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01년 12월22~25일

 

연말여행 첫날(12월22일)

2001년 연말, 너무도 정신없이 핑핑 돌아가는 하루하루였다.

엄마가 입원해 계신 병원에서 날을 지새고, 이어지는 수련회, 송년회 등등...

설악산에 오르기 위해 22일 오후2시 청량리에서 떠나는 기차를 타기로 약속해둔 터였지만, 과연 내가 그 시간에 맞추어 나갈 수 있을지조차 불투명했다.

21일 밤부터 시작된 신문조판은 다음날 아침 9시가 돼서도 끝날 기미가 없었다.

불안해진 나는 조바심을 내기 시작했고, 얼추 일이 끝나자마자 민망한 표정으로 사무실을 나서 집으로 뛰었다.

배낭을 어떻게 챙겼지는지 모르겠고, 겨우 2시를 몇분 남긴 시간에 청량리역에 도착했다.

어찌어찌,,, 정신없이 기차에 몸을 실었고, 며칠 째 잠을 못 잔 탓에 서둘러 차창에 머리를 기대고 잠을 청했다.

그러나, 열차의 가장 큰 맹점은 시끄럽다는 것. 바로 옆자리에 앉은 아이 둘이 낀 일가는 계속해서 울고, 소리지르고, 전화통화를 하고, 징징댄다.

원주를 지나 빈자리가 곳곳에 생겨날 즈음 ‘민영화 저지’라는 투쟁조끼를 입은 승무원 아저씨, 엄밀히 말하면 철도노조 조합원과 말을 텄다.

우리가 건넨 음료수와 ‘꼭 민영화를 저지시키라’는 한모의 약간의 주책맞은 멘트 덕에 그 철도노동자는 아예 우리 옆에 자리를 잡고 앉아 본격적인 수다를 떨기 시작했다.

민영화저지투쟁으로 시작한 이야기는 기차타는 별의별 인간군상에 대한 품평까지 이어지고, 어느덧 우린 정동진을 지나 밤 9시가 가까운 시각에 강릉역에 도착했다.

 


당초 이번 여행에 끼기로 했던 철. 둘째형 결혼식과 전공련 일이 겹쳐서 결국 합류하지 못하게 된 철이 우릴 기다리고 있다. 낙산으로 오라는 엄명이다.

낙산가는 차를 탔고, 철이 다시 양양으로 오라며 지침을 변경했고, 우리는 도중에 내릴 곳을 지나쳐 결국 낙산에서 내렸고, 다시 양양가는 버스를 기다렸고, 버스를 잘못타서 길 한가운데 다시 내던져졌고, 워낙에 버스 기다리던 곳으로 다시 걸어갔고, 어찌어찌 겨우 양양가는 막차를 탔고, 드디어 양양에 무사히 도착했다.

철이는 공무원이라는 다른 친구와 함께 판을 벌려놓고 우릴 기다리고 있었다.

나서 처음 먹어보는 도루묵과 도치, 도치는 강원도에서 신퉁이라고 한다. 철과 그의 친구는 귀하고 맛좋고 비싼 것이라며 계속 권한다.

끈적끈적한 알들, 영화 에일리언에 나왔던 괴물들의 알같기도 하고, 이것들이 내 배속에 들어가서 에일리언으로 부화하는 것은 아닌지하는 불안감을 숨기며 겨우 한 숟가락...

요상한 알과 함께 소주는 꿀꺽꿀꺽 잘도 넘어갔고, 우린 다시 낙산으로 옮겼다.

철이 사촌형이 예약해두었다는 모텔은 무지하게 깨끗했다.

철과 그의 친구에게 진 신세는 꼭 갚아야 할 순번 1호로 머릿속에 저장한다.

맥주를 한 캔 마시고, 내일아침 6시반에 일어날 것을 굳게(?) 결의하며 곯아떨어졌다.

 


연말여행 둘째날(12월23일)

아침일찍 일어나기로 했지만, 결국 우리는 7시가 넘어서야 부스스 눈을 떴다.

씻는다, 짐을 새로 챙긴다, 버스를 어디서 타냐, 아침밥은 먹어야 된다 등등 수선을 떨다가 결국 우리가 표를 내밀고 설악동 매표소를 지난 시간은 9시가 훌쩍 넘어서였다.

