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음
"용기를 내어서 그대가 생각하는대로 살지 않으면, 머지않아 그대는 사는대로 생각하게 된다." - 폴 발레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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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앙드레 고르, '자유 시간이 진정한 해방의 원천'
2009년 07월 03일 03:40
아르님 덕분에 고르의 새 글이 번역되었다는 것을 알게됐다.
전문은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한국어판을 구독해야 볼 수 있나보다.
밑줄 강조는 모두 아르님의 것.
경제의 임무는 일자리 제공이나 창출이 아니다. 경제의 임무는 가능한 한 효과적으로 생산요소들을 작동시키는 것이다. 이를테면 최소의 자원 및 자금과 노동을 투입해 최대의 부를 창출하는 것이다. 날이 갈수록 산업화 사회는 이 임무를 잘해낸다. 따라서 1980년대 말 선진국 경제는 각국이 필요로 하는 노동량을 연간 12% 감축하면서도 부의 창출을 연간 30% 끌어올렸다. 경제적 부의 창출활동은 노동투입시간을 점점 감축시켰다.
즉, 자유시간이 노동시간을 크게 초과한 것이다. 1946년에 20세의 샐러리맨은 향후 활동 시간의 평균 3분의 1을 노동으로 보내야 했던 반면, 1975년에는 4분의 1, 그리고 요즘은 5분의 1에도 채 못 미친다. 최근의 일이지만 심각한 이 단층들은 지속될 테니, 생산과 무역의 다른 논리들을 도입해야 한다.
설상가상으로 재산과 서비스의 규모가 커져, 요즘 경제는 대량으로 이 핵심 자원(자유 시간)을 생산해내고, 근대 이론의 창시자들은 이 자원, 즉 경제적 필요와 구속에서 해방된 시간을 지표로 “진정한 부를 측정”하고 있다.
경제학자 데이비드 리카도의 한 제자는 1821년 다음과 같이 언급한 적이 있다.
“사람들이 12시간 일하는 곳에서 6시간만 일한다면, 그것이 바로 국가의 부, 국가의 번영이다. …부는 자유다. 부는 마음대로 쓸 수 있는 시간, 그 이상 아무것도 아니다.”
이렇듯 새로운 비전이 우리 앞에 다가오고 있다. ‘자유 시간’이라는 문명이 그것이다. 하지만 우리 사회는 이를 고무적인 시각으로 보지 않고, 그러한 장래에 등을 돌린 채 자유 시간을 마치 재앙처럼 소개하고 있다. 대부분의 지도자들은 어떻게 하면 향후 모든 이들이 사회적으로 창출된 부에서 각자의 몫을 가지면서도 일을 더 많이 줄일 수 있을지를 고민하기보다는, 어떻게 하면 자신들의 사회 시스템이 노동을 더 많이 소모할 수 있을지, 또 어떻게 하면 생산에서 비축된 막대한 노동량이 고용 창출이라는 단순한 목표만을 지닌 소소한 일자리(예를 들면 비정규직)에 이용될 수 있을지를 생각한다.
그런데 소소한 일자리가 풀타임 완전고용을 충분히 보장해주기는 거의 불가능하다. 이제 사람들은 노동시간 단축을 마치 해방의 시간이 아니라, 필요한 희생, 일자리와 월급 나누기 같은 어쩔 수 없는 일처럼 소개하며, 임금 수준을 노동시간과 같은 비율로 줄여야 한다고 주장한다.
독일 사회민주주의의 대표적 사상가 중 한 명인 피터 그로츠가 1987년경 유럽 좌파에게 던진 호소문에는 실망감이 가득 배어 있다.
“유럽 좌파는 손 닿은 곳에 수백만 명을 동원할 수 있는 구체적인 유토피아를 두고 있다. 노동시간 단축을 단순히 노동 분배의 기술적 도구로만 여긴 것이 아니라, 사람들에게 더 많은 시간을 제공하는 또 다른 사회를 향해 가는 길처럼 여겼다. 지금 우리에게 부여된 역사적인 이 기회는 인류에게 여태껏 단 한 번도 주어진 적이 없다. 개개인이 자신의 의미를 찾는 데 쓰는 시간은 개개인이 노동, 오락 그리고 휴식을 위해 필요로 하는 시간보다 더 중요하다. 좌파는 더 이상의 목표를 갖고 있지 않은가? 소득을 축내지 않고 운동의 가장 중요한 목표인 노동의 해방을 당당하게 요구할 수 있어야 하고, 노동시간의 체계적인 감축을 위해 투쟁이 가능해야 한다.”
