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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프로 외국인노동자들이 직접 기획-연출 눈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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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프로 외국인노동자들이 직접 기획-연출 눈길

[도끼미디어, 다음미디어, 야후미디어, 파란뉴스, 일간스포츠 2005.05.19]
        



21일 오후 10시 RTV 시민방송(스카이라이프154, 케이블, 이사장 백낙청)은 이주노동자 퍼블릭액세스(시청자 제작) 프로그램 `이주노동자 세상-이주노동자들의 5월`을 방송한다. 이주노동자들이 단지 방송에 등장하기만 하는 타 방송사 프로그램과 달리 `이주노동자 세상`은 그들이 직접 기획하고 대본을 쓰고 연출하는 게 특징.
이번 방송에선 이주노동자노동조합 결성과 어린이날, 부처님 오신날 관련 이주노동자들의 5월 이슈와 그들의 문화를 배우려는 한국 학생들의 `다문화체험`이 소개된다.

이중 `다문화체험`은 `이주노동자의 방송`(Migrant Workers Television) 회원인 네팔인 싯디가 안내한다. 96년 국내에 들어온 싯디는 7년간 공장에서 일한 뒤 지금은 네팔공동체에서 상담 등 이주노동자들을 위한 지원활동을 펼치는 활동가다.

세계에서 유일하게 국기가 사각형이 아닌 나라가 바로 네팔. 삼각형 두 개를 상하로 겹친 듯한 국기엔 초승달과 태양이 그려져 있다. 네팔이란 나라 이름도 독특하다. 산스크리트어로 `산기슭`이 네팔의 뜻. 히말라야 산기슭에 있다는 점을 상징화한 국명이다. 싯디는 네팔 국기가 삼각형 두 개를 얹은 모양이 된 게 에베레스트 때문이라고 이야기한다. `네팔`의 상징이 에베레스트 산이기 때문에 국기로 산 모양을 표현한 것이라고.

`안녕하세요`에 해당되는 인사말이 네팔에선 `나마스떼`. 이 때 두 손은 합장을 해야 한다.

방송에선 서울 성산중학교와 부천 삼정초등학교에서 있었던 문화체험 시간이 소개된다. 이중 부천 삼정초등학교는 몽골, 페루, 카자흐스탄 3개 나라 이주노동자 가정 어린이 8명이 직접 다니는 학교다. 아시아인권문화연대와 지역의 공부방, 복지관 등이 협력해 `우리집에 놀러와`라는 문화체험 프로그램을 이미 기획한 바 있다.

이들 학교에선 학생들이 직접 네팔의 전통의상 사리를 입어보고, 민속악기 마덜을 연주했다. 불교의 기도용구인 마네에 소원을 적고 돌리며 자신의 소원을 비는 시간도 마련됐다.

한편 `이주노동자세상`은 RTV 홈페이지(www.rtv.or.kr)에서 재방영된다.[TV리포트 김대홍 기자]
paranthink@yaho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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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글방글’ 방글라데시 어린이가 속울음 운 까닭은?

‘방글방글’ 방글라데시 어린이가 속울음 운 까닭은?
[한겨레 2005-05-04 20:42]  



[한겨레] 불법체류 부모따라 귀국, 친구에 ‘안녕’ 입도 못떼
출발선에 선 나지아(13·부천 심원초등학교 5학년)의 두 다리에 힘이 불끈 들어갔다. ‘땅’하는 총소리와 함께 나지아는 힘껏 내달렸다. 한국에서 달리기를 할 수 있는 ‘마지막 운동회’인 탓인지 얼굴 표정이 진지했다. 눈에 스친 한국의 하늘은 더없이 파랬다.
4일 운동회가 열린 경기도 부천시 심원초등학교에서 만난 나지아는 한국 아이들과 똑같이 조잘대고 깔깔댔다. 방글라데시에서 태어난 그는 5년 전 부모를 따라 한국에 왔다. 하지만 아버지 뚜뜰(37)의 비자 기한이 지난달 4일 만료됐고, 어머니 나즈마(35)는 지난해 12월 불법체류자 신분이 됐다. 그의 가족은 19일 다시 방글라데시로 돌아간다. 나지아는 “부모님이 단속이 심해 돌아간다고 했다”며 “친구들을 떠나야 한다는 게 제일 마음 아프다”고 말했다.

그의 첫번째 운동회는 ‘눈물’ 속에서 지나갔다. 2000년 초 한국에 온 나지아는 몇 달 뒤 초등학교 1학년으로 들어갔다. 그러나 ‘안녕하세요’가 할 줄 아는 한국말의 전부였다. 같은 반 친구들은 피부색이 까무잡잡한 그를 ‘아프리카’ ‘검둥이’라고 놀려댔다. 그는 “마음이 무척 아팠고, 매일같이 울었다”며 “어떤 때는 귀를 막거나 애써 못 들은 척하기도 했다”고 말했다.

