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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댕의 파밀리스테르

푸리에가 구상했지만 실현할 수 없었던 팔랑스테르. 고댕이 팔랑스테를 변형시켜 현실에 구현해낸 파밀리스테르. 2000여명이 살 수 있는 이 건물은 현재까지도 사용되고 있고, 협회는 1968년 해산할때까지 100여년을 넘게 지속되었다. 당연히 여러 한계들이 있었겠지만, 유토피아를 현실에서 실현하려했던 시도는 충분히 주목받을 가치가 있지않을까? 

 

파밀리스테르는 결국 공장과 공동주택을 중심으로한 협동조합 복합체라고 할 수 있다. 건축적 결과물은 공동주택으로서의 '사회궁전'이지만, 고댕이 파밀리스테르를 건축할 수 있었던 자금과 주민들이 살아갈 수 있는 돈을 벌 수 있었던 것은 노동자들의 자주관리 공장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고댕이 처음 만든 공장은 화덕과 난로를 만드는 공장이었다는데, 몬드라곤의 시작도 난로공장이었다는 게 재밌다. ㅋ 우리도 공장이 필요하다. ㅋ 고댕의 공장은 1840년에 두 명으로 시작해서 1880년에는 1500명을 고용하는 당대 관련 분야에서 최고의 공장이되었다고 한다. (브랜드가 고댕인데 고댕 스토브 Godin stove는 여전히 좋은 기능 못지 않은 아름다움으로 여전히 이베이 등에서 거래되고 있다.)

 

상호부조가 중요한 것은 당연했을텐데, 그 재원을 얻는 방법이 재밌다. 상속 재산의 전액을 환수하는 것이다. 자식들의 육아와 교육 주거 등이 해결되는 파밀리스테르가 있다면 상속 재산을 전액 공동체에게 남기는 것이 꼭 무리한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고댕 자신도 자신의 유산을 전액 파밀리스테르에 남겼다고 한다. 그 금액이 350만 프랑인데, 대략 지금 가치로 바꿔보면 약 170억~350억원 정도다. 부자는 엄청 부자였나보다. 푸리에가 자신의 팔랑스테르에 돈을 대줄 독지가를 매주 평생 기다리다 죽었던 걸 생각하면 안습. ㅎㅎ 고댕의 자손들은 그 뒤에 어떻게 살았는지, 또 엄청난 금액의 유산을 후대의 파밀리스테르 사람들은 어떻게 관리했지가 참 궁금하다. ㅎ

 

고댕은 새로운 사회가 개개인의 지적 도덕적 해방에 달려있다고 하며 교육의 역할을 강조하는데,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주택이라고 단언한다. "삶의 환경에 대한 새로운 건축적 적용이 없이는 진정한 해방이 없다." "주거환경의 개선은 곧 사회의 발전과 진보를 의미한다." 그럴듯 하다! 결국 잘 산다는 것은 좋은 집에서 좋은 사람들과 함께 잘 산다는 것이지 않나? '좋은 집'을 가격으로 따지면 비싼 집에 산다는 것은 개인이 자본주의 사회에서 성공했다는 것 외에 아무런 의미도 없을 것이다. 하지만 쫓겨나지 않고 불안하지 않고 좋은 식구와 이웃들이 있고 좋은 일거리와 놀거리가 있고 늙거나 아플때 걱정이 없는 집이 좋은 집이라고 한다면 그런 집을 만드는 것은 곳 진보와 해방이지 않을까?

 

고댕은 자본과 노동의 협력과 화해를 시도한다는 점에서 여전히 유토피아적이라는 비판을 들을 수도 있을 것이다. 자본과 노동의 화해는 불가능하니까. 하지만 자본주의 내부에서 그 외부로 나아가려는 시도들은 결국 자본과 노동 사이의 다양한 방식의 화해를 시도할 수밖에 없지 않을까? 고댕이 개량적인 것 같지만, 살아 있을 때는 개인 소유를 존중하지만, 죽으면 유산 전액을 환수하는 걸 보면 또 그렇지도 않은 듯.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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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유기, <고댕의 파밀리스테르 이상적 공동체 - 유토피아 사회주의와 사회경제학의 결합> 중 발췌

 

푸리에의 개념들을 바탕으로 문명의 폐해를 극복하기 위한 고댕의 사상은 다섯가지 핵심적 축으로 구성된다. 

