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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 파리, 파리

우여곡절 끝에 드뎌 파리 도착이다. 벨기에에서 어떻게 저떻게 프랑스 국경을 자전거로 넘기는 했으나 달라진 자전거 표지와 퍼붓는 비로 프랑스 북부 릴르에서 기차로 이동하기로 전격 결정, 기차로 파리에 도착했다.

 

>> 파리 북역의 모습.

 

대부분의 유럽 여행자들이 최고의 여행지로 꼽는다던 곳, 따뜻한 크로와상과 진한 커피 한잔, 카페테리아 앞에서 수많은 인파를 포커스 아웃 시키며 진한 키스를 나누던 연인들의 사진으로 기억되는 그 곳. 드뎌 파리에 도착하고야 말았다. 이번 여행의 일정 중 가장 긴 시간을 할애해 머물기도 한 곳이다. 그리고... 그리고... 나에게는 막판 끔찍했던 여행지로 기억되는 그 곳. 일기장도 홀랑 잃어버려 가물가물한 기억을 붙들고 이제부터 기록 시작이다.

 

>> 다리 이름이 머였더라... 암튼 이 다리를 건너면 루브르 박물관이다. 다리 위에서 그림을 그리는 거리의 화가. 멋있어서 걍 찍어 보았다.

 

>> 세느강의 모습. 여행자들이 유람선들을 많이 타나보더라. 우리는 못 타봤다. 일몰 때 유람선을 타면 멋지다고 하더군. 야경도 이쁘고. 한강이 참 큰 강이란 생각이 들었다.

 

 


 


>> 우리 파리 여행의 길잡이 르네 아저씨

 

어차피 항공기 일정이 프랑크푸르트 인 파리 아웃으로 결정되어 있었던 것이지만 르네 아저씨가 없었다면 감히 맘 편히 결정하지 못했을 것이다. 르네 아저씨는 전쟁저항자인터내셔널의 프랑스 지부인 Union Pacifiste(평화주의자 연합 쯤?)에서 활동하고 계신 활동가이다. 르네 아저씨와는 제작년 한국에서 있었던 국제세미나에서 만나 얼굴을 익혀논 터였다. 여행 초반 참석했던 전쟁저항자인터내셔널 국제회의에서 르네 아저씨는 파리 여행에 도움을 주고 싶다면서 회사와 집 연락처를 알려주시고 파리에 도착하면 꼭 연락하라고 당부하셨다.

 

>> 에펠탑이 보이는 다리에서 한 컷. 저녁 늦은 시간에야 물어물어 캠핑장을 찾아갔기 때문에 파리에 도착한 첫 날은 이 곳의 정취를 느낄 겨를도 없었다. 다음날 화장한 파리의 공기를 가르지르며 캠핑장에서 물어물어 세느 강변에 도착했을 때 저 멀리 보이는 에펠탑을 보고 드디어 우리가 파리에 오긴 왔나보구나 하고 느꼈다.

 

파리에는 캠핑장이 딱 한 군데 있다. 파리 서쪽에 위치한 블로뉴 숲을 가로질러 가면 나온다. 이름도 블로뉴 캠핑장이다. 꽤나 대형화되어 있는 캠핑장인데 아주 사람들이 버글버글 했다. 캠핑장 안에는 각종 편의시설이 잘 구비되어 있다. 캠핑장 내 수퍼에서 아침마다 굽는 크로와상 냄새로 기억되는 곳이다. 파리 시내에서는 꽤 떨어진 곳이라 매일 아침과 저녁 꽤 긴 거리를 자전거를 타고 이동을 해야 했다. 블로뉴 숲에는 밤이면 밤마다 호객행위를 하는 성매매 여성들을 볼 수 있었다. 세계 어디서나 볼 수 있는 씁쓸한 풍경이다.

 

>> 퐁네프(Pont Neuf) 다리에서 친구들과. 정확히 말하면 네프 다리. 퐁(Pont)이 불어로 다리라는 뜻이란다. 우리에게는 퐁네프의 연인들이란 영화가 히트하면서 괜히 파리에 놀러가면 한 번쯤 가보고 싶은 곳이 되었다. 실제 퐁네프는 세느강의 여러 멋진 다리 중 그저그런 다리였다. 그래도 온 기념으로 사진 한 장!