‘인기짱’ 열세살 나지아
마지막 운동회날도 달리기 1등 “친구야! 미안!”

그러나 학교는 하루도 빠지지 않았다. 머리가 총명했던 그는 서너 달 만에 한국말을 조금씩 익히기 시작했다. 친구들도 하나둘씩 생겼다. 수업 준비물을 빠뜨린 친구들에게 자기 것을 나눠주기도 했다. 3학년쯤 돼서는 친구들과 스스럼없이 지내는 사이가 됐다. 그는 3학년 때 자신이 교통사고를 당했을 때 선생님과 친구들이 병문안을 온 게 가장 기억에 남는다고 했다. 친구들이 이방인인 자신에게 관심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가장 확실하게 보여준 순간이었기 때문이다.

친구들은 “생일잔치에도 초대하고 같이 지내다 보니까 나지아도 똑같은 사람이더라”고 말했다.

지금 나지아는 성격이 밝고 활달해 친구들 사이에서 ‘인기짱’이다. 올해는 반 친구들의 추천으로 부반장까지 맡았다. 반 친구 41명 중 25표나 얻었다.

그렇지만 그는 지난해 10월을 가장 힘든 때로 기억한다. 아버지가 다리를 다치는 바람에 두어 달이나 병원에 입원했고, 공장에서 일하는 어머니는 새벽 1~2시까지 일을 해야 해, 세살짜리 여동생을 그가 돌봐야 했다. 곰팡이가 피고 비가 새는 반지하방을 거의 1년마다 이사를 다녀야했던 점도 어린 그에겐 잊기 힘든 고통이었다.

이날 그의 어버이는 운동회에 오지 않았다. 아버지는 공장에서 야근조로 일해 얼굴을 마주하는 것조차 어렵다. 어머니는 요즘 불법체류자 단속이 부쩍 심해져 문밖 출입을 할 수 없다. 그는 “얼마 전 이웃에 살던 방글라데시 삼촌은 경찰이 문을 부수고 들어가 잡아갔다”고 말했다. 그는 “아무 잘못도 없는 삼촌들을 왜 잡아가는 거죠?”라고 물었다. 그래서 바깥 심부름을 도맡아 하게 됐다.



그는 곧 고국으로 돌아간다는 것을 아직까지도 친구들에게 말하지 못하고 있다.

울음도 나올 것 같고 어떻게 말해야 할지도 몰라 혼자서 가슴앓이만 하고 있다.

하지만 담임 선생님이 친구들도 마음의 준비를 할 시간이 필요하다는 말씀에 망설이고 있다. 그는 “운동회날은 기쁜 날인데 나 때문에 기분을 망치게 하고 싶지 않다”면서도 이번 주는 넘기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그는 나중에 한국에 꼭 다시 오고 싶다고 했다. 그의 꿈은 통역사가 돼 한국과 방글라데시를 이어주는 다리가 되는 것이다. 이호을 기자 helee@hani.co.kr

♪ TablaMusic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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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 Migrant Worker&quot;s Day spacial Progr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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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Migrant Worker"s day Spacial Program On RT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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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est Tabla Music

 



♪ Tabla Music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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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rean DReam~~HongilDong~~

- 뮤직비디오 / 이주투쟁 영상 2003년 ~ 2005년 - 코리안 드림 (Korean Dream)

Migrant Worker TV Program On RTV~2005-04-16일

<영상 수록 내용>

2000년 이주투본 때부터 시작해 2002년 이주지부 그리고 미등록 이주노동자 전면합법화 쟁취, 고용허가제 반대, 노동허가제 쟁취, 노동비자 쟁취 등의 기치로 1년 1개월의 농성기간을 거쳐 비로소 주체적 투쟁의 결의로 결정한 이주노동자 노동조합이 2005년 4월 24일 결성되며 첫 임원을 선출합니다. 투쟁 과정 속에 표적단속과 기습납치 등 수많은 탄압이 있어 왔으나 이주 노동자 스스로의 인권과 노동권리를 쟁취하기 위한 투쟁의 주체로서 당당한 발걸음을 시작했습니다. 2년 가까운 수록 영상을 4분여의 뮤직비디오로 압축해 보았습니다. 4월 24일 이주노동자 노동조합 창립총회 소식도 며칠이 지났지만 영상으로 곧 소개합니다. 오랜시간 이주노동자 투쟁에 연대해온 문화노동자 연영석 동지 오랜만의 3집 새 음반출시에 때맞춰 연대의 마음으로 이주노동자 노동조합 설립과 함께 이에 맞추어 영상으로 함께 합니다. 오랜 농성투쟁 과정과 농성 이후 모습들, 이주 동지들의 일상과 이주노동자 노동조합 설립 과정 등을 수록했습니다. 투쟁 과정 속에 함께 했던 동지들의 모습들이 새롭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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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직비디오 / 이주투쟁 영상 (2003년 ~ 2005년)" 【영상 따로보기】 “코리안 드림 (Korean Dream)" (4분 54초)

- 관련 홈페이지 소개 -

- 이주노동자 노동조합 임시 홈페이지 - ⊙ 이주노동자 노동조합 (클릭!)

