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식볶음밥의 기억

식물성의 저항 2006/03/28 00:46

오리님의 [신동양] 에 관련된 글.

요즘은 무엇을 꼭 갖고 싶다는 생각은 별로 들지 않는다.
없어도 그만이고, 있으면 결국 짐만 늘어나거나 아니면 쓰레기만 될 뿐인 것들이 지금 이 세상엔 너무도 많다.

 

무엇을 간절히 먹고 싶다는 생각 역시 별로 들지 않는다.
채식을 하기 전에는 일주일에 한 번은 삼겹살을 먹어줘야 했고, 또 산해진미라는 것들도 언젠가 반드시 맛보고 싶었었다.
지금은 그저 내가 먹을 수 있는 것들이 있기만 하면 된다.
굶지만 않고서 지금처럼 활동할 수 있도록 힘을 낼 수 있는 채식음식을 꾸준히 먹을 수 있다면 그것으로 음식에 대한 내 모든 욕구는 해결된다.

 

그런데, 쯧쯧, 이게 다가 아니다.
사람이란 단순한 존재는 못되는가 보다.
몇 달에 한 번 무엇을 먹고 싶다는 강렬한 욕구가 몰아칠 때가 있다.
신동양에서 만든 채식볶음밥이 그중 하나다.

 

올 1월에 네번째 인권활동가 대회를 충주호에서 했는데, 그거 끝나고 자전거 타고 팽성으로 오면서 점심 시간이 되었을 때 바로 그 채식볶음밥을 먹고 싶었다.
지음과 함께 자전거를 타고 있었다.

장호원 부근의 조그만 마을에 있는 중국집엘 갔다.

나는 채식을 한다고, 그러니 볶음밥에 계란이나 고기, 해물 같은 것은 모두 빼고 야채만 넣어서 만들어 달라고 주방장님에게 특별히 부탁을 했다.

그집 주방장은 별로 탐탁해하지 않는 것 같았다.

자신이 만든 요리에 이래라 저래라 하는 것이 못내켰나보다.

 

얼마를 기다리다 나온 (채식)볶음밥에는 돼지고기가 듬뿍 들어간 짜장이 얹어져 있었다.

고민을 했다.

분명 이집엔 채식을 하는 사람들이 한 번도 와본 적이 없었을 것이다.

 

결국 다시 만들어서 가져왔다.

다른 야채는 하나도 없고 오로지 밥과 당근을 아주 약간 넣고 볶은 그런 맹숭맹숭한 밥이었다.

오징어 등을 넣고 끓인 짬뽕국물도 주길레, 먹지 않는다고 했더니 그냥 놓고 먹으랜다.

 

중국음식은 재료들을 주로 볶거나 튀기기 때문에 중국집 주방장들이 다른 요리사들보다 볶는 것을 잘한다.

그래서 나는 볶음밥이 먹고 싶을 때는 먼저 중국집을 찾는다.

하지만 제대로된 채식볶음밥을 하는 중국집은 거의 없다.

그날 장호원 근처에서 먹었던 볶음밥에는 점수를 64점을 주고 싶다.

더불어 나 때문에 그닥 근사하지 않은 점심을 먹은 지음님께 새삼 미안하다는 말도 전하련다.

 

그 볶음밥을 먹고는 한동안 볶음밥 생각이 나지 않았다.

그러다가 바로 어제 일요일.

버마 친구들과 하루종일 자전거를 탄 날 여의도로 돌아온 뒤에 다시 그것이 찾아왔다.

저항하기 힘들 정도로 강렬했다.

그래서 혼자서 신동양을 찾았다.

아무런 토를 달지 않고 채식볶음밥 곱배기를 시켰다.

계란을 빼달라느니, 야채와 버섯을 푸짐하게 넣어 달라느니 하는 식의 설명을 할 필요가 신동양에서는 전/혀/ 없다.

 

60km를 달리고 노곤해진 다리를 풀어주면서, 아주 가끔은 자신을 위해 이런 사치도 부려야 하는 법이다고 생각하는 순간 기다리던 음식이 나왔다.

앞으로도 같이 올 사람이 없어도, 먹고 싶은 것이 있으면 혼자라도 와서 먹어야겠다고 결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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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3/28 00:46 2006/03/28 00: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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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지음 2006/03/28 01:10 Modify/Delete Reply

    정말로 채식주의자라고는 난생 처음 보는 듯 한 사람들의 표정이 생각나네요. 짜장 덮여 있어서 싫다고 다시 달라고 하니까, 대충 긁어내고 다시 주던 것 하며... ㅋㅋ.
    하튼 돕이 미안해 할 건 없어요. 그래도 저는 나름대로 맛있게 먹었거든요.

  2. 초희 2006/03/28 10:29 Modify/Delete Reply

    신동양 볶음밥 만세!

  3. 오리 2006/03/29 13:37 Modify/Delete Reply

    오옷~! 군침이 꿀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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