 

한 달을 멀쩡하던 내 자전거가 파리에 도착하고 나서 이상해졌다. 덜덜거리는 게 승차감이 좋지 않다고 생각했었는데 기어이 세느강변에서 점심을 먹고 있는 와중에 타이어가 터져 버렸다. 튜브에 펑크가 나고 바람이 빠진 정도가 아니라 꽤 큰 소리를 내며 타이어 한 쪽이 터져 버린 것이다. 한국에서는 한 번도 없었던 일이다. 일단 점심을 먹고 근처 잔차가게를 알아보기로 했다. 점심을 먹고 겨우겨우 잔차를 끌고 가고 있었는데 이번에는 나동 자전거 바퀴에 펑크가 났다. 그래... 이럴 때를 위해 밤마다 르네 아저씨가 우리 꿈에 나타났던 게야. 친철한 르네 아저씨의 도움으로 아저씨 차에 나와 나동의 잔차를 싣고 아저씨 집으로 향했다.

 

>> 아저씨 집으로 가는 길에 근처 보쥬광장(Place des Vosges)에 들렀다. 북적거리는 보쥬광장 바깥과는 다르게 안은 굉장히 고즈넉하고 조용한 정원이었다. 건축가인 르네 아저씨는 이 곳 광장이 완벽한 대칭구조로 되어 있는 건축적으로도 아주 유명하고 유서깊은 곳이라 설명해 주셨다. 빅토르 위고의 집도 여기 어디에 있다고 한다. 보쥬광장 입구에서 르네 아저씨와 한 컷!

 

>> 보쥬광장 잔디에서 잼있는 사진찍기 놀~이!

 

>> 사진찍기 좋다고들 하는 보쥬광장에서 넘들은 예술 사진도 많이 찍더라만은 나는 걍 나동 찍어준 사진으로 대체. 정대칭 보쥬광장의 면모를 아주 살짝 엿볼 수 있다.

 

타이어가 타진 관계로 나랑 나동만 르네 아저씨의 멋진 빨간색 차를 얻어타고 다른 친구들은 차 뒤에서 열나 잔차를 타고 보쥬광장을 비롯한 마레지구 일대를 살짝 돈 후에 르네 아저씨 집으로 향했다. 르네 아저씨는 리퍼블리끄라는 전철역 근처에 살고 계셨는데 나중에 들어보니 최근 리퍼블리끄 근교 바와 카페들이 멋진 언니, 오빠들로 아주 지대로 물이 좋다고 한다.

 

>> 뒤로 보이는 물은 생 마르땡 운하(Canal Saint Martin). 아저씨 집은 운하 바로 옆에 위치하고 있다. 걍 지나치지 못하고 또 한 컷!

 

르네 아저씨는 우리 아빠뻘 되시는 연세에도 불구하고 현재 활발히 활동 중인 활동가이시다. 파리지엔답게 파숑도 아주 세련되셨다. 자극적인 음식이나 카페인을 못드신다. 현재 여자친구인 실비와 함께 살고 계신데 실비도 union pacifiste의 회원이다. 파리에서는 정말 이 커플의 도움을 많이 받았다. 거의 매일 저녁을 사주시고 전철표도 끊어주시고... 먹을 것에 걸신들린 우리들 때문에 아마 돈도 수억 깨졌을 거라 짐작된다. (-_-;;)

 

>> 르네 아저씨 집 베란다에서. 집 내부. 운하. 그리고 운하 다리에서 바라본 르네 아저씨 집. 캠핑장에서 파리 시내까지 너무 멀어서 캠핑장에서 며칠 지내고는 염치 불구하고 르네 아저씨 집에다 둥지를 틀었다.

 

>> 그 날 저녁은 근처 레바논 식당에서 아주 배가 터지도록 맛난 음식들을 대접받았다. 열 몇가지 음식이 차례로 나오는데 이런 중동음식에 익숙치 않은 우리들은 눈이 휘둥그레 가지고 열심히 먹어댔다. 먹느라 정신이 팔려 미처 사진으로 다 남기지는 못했다.

 

저녁을 먹고는 펑크난 자전거들을 르네 아저씨 집 지하 창고에 맡기고 우리는 지하철을 타고 캠핑장으로 갔다. 다음 날 실비가 근처 잔차가게에 우리는 데려다주기로 했다. 참, 파리 지하철은 전차가 멈추면 수동으로 문을 열어야 한다.

