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사는 엉덩이를 미리 놀래고 놓는 건데
- 라싸의 사원 돌아보기
1시간 간격으로 자다 깨다를 반복했다. 자고나면 괜찮아 지리라는 기대는 빗나갔다. 머리가 너무 아팠다. 게다가 건조해서 입이며 코가 사막에 있는 것처럼 꺼끌꺼끌해 숨쉬기도 어려웠다. 아침도 못 먹고 오전 일정을 위해 힘겹게 걸어 나왔다.
오늘은 라싸에 있는 주요 사원들을 돌아보는 날이다. 누워있을 땐 깨질 듯 아프던 머리가 슬슬 움직이니 좀 낫다. 고산증은 병이 아니다. 다만 몸의 적응을 위한 준비일 뿐이다(라고 저녁까지만 해도 생각했었다).
포탈라궁은 이른 아침부터 순례를 온 사람들로 붐빈다. 포탈라궁은 ‘관세음보살이 사는 곳’이란 뜻으로 관세음보살의 화신인 달라이라마가 사는 곳이다. 지금은 인도에 있지만.
입장료는 현지인은 5원이지만 외국인은 무려 100원이다. 그나마 성수기인 여름에는 하루 방문객을 2천명으로 제한을 하기 때문에 관광객은 웃돈을 줘야 입장권을 구할 수 있단다. 아무래도 겨울이 티벳 사람들의 모습을 보기에 제격이다.
오후엔 세라사원을 들렀다. 우리도 이곳 티벳 사람들처럼 사원 안으로 바로 들어가지 않고 사원의 뒷산엘 먼저 올랐다. 이곳 사원이나 궁은 대체로 자연 지형을 활용하여 평지보다 높은 곳에 지어놓았다. 지난 2008년 대규모 시위가 있었을 때 이곳 세라사원에서 먼저 시위가 발생했다고. 사원 뒤편에는 커다란 방호벽 같은 것이 있어서 이 안에 피신해 있었다고 한다.
뒷산에 오르니 라싸 시내가 한 눈에 들어온다. 이곳에서는 모든 건물을 포탈라궁보다 낮게 지어야 한다. 덕분에 포탈라궁은 시내 어디서나 볼 수 있도록 모두에게 개방되어 있다. 지도에조차 표시되지 않는 꽁꽁 닫힌 서울의 푸른 기와집과는 너무 다르다.
세라사원은 승려를 양성하는 불교대학이다. 특히 이곳에서는 매일 오후 3시부터 젊은 (학생)승려들이 마당에 모여 경전의 교리를 서로 묻고 답하면서 교육하는 ‘변경’이 시작된다. 3시가 되기 전부터 관광객들이 카메라를 손에 쥐고 마당 주변을 둘러싸고 있다. 이곳 사원은 대부분 경내 촬영을 금지하거나 허가하더라도 돈을 받기 때문에, 억눌려왔던 셔터 본능을 이곳에서 해소하나보다.
3시가 되자 10살이나 갓 넘겼을까 어린 승려들이 만면에 웃음을 띤 채 삼삼오오 마당으로 입장을 한다. 이들은 관광객과 카메라가 너무나 익숙한 듯 각자 정해진 자리에 앉아 쑥스럼없이 대화를 시작한다. 서있는 승려가 손뼉을 치며 질문을 던지면 앉아 있는 승려가 그에 대한 답변을 한다. 때론 진지하기도 하지만 그 나이에 어울리게 장난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대화를 주고받는 모습이 눈에 거슬리지가 않는다.
이 광경을 관광객만 보고 찍고 하는 줄 알았더니 사원의 순례자들도 가만히 지켜본다. 이곳엔 용하다는 승려가 있어서 그가 아이의 코에 검댕을 묻히며 기도를 해주면 아이가 공부를 잘한단다. 사원 한 켠에 어른과 아이들이 왜 줄을 서 있나 했더니 승려의 기도를 받기 위해서란다. 한국이었으면 사람을 사서 대신 줄을 세웠거나 빠른 교통수단을 동원해서라도 먼저 기도를 받고 더 검게 검댕을 묻히기 위해 부모들의 경쟁이 치열했으리라. 다행히 세라 사원의 모든 아이들의 코가 골고루 검다.
