를 홍대 앞, 공간 크기를 30평 내외로 하여 재오픈 합의)
2011년 12월 1일 마포구 서교동 370-5번지에 둥지를 마련하여 재오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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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11/30 15:28 2011/11/30 15: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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