 

>> 바스띠유광장. 프랑스 대혁명에서 숨진 사람들을 기념하는 탑이라고 한다. 실비의 도움으로 잔차를 고치고 근처 바스티유 광장에서 놀았다. 내일부터는 본격적인 파리 구경의 시작이다. 꼼꼼한 르네 아저씨가 파리에서 볼만한 곳의 스케쥴을 짜 놓으셔서 ㅋㅋㅋ 알짜배기 여행이 될 듯 하다. 그 첫 시작은 유명한 루브르 박물관

 

>> 루브르 박물관의 외관 모습. 루브르 박물관의 출입구인 유리 피라미드가 보인다. 최근 다빈치코드라는 책과 영화로 우리에게 더욱 친숙해진 곳이다.

 

루브르에 가니 놀랍게도 한글로 된 관람 안내 팜플릿이 비치되어 있었다. 그 많큼 한국 사람들이 많이 오는 것인지... 낮시간에는 사람도 디지게 많고 값도 비싸고 해서 입장료가 할인되는 오후시간(3시 이훈가 그렇다... 정확히는 기억이...)에 관람했다. 박물관이 워낙 커서 며칠이 걸려도 다 못볼만큼 크더라. 나중에는 거의 뛰어다니다시피 해서 수박 겉핥기 식으로 관람을 하였다.

 

>> 입구인 유리 피라미드에서 길은 3갈래로 갈라진다. 프랑스 조각과 이슬람 미술을 전시해 놓은 리슐리관, 중세의 부르브를 비롯해서 루브르의 역사를 전시해 놓은 쉴리관, 그리고 11~15세기 이태리 및 스페인 조각들과 로마 지배 하의 이집트, 고전기 이전의 그리스 등의 전시물을 관람할 수 있는 드농관이다. 세 관은 모두 연결되어 있다. 사진은 과거 요새였던 루브르 박물관의 과거를 엿볼 수 있는 해자이다. 어두워서 사진이 좀 흔들렸다.

 

>> 쉴리관 지층에서 루브르 역사를 관람하고 1층을 올라오니 바로 파라오 시대 이집으를 테마별로 관람할 수 있는 코스를 만날 수 있었다. 정말 방대한 양의 전시물들... 입이 딱 벌어졌다. 그 중 몇 장.

 

>> 당최 어떻게 돌아야 효과적으로 전시를 볼 수 있는지 모르겠고 타고난 길치라 방위도 어떻게 되는지 몰라 걍 되는대로 돌았다. 이 조각들은 파라오 시대 이집트를 돌아 고대 그리스를 돌아 16~19세기 이태리 조각들이 전시되어 있던 곳인 것 같다. 아님 말구... (-_-;;)

 

>> 고대 그리스 조각들. 잘은 모르지만 팜플릿에도 소개된 것으로 보아 유명한 것들인가 보다. 보르게즈의 검투사, 사모트라케의 니케상이라 이름 붙여져 있다.

 

>> 역시 파라오 시대 이집트 전시물들. 오른쪽 아래로 보이는 것이 메소포타미아의 함무라비 법전이다.

 

>> 리슐리관 1층에 전시되어 있는 메소포타미아의 전시물들과 프랑스 조각들. 폐장 시간이 거의 다 되어 제대로 관람하지는 못했는데 메소포타미아 전시물들은 그 크기에서 오는 웅장함에 절로 기가 죽는다.

 

선사시대부터 19세기까지 유물들을 절묘하게 조화시켜 놓았다는 루브르 박물관이지만 이러한 유적들이 모두 과거 제국주의 시기 약탈에 의한 것일거라 생각하니 약간 씁쓸한 생각도 들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시간이 없어서 찬찬히 돌아보지 못한 것이 아쉽다. 다빈치의 모나리자나 밀로의 비너스 진품이 소장되어 있는 것으로 유명하다지만(솔직히 그 앞에 사람들이 바글바글 하더라만 머 진품을 보았다고 더 좋은줄은 잘 모르겠더라) 그 외에도 모든 소장품이 다 훌륭했다.

