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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주의와 진보주의의 동거-공영형혁신학교 (참세상조수빈기자)

시장주의와 진보주의의 동거, 이제 쟁점은 ‘공영형 혁신학교’다
20일 양재천교육포럼, ‘고교 평준화 제도와 학교 체제의 다양성 문제’
조수빈 기자 
지난 12일 한나라당 원내대표 경선에서 이재오 의원이 당선됨으로써 박근혜 대표가 주도해오던 사립학교법 개정 반대 투쟁이 새로운 국면을 맡게 됐다. 사실상 개정 사학법 반대 투쟁이 이번 원내대표 경선에서 중요 변수로 작용했던 만큼, 이재오 의원의 당선은 장기화된 장외투쟁에 대한 비판여론이 반영된 것이라는 것이 중론이다. 그러나 이재오 원내대표도 만만치 않은 사학법 재개정 의지를 밝히고 있어 조만간 여당과의 협상테이블이 추진될 것으로 전망된다.

한편 지난 7일 공정택 서울시교육감은 “‘교육격차해소’를 위해 2008년까지 은평, 길음 뉴타운 등에 자립형 사립고 3곳을 설립하겠다”고 밝혔다. 이러한 내용은 서울시장을 비롯해 교육부총리까지 공,사석을 불문하고 자사고 확대 방침을 밝히고 있다.

최근 교육 쟁점 점검 토론회를 벌이고 있는 ‘함께하는교육시민모임’ 주최, 양재천 교육 포럼이 2회를 맞은 가운데 지난 20일 ‘고교 평준화와 자립형사립고 및 공영형자율학교 문제’를 주제로 일선 학교 교사 및 정책연구원, 교육운동활동가 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지난 18일 노무현 대통령이 신년특별연설에서 ‘양극화 해소’를 2006년 화두로 던진 만큼, 새삼스럽게 ‘양극화’ 문제가 쟁점으로 떠오르고 있는 가운데 이날 토론회의 핵심 코드 역시 교육 ‘양극화’ 해소다.

교육운동진영에서는 특목고 및 자립형사립고, 공영형 자율학교 등 자율학교 제도가 교육격차해소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라며 오히려 현재의 교육평준화마저 크게 위협할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2005년 12월 현재 특성화고와 자립형 사립고 등 총 99개교의 자율학교가 운영되고 있다. 자율학교의 특징은 학교선택권과 학생선발권을 부여하고 있다는 것. 또한 자율학교는 고교평준화의 ‘보완책’으로 정당화되어 왔다. 그러나 앞서도 언급했듯이 교육운동진영의 주장은 다르다.

김정명신 함께하는교육시민모임 공동대표는 “강남학생을 따라잡을 묘수처럼 보이는 특목고, 자사고(자립형사립고), 공영형 자율학교는 도리어 우리교육을 파행으로 몰고 갈 공산이 크다”고 밝히며 자율학교 설립이 양극화 해소는커녕 오히려 가속화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김정명신 공동대표는 “자사고가 지역 교육발전에 한 몫 할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부근지역학생은 불과 2명, 강남학생들이 대부분 합격하는 강원도 횡성의 민족사관학교의 예만 보더라도 그렇지 않음이 증명된다”며 “또한 전국의 초등학생들을 입시지옥에 몰아넣고, 명문고 입시에 실패한 학생들이 조기유학에 나서게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렇듯 자율학교에 대한 논쟁도 첨예한데, 교육인적자원부는 또 다른 형태의 자율학교 설립을 추진중에 있다.

교육인적자원부는 지난해 12월 28일 종교단체.비영리법인 등 학교 운영 주체가 교육감과 학교 운영 계획 등에 대한 협약을 맺은 뒤 협약 내용에 따라 학교를 자율 운영하는 대안형 학교인 공영형 혁신학교를 2007년부터 시범 운영한다고 밝혔다.이에 올 2월까지 공청회를 열어 운영 방안을 확정하고 현행 학교의 설립과 운영 주체는 동일해야 한다고 규정되어 있는 초.중등교육법을 고쳐 하반기에 설립 신청을 받을 예정이다.

이날 토론회에서 김용일 한국교육네트워크 소장은 정부가 2007년 추진하겠다는 ‘공영형 혁신학교’에 대해 언급하며 “공영형 혁신학교도 자율학교의 범주에 포함시킬 수 있다”고 밝혔다. 김용일 소장은 이날 토론회에서 교육부에서 논의중인 비교적 구체적인 자료를 공개해 함께 참석한 교육부 관계자가 불편한 심기를 드러내기도 했다.

시장주의자와 진보주의자의 동거, ‘공영형 혁신학교’

‘공영형 혁신학교’의 핵심은 학교의 설립과 경영의 분리, 학교선택권 및 학생선발권 부여이다. 아직 논의 중이긴 하지만 ‘공영형 혁신학교’의 기본 골조는 대략 이렇다.

‘공영형 혁신학교’의 운영주체는 학교법인, 종교단체, 지자체, 민간단체, 개인, 기업 출연 비영리 법인 등으로 하고, 이사회는 기존의 학교운영위원회를 활용하되 위원 구성 비율을 예외로 인정하는 운영체제를 갖추게 될 것.

