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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여성살해 : 여성의 죽음을 맥락화-정치화 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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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여기

 

최근 몇 년 사이 언론들은 그 어느 때보다 더 열정적으로 여성이 살해당한 사건들을 보도해댔다. 특히 장애여성과 아동, 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성폭력 사건 및 살인 사건이 큰 주목을 받으면서 정치인들은 이례적으로 한 목소리로 성급한 제안들을 내놓았다. 형량 강화는 물론이고 전자발찌나 화학적 거세에 대해서 신중하게 접근하는 경우가 거의 없어서 사회적 합의나 공적 토론이 불필요해 보일 정도였다. 그러나 정부나 언론, 대중 여론까지도 여성을 살인사건의 피해자의 대표 이미지로 삼고 있지만, 정작 어떤 여성이 어느 공간에서 누구에 의해 무엇을 이유로 살해당하는지 관심을 기울이는 경우는 없다. 한 국가의 주요 언론이라고 하는 매체들에서 알려주는 것이라곤 기껏해야  노출이 심한 차림을 한 술 취한 여성이 밤늦은 시각에 어두운 골목에서 불우한 성장배경을 가진 싸이코패스에게 재수 없게(그러나 어느 정도는 피해자가 요인을 갖고 있어서) 당한다는 것이다. 


이는 성폭력 사건과 관련해 매우 익숙한 남성중심적 설명 방식으로, 여성의 살인사건에도 동일하게 사용된다. 피해여성에게 탓을 돌리는 분위기는 덜하지만 오히려 피해자가 ‘여성’이며 가해자가 주로 ‘남성’이라는 점은 쉽게 은폐된다. 이 때문에 살해당한 여성은 단지 범행을 저지르기에 더 쉬운 상대였을 뿐, 피해자와 가해자가 놓여있는 성의 사회적 맥락은 거의 고려되지 않았다. 피해자와 가해자의 성이 강조될 때는 가해자가 겪고 있는(혹은 그렇다고 가정되는) 심리성적이고 병리학적인 문제가 중심이 된다. 이는 한편으로 살인이라는 중성적인 언어와 생명의 박탈이라는 살인사건의 보편적이고 극단적인 성격에 기인하는 걸로 보인다. 하지만 분명 여성이 살해당한 사건은 다른 사건들보다 더 개인화된다. 수원에서 일어난 칼부림 사건과 같은 소위 ‘묻지마 범죄’의 경우 빈곤, 현대사회의 공동체 붕괴, 사회적 약자의 소외 등을 원인으로 설명하려는 노력들이 있다. 뿐만 아니라 최근에는 장애인 화재 사망사건, 쌍용자동차나 한진중공업 노동자의 자살 등 직접적인 타살이 아닌 경우에도 사회적 차원에서의 살인으로 명명하기도 한다. 이런 것을 생각하면 왜 어떤 살인, 즉 여성이 살해당한 사건은 개인적 차원에서만 설명되는지를 묻지 않을 수 없다. 


지난 3월 7일, ‘세계여성의날’을 하루 앞두고 <한국여성의전화>(이하 <여성의전화>)가 제공해준 매우 소중한 자료에 따르면, 2012년 한 해 동안 최소한(언론에 보도된 경우만 조사함) 120명의 여성들이 남편이나 애인 등 친밀한 관계에 있는 남성의 손에 살해당했다.2 2009년부터 2011년까지 3년간, 보도된 사건만을 조사대상으로 했을 때 289명의 여성이 국내에서 남편이나 애인에 의해 살해당했다. 같은 기간에 대한 통계청 조사에 의하면 3년간 총 835명의 여성이 살해당했다. 이 수치를 <여성의전화>의 자료와 대비시켜보면, 여성의 살인사망사건의 가해자 중 최소 약 35%가 남편이나 애인이었음을 알 수 있다. 또 1997년-2006년 사이의 살인사건을 대상으로 한 한 조사에 따르면, 피해자가 남성인 경우에는 현/구 배우자 혹은 애인의 의한 범행이 25.9%였다. 반면 여성이 피해자인 경우에는 가해자가 현/구 남편이나 애인이었던 사건이 37.5%에 달했다. 여성이 살해당한 사건의 경우 가해자가 모르는 사람인 비율은 26.1%로 (현/구)친밀한 관계인 경우보다 10% 이상 낮았다.3


이러한 조사 결과는 어둔 밤 흉흉한 바깥세상으로부터 여성을 지켜주고 보호해 준다고 간주되는 가정이나 보호자로서의 남성이 여성에게 더 위험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특히 <여성의전화>의 자료에 따르면 친밀한 관계에서의 여성 피해자의 49%가 4-50대인데, 이는 “지속적인 가정폭력이 결국 살해라는 극단적인 상황”으로 이어진 것임을 보여준다.4 이런 점에서 볼 때, 남편이나 애인에 의해 살해당한 여성들의 ‘살아있는’ 목소리는 이 사건들이 우발적인 사고가 아니며 가부장제나 성차별주의 혹은 남성중심주의와 무관한 것도 아님을 가르쳐 준다. 


그러나 이러한 직관에 구체적이고 근거 있는 설명력을 부여하여 여성의 살해사건을 페미니스트의 관점에서 의미화하고 맥락화하기에는 많은 것이 부족한 실정이다. 여성 살해의 일반적 특징, 다른 살인사건들과 대비되는 특수성, 세부적인 유형들, 가부장제나 남성중심주의와의 관련성, 다른 요소들의 개입과 영향력 등을 구체적으로 분석할 수 있는 자료가 국내에는 전무하다. 여성의 살해사건에 대한 국가, 언론, 대중 여론의 엄청난 관심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접근할 수 있는 통계 자료는 살인에 의해 사망한 여성의 숫자나 비율과 같은 아주 단순한 통계뿐이다. 대검찰청이 제공하는 자료가 알려주는 것은 사건이 발생한 시각, 지역이나 장소, 당시의 날씨, 가해자의 학력 수준 등인데, 이것들을 사건의 ‘사회적 의미’를 해석하는 데 근거로 사용하기는 힘들다. 그런데 조사와 연구, 해석의 부재는 그 자체로 여성의 살인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공포, 가해자 처벌, 개별 ‘사건’에 대한 선정적 호기심 등의 언어로만 점철되어 있을 뿐임을 보여주는 징후 같은 것이 아닌가? 더 나아가 여성에 대한 폭력을 페미니즘의 관점에서 해석하는 것을 방해하는 어떤 장애물들이 존재한다는 것을 보여주는 징후가 아닐까?


