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을 우러러 보라
- 라싸의 높고 푸른 하늘
청두에서 티벳의 중심지인 라싸로 날아가는 하늘길은 산‘맥’이 아니라 아예 산‘해’다. 나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황토빛 연봉들이 가는 길 내내 펼쳐진다.
오후 2시. 라싸 공항에 도착. 청두와 달리 구름 한 점 없이 하늘이 너무 파랗다. 워낙 건조하니 하늘로 증발할 수분조차 남아 있지 않다. 내 키가 서울에서보다 3600m 높아진 셈이니 내 평생 이렇게 하늘과 가까워지긴 처음이다. 거칠 것 없는 하늘 덕에 햇빛도 무지 강하다. 벌써 숨이 차오른다. 평소처럼 한 발짝 뗐을 뿐인데 숨이 벅차다.
하정우를 조금 닮은(것 같은데 일행 중 아무도 동의하지 않은) 가이드 오영씨가 마중을 나왔다. 숙소에 들어가 짐을 풀자마자 청두에서 가이드한테 산 ‘홍경천(紅景天)’을 마신다. 고산증 ‘예방’을 위한 약인지라 일주일 전부터 먹어야 한다는데 한국에선 구하기가 어려워 현지에 와서야 부랴부랴 챙겨먹을 수밖에 없는데 아무렴 효과나 있으려나 모르겠다. 홍경천은 티벳에서 나는 풀 이름인데, 하늘을 우러러 보라는(敬天) 뜻으로 풀이해보면 어떨까. 이처럼 하늘이 높고 푸른 곳에서 함부로 얕잡아보고 생각하고 행동했다가는 경을 치리라.
고산 적응을 위해 오늘은 조캉사원 근처에서 해바라기하며 쉬기로 한다. 조캉사원 앞은 한 해 농사를 마치고 각지에서 모여든 순례자들로 붐빈다. 중국은 지금 춘절 연휴 기간이라지만 이곳 조캉사원 앞은 명절 전날 시장 같다. 사원 앞에서 오체투지를 하거나 사원 주위를 도는 바코르를 하는 티벳 사람들의 표정은 너무 진지하다.
바코르 광장이 한 눈에 보이는 2층 찻집에 자리를 잡고 앉아 해바라기를 하며 밀크티를 마신다. 사람들이 열심히 순례를 하는 와중에 중무장을 한 군인들 무리도 바코르 광장을 돈다. 순례는 시계방향으로 돌지만 군인들은 반시계방향으로 돈다. 이곳에선 두 개의 서로 다른 세계가 돌고 있는 셈이다. 공교롭게도 우리가 티벳에 들어오자마자 쓰촨성에서 춘절을 기해 티벳 독립 시위가 벌어졌고 사람까지 죽었단다. 정작 이곳 바코르 광장은 티벳인보다는 군인과 경찰이 시위를 하는 모양새다. 한국에서 소식을 들은 아내의 친구가 우리의 안부를 물었으나 오히려 티벳의 중심이 더욱 안전한 셈이라 머쓱했다. 이곳 라싸는 큰 도시라 유목이나 목축을 하며 기존 생활방식대로 사는 사람들을 보려면 티벳 인근의 칭하이, 간쑤, 쓰촨으로 가야한다. 독립 시위도 그곳에서 일어난 것이고. 라싸 사람들은 중국 내지로 유학을 다녀와 이곳에서 공무원을 하는 게 꿈이란다. 우리처럼 해바라기를 하고 있는 고양이 뒤로 중국의 패스트푸드점 ‘다이코스’가 바코르 광장 한복판에 자리잡고 있는 게 보인다.
20대 후반인 가이드 오영씨는 헤이룽장성이 고향으로 신장, 운남성 등 중국전역을 돌며 가이드 생활을 하고 있다. 앞으로 가이드를 하며 한국과 일본을 거쳐 유럽까지 가고 싶단다. 아무래도 역마살이 낀 게 분명해 보이는데, 결혼 생각은 있냐고 물으니 안 할 생각이란다. 그러고 보면 나도 그 나이쯤에는 결혼을 안 하리라 생각했더랬다.
자신이 EBS 세계테마기행 ‘중국의 리틀 티벳’편 현지 가이드를 했단다. 정작 본인은 방송을 보지는 못했다는데 현지인의 생활모습을 담아내기 위해서 불가피하게 연출된 장면들이 있었다며 씁쓸히 웃는다. 이번 여행준비하면서 해당 방송을 봤었는데 미처 엔딩 크레딧까지 확인하지는 못했다. 돌아가서 확인해봐야지. 그리고 영상작품은 꼭 엔딩 크레딧까지 보고 엉덩이를 떼자고 다시 다짐한다.
그건 그렇고 저 많은 사람들은 어디서 먹고 잘까? 사원 내에 숙소가 있고, 근처에 민박집이 있어서 거기서 주로 묵는단다. 순례를 떠날 때 양이나 야크 등 가축을 처분해서 마련한 돈으로 숙식을 해결한다. 먹는 거라고 해봤자 보리가루하고 야크젖으로 만든 수유차가 전부다. 그렇게 해서 순례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면 이웃들이 십시일반하여 다시 가축을 사준다고. 티벳 사람들에게 순례란 삶이자 숙명이다.
저녁 식사를 하러 오영씨가 즐겨찾는다는 쓰촨식 카페테리아로 갔다. 간판은 ‘물만두집’인데 정작 만두는 피가 너무 두꺼운 게 맛이 별로다. 신기하게도 당시에 먹을 때는 정말 잘 먹었는데, 고산증으로 아프면서부터는 기름 냄새가 역하게 기억되면서 헛구역질을 연발했다.
숙소로 돌아오니 머리가 깨질 듯 아프다. 고산지대는 기압이 낮아서 뇌 속의 압력이 커지며 나타나는 증상이다. 내 머리 뿐만 아니라 가져온 커피믹스와 과자봉지도 터질 듯 팽창해있다. 아내는 증상이 다르다. 머리는 멀쩡한데 숨이 가쁘단다. 건강하거나 허약하거나 간에 이곳에 오면 누구나 평등하게 고산증상을 겪는다. 청두에서처럼 편히 자기는 글렀다. 다시 한 번 하늘을 우러러 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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