 

>> 온틍 회색빛인 파리는 야경이 유명한 도시이다. 루브르에서 다리가 붓도록 뛰어 다니고 나오니 어둠이 내려앉아 있었다. 돌아오는 길 구경한 에펠탑의 야간 버전도 참 멋있었다. 관광객을 위한 것인지 밤이면 에펠탑에서 레이저도 쏘고 삽시간에 불이 붙은 듯 번쩍번쩍한 조명도 쏴준다. 에펠탑 꼭대기에서 보는 야경도 멋있다고 하던데 그 값도 만만찮아서 포기했다. 대신 걸어서 무료로 어느 정도까지 입장할 수 있게 해주는데 그 줄도 엄청 길어서 것두 포기! 어차피 고소공포증 땜에 높은 곳에서의 전망을 그닥 좋아하지 않으므로.

 

>> 담 날 우리가 찾은 곳은 뷔뜨쇼몽 공원(parc des buttes-chaumont)이다. 쓰레기 하치장으로 쓰이던 곳을 공원으로 개조한 것이라고 하던데 참으로 한가하고 이뻤다. 파란 하늘, 뭉게 구름, 초록색 잔디가 어우러진 곳. 한가롭게 낮잠을 즐기거나 책을 보는 파리 시민들. 부럽당. 공원의 한 나무에서 나동과 포즈를 취하고 있는 사람은 그렉. 우리 파리 여행의 실질적인 가이드 역할을 해주었다. 역시 Union Pacifiste에서 활동하고 있는 친구다.

 

>> 뷔뜨쇼몽 공원에서 노닐다 우리가 찾은 곳은 뻬르 라쉐즈(Pere Lachaise) 묘지. 쇼팽이나 발자크 최근 짐 모리슨까지 유명인들이 묻혀있는 곳이다. 꽃이 놓여져 있는 묘지가 짐 모리슨의 묘이다. 또한 여기는...

 

>> 파리 꼬뮌 전사들의 벽. '꼬뮌의 죽은 이들에게 1871년 5월21~28일'이라 적혀 있다. 누구는 이 묘지에서 오월 광주와 망월동 묘역을 생각하고 눈물을 흘렸다지만 우리는 묘지 문 닫아야 한다는 묘지 관리인의 성화에 꼬뮌 당시 돌아가신 분들의 명복을 빌어볼 시간도 없이 달려나와야 했다. 흑.

 

>> 그리고 저녁에는 Union Pacifiste가 진행하는 라디오 방송에 출연(?) 했다. 르네 아저씨가 진행하는 이 방송은 프랑스 및 전 세계의 평화운동을 소개하는 프로그램이란다. 내가 한국말로 가람이가 영어로 다시 르네 아저씨가 불어로 말을 이어가며 최선을 다해 평택의 상황을 소개하고 연대를 호소했다. 이 스튜디오는 Union Pacifiste 말고도 다른 활동 그룹들이 빌려서 자체 방송을 한다고 한다. 우리가 방송을 끝내고 나오니 성소수자 운동 그룹에서 바로 이어서 방송을 하였다.

 

>> 방송을 마치고 우리는 근처 식당에서 모여 식사를 했다. 왼쪽 파이프를 문 아저씨는 Union Pacifiste 대표인 모리스 아저씨,  아침, 날맹, 르네, 실비, 서있는 사람은 왼쪽이 이 레스토랑 주인이신 분(역시 Union Pacifiste 회원이라고 한다), 파스칼(제작년 한국 회의에 르네 아저씨와 함께 참석했었다), 나, 나동, 가람, 그리고 파스칼의 여자친구. ㅋㅋ

 

>> 르네 아저씨의 말로는 파리는 채식하기 썩 좋은 곳은 아니라고 한다. 파리에서 우리가 먹었던 음식들, 디저트들.

 

>> 밤마다 이런 음식을 우리한테 대접하시느라 정말... 눈물이...

 

>> 보기만 해도 먹음직스럽다.

 

>> 담날 일정은 퐁피두 센터에서 시작되었다. 짓다 만 것같은 외관을 하고 있는 이 곳은 파리의 문화예술의 중심지 역할을 한다고 한다. 르네 아저씨가 여기에 굉장히 좋은 전시가 있다고 해서 들렀다.

 

>> 뷜렘이란 카투니스트의 전시였는데 전쟁과 현대문명, 특히 현대 미디어에 관한 날카롭고 유머러스한 비판의식이 엿보이는 작가였다. 글 중 몇 컷!