여성에 대한 폭력의 가장 극단적인 형태로서 여성을 대상으로 한 살인을 명명할 필요가 있다. 어떤 것에 이름을 부여하는 것, 그것을 나름의 입장을 가지고서 개념화 하는 것은 그것의 실체를 드러내기 위한 첫 번째 조건이다. 페미니스트들은 ‘성폭력’이라는 말을 발명함으로써 은폐되어 있던 성폭력의 구조와 특수성을 발견해 내고 현실을 분석하고, 여성의 목소리와 힘을 결집시켜 해결방안을 모색해 나갈 수 있었다. 이와 마찬가지로 여성을 대상으로 한 살인을 페미니스트의 언어로 명명하는 작업은 문제의 심각성과 중요성을 일깨우는 역할을 할 것이다. 이는 관련 연구와 운동의 출발점이 될 뿐 아니라, 어떤 관점을 취하여 어떻게 문제설정을 할 것인지, 그 근거들과 자료들은 어떤 방식으로 모을 것인지, 문제의 해결방안을 누구와 함께 어디에서 어떻게 만들어 나갈 것인지를 결정하는 데 핵심적인 방향키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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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살해 개념의 역사

 

이러한 요청에 의해 서구에서 새롭게 제안된 용어는 “여성살해femicide”이다. 여성살해로 번역되는 페미사이드는 ‘여자’를 의미하는 말인 femi-와 ‘죽임’ ‘살해(자)’를 뜻하는 접미사 -cide를 결합한 조어이다. 이 말은 1801년, 1827년, 1848년에 가해자의 고백록이나 법률용어집 등에서 나타난다.5 그러나 이때의 여성살해는 단순하게 피해자의 성별이 여자임을 의미할 뿐이었다. 이 용어를 페미니스트의 관점에서 사용한 첫 번째 시도는 1974년 경 미국에서 캐롤 올럭Carol Orlock이 여성살해를 제목으로 하는 책을 구상한 것이었는데, 실제로 출판하지는 않았다. 여기에서 힌트를 얻은 다이애나 러셀은 1976년 벨기에 브뤼셀에서 열린 1차 <여성대상범죄 국제 재판>에서 처음으로 이 용어를 공식화 했다. 여기에서 러셀은 여성살해를 “남자들에 의해서 자행되는 여자들에 대한 혐오 살인”으로 정의했다.6 러셀은 여성살해라는 개념을 가장 먼저 제안하기도 했고 또 누구보다도 활발하게 저작 활동과 현장 활동을 펼치고 있는 페미니스트이다. 따라서 그녀의 여성살해 개념 사용의 변천을 좀 더 따라가 보고, 다른 이들과의 논쟁을 통해 수정된 최종적인 개념정의를 살펴보는 것이 좋을 것이다.


이후 러셀은 이 개념을 좀 더 세밀하게 그러나 더 단순하게 다듬기 시작했다. 1990년 제인 카퓨티와 공동 작업한 글에서 여성살해는 “여성들에 대한 증오, 경멸, 쾌락 또는 숭배관에 따른 동기를 가진 남성들에 의한 성차별적 테러리즘의 가장 극단적 형태”로 정의된다.7 


2년 뒤 질 래드포드와 러셀은 함께 편집한 논문집에서“여성들에 대한 남성들의 여성혐오적 살인”으로 재정의한다.8 이후에 여러 연구자들이 여성살해를 조금씩 다르게 정의하는 시도들을 해왔다. 데스몬드 엘리스Desmond Ellis와 월터 디케서레디Walter Dekeseredy는 1996년에 의도적인 남성살해를 호미사이드homicide로, 의도된 여성살해를 여성살해로 정의했다. 1998년에는 재클린 캠벨Jackelyn Campbell과 캐롤 러니언Carol Runyan이 “동기나 가해자의 신분에 상관없이, 여성의 살해”를 모두 여성살해에 포함시켰다.9


이때까지 러셀은 가해자를 ‘남성’에 한정하고 ‘여성혐오’를 동기로 하는 사안만을 여성살해로 인정한다. 이는 여성이 죽임을 당하는 ‘어떤’ 사건들은 가부장제나 성차별주의가 그 근본원인임을 강조하기 위한 것이다. 만일 캠벨과 러니언의 개념처럼 여성살해의 ‘모든’ 경우들을 여성살해라고 칭하게 되면, 우리는 단순 강도 사건이나 무차별적인 폭탄 테러처럼 피해자의 성별이 살인의 동기와 직접적인 관련이 없는 경우에도 피해자가 여자이기만 하면 그 사건을 여성살해로 규정해야 한다. 이는 오히려 여성살해라는 개념의 창안이 갖는 정치적 의미를 모호하게 만들며, 따라서 역설적으로 이 용어를 사용해야 할 필요성을 제거해 버리는 결과를 낳는다. 반대로 엘리스와 디케서레디의 정의는 포괄 범위가 너무 좁은 것이 문제이다. 러셀이 지적하고 있듯이, 고의성을 조건으로 두게 되면 죽일 의도는 없었으나 심각한 구타의 결과로 죽게 된 경우를 여성살해에 포함시킬 수 없게 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러셀은 위의 다른 연구자들의 여성살해 개념을 검토하기 전에 이미 92년에 자신이 제시한 정식을 최종적으로 수정한 상태였다. 2001년 편집자로 참여한 책에서, 러셀은 여성살해를 “여자라는 이유로 남자들이 여자들을 살해한 것”이라고 정의한다.10 그녀는 여성살해가 남성지배와 성차별주의의 극단적 표현임을 명시하면서, 여성살해를 성정치학의 장 안으로 들여옴으로써 이것을 사적이거나 병리학적인 문제로 다루는 태도를 단호하게 거부한다. 이 최종 공식은 살인 동기를 ‘여성혐오’에 한정하던 것을 수정하여 여성혐오 외에도 남성지배나 성차별주의에서 비롯되는 다양한 원인들을 포괄할 수 있도록 하면서도, 이를 “여자라는 이유로”라는 구절로 표현함으로써 개념을 복잡하게 만들지 않을 수 있게 됐다. 