첫 번째 핵심은 도덕과 노동의 강조이다. 근대 산업 사회는 거대한 부를 창출하여 “모든 이의 필요를 만족시킬 가능성을 열게” 하지만 대다수가 필요를 충족시키지 못하는데 이러한 “불행의 근본적 원인은 개개인이 자신을 위해서만 몰두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기주의 대신에 우애를 목표로 하는 도덕적 기초의 정립이 필요하다. 이기적인 개개인이 조화로운 삶을 유지하고 사회를 발전시키고 사회적 행복을 추구하기 위해서는 상호 연결된 권리, 의무, 정의라는 세 가지 개념을 수용할 도덕적 고양이 필요하다. “의무가 없이는 권리가 없고 권리가 없이는 의무가 없다. 권리와 의무는 정의에 종속되며 권리와 의무 사이에서 균형을 이루게 하는 것이 정의이다.” 의무, 권리, 정의를 인식할 도덕적 고양의 근원적 수단은 노동이다. “노동은 생산, 소비, 분배의 원칙”이며 “삶을 보존하고 발전시키고 유지하는 만드는 법칙들에 인간을 복종하게 하는 도덕적 가치들 가운데 첫 번째 가치이다.” 노동은 찬양되어지고 노동을 통해 노동자는 사회에서 진정한 자신의 자리를 차지할 수 있다. 도덕을 고양시켜주는 것으로 종교의 기능을 인정하지만 기존의 종교가 비실증적인 신에게 인간을 예속시키는 억압적 기제로 작용하므로 노동을 숭배하는 새로운 세속적 믿음을 강조한다.

 

두 번째 핵심은 협동조합이나 협회(association)를 강조하는 것인데 이를 통해 자본과 노동의 결합, 그리고 분배의 정의(justice distributive)를 추구해야 한다고 인식한다. 고댕에 의하면 자유주의 경제학은 자본과 노동의 대립과 갈등을 유발하고, 노동자들을 빈곤에 빠뜨리고, 노동을 자본에 예속시킨다. 이런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자본이 노동에 봉사하도록 해야 한다. “자본은 과거 노동의 결과”이므로 사적 소유는 보장된다. 하지만 노동에 의해 형성된 사적 소유라는 개인의 권리 옆에, 자연에 의해 형성된 권리, 즉 모두의 이익에 부응하는 자연적 정의 개념에 의한 권리가 존재한다. 자본은 과거 노동의 성과물이므로 현재의 노동과 쉽게 결합할 수 있으며, 분배의 정의 실현을 통해 사적 권리와 자연적 정의가 조화를 이룬다. 자본과 노동의 조화를 위해 협동조합이나 협회의 구성이 필요하며, 이들 조직체는 자본과 노동 모두에게 유용성을 제공한다. 고댕에게 협동조합은 “생산하고 구입하고 판매하고 소비하기를 원하는 인간들이 지식과 의지, 힘, 이해관계 등의 결합을 통해 공통의 유용성을 추구할 목적으로 기획하는, 인간들 사이의 합의(entente)이다.” 협회는 경제적 협동조합의 원리가 보다 사회적으로 확대되는 것이다. 협동조합과 협회를 통해 “더욱 조직화된 산업은 노동자에게 그들이 행한 노동의 몫에 기인하는 부가가치의 결과물을 보장할 것이고, 이 때에 정의가 자유의 동반자가 된다.” 덧붙여 분배 문제를 넘어서 각종 사회 문제에 대한 사회적 예방이 필수적임을 주장한다. 이런 생각은 사회적 상호부조를 국가적 차원에서 사고하게 한다.