 

 

>> 담날 우리 일정은 노트르담 성당이었다. 이번 유럽 여행에서 본의 아니게 자주 들렀던 곳이 이런 성당이었는데 날나리(?) 천주교 신자인 아침은 가끔씩 들른 이런 성당에서 영성을 듬뿍 충천하고 기뻐하기도 하였다. 규모가 엄청 큰 성당이었다. 우리가 들렀던 시간도 사람들이 예배를 보고 있었는데 성경이라고는 한 줄도 읽어본 적이 없지만 절로 고개가 숙여지고 경건해지더라.

 

>> 노트르담에서 자전거를 달려 들른 이 곳은 파리 식물원(Jardin des Plantes). 여기도 역쉬 거의 폐관을 할 때쯤 도착해서 느긋하게 갖가지 식물들을 둘러보지는 못했다. 그래도 아쉬우나마 예쁜 꽃 한 컷! 그렉의 정면 모습도 볼 수 있다.

 

>> 저녁에는 모리스 아저씨와 르네 아저씨를 다시 만나 저녁을 먹고 근처에 있는 Union Pacifist 사무실을 찾았다. World citizen이란 단체와 함께 쓰는 사무실은 아담했다. 사무실에 처음 놀러간 기념으로 우리는 꽃 시장에서 산 화분을 선물!

 

>> 담 날 아침, 샹젤리제 거리에 있는 잔차 가게에서 몇 가지 자전거 용품과 타이어를 사가지고 우리는 오늘 여행의 목적지, 그리고 다시 생각해도 끔찍한 소매치기의 기억이 있는 몽마르뜨 언덕으로 향했다. 몽마르뜨 가는 길에 있는 파리의 대표적인 극장식당인 물랭루즈에 멈춰 한 컷!

 

>> 이렇다할 높은 산이 없는 파리에서 꼴랑 해발 130m밖에 되지 않는다는 이 언덕은 거의 산의 수준이라 한다. 이 산의 정상에 우뚝 서 있는 사크레 쾨르 대성당(Basilique du Sacre-Coeur). 파리 시내를 내려다보고 있는 모습이다. 관광객들이 너무너무 많아서 속세의 삶을 거부하고 낭만을 추구했다던 파리 예술가들의 정취를 지대루 느끼기에는 살짝 힘겨울 듯.... 게다가...

 

>> 내 왼쪽 다리 아래로 살포시 놓아둔 겉옷과 힙쌕이 보인다. 저 사진 찍을 때까지는 얌전히 그 자리에 있었는데... 잉잉...

 

나의 이번 여행에서 사단은 바로 몽마르뜨 언덕에서 였다. 물론 여행 초반에 영은이 팔에 금이 가고 자전거가 계속 고장이 나는 등의 사건사고가 많기도 했었지만... 몽마르뜨에서 본 시내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고 카메라에 담긴 내 모습을 구경하고 어쩌구... 별로 길지 않은 시간이었던 거 같은데 그새 감쪽같이 잠깐 내려놓았던 힙쌕이 사라진 것이었다. 그 사실을 알아채고 황급히 근처를 뒤졌으나 범인을 찾을 수는 없었다. 그렉의 말로는 몽마르뜨에서 상주하는 쓰리꾼들은 아주 프로페셔널한 사람들이라 찾을 수 없을 것이라 한다. 첨엔 당황해서 그 안에 뭐뭐가 들어있었는지 기억나지 않았지만 근처 경찰서에서 신고를 하면서 하나둘씩 생각이 나기 시작했다. 넘들 힙쌕보다는 큼직한 그 안에 여권, 지갑, 뱅기표 등등이 들어있고 가장 중요한 내 여행일기, 용량이 모자란 디카를 대신해서 사진들을 저장해둔 MP3 등등 내 여행의 추억이 몽땅 들어있었다. 여행 중간중간에 사 모았던 엽서랑 기념품도 몽땅... 그렇다. 난 순식간에 내 여행의 추억들을 몽땅 도둑맞은 것이었던 것이었다. 잉잉... 독일 뮌스터 캠핑장에서 캠핑카를 들이받은 사건, 이번에 쓰리 당한 사건 등으로 넘들은 경험하지 못했을 각국 경찰서를 덤으로 구경하는 행운(-_-;;)까지... 지 버릇 개 못준다고 여행을 가서까지 경찰서를 전전하는 내 신세야... 그래도 지금은 여행 중 일기에 고백했던 내 헛된 욕심과 욕망, 못된 성질 모두를 유럽에 두고 왔다(?) 생각하고 잊어버렸다. 일종의 살풀이인 셈이다. 여기서 잠깐의 여행 팁! 여행을 그닥 많이 다녀본 것도 아니지만 장기간 여행이나 어디 위험한 곳에 여행을 갈 경우에는 여행자 보험을 들고 가는 것이 좋겠다. 영은이랑 가람이의 팔과 코의 부상, 내가 저지른 사고들(캠핑카 수리비, 소매치기 물건)은 한국에 돌아와서 다 보상을 받았다. 단, 사고치면 반드시 경찰서에 들러서 공식적인 폴리스리포트를 작성하고 받아와야 한다.