속초에서 설악동 들어가는 입구에서 버스를 기다리는 틈에 차부 옆에 있는 가게에서 가스며, 과자부스러기며, 국거리며, 커피 따위를 장만했고, 설악동에서 표를 끊은 뒤 우동과 라면, 김밥으로 아침을 떼웠다.

진짜, 산에 발걸음을 내딛는다.

짐을 몇 번씩 다시 꾸리는지... 한선주는 배낭이 상당히 작은데도 무겁다고 투덜거린다. 박문진은 몸집에 비해 배낭이 굉장히 큰듯하다. 그러나 정작 내용물은 옷가지여서 그닥 무겁지 않다는 것을 안건 그 이후다. 또다른 박인서의 배낭, 대단히 크진 않지만 무게는 상당하리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김기헌의 배낭, 크기도 무게도 장난 아니다. 그러나 그 안에 들어있는 내용물 가운데 소용닿는 게 얼마나 있는지는 배낭 안을 들여다보지 않아서 알 수가 없다. 나의 배낭? 누가 뭐라든, 난 그냥, 무겁다.

아스팔트길을 지나 비선대에 이르렀고, 이제야 본격적인 산행이 시작되는 듯 한데, 벌써부터 다리가 뻐근하다고 생각되는 것은 착각인가.

서두르는 박인서를 향해 계속 투덜거리며, 잘난척인 그의 말을 믿을 수 없어서 내려오는 다른 산사람들에게 끊임없이 묻는다. “중청가서 자야 하는데, 금방 갈 수 있죠?” 대개는 “아이구, 충분합니다”라고 안심을 주는데, 가끔 “서둘러야겠네요”라며 겁을 주는 사람도 있다.

양폭에 이르기도 전에 우리는 천불동계곡을 지나다 풍광좋은 큼지막한 바윗덩어리를 발견하고야 말았다. 이 곳이다. 우리가 라면을 끓여먹을 곳은 바로 이 곳이다.

얼음 사이로 흐르는 물은 차가울뿐더러 깨끗하고, 진정한 태초의 ‘물’은 이런 빛깔, 이런 맛이었으리라. 그 얼음사이 물을 떠서 라면도 끓여먹고, 커피도 한잔씩 했다. 다시 산행을 시작해 양폭, 양폭을 지나선 아이젠을 해야 한다는게 산에 오르며 만난 사람들 대부분의 충고였지만, 우리는 귀찮음 반, 자만심 반에 그냥 눈길, 혹은 얼음길을 마구 오르기만 한다.

희운각에 오르기 직전의 그 미끄럽고도 험한 계단길은 어찌나 지겨웠는가, 희운각을 지나 소청에 이르기까지의 그 얼음길은 어떻고.

다리에 쥐가 났다며 자꾸 뒤처지는 김기헌을 돕겠다며 그를 기다렸다 같이 오르는데, 이크, 결국 짐은 나다. 평지에서도 잘 비틀거리는 나는 얼음 경사길에 보기좋게 미끄러져 가슴팍과 무릎팍을 찧었고, 눈길에서도 두 번인가 세 번인가 더 나자빠졌다. 소청을 지나서는 어둠마저 내 앞길을 막았다.

그러나 아이젠도 귀찮아서 안 낀 마당에 랜턴은 더욱 귀찮다. 허긴, 하얀 눈과 달빛이 길을 비춰주고 있지 않은가.

산에 오르며 힘들다는 생각은 했지만, 지겹다는 생각이 드는 건 처음 아닐까 하는 생뚱맞은 생각을 하며 걷는데, 저쪽에 중청산장 불빛이 보인다.

겨우 다 왔나부다. 산장에 다가서자 화장실 다녀오는 한선주가 우릴 맞고, 부지런한 동지들은 저녁밥을 짓는다. 게으른 나는 밥이 다 되길 기다렸다 숟가락질만 부지런히 한 뒤에 투덜투덜, 노닥노닥 하다가 겨우 지하에 있는 침상 2층에서 깔판을 깔고 몸을 누인다.

난 쉽게 잠이 오지 않는데, 옆에 있는 박인서는 쌔근쌔근 잘도 자고, 실내는 왜그리 건조한지...