 

 

성장치로서의 여성신체에 가해지는 가부장제의 처벌

 

그런데 러셀의 개념정의에서 “여자이기 때문에” 혹은 “여자라는 이유로”라는 대목은 매우 간결하지만 사실 상당히 복잡한 문제를 야기한다. 러셀은 여성살해가 “여성에 대한 성차별주의적 테러의 연속체의 극단”이라고 설명한다.11 한편 질 래드포드는 “성폭력sexual violence의 한 형태”라고 기술하고 이렇게 “여성살해를 성폭력 연속체 내에 재위치시키는 것은 여성살해의 중요성을 성의 정치학이라는 점에서 수립하는 것”이라고 본다.12 좀 더 최근의 연구결과들을 다루고 있는 델라 구스티나는 “여성에 대한 폭력의 가장 잔혹한 형태로서, 여성살해는 젠더화된 폭력의 연속체 내부에 자리한다”고 주장한다.13


여성살해를 성폭력의 하나로 보는 것은 여성살해를 너무 협소화 하는 것이기도 하고 또한 성폭력을 너무 넓게 규정하는 것이기도 하다. 여성살해는 종종 성적 학대나 강간을 수반하기는 하지만 늘 그런 것은 아니기 때문에 ‘섹슈얼’한 폭력으로 한정할 수 없다. 또 섹슈얼한 요소가 결정적 특징을 구성하지 않는 다른 종류의 폭력이나 학대, 테러 등을 성폭력 범주에 포함시킬 경우, 결과적으로 여성에 대한 모든 종류의 폭력이 아무 구별 없이 뒤섞이게 될 것이다. 반면 여성살해를 젠더폭력으로 보는 것은 여성살해에 포함되어 있는 쾌락적 요소와 섹슈얼리티와 섹스를 통제하는 측면을 탈각하게 된다. 물론 구스티나가 말한 젠더화된 폭력은 젠더폭력과 정확히 일치하는 것은 아니며, 이는 오히려 피해자와 가해자의 관계가 젠더화되어 있다는 것을 의미할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러셀의 지적을 귀담아 들을 필요가 있다. “젠더차별적인 살인”과 같은 용어는 “어떤 젠더가 차별살인의 피해자가 되는지” 그 특수성을 보여주지 못한다는 것이다.14 하지만 러셀이 제시한 성차별주의적 테러라는 범주 역시 문제가 없지 않다. 성차별주의라는 말은 가부장제의 물적 토대, 성적 관계들을 조직화하는 다양한 장치들, 무의식적이거나 심리적인 차원 등을 충분하게 담아낼 수 없기 때문이다. 


러셀이 지적하고 있듯이 폭력은 지배자의 권력이 피지배자에 의해서 위협당한다고 느낄 때 자기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지배자가 사용하는 강제력이다.15 이런 의미에서 래드포드는 여성살해가 “일종의 사형으로서 …… 성계급으로서의 여성을 통제하는 수단으로 기능하며, 그런 한에서 여성살해는 가부장제적 현상유지에 핵심에 있다”고 주장한다.16  남성은 여성에 대해 가부장적 권력을 가진 지배자로서 여성을 보호한다는 명분으로 여성을 통제하기 위해 폭력을 사용하며, 또한 여성이 통제에서 벗어났을 때 처벌하기 위해서도 폭력을 사용한다. 따라서 어떤 때에는 한 사회의 성적 불평등의 정도가 높을수록 여성살해가 증가하지만, 다른 때에는 불평등이 완화될 때 여성에 대한 남성의 폭력이 증가한다. 말하자면 남성들이 자기 권력의 관할 구역이 줄어드는 것을 어디까지 용인할 수 있는가 하는 것이 반여성적 폭력의 증감을 결정하는 것이다. 이렇게 보면 여성살해가 왜 어떤 상황에서 누구에 의해서 어떤 여성을 대상으로 자행되는지를 추적하고 세밀하게 분석하는 작업이 중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섹스-젠더라는 이분법적 개념과 성차별주의라는 개념을 넘어설 필요가 있다. 이런 맥락에서 우리는 『성이론』에서 고정갑희가 제안하고 있는 새로운 개념들을 참조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은 섹스, 젠더, 섹슈얼리티 모두를 포함하는 용어로서 ‘성’ 개념을 제안하고 있으며, 가부장체제를 작동하게 하는 성관계, 성노동, 성장치들을 분석한다.17  이런 개념들은 여성살해의 다층적 측면을 담아내어 풍부하게 이해하면서 동시에 성폭력, 젠더폭력, 섹슈얼리티폭력 각각과 여성살해의 관계를 살펴볼 때 적용해볼만 하다. 서구 언어에서는 찾아보기 힘들지만 한국어에서는 ‘성’이라는 단어는 섹스, 젠더, 섹슈얼리티의 측면 모두를 지칭함으로써 세 측면의 분화와 통합적 특징을 전부 담아낼 수 있다. 이는 여성살해가 성폭력, 젠더폭력, 섹슈얼리티폭력 각각의 연속체에서 가장 극단적인 형태이지 어느 하나에만 해당되는 것이 아님을 설명할 수 있게 해 줄 것이다. 그럼으로써 여성살해는 가부장체제 내에서 여성에게 가해지는 각각의 특수한 폭력들과 그것들의 조합의 최극단에 있는 것으로 위치시킬 수 있다. 


나아가 고정갑희의 “성장치” 개념은 “성차별주의적 테러”라는 러셀의 용어가 갖는 분석적 한계를 넘어설 수 있게 해준다. 앞서 언급했듯이 성차별주의적 테러라는 말은 여성에 대한 폭력의 이데올로기적 측면만을 고려하면서 그 물질적 차원을 구체적으로 보기 어렵게 한다. 또한 여성의 신체에 가해지는 물리적 폭력이 여성에 대한 다른 억압, 지배, 차별, 통제의 생산과 제생산, 여성 정체성의 가부장제적 구성 등과 어떻게 관련되는지를 면밀히 살펴볼 수 있는 개념은 아니다. 반면 성관계, 성노동과 함께 가부장체제의 성체계를 유지하는 것으로서의 성장치 개념은 1)이데올로기적일뿐 아니라 물질적인 장치이며, 2)신체, 국가, 가족, 시장, 서사, 교육, 미디어, 종교 등의 여러 성장치들 사이의 상호작용과 성장치와 성관계, 성노동 사이의 상호관계를 전제한다. 이런 점에서 성장치 개념은 러셀을 비롯한 기존의 여성살해 연구자들이 해온 것보다 더 세밀하고 풍부하게 여성살해를 분석하는 데 유용할 수 있다.


“성장치는 성관계와 성노동을 유지 재생산하는 장치들”이다.18  여성 살해의 경우 무엇보다도 가장 관련이 깊은 것은 ‘신체’라는 성장치일 것이다. 여성살해를 비롯하여 여성 신체에 가해지는 폭력은 가부장제 질서에서 요구하는 규범을 위반한 여성에 대한 처벌이다. 고정갑희는 성장치로서의 신체를 생산/재생산, 소비, 쾌락에 따라 분석하는데 이를 여성살해라는 특정 범주에 적용하면, 생산/재생산, 소비, 쾌락이라는 각 요소가 여성살해의 동기들을 구성하는 방식을 설명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신체라는 성장치에 의한 여성살해 혹은 여성에 대한 폭력을 좀 더 구체적으로 고찰하려면 폭력과 공포가 신체에 대한 처벌과 규율로서 어떤 방식으로 작동하는지에 초점을 맞출 필요가 있을 것이다.