티벳은 개와 고양이들의 천국이다. 사람들이 개를 특별히 아껴서 애완동물처럼 기르는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해코지를 하지도 않는다. 길거리엔 자유로운 개들이 어슬렁거리며 차도며 인도를 마음대로 넘나든다. 덕분에 차와 사람들이 개들이 먼저 지나가기를 기다린다. 사원에도 개가 많다. 사원의 개들도 양지바른 곳에 너나 할 것 없이 널부러져 낮잠을 즐긴다.
어제 들렀던 조캉사원엘 다시 들렀다. 오늘은 사원 내부까지 들어갈 셈이다. 여느 사원보다 이곳 조캉사원이 순례자들로 가장 붐빈다.
우리는 티벳 사람들과 다르게 사원에 들어가면 눈과 귀로 담기에 바쁘다. 티벳 사람들은 연신 머리를 조아리며 경을 외우고 기도를 하고 절을 하기에 바쁘다. 우리는 고개를 들어 불상과 주변을 쳐다보고, 사람들을 구경하고, 길을 몰라 땅바닥을 보며 걷기에 바쁘다.
조캉사원을 나와 찻집을 찾아 나선다. 어라, 갑자기 정전이 되어서 영업을 못 할지도 모르겠단다. 바코르 광장 뒷골목을 헤매다가 비구니 스님들이 운영한다는 찻집에 들어섰다. 처음으로 수유차를 마셔봤다. 정말 버터를 물에 녹인 맛이다. 원래는 보이차에다 야크버터를 녹인 것인데 차향보다는 버터 맛과 향이 지배한다.
티벳은 서울보다 해발고도가 높아서 더 추울 것 같았지만 한낮엔 햇살이 아주 강해서 초봄처럼 따뜻하다. 그런데 한낮이라도 양지와 음지 간 기온차가 너무 크다. 그늘 속에 들어가면 한기가 싸~하게 몸을 휘감는다. 다행히 따뜻한 햇살을 인공적으로 가리는 높은 건물이 없어서 누구나 너른 마당에 나와 해바라기를 하며 추운 몸을 녹인다.
하지만 해가 떨어지자 오한이 들어 몸이 으슬으슬해진다. 저녁을 먹으러 간 곳에서 오기로 맥주 한 병을 시킨다. 어제는 고산지대에 적응한다고 술도 자제하고 활동도 자제했었는데 머리가 아프든 말든 오늘부터는 술을 맛봐야 하지 않겠는가.
오한이 든 데다 맥주까지 술술 넘겼으니 탈이 안 나는 게 이상했다. 머리는 어제부터 계속 아픈데다가 열까지 난다. 급기야 숙소에 와서 의사를 불렀다. 어제도 가이드가 고산증이 심하면 의사 불러서 링거 한 병 맞으라 했는데 라싸에 온지 이틀째에 의사 신세를 진다.
엉덩이 주사 놓는 방법이 우리와 다르다. 바지를 내리라기에 마음의 준비를 하고 엉덩이를 찰싹 때리면 긴장을 풀고 주사바늘을 기꺼이 받아들이리라 다짐했건만 엉덩이는 때리지 않고 바로 따가운 바늘이 들어온다. 주사액을 빨리 넣고 거즈로 눌러서 지혈을 하는 한국과 달리 주사액이 천천히 들어간다. 곁에서 지켜본 아내의 목격담에 따르면 주사바늘을 천천히 눌러가며 한 손으론 면봉을 들고 흘러나오는 피를 닦아 내더란다. 한국 간호사들의 노하우를 알려줬더니 웃는다. 이래봬도 일찍이 1960년대 독일에서도 검증을 받은 한국만의 독특한 노하우다.
1시간가량 링거 두 병을 손수 놓아주고 약까지 지어주고 가셨다. 올 때 두르고 온 목도리는 우리 방에 놔둔 채로. 신기하게도 링거를 맞자마자 머리가 가벼워진다. 심장도 차분해지고. 한국에선 병원에 가본 지 기억도 가물가물하건만 의료보험 한 푼 안 낸 낯선 땅에서 병원신세를 지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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