- 구 이주지부 홈페이지 - ⊙ 이주지부 홈페이지 (클릭!)

- 연영석 님 홈페이지 - ⊙ 문화노동자 게으른피 (클릭!)

<영상수록일> 2003년 ~ 2005. 4월 <영상제작일> 2005.4.29 비디오 액티비스트'숲속홍길동'의 영화 2005.4.29 / 노동의 소리

Revolutionary Duty & Workers Solidarity Video Activist Hong Gil-dong in the Forest's Mov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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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노동자의세상

안타까운 외국인 노동자

[연합뉴스 2005-04-22 14:10]  

미얀마인 쩌쩌툰(28)씨가 부천 순천향병원 중환자실에서 결핵성 수막염과 뇌수두증 등으로 반 혼수상태서 치료를 받고 있으나 치료비가 부족해 어려움을 겪고 있다.//지방/ -지방기사 참조- 2005.4.22 (부천=연합뉴스) gogo213@yna.co.kr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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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지부 4.24 2차 임시총회 보고 및 MTU 창립총회보고

4월24일 2차 임시총회 보고 및 MTU 창립총회보고 1. 이주지부 2005년 2차 임시총회 (장소: 민주노총 회의실) 평등노조 이주노동자지부 2차 임시총회가 오후12시경에 시작되었습니다. 평등노조 위원장이신 임미령위원장님과 이주지부 초대 지부장이셨던 이윤주 동지의 격려사로 임시총회가 시작되었습니다. 보고 안건에는 2001년 이주지부 창립시부터 2005년 현재까지의 주요사업보고가 있었고 심의안건으로 먼저 2004-2005 회계결산및 회계감사보고 승인이 있었고 박수로 처리되었습니다. 두번째 심의안건은 조직변경안이었습니다. "평등노조 산하 이주지부를 발전적으로 해산하고 서울경기인천 이주노동자 노동조합(가)으로 조직적 가입을 결의 한다"라는 안건이었습니다. 무기명 투표에 의해 이주지부 해산과 MTU가입으로의 전환이 통과되었습니다. 따라서 공식적으로 이주지부는 총회이후 공식 해산되었습니다. 2. 서울경기인천 이주노동자 노동조합(MTU) 창립총회 보고 같은 장소에서 오후 3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100여명의 이주노동자 동지들이 가입하고, 이주노동자 노동조합의 규약통과와 동시에 임원을 선출하여 노동조합이 건설되었습니다. 100여명이 넘는 이주노동자들과 이주노동자 노동조합 출범에 지속적인 관심을 전해주시는 연대단위 여러분께서 자리를 함께해서 더욱 빛을 발했습니다. 민주노총 신승철 부위원장님, 민주노총 경기본부 이상무 본부장님, 오산이주노동자센터 장창원목사님의 격려사로 창립총회가 시작되었습니다. 첫 안건이었던 규약제정안이 원안대로 통과되었습니다. 그로인해 이주노조의 공식명칭은 한글명:"서울경기인천 이주노동자 노동조합" 영문명:"Seoul-Gyeonggi-Incheon Migrants' Trade Union" (약칭 MTU)로 결정되었습니다. 또한 명실상부한 이주노동자들의 독자적인 노동조합으로의 성격을 가지고 탄생하였습니다. 두번째안건은 노동조합 임원선출이었는데 서울경인 이주노조의 초대 위원장, 사무국장, 부위원장, 회계감사를 무기명 비밀투표에 의거하여 선출하였습니다. 위원장-사무국장을 동반출마로 단선, 부위원장 단선, 회계감사 경선을 통해 MTU의 대표자들을 선출하였습니다. 임원선출이후 각 당선자들은 현재의 결의를 밝히고 향후의 투쟁일정들에 대한 간략한 설명과 제안을 잊지 않았으며 발빠른 움직임으로 지역 단위 체계 수립과 집행국구성을 통해 이주노동자 노동조합의 발전을 약속하였습니다. 참가해주시고 관심가져 주신 모든 동지들께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평등노조 이주지부와 함께 했던 모든 동지들에게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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