여기에서 그로츠는 ‘소득을 축내지 않고’라고 강조한다. 바로 그 순간부터 경제 시스템은 갈수록 줄어드는 노동으로 더 많이, 더 잘 생산해내고, 소득수준은 개개인이 제공하는 노동량의 변동에 더 이상 의존하지 않게 된다. 그에 반해 생산성 향상의 재분배가 모든 이들에게 일을 줄여준다. 심지어 낮은 생산 증대는 개개인의 실질소득은 감소시키지 않은 채, 많은 활동 인구에게 일자리를 제공한다.
하지만 노동, 자유 시간 그리고 사회적으로 창출된 부의 재분배는 노동시간과 관련된 전반적인 정책을 필요로 한다. 재분배는 필연적으로 두 종류의 소득을 도입시키게 된다. 하나는 노동시간과 함께 감소하게 될 소득이고, 다른 하나는 직접 임금과 노동시간이 단축됨에 따라 상대적 가치가 상승하는 사회적인 소득이다. 실제 노동시간만 기업이 비용을 부담하면 되기 때문에, 기업이 부담해야 하는 비용에는 영향이 없다.
……
시간의 해방이 제 이름값을 하려면 광범위한 방법 중에서 선택할 수 있어야 한다. 즉, 하루·주당·월간(퀘벡에서처럼) 혹은 연간 노동시간을 단축할 권리, 안식년에 대한 권리, 혹은 캐나다에서처럼 5년마다 1년간의 휴가를 누릴 권리, 광범위하게 실시되고 있는 육아휴가(옛 체코슬로바키아는 36개월, 스웨덴은 12~15개월)를 최종 봉급 대비 70~90%의 유급으로 누릴 권리, 그리고 그 휴가를 부모들이 마음대로 쪼개 쓰고 서로 나눠 쓸 수 있는 권리, 프랑스에서처럼 최종 봉급 대비 70% 유급으로 24개월까지 개인적인 교육을 위해 휴가를 쓸 수 있는 권리, 병든 부모나 자식의 병간호를 위해 유급 휴가(스웨덴 모델)를 누릴 권리 등등이다.
이를 위해 개개인의 계획이나 가족 상황에서 맞춰 시간과 업무 시간표를 스스로 관리해야 하고, 특히 “기업주들의 착취를 막기 위해 스스로의 자율적 결정에 따른 행위를 중시하는 문화를 발전시켜야 한다.”
이제, 시간의 해방이 서비스 일자리를 무한 창출할 것이라는 희망은 버려야 한다. 반대로 시간의 해방이 개개인과 공동체를 통해 자신의 존재, 삶의 틀, 도시 생활 그리고 자신의 포부 및 욕망 충족의 정의와 방식, 사회적인 협동 방법의 책임을 증대시킨다는 데 의미를 두어야 한다. 시간의 해방이 “이웃 간의 상호 혜택을 활성화시키고, 유급 노동과 무급 생산 활동 사이에서 새로운 균형”을 확립해주길 기다려야 한다.
이러한 넉넉한 사회조직이 금전소득의 중요성을 상대화해줄 것이다. 시장경제의 공간을 줄임으로써, 유급 노동과 돈과 무관한 활동, 소비 수준과 자율성의 정도, ‘소유’와 ‘존재’ 사이에 항구적인 중재가 생기게 될 것이다. <선택한 시간의 혁명>의 저자들은 이 중재가 마침내 ‘알뜰한 풍요’를 낳게 할 수 있을 것이라 했다. 이를테면 모든 이들에게 실질적으로 증대된 자율성과 보안을 보장해주며, 점차적으로 시간 부족, 공해, 낭비 및 실망의 근원이 되는 과소비를 없애, 편안하고 즐겁고 자유로운 삶을 즐길 수 있게 해준다는 의미다. 결국 이 중재가 환경 보존 및 선진국과 개도국 간의 관계 변화 측면에서 필요한 바람직한 규범이 될 것이다.
─앙드레 고르, '자유 시간이 진정한 해방의 원천',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한국어판 2009년 4월호
다시짓기>>가라타니 고진에 관한 글 몇가지...
2008년 02월 18일 23:35
[고진주의자가 되다] 에 이어지는 글...
'빈집' 프로젝트가 점점 구체화되면서... 계속 생각나는 사람이 바로 가라타니 고진이다.
게스츠하우스의 구상은 여행중에 만나고 신세졌던 많은 사람들과 장소들을 통해 구체화된 것이지만,
기본적인 아이디어는 고진으로부터 나왔다고 할 수 있다.