그런데 신체라는 성장치는 독자적인 것도 별개의 것도 아니다. 신체 뿐 아니라 다양한 종류의 성장치들이 상호작용하면서 가부장제적 성관계와 성노동을 생산, 유지, 재생산 하는 방식을 볼 필요가 있다. 여성에 대한 폭력과 관련된 서사, 미디어가 사건을 재현하는 방식, 가족이라는 공간의 폭력성, 국가가 여성에 대한 폭력을 감시하고 처벌하는 방식들 사이의 모순과 불충분함 그리고 변화과정, 교육의 공간에서 발생하는 여성에 대한 폭력과 이 폭력을 가르치고 배우는 방식, 종교 교리에 내재되어 있는 반여성적 폭력성 등은 이미 많은 페미니스트들이 작업을 해왔던 쟁점들이다. 그 작업들을 성장치라는 개념 하에서 통합적이고 유기적인 관점으로 다시 볼 수 있을 것이다.

 


여성살해의 범위와 유형

 

여성살해에 대한 논의에서 중요한 쟁점은 여성살해의 범위를 결정하고 특정한 기준에 따라 유형을 분류하는 일과 관련된다. 여러 연구자들도 마찬가지이지만 러셀의 작업은 이런 측면에서 말끔하게 정리되어 있지는 않다. 우리는 러셀이 다른 연구자들의 견해를 고려하면서 자신의 정식화에 포함되지 않는 사안들을 여성살해와 관련해 어떻게 위치시키고 있는지를 따져봄으로써, 여성살해의 범위와 유형화와 관련된 여러 쟁점들을 추출해 볼 수 있다.

 

가해자의 범위: 여성은 여성살해의 가해자가 아닌가?

 

러셀은 인도의 페미니스트들이 제기한 ‘남성의 이익을 위한 여자들의 여자 살인’에 대해서 언급한다. 여기에는 아들이 아니라는 이유로 엄마가 여아를 무관심 속에 방치함으로써 죽게 만드는 것이나, 결혼지참금 문제로 시어머니가 며느리를 살해하는 경우들이 포함된다. 러셀은 이것이 자신의 여성살해 정의를 지역의 특수성에 맞게 적용한 것이라고 보고 여성살해 유형화에 도움을 준다고 말한다. 그러면서도 러셀은 이를 여성살해 안에 포함시키지 않고, ‘여자의 여자 살인’으로서 별도의 범주로 분류한다. 러셀은 살인과 관련된 용어들을 젠더화할 필요성을 피력하면서, 여성살해를 살인자와 사망자 사이의 관계를 젠더화하는 용어 중 하나로 위치시킨다.19  반면 마리아 크로포드Maria Crawford와 로즈마리 가트너Rosemary Gartner는 친밀한 파트너에 의한 여성살해를 정의할 때 가해자를 남성으로 한정하지 않으며, 남아프리카의 연구자들 역시 마찬가지이다. 

 

낸시 글래스Nancy Glass는 동성 파트너에 의한 여성살해와 관련된 별도의 연구를 진행하기도 했다.20  사실 러셀 역시 자신의 주장과 모순되게 “여자가 저지른 여성살해 유형화”라는 제목의 도표를 제시하고 있다.21 이 표에는 음핵절제술을 여성이 시행했거나 방조한 경우, 미망인이 된 딸을 어머니가 화형에 처하도록 하거나 그런 화형을 방조한 경우, 명예살인을 시행하거나 방조한 경우 등 여성이 가부장제의 대리인으로서나 남성 가해자의 대리인으로 가담하는 경우들이 포함된다. 뿐만 아니라 질투나 경제적 이유로 며느리나 남편의 애인, 레즈비언 파트너를 살해한 경우나 다른 여성의 학대가 원인이 되어 자살하는 경우까지도 포함되어 있다. 하지만 러셀은 “살인자와 피해자 관계에 기초한 여성살해 유형화”라는 제목의 표에서는 다시 여성 가해자를 제외한다.22  그런데 그 이유에 대해서 논증하지는 않는다. 


이러한 태도는 한편으로는 여성 살인이 남성 살인과 대칭점에 놓여있는 게 아니라는 것을 두드러지게 해 주는 장점을 갖는다. 하지만 그동안 페미니스트들은 여성들이 단순히 ‘피해자’이기만 한 것이 아니라 가부장제나 성차별주의와 협상하고 공모하기도 하며 거기에서 이득을 얻기도 하고 또 견딜 수 있는 한도에서 저항하거나 이탈하려는 모순적이고 동요하는 ‘주체’라는 점을 배워왔다. 여성을 가해자의 영역에서 배제하는 것은 여성을 자신의 행위에 대해 책임을 지고 설명을 할 수 있어야 하는 주체로 인정하지 않는 걸로 보일 수 있다. 나아가 여자를 살해한 모든 사건이 여성살해가 아니라면, 그리고 한 사건이 여성살해인지 아닌지를 결정하는 핵심이 살해동기라면, 성차별주의적이고 가부장제적인 살해동기를 공유하고 있는 여성들을 가해자 범주에서 배제하는 필연적인 근거가 무엇인지에 대한 분명한 답변이 있어야 한다. 

 

여성살해 유형 분류에 적합한 기준은 무엇인가?

 

이 문제는 첫 번째 쟁점과 관련되어 있다. 대체로 많은 연구자들이 여성살해를 세부 범주로 유형화할 때 피해자와 가해자의 관계를 그 분류 기준으로 삼고 있다. 러셀은 앞서 언급한 표 2.2에서 여성살해를 ① 파트너 여성살해 ② 가족 여성살해 ③ 그밖에 면식범에 의한 여성살해 ④ 낯선 사람에 의한 여성살해로 분류하고 있다. 엘리스와 디케서레디 역시 거의 유사한 방식을 취하고 있다. 이는 일반적으로 살인사건을 분석할 때 피해자-가해자 관계가 살인의 맥락과 역학을 이해하는 데 핵심적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이 방식은 여성의 보호자로 간주되는 친밀한 관계의 남성과 안전지대로 여겨지는 가족이라는 공간이 실제로는 상당히 위험할 수 있다는, 여성에 대한 폭력의 특수성을 잘 보여주는 장점이 있다.