 

빈곤의 소멸을 위한 국가적 차원의 사회적 상호부조(mutualité sociale)에 대한 강조가 고댕 사상의 세 번째 핵심이다. 빈곤의 소멸은 사회의 첫 번째 의무이며 국가는 상호부조 체계를 통해 민중에게 봉사해야 한다. “사회적 안전망, 즉 인간 존재를 안전하게 보장하는 것이 사회 문제의 진정한 근원”이라고 생각한 고댕은 국가적 차원에서 상호부조를 조직하는 것을 사회개혁의 과정에서 이루어야 할 첫 번째 발걸음 중의 하나로 사고한다. 상호부조 기구는 민주적 선거를 통해 노사 동수의 대표로 구성되고 노사 각각의 분담금으로 운영되는데, 국가는 이 체계를 전 사회적으로 확산시켜야 하며 재정지원을 해야 한다. 국가의 부담금은 개인이 사망할 경우 모든 재산을 유산 받아서 충당한다. 또한 사회 입법을 통해 인간 삶을 보호하고 지원하고 보조하면서 인간의 물질적이고 도덕적인 필요물들(besoins), 즉 기본생계, 주택, 의복, 신선한 공기, 빛, 녹지 공간, 청결, 위생 등을 충족시켜야 한다.

 

네 번째 핵심적 사상은 사회적 관계와 국가들 간의 관계에 있어서 폭력을 거부하고 평화주의를 옹호하는 것이다. 작업 현장에서 노사 간의 평화는 이해의 수렴과 합의의 원칙 존중, 혼합조합(syndicat mixte)설립을 기반으로 가능하다. 특히 노동자들의 기업에 대한 참여는 “평화적인 진보로 향하는 열려있는 길”인데 이 길을 벗어나면 “갈등과 투쟁만이 존재하므로” 노동과 자본의 연합을 강조한다. 국가적으로는 사회 입법을 통해 사회적 평화를 목적으로 하는 공동의 규약(conventions collectives) 마련하고, 분쟁조정 재판소를 창설하며, 사회적 대화 기구를 설치해야만 한다. 국제적 평화를 위해서, 군비축소, 경제적 협력, 자유 무역, 유럽 민중들의 연방 결성이 상정된다. 국가는 개인이 살아 있는 동안 자유롭게 노동하고 노동의 결과로 부유해지는 것에 개입해서는 안 된다. 다만 한 개인이 사망 할 경우 사망시의 전 재산을 국가가 유산 받아야 한다. 가족에 대한 상속은 상속받는 자가 노동의 대가로 부를 획득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금지된다. 국가에 상속된 재산은 모든 이들의 자유로운 노동을 보장할 각종 제도 마련과 사회적 상호부조 기금으로 사용된다.

 

고댕의 마지막 핵심적 사상은 새로운 사회가 개개인의 지적 도덕적 해방에 달려있고 이를 위해서 교육의 역할 그리고 주택 더 넓게는 건축의 역할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민주주의는 남녀가 동일한 사회경제적 역할을 수행하는 ‘노동의 공화국’의 기둥이며, 민주주의 학습을 가능하게 하는 능동적이고 통합적이고 단일한 교육을 위해 공립, 세속, 무상, 의무 교육의 필요성을 주장한다. 교육보다 중요한 것은 주택인데 삶의 환경에 대한 새로운 건축적 적용이 없이는 진정한 해방이 없다. 그는 인간과 사회에 봉사하는 새로운 ‘사회적 건축(architecture sociale)’을 개념을 강조한다. 고댕은 부자들의 개인주택에 설치되는 위생 설비와 부자들이 하녀, 보모, 요리사 등을 통해서 각종 서비스를 제공받는 것을 ‘부에 상응하는 것(équivalents dela richesse)’이라 칭하며 이런 설비와 서비스 혜택을 누리지 못하는 노동자들을 위해 통합적인 공동체 주거 단지를 제시한다. 이 주거 단지에는 다양한 계층이 뒤섞여 살면서 공동의 사회성을 발전시키고 계층을 넘어서 인간으로서의 우애를 확대해 나간다. 또한 통합적 공동체 주택은 여성이 가사 노동과 아이 양육에서 벗어나 경제적, 정치적 활동에 참여할 수 있도록 각종 가정생활 서비스가 제공된다. 고댕의 머리 머릿속에서 이러한 주거 환경의 개선은 바로 사회의 발전과 진보를 의미한다.