가라타니 고진에 대한 몇가지 글을 보며 다시 고민중...
박가분, 가라타니 고진 비판 유감 중
(현대자동차 노조원이 많이 사는 지역을 중심으로 벌어진 이랜드 홈에버 불매운동에 대해 논하며...)
나는 노조라는 기존의 노동운동 조직을 중심으로 '소비자 운동'을 전개하는 이런 형태에 대해 주목한다. 이런 주체성이야말로 노동자-소비자로서의 프롤레타리아의 정식과 부합하지 않는가?
...
문제는 소비자 운동이라는 것이 존재하기 위해서는 '물적토대'가 필요한 법인데, 그러한 토대가 잘 갖추어진 노조중심의 노동운동과 달리 소비자운동에는 그러한 구심점이 결여되어 있다. 그게 소비자 운동의 가장 큰 약점인데, 위의 기사와 같이 결국 소비자와 노동자의 정체성은 다르지 않다는 것에 희망을 걸어봄직하다.
이랜드 불매운동이 의미가 있었다는 데는 의문의 여지가 없다. 그러나 가라타니 고진의 '소비자 운동'은 특정 상품에 대한 불매가 아니라, 상품 일반에 대한 불매라고 봐야 하지 않을까? 상품 일반에 대해서 불매하면서도 삶이 가능한 구조를 만드는 것이 고진의 관심이 아니었던가?
소비자 운동의 '물적토대'를 노동자 운동의 '물적토대'로 등치시키는 것은 노동운동의 한계에서 빠져나온 순간 다시 뒷문으로 들어가는 셈이다. 위 기사의 불매운동은 우연히 그 지역에 노조원들이 많이 있었다는 사실을 제외하면 그다지 특별할 것이 없다. 게다가 결정적으로, 울산 홈에버에서 소비하는 소비자는 노조원이 아니라 노조원의 아내와 아이들이다. 여전히 노동자는 노동하고 있고, 소비자는 소비하고 있다. 다만 홈에버가 아니라 이마트라는 것이 다를 뿐. 그마저도 잠시겠지만.
소비의 공간은 가족이고, 지역이다. 공장과 노조의 재구성이 필요한 만큼, 가족과 지역의 재구성 역시 필요하며, 이것이 없이는 노동자-소비자 어소시에이션은 존재할 수 없다.
박가분, 가라타니 고진의 질 들뢰즈 중 에서 재인용
'푸코의 맑스(갈무리,2004)'에 수록된 들뢰즈와 푸코의 대담 중 일부(192p)를 인용.
"맞습니다. 하나의 이론은 꼭 연장통 같은 것입니다. 그것은 의미심장한 것(le signifiant)과는 관련이 없습니다. 그것은 유용해야 하며 기능해야 합니다. 이론은 그 자체를 위한 것이 아닙니다. 이론가 자신부터 시작해 아무도 그것을 사용하지 않는다면, 그 이론은 가치가 없거나, 시기에 적절하지 않은 것이지요. 우리는 하나의 이론을 개정하지 않고, 새로운 것을 구축해 냅니다. 우리는 다른 것들을 만들어내는 수 밖에 없습니다. 묘하게도 이러한 생각을 명확히 밝힌 사람은 순수 지식인으로 생각되어 온 프루스트입니다. 그는 다음과 같이 말했지요. '나의 책을 바깥을 향한 하나의 안경으로 생각해 주십시오. 그것이 당신에게 맞지 않으면, 다른 것을 찾으십시오. 필연적으로 전쟁 도구가 될 당신만의 도구를, 스스로 찾으십시오.' 이론은 총체화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다양화의 도구이며, 스스로 다양화합니다. 총체화하는 것은 권력의 본성입니다."