산장에서 잘 때마다 기분이 참 묘하다. 낯선 사람들 수십명과 같은 공간에서 내일 산행을 기대하며 눈을 감고, 안오는 잠을 청한다. 그러나, 쉽게 잠들지 못하고, 산 아래에서 벌어지는 나를 둘러싼 온갖 어지러운 일들을 생각한다. 그런데, 산 밑에서 생각했을 때처럼 심란하진 않다. 그런 기분은 참 흔치 않다.

 


연말여행 세째날(12월24일)

우리는 이미 일출시간을 확인해둔 터다. 7시반, 게으른 나로서는 그나마 이른 시간이 아닌게 다행이다. 새벽부터 부시럭거리는 다른 팀들 때문에 잠에서 일찍 깬 우리는 노닥거리다가 7시쯤 대청으로 오르기 시작했다. 5~6백미터 정도 되는 것 같은데, 나름대로 험한 길, 그나마 가까운게 다행이다.

대청 정상에는 20여명이 일출을 보겠다고 모여들었다. 드디어 저 멀리 바다 위에 산처럼 늘어선 구름 한쪽이 불그스레 해지더니, 순식간에 눈부신 빨간 빛을 낸다. 난 그 순간 주머니에서 담배 한까치를 빼물었고, 보통 소설같은 데는 일출의 순간 주위가 조용해지는데, 대청은 시끌시끌해진다. “하~” 감탄사부터 시작해서 “억수로 빨리 뜨네” “야, 사진한방 박자” 등등. 인간은 태어나서 몇 번의 일출을 보고 몇 번의 일몰을 보고 스스로 저물어갈까. 어쨌든, 담배 한까치 피우는 사이에 해는 덩그러니 하늘 위로 올라버렸고, 우리는 가지고 올라온 술 한잔씩으로 ‘일출 환영 행사’를 마감했다.

다시 중청산장으로 내려가서 밥을 해먹는다, 짐을 싼다, 커피도 한잔 해야 등등 예의 늦장을 피우다 9시가 넘어서 하산을 시작했다. 내려가는 방향은 오색이다. 가파르지만, 길이가 길지 않은 덕에 단숨에, 아니, 엄밀히 2번인가 쉬고는 곧장 내려왔다.

길을 내려오자마자 시원한 아스팔트가 뚫렸고, 맞은편에 온천 간판이 보인다. 6천원, 조금 비싸지만 가릴 처지가 아닌 탓에 뜨거운 물로 씻고 나오니 몸이 한결 가볍다.

윤수근은 벌써 속초터미널에 도착했다고 연락이 왔다. 내일 서울가는 차는 강릉발 11시40분 열차를 예매해두었는데, 너무 늦다는 불만들이 있어서, 우리는 윤수근에게 지침을 내렸다. “콘도를 장악하라” 그리고, “서울가는 차편을 쟁취하라”

목욕을 마친 뒤 버스를 타고 속초 터미널에 도착하니, 우리의 윤수근은 두가지 지침을 모두 어김없이 수행한 뒤였다. 버스표는 4시 속초발이고, 잠잘 곳은 터미널 옆 콘도다. 게다가 기대하지도 않았건만, 윤수근이 ‘후지다’고 했던 콘도에 와보니, 창문너머로 바다가 보이고, 이보다 더 좋을 순 없지 않은가. 이 먼 곳까지 와서 산행도 못한 채 이것저것 지침을 수행한 윤수근이 딴사람같다.

짐을 풀고, 장을 보러 나간다, 밥을 한다, 국을 끓인다,,,, 분주하더니 곳곳에 널부러져 몇몇이 잠든 사이 장보러 간 선수들이 돌아왔다. 맛난 저녁식사를 마치고나서.

이런, 그 좋은 콘도에서 다들 화투짝을 두들기기 시작한 것이다. 이럴수가... 다들 재미있어 죽겠다는 표정으로 신났다.

할 일없는 난 커피도 타줘보고, 과일도 깍아주고, 그래도 할 일이 없더. 회를 사먹자며 묻어둔 돈을 내가 관리하겠다며 챙겨넣고, 계속 술을 홀짝홀짝, 윤수근도 한잔, 나도 한잔, 또 박인서도 한잔, 나도 한잔,,,, 얼마나 마셨을까?