 

이 다섯 가지 핵심적 사상에서 강조하는 협동조합, 주택의 중요성, 여성 해방의 조건 등은 푸리에의 생각을 수용하고 발전시킨 것이다. 하지만 푸리에가 강조하는 정념의 법칙 대신 도덕과 노동을 강조하는 것, 그리고 국가적 차원의 사회적 상호부조 체제 마련 등 사회적 입법 활동을 강조하는 것들은 푸리에와 관련이 없다. 고댕은 유토피아 사회주의, 개혁적 실천적 사회주의, 고용주 온정주의, 사회경제학 사상들을 혼합한다.

 

 

 

고댕에게 주택은 자연스럽게 인간 삶의 보존과 진보, 필요로 하는 물질적 요소들 가운데 첫 번째 위치를 차지한다. 주택은 사회적 상태와 노동자들의 조건에 영향을 미치며 따라서 “건축의 진보는 인간성의 사회적 진보의 요소이다.”

 

 

고댕에게 주택문제 더 일반적으로 건축 문제는 사회적 진보의 지표이자 동인으로 파악된다. 그는 “빈곤한 가족을 편리한 주택에서 살게 하는 것, 이 주택 주위를 부자들이 그들의 주택에서 혜택을 누리는 생활 설비들로 둘러싸게 하는 것, 주택을 조용하고 안락한 휴식의 공간으로 만드는 것, 부자들이 가정 내부에서 받는 서비스들을 공동의 제도로 대체하는 것” 등이 물질적 지적 행복에서 배제되었던 노동자 가족들을 위해, 그리고 모든 이들을 위해 실현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주택을 통한 삶의 해방을 위해서는 편리하고 안락한 주택뿐만 아니라 삶의 행복과 해방을 도와 줄 각종 생활 설비와 서비스가 필요하다. 그런데 이런 설비와 서비스들은 경제적 이유로 민중들의 개별 주택에 마련될 수 없으므로 이것들을 공동으로 마련할 공동 주택 단지 건설이 필요하다. 공동 주택 단지는 단지 좁은 택지에 보다 많은 주택들을 짓기 위한 것이 아니었다. 공동 주택 단지는 거주라는 주택의 단순한 기능을 넘어서서 개인과 가족의 삶을 둘러싼 모든 요소들을 포함하는 통합적인 역할을 담당한다. 이런 주거환경에서는 거주자들이 공동체적, 사회적인 삶이 가져다주는 모든 경제적 장점들의 수혜를 받을 수 있어 개인의 진정한 존엄성을 부여받게 된다. 또한 인간들 사이의 연합과 공동체적 사회성이 자연스럽게 형성된다. 파밀리스테르 공동체 내의 사회궁전은 이러한 통합적 주거 단지로 계획되었다.

 

 

푸리에의 팔랑스테르가 정념작용의 극대화를 위한 것이라면 파밀리스테르는 노동 인구의 필요성에 부응하기 위한 것이었다. 팔랑스테르는 다양한 재능을 가진 남녀노소 개개인들의 공동 주택으로 계획되었지만 파밀리스테르는 열악한 주거 환경에서 살아가는 노동자 가족을 위한 공동 주택이었다. 푸리에의 여성관을 일부 수용한 고댕도 가족제도가 여성을 억압한다고 생각했지만 일부일처제에 기초한 가족 모델이 폐지되어야 한다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고댕은 여성이 가족제도 자체에서 억압받는 것이 아니라 가부장적인 체제에서 가사노동을 전담하며 억압받고, 사회적, 경제적 활동에서 배제되면서 억압받는다고 생각했다. 가족을 위한 공동 주택이었지만 파밀리스테르에서 독신 남녀들 간에 자유로운 동거가 가능했다.