 

경찰서에서 하루 종일 진을 뺀 우리들은 근처 시장과 차이나타운 등을 울적한 기분으로 돌아보고 캠핑장으로 돌아왔다. 잃어버린 TC와 비행기표를 다시 발급받고 어쩌구 하는 절차들이 복잡할 거고 파리 여행을 놓칠 수도 없고 등등의 이유로 르네 아저씨가 남은 파리 일정을 자신들의 집에서 지내는 것이 어떻겠냐고 제안을 해주셔서 우리는 걍 염치불구하고 메르시~를 외쳤다.

 

>> 아침에 일어나서 짐을 싸고 체크아웃 하고 르네 아저씨 댁으로 향했다. 가는 길에 개선문에 들러서 잠깐 찰칵~! 개선문 위에도 전망대가 있어서 파리 시내를 귀경한다던데... 다들 왜 그리 높은 곳을 좋아하는지 원...

 

>> 르네 아저씨네 짐을 풀고 본격으로 피크닉에 나섰다. 샌드위치와 과자, 과일 차를 싸들고 우리가 처음 도착한 곳은 건축박물관(? 정확한 명칭이 기억나지 않음). 무료라서 더욱 사랑스러운 이 박물관은 파리라는 도시의 과거와 현재, 미래를 모두 살펴볼 수 있는 곳이다. 사진처럼 파리 시내의 축소모형도 전시가 되어 있어 살짝 방향치, 길치인 나에게는 내가 지금 있는 곳이 파리 어디쯤인지 알수도 있었던 시간이었다.

 

>> 그리고 우리가 들른 곳은 아랍문화원. 파리에서 손꼽히는 현대건축물이라고 한다. 건물 외관이 마치 카메라 렌즈 조리개와 같은 기계창치로 되어 있는데 빛의 세기에 따라 자동으로 열리고 닫히고 한단다. 건물의 꼭대기에는 사진에 보이는 것처럼 까페를 차려 놓았다. 꼭대기에서는 세느강과 시테섬의 전경을 볼 수 있다.

 

>> 옥상에서 기념사진 한 컷. 앞줄 오른쪽에 앉으신 분이 실비다.

 

>> 다음 우리의 여행지는 파리의 상점가 골목(Passage) 였다. 건축가인 르네는 한국에 방문했을 때 한국 재래시장의 통로들이 파리의 이 곳과 비슷해 무척 신기했다는 얘기를 하였다.

 

세느 강변 어디쯤에 자리를 펴고 샌드위치와 따뜻한 차를 마시고 있으니 너무나 한가롭고 세상 부러울 게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모두 즐거웠고 여유로왔다. 이 날의 일정은 지금은 병역거부로 영등포 구치소에 수감된 인욱씨 친구들을 만나 수다떨고 맛난 음식들을 먹은 것으로 끝!

 

>> 인욱씨가 불문학을 전공해서 친구들이나 선배들 중 꽤 파리에 와서 유학을 하시는 분들이 있다고 한다. 고맙게도 인욱씨가 배고픈 잔차 여행자들에게 맛있는 거 사주라며 거금을 부쳤다고 한다. 덕분에 맛난 프랑스 요리를 먹었고 한국 유학생들의 생활 얘기도 들을 수 있었다.