이와 달리 샬롯 왓츠의 분류 기준은 다소 일관성이 없어서 적절한 분류라고 판단하기는 어렵지만 러셀보다 더 다양한 종류의 사건들을 포괄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그녀는 ① 친밀한 관계의 여성살해 ② 다른 가족 성원에 의한 여성살해 ③ 성적 여성살해 ④ 마녀사냥 여성살해 ⑤ 의례에 따른 여성살해 ⑥ 폭력을 경험하고 있는 여성의 자살 ⑦ 강도에 의해 살해당하는 경우로 유형화를 제시한다.23  이는 러셀이 누락시키고 있는 집단적이고 제도적인 여성살해와 학대당한 여성의 자살을 고려할 수 있는 분류이다. 러셀이 여성살해의 사회적 맥락과 구조를 강조하고는 있지만, 위의 분류는 그 방식으로 인해 개별 사건에 초점을 맞추게 된다. 예컨대 음핵절제술에 의한 죽음의 경우 러셀의 분류체계에서는 가족에 의한 여성살해나 면식범에 의한 여성살해 정도에 포함될 것이지만, 왓츠의 분류방식에서는 의례에 따른 여성살해로 분류됨으로써 개별적인 피해자와 가해자보다는 가부장제적 제도나 관습 자체에 초점을 맞출 수 있게 된다. 그러나 왓츠의 유형화에서 학대당한 여성의 자살은 여전히 논쟁적인 영역이다.

 

모니크 위디아너는 좀 더 복잡한 방식을 제안한다. 그녀는 여성살해를 먼저 ‘살인’과 ‘여성혐오적 실천들, 유기, 굶주림, 여성성기절제, 에이즈, 임신에 의한 죽음’으로 크게 나누어 놓고, ‘살인’의 영역을 세부적으로 다루고 있다. 살인은 ① 남성면식범 ② 여성가해자 ③ 미상으로 분류되며, 남성면식범은 친밀한 파트너와 친밀하지 않은 파트너로 분류된다. 그 중 후자에는 아는 사람, 낯선 사람, 다른 가족이 포함되며, 친밀한 파트너는 현재 파트너, 과거의 파트너, 다른 가족이 포함된다. ③의 미상에는 무력충돌, 강도나 갱단 등이 포함된다.24   이 분류는 러셀의 것보다 더 세분화 되어 있고 직접적인 살인과 다른 요인에 의한 죽음을 구별해 놓은 것은 장점으로 볼 수 있다. 하지만 위디아너 역시 피해자와 가해자의 관계를 분류 기준으로 삼음으로써 집단적이고 제도적인 사례들을 분명하게 드러낼 수 없다.

 

이에 비해 백수진의 유형화는 훨씬 도움이 된다. 

 

① 개인 남성에 의한 여성살해 : 
아내살해, 염산테러, 연쇄살인
② 종교에 의한 여성살해 : 
마녀사냥, Suttee, 여성성기절제
③ 제도에 의한 여성살해 : 
지참금 살해, (포기에 의한) 여아낙태/유기
④ 가부장적 문화에 의한 여성살해 : 
명예살인, (선호에 의한) 여아낙태
⑤ 분쟁에 의한 여성살해 : 전쟁 중 여성살해25

 

이는 여성살해의 사회구조적 측면을 매우 잘 드러내면서도 다양한 경우들을 포괄할 수 있고, 각각의 범주마다 피해자-가해자 관계에 따른 세부 분류도 가능하기 때문에 여성살해에 다각적으로 접근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첫째로 ‘가부장적 문화에 의한 여성살해’는 나머지 범주 모두를 포괄할 수 있기 때문에 다른 범주들과 나란히 놓일 수 없는 상위의 범주로 보는 것이 더 타당할 수 있다. 더 논쟁적인 지점은 ‘여아낙태’이다. 이것은 별도의 쟁점이 될 수 있을 정도로 큰 문제이다.

 

여아낙태를 여성살해로 볼 것인가? 

 

러셀은 여아낙태를 여성살해에 포함시키지 않는다는 것을 분명히 한다. 그 이유를 상세하게 설명하지는 않지만, 그녀는  “이 성차별주의적 관행에 적합한 용어는 여자 태아살해”라 주장한다.26 러셀은 기본적으로 여성살해를 피해자와 가해자의 관계에 따라 분류하고 직접적인 살인으로 한정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좀 더 은밀한 형태의 여성살해가 있다는 것을 부정하지 않으며, 자신의 개념이 모든 종류의 성차별주의적 살인에 적용될 수 있다고 본다. 예를 들어 임신, 출산, 낙태 등을 결정할 권리가 여성에게 주어지지 않는 곳에서 부적절한 방법으로 낙태를 시도하다가 죽는 경우, 검증되지 않은 피임약 테스트에 의해 죽는 경우, 남아선호에 의해 여아가 죽는 경우 등이 이러한 은폐된 형태의 여성살해이다. 그러나 남아선호에 의해 여아가 죽는 경우에는 성감별 낙태는 포함되지 않고 출산 후에 음식을 주지 않아 방치하거나 아니면 직접 살해하는 경우만 해당된다. 러셀은 샤론 홈Shron Hom이 여성의 생명의 평가절하에 따른 결과들까지를 ‘사회적 여성살해’로 포함시키는 것에 반대하면서, 여성의 생명을 평가절하 하는 것은 “모든 가부장제의 특징으로서……지나치게 포괄적”이라고 지적한다.27 


둘째로 문제가 되는 것은 임신, 출산, 임신중지에 대한 여성의 결정권과 관련된다. 이 권리는 페미니스트들이 오랫동안 쟁취하려고 애쓰고 있는 여성의 권리 중 하나이다. 성감별 후 여아낙태로 한정하여 여성살해로 인정한다고 하더라도, 태아를 여자나 여성으로, 즉 하나의 독립적 인격체로 인정하는 셈이 되기 때문에 페미니스트들의 일반적 주장에 대립하게 된다. 문제는 중국에서처럼 여아낙태가 남아선호사상과 인구정책이 결합되어 매우 대규모로 그리고 노골적으로 이루어지는 경우이다. 이때는  여성살해를 의제화하고 문제 해결을 위한 액티비즘을 구성하기 위해 여아낙태가 상당히 핵심적인 위상을 가질 수도 있다. 따라서 여성살해와 남아선호로 인한 여아낙태의 관계를 좀 더 분명하면서도 세밀하게 보여줄 수 있는 논리가 절실하다.

 

여성살해에 포함시켜야 할 ‘여성’과 ‘죽음’의 영역은 어디까지인가?

 

앞에서도 보았듯이 러셀은 직접적인 살해가 아니라 좀 더 은밀한 형태의 여성살해가 있다는 것을 인정하지만, 여성살해와 다른 여성의 살해와의 관계를 보여주거나 여성살해의 종류를 유형화할 때는 이런 은밀한 형태의 여성의 죽음을 엄밀한 의미에서의 여성살해로 보지는 않는다. 우리가 무언가를 개념화할 때는 현실에서는 그렇게 명확하게 구별되지 않는 것들을 개념적으로 구별하여 경계표시를 할 필요가 있다. 그것은 이론적으로 좀 더 세심하고 분명한 분석틀을 제공하고 인식론적으로 어떤 특정한 관점을 취했을 때 간과하기 쉬운 특수한 경험들과 조건들을 놓치지 않기 위해서이다. 또한  운동을 조직하고 캠페인을 벌이고 필요한 제도를 마련할 때 무엇부터 어떻게 해나갈지를 결정하기 위해서이기도 하다. 이 절에서는 가부장체제에서의 성관계, 성노동, 성장치에 의한 여성들의 죽음의 사례들을 살펴보면서, 이런 죽음들을 여성살해에 포함시켜야 하는지 아닌지 하는 물음을 던져보고자 한다. 