 

 

파밀리스테르는 공장의 이윤과 주택의 다양한 문제를 심의 결정하는 행정 위원회, 노동과 관련된 문제를 심의 결정하는 노동 위원회, 매해 열리는 거주자 총회에서 민주적 선거로 뽑힌 남녀 12명씩의 대표자 회의 등을 통해 운영되었다. 의료, 교육, 상호부조 기금, 소비 협동조합 등 각종 공동 서비스 시설과 제도도 각각의 관련 위원회를 구성하여 운영했다. 이들 기관들의 구성과 운영은 거주자들이 스스로 공동체의 문제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도록 유도했다.

 

고댕은 파밀리스테르 거주자들이 지켜야 할 내부 지침서를 만들어 배포했다. 하지만 내부 지침서를 지키는지 감시하는 이는 없었고 개개인과 가구들의 사적 활동에는 공동체적 질서를 해치지 않는 한에서 자유가 주어졌다. 파밀리스테르 구성원이 권리와 지위를 상실하는 경우는 1.만취 2.다른 거주자들에게 불편을 주는 개별 가족과 주택의 불청결함 3.부정직한 행위 4.불성실한 노동 5.무질서와 폭력행위 6.아이들에게 행해야 의무적 교육의 위반 7.협회가 동의하지 않은 개인 술집의 운영 등이었다.

 

1880년 파밀리스테르는 ‘자본과 노동의 협동조합 협회’란 이름의 생산, 분배, 소비, 주거 협동조합으로 체제가 정비되었다. 고댕은 사회궁전을 계획하고 건설하면서 노동자들의 주택 문제만 해결하려 한 것이 아니라 주택과 노동현장을 연계하는 이상적인 공동체를 계획했고 자본과 노동의 협회 결성은 이러한 계획이 최종적으로 구체화 된 것을 의미한다. 이상적 공동체의 “실천에서 푸리에를 벗어나려” 했던 고댕에게 사회궁전이 지닌 “기능적 매력은 부차적인 것” 이었다. 그는 파밀리스테르 운영을 통해 푸리에가 생각한 정념의 효율적 작용에 의한 추상적 행복을 추구하려 한 것이 아니라 노동의 즐거움과 노동의 성과에 대한 올바른 분배를 통해 물질적, 도덕적 행복을 추구하려 했다. 고댕은 80년 이전에 동료 노동자의 노동에 대한 평가 투표, 노동자 지주제, 자율 노동 그룹 결성 등 노동자들을 부의 분배와 노동의 조직, 공장의 경영에 참여시키기 위한 다양한 방법들을 실험했으나 그 성과는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따라서 그는 자본과 노동이 동등하게 결합해 생산, 분배, 소비, 주거의 모든 영역을 협동조합적 방식으로 운영하기를 희망했다.

 

중소 산업도시에서 고용주 온정주의적 기업가들에 의해 건설되고 후원된 노동자 주거촌은 많았다. 하지만 이런 주택 단지는 주택난을 해결하면서 노동력의 안정과 노동 능률을 높여 생산의 확대에 기여하는 것이었고, 고용주가 도덕적 상징적 권위를 과시하고 이를 통해 노사 문제에 우위를 확보하기 위한 의도를 지녔다. 하지만 고댕은 파밀리스테르 공동체에서 자본주의 체제의 억압적이고 소외된 노동을 대체하는 자발적이고 즐거운 노동이 행해지길 원했다. 그는 노동을 통해 인간의 지적, 도덕적 해방을 꿈꾸면서 노동자들을 기업 활동에 참여시키고 분배의 정의를 실현하고자 했다. 노동과 자본의 협동조합 협회가 정비된 1880년부터 공장 경영에 노동자들의 직접 참여와 자주관리(autogestion)가 보장되었다.

