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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5/07/12
    잃어버린, 혹은 잃어져버린.
    하늘연

잃어버린, 혹은 잃어져버린.

1.

 

10일 동안 내가 있던 공간, 내가 발화한 순간들이 고스란히 사라져 버린다고 해도 달라지는 것은 없었을지도 모른다. ... 아마 그랬을 거다.

 

관계'들'이 치열하게 싹을 틔우고 잎이 푸르러가는 동안, 나는 그 관계'들'의 언저리에서 그저 웃음소리를 더해주는 방관자였고, 어떻게 하면 더 많은 상처들을 덧나게 해서 나와 타인들에게 흉터를 남길 수 있을지를 고민하던 서툰 범죄자였다.

 

 

2.

 

정말, 그래요. 내가 다른 거라곤 단지 조금 더 아는 것 밖에 없어요. 어쩌면 그 '조금 더' 가 이제 점점 더 줄어가니까 내가 불안한 건지도 모르겠어. 나만 이해할 수 있는, 고민할 수 있는, 나만 할 수 있는 건 정말 없으니까. 그나마 내 것이라고 생각했던 부분들마저 잃어버리고 있는 느낌이에요. 나는, 선배가 되고 싶었던 게 아니라 그냥, 이렇게라도 내가 할 수 있는 일들을 찾고 싶었어요. 어떤 게 맞는 건지는 아직도 잘 모르겠어요. 당신이 말하는 명제를 이해하고, 옳다고 판단해요. 그렇지만 그게 나의 논리는 아닌 걸. 정말, 어떻게 해야 할지를 모르겠다구요.

 

 

3.

 

손이 닿는 데까지는 늘 솔직해져버려서, 나는 보기보다 관계에 서툰 사람이고, 관계에 대한 확신도 없어서 늘 의심하고 고민하다 지레 상처받고 지쳐버리곤 한다고 말하곤 한다. 하지만, 그런 언어화된 설명으로 나에 대한 이해를 타인에게 요구하는 건 과연, 그/그녀에게 폭력이 아닐 수 있을까.

 

나는 함께 있기에 그리 유쾌한 사람이 아니다. 그걸 알면서도, 타인에게 나와 시간을 같이 보내 달라고, 나와 함께 무언가를 하자고 제안하는 건, 혹은- 단지 같이 무언가를 하게 된 상황 자체가 그들에게 폭력은 아니었을까.

 

 

4.

 

최고라고, 즐거운 시간들이었다는 기억의 재잘거림들 속에서 또 나의 위치는 선 밖이다. 나는 공유할 것도, 기억해낼 것도 그닥 남아있지 않다. 나는 일기도 쓰지 않았고, 편지도 많이 쓰지 못했다. 그저 그날그날의 회의를 위해 기록해둔, 비판과 불만으로 가득 찬 평가와 패배감과 자괴감 속에서 토해낸 끄적거림 몇 개만이 남았을 뿐이다.

 

그래서, 나는 즐겁지 않았다. 누군가의 말처럼, 어쩌면 다행스럽게도, 실망하진 않았다. 그저, 내가 있음으로 인해 더 즐거울 수 있었던 농활이 그렇지 못했다는 사실과, 타인에게 실망만을 안겨줄 뿐인 내 모습이 안쓰러웠을 뿐이다. 나를 보며 안쓰러워한 몇몇 사람들에게 나는 다소 지친 표정으로 애서 웃음을 만들어보고도 싶었다. 고마워요, 그렇지만 나는, 나는 당장 모든 걸 다 쳐내고 도망가고 싶을 만큼 힘들다구요.

 

나는, 즐겁지도 않다. 경험도 없는 '주제에' 관성적으로 무언가를 해야 한다고 생각할 뿐, 정작 왜 그것을 해야 하는지는 모른다. 그래서 나는 즐거운 사람들이 부럽고, 나는 그 속에 끼어서는 안 될 것만 같다.

 

 

5.

 

덜렁덜렁 베인 살점 달고 다니는 거 아니에요. 내가 베인 살점이 맞기는 해요? 확신은 늘 내 몫인가요?

 

6.

 

나는 무엇을 하고 싶은 것일까. 누군가, 그랬지. 네가 원하고 바라는 것들을 찾아가는 과정이 행복하길 바란다고. 그 과정이 어디까지인지 나는 잘 모르겠어요. 그래서 나는 내가 왜 농활을 갔는지, 심지어 갔다 '왔는지' 조차도 잘은 모르겠다. 그래서 늘 '결국' 이고 '다행'이다. 무엇에도 확신은 없다. 내가 무엇을 얻었는지도 모르겠다. 잃어버린 것들, 혹은 잃어져버린 것들만 선명하다.

 

다시, 도망치고 싶다. 왜 어두운 밤길을 달려 서울로 와야 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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