인사와 관련, 교장 인사는 운영주체가, 교직원 인사는 교장이 행사하며 교장에게 교사 추천권을 부여, 교사는 교사 자격증을 가진 기존 국공사립학교 근무자 중 초빙 또는 공모하되 현장체험학습, 특성화 교과 등 필요한 경우 전체 교원정원의 1/3 내에서 비자격자를 허용하는 방식이 될 것으로 보인다. 또한 공영형학교로 초빙된 사립교원의 자리는 공립교원 중 희망자를 전출시키거나 기간제 교사를 채용하는 방식이다.

이날 토론회에 참석한 한 교육부 관계자는 “논의 중이며, 여러 가지 문제점이 지적되어 논의를 거쳐 수정될 수도 있는 내용”이라며 여지를 남겼다.

김용일 소장은 “공영형 혁신학교의 모델은 미국의 협약학교라고 볼 수 있다”며 “현재 정부가 제시하고 있는 공영형 혁신학교의 모델은 공교육체제의 혁신 지향 취지를 내세우고 있는 ‘혁신학교형’과 공공기관이 이전하는 혁신도시의 교육환경 개선을 지향하는 ‘혁신도시형’ 등 두 가지”라고 밝혔다.

김용일 한국교육네트워크 소장, 한국해양대 교수
김용일 소장은 공영형 혁신학교 설립으로 유념해야 할 지점으로 △대학입시 기관화, 귀족 학교화 △지자체장이 선거 수단으로 이용할 가능성 △학교간 경쟁 △소수 학교의 운영 자율성 부여에 따른 대다수 일반학교의 반발 등을 꼽았다.

김용일 소장은 “공영형 혁신학교 중 특히 ‘혁신학교형’ 시장주의와 진보주의의 동거 양상을 엿볼 수 있다”며 “우파와 부수파들은 공영형 혁신학교를 공교육 시장화의 기제로 밀어붙이고 있는 반면, 진보주의자들은 학교 교육이 당면한 문제 상황을 돌파할 수 있는 하나의 전략으로 간주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또한 김용일 소장은 “교육에 관나 무수한 정책 설계가 그간 너무 졸속적이고 비민주적으로 이루어져왔다”며 “정책 설계자들이 자신들의 의중을 감추고 정치적 맥락에 대해 정확히 인식할 수 없게 함으로써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려 한 점이 없지 않느냐”고 되물었다.

사학의 ‘사유재산’ 주장의 태생에 대하여

1969년 중학교 무시험제 도입, 1974년의 고교평준화 제도의 도입으로 중학교 사학은 줄지만 고등학교 사립은 꾸준히 늘어나는데, 이는 평준화 이후 급격히 늘어난 고교교육 수요를 국가재정으로 충족시키기 힘든 상황에서 공립학교 신설 대신 사립학교 인가를 쉽게 내주어서 사학의 비중을 늘리는 정책적 결정에 따른 결과이다. 지난 12월 19일 사립학교법 개정 이후 송원재 전교조 서울지부 공항고등학교분회 분회장은 참세상과의 통화에서 “이러한 정부 정책이 ‘폐교하겠다’, ‘신입생을 받지 않겠다’는 사학의 협박성 주장의 명분이 되었다”고 밝힌 바 있다.

강영혜 한국교육개발원 정책연구원
이날 토론회에 참석한 강영혜 한국교육개발원 연구원도 “80년대 이후 평준화 지역을 중심으로 사립학교 설립이 크게 늘어났다”며 “평준화 지역에 학교를 세우면 학생모집 문제도 재정문제도 해결 되므로 사학의 설립과 경영은 특별한 건학이념의 구현 보다 교육 ‘사업’으로 인식될 여지가 컸다”고 밝혔다. 최근 사학재단들이 공교육을 ‘사유재산’이라고 주장하며 장외투쟁에 나서는 근거를 제공한 셈. 그러나 사학을 제외하고 평준화 정책 추진이 사실상 불가능한 정부는 사학의 납입금을 통제하여 공사립의 학생 납입금을 맞추고, 대신 재정지원을 하며 평준화를 실시한다. 이로서 사실상 사학의 의미가 사라지게 되는 것.

그러나 강영혜 연구원은 “평준화 도입 초기 국민적 관심사가 교육기회의 확보라는 의미에서 관심을 끌었지만 질적 차별화가 부각되던 90년대 이후 평준화 제도가 초래한 교육의 획일성 문제에 비판적 분위기가 조성되었다”고 ‘자립형 사립고’의 설립 배경을 설명했다. 다시말해 사학은 절대치 이상으로 늘어났지만, 보편적인 공교육과 차별화된 예외적인 교육의 기회가 사라져 또다른 형태의 사학이 필요했다는 것. 그것이 바로 ‘자립형 사립고’다.

자립형 사립고

자립형 사립고는 민족사관고, 광양제철고, 포항제철고, 해운대고, 현대청운고, 상산고 등 6개교가 자립형 사립고로 전환되어 운영되고 있다. 자립형 사립고는 정부의 보조금을 받지 않고 학교가 자율적으로 교과과정을 운영하며, 학생과 교사의 선발, 교육비 책정 등에 대해서도 정부의 간섭을 받지 않는다.

강영혜 연구원은 “한나라당이 주장하는 20%까지는 아닐지라도 현행 6개교만으로는 시범운영의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점과 사학의 자율성 확보와 학교선택권 확대를 위하여 자립형 사립고교 제도를 좀 더 확대할 필요가 있다”며 “교육의 차별성과 다양성이 담보되지 않는 자립형 사립고는 순차적인 전환계획을 세워 공영학교로 수용하고 공적 하에 투명하고 효율적인 운영이 되도록 재구조화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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