윤여일, '몰락 이후' 쉰이 넘어 코뮨주의자 되다 중
즉 일하지도 상품을 사지도 말자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노동자이자 소비자인 대중이 일하지 않고도 생활을 영위할 수 있는 안정망이 있어야 하는데, 그런 까닭에 가라타니 고진은 ‘생산자/소비자 협동조합의 연합’을 제시한다. ... 어소시에이션은 개인들의 자유로운 계약에 기초한다는 점에서 시장경제와 닮아 있지만 잉여가치를 발생시키지 않는다. 또한 공동체의 교환원리인 상호부조와 유사하지만 배타적이지도 구속적이지도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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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소비자운동은 실상 입장이 바뀐 노동운동이며, 노동운동 역시 소비자운동인 동안 자신의 국지성에서 벗어날 수 있다. 노동력을 재생산하는 소비과정은 육아, 교육, 여가 등 생활세계 전영역에 걸쳐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가라타니 고진은 생산자/소비자의 협동조합을 통해 자본주의 바깥에서 생활의 지평을 만들자고 제안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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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그가 기획한 현실운동은 어떻게 되었을까. 결국 가라타니 고진은 FA(Free Association)라는 또 하나의 조어를 만들어내기에 이른다. 이 말이 무엇을 뜻하는지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가라타니 고진은 2002년 「FA선언」을 통해 NAM(New Association Movement)을 해산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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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기대와 달리 NAM은 그의 유명세를 바탕으로 한 지식인들의 모임이 되었다. 가라타니 고진이 「FA선언」에서 밝힌 해산 이유 역시 NAM 운동을 지속할 운동체가 부재하다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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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역시 지금의 가라타니 고진에 대해 호의적이고 싶지 않다. 그의 시도는 자신이 서 있는 장소와의 긴장감을 놓쳤으며, 그의 실패는 그마저도 이론적 완결성을 위해 희생되었다.
NAM이 구체적으로 어떤 운동을 했는지도 알려진 바가 별로 없는데... 해산했다 하고, 또 FA가 발표되었다고 하고, 그래서 가라타니 고진이 끝났다느니, 호의적이고 싶지 않다느니... 난리다.
그것이 지식인들의 모임이었다면, 가라타니 고진이 말했던 NAM은 시작도 안 한거라고 본다. FA선언은 보고 싶지만, 아직 못봤는데 FA가 NAM과 특별히 다를 거라고 생각되지는 않는다. 고진이 'NAM 운동을 지속할 운동체가 부재하다'는 것이 사태의 정확한 진단이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 사태는 고진의 이론적인 결함과는 무관하다고 봐야 하지 않을까?
오히려 가라타니 고진의 문제는 조직론이 없었던 것이 아닐까? NAM을 기존의 노동운동 조직이 정책적 전환만으로 추진하는 것이 가능한 것일까? 그렇다면 기존의 시민운동 조직이? 노동운동과 시민운동이 만나야 한다는 정도의 얘기라면 가라타니 고진이 아니라 누구라도 할 수 있는 얘기다. 공장과 가족이 그대로인 채, 노동운동과 시민운동이 그대로인 채, NAM은 가능하지 않다.
자본을 위해 노동하지도 말고, 소비하지도 말라는 대전제가 잊혀져서는 곤란한다. 즉 자본을 위한 생산 공간인 공장/농장과 자본을 위한 소비 공간인 가족/지역이 이 대전제 하에 근본적으로 변화하는 것, 그리하여 자본=스테이트=네이션을 넘어선 삶을 구성하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면 노동자로서의 소비자운동은 도대체 뭐란 말인가?
디디님의 [고진, 맑스, 공동체 화폐, 가능한 꼬뮤니즘.] 중
가라타니 고진의 말처럼 노동자는 두 가지 관점에서 자본에 대응할 수 있을 것이다. 하나는 일하지 않는 거다. 또 하나는 사지 않는 거다. 하지만 -_- 노동자는 고뇌한다. 딸린 처자식은 어쩌라고! 문제는 분명하다. 노동자(=소비자)들이 일하지 않고 사지 않는 것, 즉 자본주의적 관계에서 빠져나오는 것이 가능하기 위해서는 비자본주의적으로 일 하거나 살 수 있는 장소가 있어야 한다. 공동체 화폐는 그러한 장소를 만들기 위한 분투다. "자본과 국가에 내재하면서, 그 원리를 대체하고 넘어서려는 운동. ([지역통화LETS에대하여])” 내재하는 외부-되기.
자본주의와 자본주의적 화폐의 가공할 속도는 그러한 외부에 자꾸만 폐쇄의 의지를 부여한다. 그러나 자족적인 공동체가 되는 순간 그건 이미 외부도, 운동도 아니다. 그냥 자본이 허용하는 다양성 중 하나에 불과할 뿐이다. (수많은 공동체 마을들은 관광지가 되고 마을 바깥에서, 자본의 속도는 점점 빨라진다.)
비자본주의적으로 일하거나 살 수 있는 장소...
그것은 무엇보다도 삶의 공간, 주거의 공간이어야 한다.
그리고 주거 공간은 단지 소비의 공간이 아니라 과거에 그랬던 것처럼 생산의 공간으로서의 면모를 회복해야 한다.
그것은 현재의 전형적인 주거형태인 핵가족 주거, 개인 주거의 형태로서는 불가능하지 않는가?