첫째로 여성 성소수자들의 죽음이 있다. 레즈비언과 트랜스젠더는 이성애라는 규범과 젠더정체성이라는 규범을 심각하게 위반한 죄로 비난, 폭력, 죽음의 위협에 노출되어 있는 집단이다. 래드포드는 여성살해 유형들을 나열하면서, 동성애혐오적 여성살해 혹은 레즈비사이드lesbicide라는 용어를 사용한다. 하지만 동성애혐오와 여성살해 사이의 관계에 대한 적극적인 탐구는 아직까지는 찾기 어렵다. 일반적으로 여성살해 연구는 친밀한 관계에서의 살해에 초점을 맞추지만, 레즈비언이나 트랜스젠더의 경우 친밀한 관계에서의 살해가 이들의 죽음의 역학을 가장 잘 보여준다고 하기는 어렵다. 물론 레즈비언 커플 사이에서도 여성혐오나 동성애혐오로 인한 폭력이 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는 없다. 하지만 레즈비언에 대한 이른바 ‘교정강간’ 및 폭력과 살해는 대부분 이성애자 남성이 저지르는 것이고, 게이에 대한 강간, 폭력, 살해가 상대적으로 적다는 점은 레즈비언 살해의 특징을 두드러지게 보여줄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여성 성소수자들이 살해당하는 것은 훨씬 더 복잡할 수 있다. 


레즈비언의 경우 남성중심주의라는 견지에서 바라본다면 이들은 가장 먼저 ‘정상적인 여성성을 추구하지 않아서’ 폭력을 당하는 것이겠지만, 이성애중심주의라는 견지에서 보면 핵심은 ‘이성애자가 아니라’는 데 있다. 따라서 레즈비언이 살해당한 사건을 동성애혐오에 의한 것으로 규정할지 아니면 여성혐오나 성차별주의에 의한 것으로 규정할지, 혹은 그 두 요소가 어떻게 결합되어 각각이 얼마나 영향을 끼쳤는지를 판단하려면, 이성애중심주의와 남성중심주의의 관계라는 상당히 복잡한 문제가 선결되어야 한다. 이 두 가지는 모두 가부장체제의 성관계를 구성하는 요소이다. 트랜스젠더의 경우, 위와 유사한 문제(트랜스젠더혐오냐 여성혐오냐)와 더불어 여성살해의 ‘여성femi-’이라는 부분과 관련된 복잡한 문제가 발생한다. 예를 들어 피해자가 성전환수술을 하지 않아 신체적 특징의 측면에서는 남성이지만 자신을 여성으로 정체화하는 경우, 혹은 자신을 여성이나 남성 어느 쪽과도 동일시하지 않는 경우에 (가해자의 살해동기가 분명하게 성차별주의에서 비롯되었음을 전제로) 어떤 판단을 내릴 것인가? 


둘째로 생각해볼 것은 성별분업에 기반한 직업군에서 나타나는 질병이나 산업재해로 인한 사망이다. 가부장체제가 구성하고 강제한 노동분업 체계에 결박되어 있는 여성들에게 문제는 직장 내 성희롱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다. 성별분업은 그 자체로 성차별적이고 성억압적이며 성착취적이다. 이런 관점을 취하여 두 가지 경우를 비교해 볼 수 있다. 러셀과 카퓨티는 성매매를 ‘성노예’로 규정하면서 반여성적 테러의 한 형태로 간주한다.28  그렇기 때문에 여기에서 성매매와 여성살해는 동일선상에 놓이게 된다. 이런 입장을 취하면 매춘여성이 그 일과 관련하여 어떤 이유로 사망했을 때 그것은 직접적인 살해가 아니더라도 적어도 은밀한 형태의 여성살해로 인정될 수 있다. 반면 이들을 포함한 대부분의 연구자들은 성별분업에 따른 다른 노동에서의 죽음은 여성살해로 언급하지 않는다. 


그런데 성매매를 ‘성노예’가 아니라 ‘성노동’의 하나로 보는 관점에서는 가부장체제 하에서 여성들이 수행하는 노동은 기본적으로 ‘성노동’일 수 있다. 가사노동도 특정 직업군에서의 노동도 매춘노동도 모두 ‘성노동’이다. 이렇게 볼 때 만일 우리가 매춘여성이 혐오에 의해 살해당하는 직접적인 경우 외에도, 업소의 열악한 환경이나 그 여성들이 모여 지내는 거주지의 안전 문제로 인해 사망하는 것 혹은 매춘노동에 따른 여파로 (예컨대 에이즈에 감염) 사망하는 것을 여성살해로 인정하기로 한다면, 삼성반도체에서 근무했던 여성들이 백혈병으로 사망하는 경우도 여성살해로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한국에서뿐 아니라 전세계적으로 반도체 공장에서 세밀한 작업을 수행하는 것은 대부분 여성들이며, 미국의 경우에는 특히 유색인 여성들이다. 고등학교 졸업을 앞두고 반도체 공장에 취직이 된 십대 여성들이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안고서도 그 직장을 던져버릴 수 없는 것은 그들이 대학 졸업장이 없는 여성노동자이기 때문이다. 


요컨대 매춘을 성적 학대로 규정할 때는 매춘에 의한 죽음이 여성살해로 규정될 수 있지만, 그것을 성노동으로 개념화한 후에도 여전히 매춘노동에 의한 죽음을 여성살해로 규정할 것인지 아니면 산업재해로 볼 것인지를 결정하는 문제가 남는다. 또한 성노동으로서의 매춘노동에 의한 죽음을 여성살해로 규정한다면 다른 성별분업에 따른 여성의 노동에 결과로 죽음에 이르는 경우도 여성살해에 포함시킬 것인지도 고려해 봐야 할 문제가 된다.