 

자본과 노동의 협회는 협회원들의 지적, 도덕적 발전을 최우선시 했다. 협회 구성원의 첫 번째 의무는 모든 구성원들의 “빈곤을 소멸하게 하는 것, 고통과 질병을 극복하게 하는 것, 아이들의 교육을 가능하게 하는 것, 협회원들의 지적 도덕적 발전을 돕도록 주의를 기울이는 것” 이었다. 한편 고댕은 자본과 노동의 결합이 사회적 진보와 산업 발전을 동시에 가능하게 한다고 생각했다. 그는 “이해 당사자들의 진정한 대표를 조직하는 것이 근대적 기업들에서 연구하고 해결해야 할 가장 중요한 문제들 가운데 하나”라고 생각했고, 기업 활동에 대한 “노동자들의 참여가 산업과 시장에 어떠한 불편함도 생기게 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고댕이 건설한 파밀리스테르는 일반적으로 푸리에의 팔랑스테르 계획이 현실화 된 것으로 평가된다. 하지만 고댕은 푸리에 사상의 핵심인 문명비판, 주거 공동체와 협동조합 체계를 통한 새로운 사회 건설 등을 수용하면서도 이를 기초로 자신만의 사회사상 체계를 확립한다. 그는 도덕과 노동, 분배의 정의, 지적 도덕적 해방을 위한 교육과 주거의 역할을 강조하고 국가적 차원의 사회적 상호부조 체제 마련과 사회적 평화를 위한 사회 입법을 중요시한다.고댕은 경제적으로 성공한 기업가였고 유토피아적이며 동시에 현실적 실천적 사회주의자였다. 자본과 노동, 사적 소유와 사회적 소유, 사회적 행복을 위한 민간의 사적 노력과 국가 개입들이 상호 결합해 사회적 평화를 유지하는 가운데 사회 발전과 진보가 가능하다고 인식했다. 이런 사상이 구체화된 것이 파밀리스테르 이상적 공동체였다.

파밀리스테르는 기존의 부를 가진 자들만이 주거 생활에서 누릴 수 있었던, 삶에 유용하고 편리한 각종 설비를 공동으로 갖추었다. 이들 설비는 경제적 이유뿐만 아니라 공동체적 사회성을 형성시키기 위한 것이었다. 파밀리스테르는 단순한 공동 주거 단지가 아니라 노동현장과 연계된 생산, 소비, 분배, 교육, 여가, 주거 공동체였다. 이 공동체에서는 소비 협동조합이 운영되었고, 상호부조 체계를 따른 의료 서비스가 제공되었으며, 공동 탁아와 교육 등이 이루어졌다. 생산과 부의 분배에 있어서 노동자들의 참여를 가능하게 하는 노동자 자주관리, 자본과 노동이 결합한 혼합경제의 선구적 실험이 이루어졌다. 이런 모습은 파밀리스테르 공동체가 유토피아적이면서 실천적인 사회주의와 사회경제학 흐름이 결합되어 운영되었음을 보여준다.

고댕의 사상과 파밀리스테르 실험은 당대의 자유주의자나 집산주의와 사회혁명을 추구하는 사회주의자 모두에게 환영받지 못했다. 사회경제학에 관심을 가진 부르주아 사회개혁가들에게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고댕의 파밀리스테르 공동체 실험은 보다 인간적인 주거 환경을 계획하는 이들에게, 산업 발전과 분배의 정의를 동시에 고민하는 이들에게, 이기적이고 천박한 자본주의 물신숭배 폐해를 경제적 민주주의와 사회경제학 관점에서 풀어보고자 하는 이들에게 많은 시사점을 던져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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