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추리는 평화인권보호구역이다

꼬뮨 현장에서 2006/10/17 17:35
대추리는 평화인권보호구역이다

 
대추리에서 살기 시작한지 3개월이 지났는데, 나는 아직도 매일같이 나는 왜 이곳에서 살고 있는가 생각한다. 자신이 왜 살아가고 있는가 고민하는 것은 어느 곳에서 살고 있든 간에 인간에게 부과된 어쩔 수 없는 짐이 아닐까.
 
문득 처음 대추리에 내려와 살기로 마음을 먹던 때가 떠오른다. 고백컨대 국방부가 황새울에 철조망을 쳐놓고 그곳 주민들이 자유롭게 통행할 권리를 침해하지 않았다면 나는 그곳에 살러 기어 들어가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국방부장관이라는 자가 사람이 살고 있는 마을과 벼가 자라는 멀쩡한 논밭을 '군사시설보호구역'이라고 억지를 쓰면서 수 만명의 경찰과 군인들을 동원해 대추리, 도두2리 마을을 감옥처럼 만들어버렸을 때 나는 깨달았다. 그곳에서 보호받아야 할 것은 철조망이 아니라 농민들의 인권과 평화적으로 이 땅에서 살아갈 우리의 생존권임을 말이다. 그렇게 지난 5월 4일 이후 나에게 황새울은 '평화인권보호구역'이 되었다.
 
그러니까 처음 이곳에 들어와 주민들과 호흡하며 살기로 한 것은, 인터뷰에 실린 피상적인 이야기가 아니라 주민들의 땀과 눈물을 직접 보려고 마음먹게 된 것은, 다른 지킴이들과 마찬가지였겠지만, 그 구역을 지켜내고 싶다는 소박한 의지였다. 내가 들어가서 지킬 수 있을지 없을지는 모르지만 내가 가진 힘이라도 모으면 이놈의 야만적인 국가가 벌이는 폭력적이고도 비열한 공작을 조금이라도 저지시킬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가 있었다. 연대한다는 심정으로, 나도 무엇인가 보태고 싶었다.
 
하지만 내가 보탠 것에 비할 수도 없는 많은 것들을 얻고 배우지 못했다면 나는 이미 다시 도시의 삶으로 귀환했을지도 모른다. 대추리에 왔다 간 프랑스의 유명한 반세계화 농민운동가 조제 보베도 말했지만 그곳은 상징적인 공간이었다. 압도적인 무력으로 세계를 지배하려는 미국의 치밀한 군사전략에 의해 지역의 식량주권과 환경을 지켜온 농토가 강제로 빼앗길 위치에 처해진 곳. 무역장벽 해소와 테러리즘 근절을 기치로 내건 가진자들의 세계화가 실제로는 어떻게 이뤄지고 있는지 극명하게 보여주는 곳. 그리고 풀뿌리 농민들을 중심으로 완강한 저항이 이뤄지고 있는 곳. 평화, 인권, 반세계화 운동, 불복종의 가치가 그물처럼 얽힌 속에서 촛불로 상징되는 비폭력의 방법으로 생명의 땅을 지켜내려 하는 이곳에서 사람들은 민주주의와 민중자치의 본질적 의미에 대해 새롭게 배우고 있었다. 조그만 땅을 자기 손으로 일구며 살고 싶다는 가장 겸손한 소원을 가진 사람들이 매일 저녁 모여 거짓말을 늘어놓는 법관을 성토하고, 무력으로 문제를 풀어내려는 정권을 규탄하고 있다. 이미 충분한 군사력을 갖고 있음에도 무슨 땅이 또 필요하다고 하는지 미국의 욕심엔 끝이 없다면서 소박하고 겸손한 사람들은 목소리를 높인다. 저렇게 되지는 말자고 서로를 보듬어 안으면서 말이다. 할머니, 할아버지가 대부분인 주민들이 800일 가까이 매일 촛불을 들 수 있었던 힘이 거기에 있다.
 
남보다 더 높은 위치에 올라 잘난 사람이 되고 싶다는 욕망도, 남보다 더 커다란 집에서 더 많은 것을 소유하며 살고 싶다는 소원도 모두 어디에서 나왔는가? 들판에서 자라는 곡식을 보면 저마다 제각각으로 생겼고, 낟알의 개수도 다 다르지만 이들은 서로를 차별하지 않는다. 벌레가 먹은 것은 먹은 것대로, 튼실한 놈은 튼실한 놈대로 어울려 살아간다. 그래서 나는 낮이면 산들바람이 불고, 저녁이면 빨간 노을이 가슴속을 휘저어버리는 황새울 들녘에서 살아가는 이유를 생각해본다. 재력과 권력으로 남들과 경쟁하면서 살아가지 않으면 도태되고 만다는 삶의 질서가 나에게도 체화되어 있구나 반성하게 된다. 그것을 씻어내기 위해서, 내일은 없다는 듯이 버리고 쓰고 다시 사서 버리면서 무감각하게 살아온 나를 탈바꿈하기 위해서 나는 이곳에 살고 있다. 땅에서는 내가 필요한 모든 것이 다 나온다. 그리고 내가 쓰고 남은 것들은 다시 땅으로 돌아간다. 이 땅에 뿌리를 박고 사는 것은 우리가 오래 전에 잃어버렸던 삶의 지혜를 다시 살려내는 일이다. 무기를 녹여 쟁기를 만들라는 그 말씀 말이다.
 
지금 그 땅에 폭격기와 미사일이 들어오려고 한다. 한국과 미국의 정부는 이를 위해 결속을 더욱 공고히 다진다고 한다. 그래서 일상이 고난이다. 하지만 나는 행복하다.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의 모순이 집약되어 너무도 적나라하게 드러나고 있는 곳에 사는 일이 이렇게 행복할 수 있음을 나는 미처 알지 못했다. 이곳에서 세상의 모순이 가장 뚜렷하게 나타나는 만큼 그 대안 역시 가장 뚜렷하게 드러나기 때문이다. 나는 그 대안적 삶을 배우며 찾아가고 있다.
 
- 천주교인권위원회 소식지에 기고한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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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10/17 17:35 2006/10/17 17: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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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CINA 2006/10/18 00:01 Modify/Delete Reply

    anh-nyeong dongji,
    is there on the coming weekend any special peace/anti-war stuff in seoul? (I know about something at sun., 2p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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