폐쇄의 의지를 근본적으로 배제함으로써 자족적인 공동체가 되지 않는 공동체, 꼬뮨...
누구든지 맞아들여 친구로 만들수 있는 공동체, 언제든지 떠나서 친구를 만들고 또 돌아올 수 있는 공동체.
아마도 자본주의가 제공하는 만큼을 소비할 수 있는 비자본주의적인 생산은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자본주의적 생산의 문제는 무엇보다도 필요 이상으로 너무 많이 생산한다는 것이니까.
반대로 비자본주의인 것은... 조금 생산하되 좋은 것을 잘 생산하는 것이며, 또한 덜 소비하는 것이다.
그리고 굳이 화폐로 구입하지 않더라도, 자본주의로 얻을 수 있는 자원은 꽤 많다. 자본주의 착취하기.
그나저나... 여전히 궁금한 LETS. 시스템도 다양하고, 운영하는 조직도 다양하고...
가라타니 고진이 말하는 몇가지 원칙만 가지고 멋진 LETS의 시스템을 구성하기란 여간 어렵지 않다. 흑.
지음>>빈집 이름 공모합니다.
2008년 02월 15일 13:59
[대보름 빈집들이 합니다. 놀러오세요.] 에 관련된 글.
대보름 빈집들이를 기해서... 빈집의 이름을 확정할까 합니다.
이 포스트에 덧글로 논의를 진행하고... 확정은 당일 참가자들의 투표로 결정하면 어떨까 싶습니다.
일단 지금까지 저와 아규를 비롯한 주변의 의견을 종합해보면...
1. 지명, 공간의 성격, 예쁜 고유명이 포함된 이름이 좋겠다.
2. 지명으로는... '서울', '남산(골)', '해방촌', 등등
3. 공간의 성격으로는... '게스츠하우스', '베이스캠프', '민중의집', '모델하우스', '민박', '주막', '사랑채', '까페', '객잔', '살롱', '시골집(농가)', '산장', '캠프장'등등
4. 고유명으로는... '다락', '마루', '빈집'
5. 영어, 한자 등 다른 언어로 된 이름도 준비한다.
그러니까... 결국 이름은... 예를들어... '서울 게스츠하우스 다락', '해방촌 베이스캠프 마루' 이런식으로 만들었으면 좋겠다는 것이죠.
설명이 좀 필요한 것들로는....
'게스츠하우스'는 게스트하우스지만... guests' house 입니다. 복수와 소유격이 중요한 것이죠. '손님들의 집'이라는 말이죠. 독특한 공간의 성격을 표현할 수 있다는 게 장점...
'베이스캠프'는 산이나 오지로 떠나거나 돌아오는 사람들이 모여서 정보도 나누고 식량도 보충하는 곳이라는 의미입니다. 좀 걸리는 것은 군의 주둔지라는 의미가 있다는 거...
'다락'은 아규가 생각해 낸 것인데... 한자로 多樂 이라고 씁니다. 혀굴러가는게 재밌다는 의견도 있구요. 작고 구석진 곳이지만 자기만의 비밀이 있을 듯도 한 곳의 분위기가 좋아보입니다. 한자로 쓴 의미는 아주 좋구요... 단 약간 폐쇄된 곳이라는 느낌이 있다는 거...
'마루'는 제가 생각한 건데... 마루바닥이라는 뜻도 있지만, 어원이 '마리'로서... 머리, 우두머리, 꼭대기라는 뜻도 있습니다. '바닥'과 '꼭대기'라는 다소 모순되어 보이는 의미가 같이 있다는 게 좋습니다. 또... 내부와 외부의 사이 공간, 사적인 공간으로서의 방과 공적인 공간으로서의 마당 사이의 공간이라는 애매한 위치라는 의미가 좋습니다. 다락같은 재밌는 발음은 아니지만 어감이 괜찮고, 다른 언어를 쓰는 사람들도 말하기 쉬울 거 같다는 게 장점이죠. 단... 옷상표가 있다는 거 ㅠㅠ
'빈집'은 지난번 포스팅하면서 갑자기 생각난 건데.. '빈'자가 賓(손님 빈)의 의미가 있어서... 그 자체로 '게스츠하우스'의 의미가 되고... 무엇이든 채울 수 있는 비어있는 집이라는 의미가 좋네요.
자... 맘에 드는 이름으로 투표를 하셔도 좋구요...
새로 제안하셔도 좋습니다.
상품으로는... 일주일 무료 숙박권 정도면 괜찮지 않을까 싶은데...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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