 

>> 베트남 항공에서 디지게도 전화를 안 받는다. 파리에서의 마지막 일정은 베르사이유다. 여기는 기차를 타고 가야 하기 때문에 오전 중에 베트남 항공에 들러야만 했다. 하도 전화를 안 받아서 걍 베르사이유로 출발을 했다. 베르사이유 가는 것도 만만치 않았다. 위에서 소개했던 파스칼의 직업이 정원사라서 프랑스식 정원의 진수라고 할 수 있는 베르사이유를 직접 가이드 해주고 싶다 했는데 약속한 장소에 나타나지도 않고 전화도 받지 않는 것이었다. 파스칼을 기다리다 오전 시간을 다 허비하고 우리는 겨우겨우 베르사이유로 향했다. 기차역에 내려 파스칼에게 다시 전화를 걸어보면서 혹시 모르니 베트남 항공에도 다시 전화를 걸어 보았다. 받는다. 직원 왈, 파리에서 다시 티켓팅을 해야지 안그러면 공항에서 비행기를 탈 수 없다고 한다. 장난하나. 그럼 전화를 좀 받던가. 더 열받았던 것은 우리가 파스칼을 기다렸던 오페라하우스 근처에 베트남 항공사가 있었다는 것이다. 결국 일행은 모두 베르사이유로 가고 나는 다시 기차를 타고 베트남 항공사로 향했다. 그 다음부터 나의 여정은 정말... 눈물이 앞을 가린다... 베트남 항공 측에서는 현재 남은 티켓이 없고 낼 출발하는데다 편도요금에 할인 가격을 적용해 줄 수 없다고 한다. 걍 잃어버린 티켓으로 발권이 안된다는 것이다. 한국에 돌아가면 수수료 떼고 다시 리펀드를 해준다고 하지만 티켓값이 자그마치 200마넌 가까이 된다. 눈물을 머금고 아침과 날맹에게 빌린 신용카드로 결재를 하려고 했다. 그런데 두 카드 모두 한도가 너무 작아서 한꺼번에 결재가 안되는 것이 아닌가. 일단 아침의 카드로 티켓값의 반 정도를 긁고 나니 더 이상 안된다. 직원왈 근처 은행가서 현금인출 해오라고 한다. 겨우 물어물어 ATM 기계에서 현금인출을 하려고 하니 이게 한 번에 100유로씩밖에 인출이 되지 않는다. 그것도 50유로 한장 10유로 3장 이런 식으로 소액환으로다가... 뒤에 줄은 긴데 아주 돌아버리겠다. 뽑은 지폐들을 주머니에 대충 쑤셔넣으며 계속 인출을 하는데 중간에 한도가 넘어버렸는지 날맹 카드가 먹통이다. 아침 카드는 이미 한 번 긁었는데... 이러다가 영영 파리에서 못 떠나나 싶었다. 다행히 아침의 카드가 도와주어 필요한 현금을 모두 인출해 베트남 항공 사무실로 다시 돌아갔다. 직원에게 바지 주머니에서 꾸깃꾸깃 구겨진 돈다발을 내놓으니 황당한 지 웃는다. 그 날 하루는 너무 길었고 그렇게 흘러갔다...

 

>> 파리에서의 마지막 만찬. 우리가 하도 르네와 실비에게 신세를 많이 져서 파리에서 출발하기 전날 아침에 한국식 카레를 만들어 대접을 하였다. 르네는 아침 일찍 회사로 출근을 했고 실비와 그렉이 한국식 카레의 맛을 봤는데 살짝 매콤하다 느껴지는 카레를 실비는 잘 먹지 못했다. 그렉은 맛있다고... 우리의 조촐한 만찬과 대조적으로 그날 저녁에 르네는 우리는 파리에서 아주 유명하고 대중적이라는 대규모 식당에 데려가서 각종 치즈며 와인, 음식 등을 대접해 주었다. 고마운 양반... 흑...

 

말고 많고 탈도 많았던 파리에서의 시간들. 파리 시내에서 멀리 떨어진 캠핑장 숙소, 느린 이동수단인 자전거와 두 다리... 덕분에 넘들이 다 구경하고 온다는 파리의 명소들을 다 둘러보지는 못했지만 나름대로 기억에 많이 남는 여행이었다. 언제가 될지 알 수 없지만 꼭 다시 와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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