마지막으로 성폭력과 학대의 결과로 여성이 자살을 하는 경우도 여성살해로 볼 것인지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다. 성폭력과 지속적인 가정폭력에 노출된 여성들이 무기력해지고 우울증에 시달리며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일이 적지 않다는 것은 잘 알려져 있다. 특히 성폭력과 가정폭력에 대한 정부와 사회의 인식 수준이 낮을수록 여성들은 이 상황에서 빠져나올 수 있는 아무 도움도 받지 못하기 때문에, 자살을 하거나 아니면 가해자를 살해한다. 범죄연구자들뿐 아니라 페미니스트들조차 이런 경우에 ‘매맞는 아내 신드롬’과 여성이 가해자를 살해하는 여성살인범죄에 주로 초점을 맞추어 왔다. 국내에서도 포털사이트에 ‘여성살해’를 검색하면 극악무도한 살인사건에 대한 선정적인 보도들과 함께 여성이 남편이나 애인을 살해한 사건들을 분석한 논문자료들이 주로 발견된다. 


상대적으로 관심을 덜 받는 자살의 경우, 최근 한국사회에서 잇따라 발생하는 노동자들의 자살이나 장애인이 이동권을 보장받지 못하여 화재 등으로 사망한 사건을 ‘사회적 살인’ 혹은 ‘사회적 타살’이라고 명명하기 시작한 것과 관련해 생각해볼만하다. 성폭력이나 학대를 경험한 여성들은 도움을 거의 받을 수 없는 사회적 조건 속에서, 자신이 죽거나 가해자를 죽여야 문제 상황을 종결지을 수 있는 폭력적인 양자택일로 내몰리고 있다. 이때의 자살을 단순히 개인의 비윤리적 선택으로 볼 수는 없다. 여기까지는 대부분이 동의할 수 있겠지만, 문제는 ‘사회적 살인’이라는 말을 수사적으로 사용할 것인지 아니면 실질적인 효과를 노리는 개념으로 사용할지, 다시 말해 의제를 설정하여 그에 대한 이론적 토대를 마련하고 액티비즘을 조직하기 위한 개념으로 사용할지 하는 것이다. 


케이트 밀레트는 이미 『성의 정치학』에서 비전문적인 낙태로 인한 죽음, 임신으로 인한 자살 등을 “간접적인 사형”으로 규정한 바 있다. 또 우리는 앞에서 페미니스트들이 자기결정권의 박탈이라는 사회적 조건 하에서 비전문적 낙태 시술에 의해 죽게 되는 경우를 은밀한 형태의 여성살해에 포함시킨다는 것을 보았다. 물론 여성이 죽을 수도 있는 가능성을 알면서도 비전문적 방법을 선택하더라도 그것을 자살과 동일시할 수는 없다. 하지만 판단 기준이 직접적으로 죽음을 선택했는지 여부보다는 죽음을 무릅쓰게 만드는 사회적 조건이라고 한다면 성폭력이나 학대로 인한 자살 역시 은밀한 형태의 여성살해에 포함시킬 수 있을 것이다. 

 

 

펼쳐보기와 초점 맞추기

 

지금까지 살펴보았듯이 여성살해는 개념적으로 아직 여러 가지 논쟁적인 문제들을 완전히 해결하지 못했다. 위에서 미처 다루지 못한 인종, 국가, 계급, 종교, 장애여부 등에 따른 차이들과 특수성들도 여성살해 개념 정립과 유형화 및 사건발생에 영향을 미치는 요소들이다. 예를 들어 일반적으로는 여성들의 소득이 낮을수록 여성의 살해비율이 높아지는 것으로 보이지만, 미국에서 흑인여성의 경우 소득의 고저는 유의미한 변수로 작용하지 않는다.29 흑인 커뮤니티에서는 여성의 노동이 가족과 흑인 집단을 부양하는 중요한 역할을 하기 때문에 여성의 소득 증가가 흑인남성에게 위협이 되기보다는 오히려 보호와 도움을 제공해 주는 것으로 여겨지기 때문일 것이다. 또 아프리카 남부 지역에서는 성경험이 없는 여성과 성관계를 맺으면 에이즈가 치료된다는 미신 때문에 남성 에이즈 환자들에 의해서 여성들이 강간당하고 에이즈에 감염되어 죽는 경우들이 관심의 대상이 된다. 멕시코의 경우 여성살해는 마약산업 및 갱단, 포르노 산업과 연루되어 있다. 


이러한 여러 차이들과 수많은 요인들을 하나하나 펼쳐놓고 각각의 것들이 여성살해의 가장 중심이 되는 근본 원인으로서의 가부장체제에서 어떤 방식으로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지, 그리고 여성에 대한 폭력과 그 극단적 형태인 여성살해의 발생에 어떻게 관계되는지를 구체화하는 작업이 필요하다. 하지만 동시에 핵심이 무엇인지를 결정하고 초점을 맞추는 일도 매우 중요하다. 너무 많은 종류의 여성의 살해를 여성살해로 규정하면 오히려 여성살해의 개념화가 갖는 정치적 힘이 퇴색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면서도 여성살해가 갖는 극단적인 성격으로 인해 여성에 대한 폭력이 갖는 일상적이고 친숙한 얼굴이 망각되도록 해서도 안 될 것이다. 


한국에서 살인사건은 해마다 감소하는 추세이며, 여성의 살인사망률은 남성에 비해 낮은 편이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여성살해의 동기와 피해자-가해자 관계가 점점 더 반여성적이고 성차별적인 특징을 보인다는 점이다. 구스티나의 연구에 따르면 성평등의 수준과 여성에 대한 폭력의 발생비율은 일관되게 비례관계인 것도 반비례관계인 것도 아니다. 어떤 경우에는 여성의 사회적, 경제적 지위가 상승할수록 여성살해가 줄어드는 것으로 나타났지만, 다른 경우에는 그 반대의 결과를 보이기도 한다. 후자의 경우를 남성의 반격으로 설명하는 페미니스트들은 여성평등의 증대로 인해 위협을 느낀 남성들이 권력 유지 수단으로 폭력을 사용한다고 주장한다.30 최근 몇 년간 한국사회에는 이 반격이론의 증거들이 자주 그리고 거세게 나타나고 있다. 남성들은 한편으로는 경제적 능력을 가진 여성들, 사회 규범에 순종적이지 않은 젊은 여성들, 과거에는 남성의 영역으로 여겨졌던 것들을 누리지만 그것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는 여성들, 결혼이나 연애에서 협상을 주도하려는 여성들을 된장녀, 꼴페미, 김여사, 보슬아치 등으로 세세하게 분화하여 경멸적인 이름표를 붙여주고 있다. 남성들의 이러한 분노, 공포와 당황스러움이 지금은 인터넷상의 언어적 폭력으로 나타나지만 언제 어디에서 물리적 폭력으로, 그리고 여성의 살해로 전개될지는 모르는 일이다. 


여성살해는 1970년대 중반에 제기되어 지금까지 꾸준한 논의가 있었지만 몇몇 지역을 제외하고는 페미니즘과 여성운동의 중심의제로나 핵심개념으로 자리를 잡지는 못했다. 러셀을 위시한 몇몇 페미니스트들이 주장하듯이, 여성살해를 경험한 여성 자신의 목소리가 생존해 있지 못하기 때문에 그 경험에 의미를 부여하는 작업이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또한 죽음이 갖는 보편적이고 극단적인 성격으로 인해 여성의 살해가 갖는 젠더화되고 반여성적이며 여성혐오적인 특성이 은폐되는 한편 상당히 예외적인 개별 사건으로 치부되어 온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무엇보다도 여성에 대한 폭력이 강간과 살해로 대표됨으로써 가정과 일터를 비롯한 온갖 일상적 공간에서 일어나는 폭력들이 무시되는 상황에 대한 우려가 더 컸을 것이다. 지난해 오마이뉴스와의 인터뷰에서 권인숙은 “성범죄 보도의 증가가 ‘공안통치’를 향한 위정자의 욕망, 그리고 언론의 상업주의와 무관하지 않다”고 지적하면서 “몇몇 극단적인 성범죄 사례에 대한 언론의 선정적인 보도가 여성이나 아이들에게 ‘과장된 공포’를 심어준다”고 우려를 나타냈다. 이에 대해 동의하지 않는 페미니스트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우려 때문에 페미니스트 관점에서 문제설정을 하고 담론과 운동을 만들어 가는 작업을 미룰 필요는 없다.

 


주석

1      이 글은 여성문화이론연구소의 『여/성이론』 28호 <페미니즘 사전>에 실린 “페미사이드”라는 필  자의 글을 다소 수정하고 재구성한 글임을 밝힌다.
2    <한국여성의전화> 홈페이지, 보도자료, “2012년 작년 한해 남편이나 남자친구에 의해 살해당한 여성 최소 120명”, 첨부파일 “2013 한국여성의전화 상담통계 및 언론보도 분석”, http://www.hotline.or.kr
3      강은영, 박형민 저, 『살인범죄의 실태와 유형별 특성: 연쇄살인, 존속살인 및 여성살인범죄자를 중심으로』, 한국형사정책연구원, 2008, 327쪽.
4      한국여성의전화, 위의 자료, 2쪽.
5     1801년에는 『19세기 벽두 런던 풍자관』에서 ‘여성의 살인’을 의미하는 것으로 쓰였다. 1827년에는 『처벌받지 않은 여성살해에 대한 자백』이라는 글이 출판됐는데, 이는 여성을 살해한 가해자인 윌리엄 맥니쉬 자신이 작성한 것이다. 1848년에 출간된 『법률용어집』에는 여성살해가 기소할 수 있는 범죄가 되었다고 설명되어 있다. Diana E. H. Russell, “Defining Femicide and Related Concepts”, Femicide in Global Perspective, edited by Dianan E. H. Russell & Roberta A. Harmes, Teachers College Press, 2001, p.13.
6     Russell, “The Origin and Importance of The Term Femicide”, <Stop Femicide!> Conference in Amsterdam, 2011. (www.dianarussell.com)
7     Russell & Jane Caputi, “Femicide: Sexist Terrorism against Women”, Femicide: The Politics of Woman Killing, edited by Diana E. H. Russell & Jill Radford, Twayne Puplishers, 1992, p.15 (1990년에 잡지 <Ms.>에 실렸던 “Femicide: Speaking the Unspeakable”을 본 논문집에 다시 실음.)
8      Russell, “Preface”, ibid., 1992, xi.
9      Russell, “Defining Femicide and Related Concepts”, ibid, 2001, pp.14-15.
10    Russell, “Introduction: The Politics of Femicide”, ibid, 2001, p.3.
11    Russell, ibid., 2001, p.4.
12    Radford, “Introduction”, Femicide: The Politics of Woman Killing, 1992, pp.3-4
13    Jo-Ann Della Guistina, Why Women Are Beaten and Killed: Sociological Predictors of Femicide, Edwin Mellen Press, 2010, p.7
14    Russell, “The Origin and Importance of The Term Femicide”, 2011.
15    Russell, “Femicide: Some Men’s ‘Final Solution’ for Women”. 2001, p.176.
16    Radford, ibid., p.6. 
17    고정갑희, 『성이론』, 2011, 도서출판 여이연.
18    위의 책, 201쪽.
19    Russell, “Defining Femicide and Related Concepts”, ibid, 2001, p.13. 여기서 러셀은 살인 관련 전문용어 젠더화를 다음과 같이 분류한다.
         1 살인 자체를 젠더화하기: woman-killing, girl-killing, 
          female- killing, man-killing, boy-killing, male-killing 
          2 살인자를 젠더화하기: 
          male-perpetrated kliller, female-perpetrated kliller
          3 살인자-사망자 관계를 젠더화하기: a.남자의 남자살인, b.남자의 여자살인(여성살해, 비여성살해 살인), c.여자의 여자살인, d.여자의 남자살인.
20    Monique Widyono, “Conceptualizing Femicide”, Conference <Strengthening Understanding of Femicide - using research to galvanize action and accountability>, 2008, p.8.
21    Russell, ibid., p.17, Table 2.1.
22    ibid., p.21, Table 2.2.
23    Charlotte Watts, Susanna Osam & Everjoice Win, “Femicide in Southern Africa”, Femicide in Global Perspective, edited by Dianan E. H. Russell & Roberta A. Harmes, Teachers College Press, 2001, pp.91-92
24    Monique Widyono,, ibid., p.11, Figure1.
25    백수진, “여성주의 관점에서 Femicide 개념 구축하기”, 한국여성학회 제25차 추계학술대회 <장소로서의 몸>, 2009, 50쪽.
26    Russell, “The Origin and Importance of The Term Femicide”, 2011.
27    Russell, “Defining Femicide and Related Concepts”, ibid, 2001.
28    Russell & Caputi, 1992, p.15.
29    Della Guistina, ibid., pp.38-41
30    Della Guistina, ibid., pp.17-19, 42-48(Table 1. Gender Equality Variables in Femicide Studies.) 참조.

 


참고문헌

강은영, 박형민 저, 『살인범죄의 실태와 유형별 특성: 연쇄살인, 존속살인 및 여성살인범죄자를 중심으로』, 한국형사정책연구원, 2008, 
권인숙 인터뷰, 홍현진, 유성호 기자, <“성폭력 보도 4배 증가”... 그들이 노리는 것은?>, 2012년 9월 6일자 기사, www.ohmynews.com
고정갑희, 『성이론』, 2011, 도서출판 여이연.
백수진, “여성주의 관점에서 Femicide 개념 구축하기”, 한국여성학회 제25차 추계학술대회 <장소로서의 몸>, 2009
<한국여성의전화>, 보도자료 “2012년 작년 한해 남편이나 남자친구에 의해 살해당한 여성 최소 120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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