어렴풋이 대포항으로 회를 사러 나간듯도 하지만,,,, 가물가물.

일어나니 다음날이다. 우쒸~~

 


연말여행 넷째날(12월25일)

눈을 뜨니 침대 위에 내가 퍼질러 자고 있고, 창문밖은 푸른 바다와 하늘이 맞닿은 것도 보인다. 엥?

목격자들의 증언에 따르면, 난 대포항에 회를 사러 갔다오면서 약간의 주접을 떨었던 것 같고, 침대에서는 3회 굴러떨어졌다고 한다.

눈이 내리기 시작했던 기억이 있는데, 내가 술에 곯아떨어져 퍼져있는 때, 다른 선수들은 함박눈을 지겹도록 맞으며 눈싸움도 하고 눈사람도 만들었다나? 바닷가에 나갔었다고도 하고. 우쒸~ 배가 조금 아프다. 억울해도 어쩌나. 다 내가 술을 퍼부은 탓인데,,,

어쨌든 우리는 일어나서 밥을 해먹고 대오를 집결해 콘도를 나선다.

고속터미널 앞에서 이후 일정에 대한 논의를 벌이는데, 계속 엇갈리기만 한다. 시내관광을 하자, 간성엘 가자, 강릉엘 가자, 당구를 치자 등등등. 우린 결국 버스를 타고 속초 시내관광을 하기로 했다. 기대와 달리 버스가 달리는 길은 바다 옆이 아니다. 얼마쯤 갔을까. 시외버스터미널에 이르자 박인서가 “내리라”고 명한다. 모두들 왜? 여기 어딘데? 진작 말하지 등등 투덜거리며 주섬주섬 배낭을 짊어지고 내렸는데, 박인서는 말없이 앞으로 앞으로 걷기만 한다. 눈이 쌓여 발이 폭폭 빠지는 길을 멍청히 걸으며 박인서 뒤를 쫓는다. 투덜거렸지만, 결국 우린 동명항 전망대까지 왔다.

뿔난 우리와 달리 박인서는 바다를 내려다보며 “보고 있으면 뛰어들고싶지 않냐?”라는 어울리잖게 멘트를 날린다.

우리는. 이날 가장 중요한 결심을 한다. 그래, 박인서가 원한다면 소원을 들어주자. 즉각 독선적 지도행각에 대한 징계위를 소집한 뒤 잇달아 처벌을 집행키로 결의했다. 그러나, 마음은 맞았지만 실행에 옮기지 못한 채 다시 ‘밥’을 먹어러 나왔다.

예의 독선적인 박인서. 이후 지침없이 무작정 택시를 잡아탄다. 행선지가 어디냐 물어도 대답도 않고 타더니만, 어디어디 무슨할머니순두부집으로 오라나? 으이그~ 웬수.

결국 박인서, 박문진, 한선주가 떠나고 윤수근, 김기헌과 다른 택시를 잡아탔다. 무슨할머니순두부집으로 가자고 했더니, 택시기사가 중요한 귀뜸을 한다. 순두부집은 ‘정영숙할머니집’이 원조란다. 매우 중요한 정보다. 음~ 다음엔 거기로 가야겠구먼.

택시를 타고 한화콘도 인근에 있다는 밥집에 가는 동안 저 멀리 설악산의 능선이 보인다. 우리가 묵었던 중청산장이 손톱만하게 능선에 날아갈 듯 걸쳐있는 것도 보인다. 산이 하얗다. 우리가 내려온 뒤 설악산에는 눈이 엄청 내렸고, 곧바로 입산금지가 됐다는 뉴스를 콘도에서 들었다. 눈쌓인 산을 밟지 못한 건 아쉽지만, 산행을 할 수 있었다는 것은 행운이다.

어쨌든 눈쌓인 설악산은 힘들었던 산행을 다 잊게 하고, 다시 나를 끌어당기는 듯하다.

순두부전골에 동동주 한사발씩 하며 우리는 산행을 정리했고, 고속터미널로 돌아와 서울행 버스에 몸을 실었다.

여기서 이번 여행의 하이라이트가 벌어진다. 버스기사가 비디오를 트는 것이다. 우리는 모두 탄성을 질렀다. “야~ 이렇게 잘 보이는 앞자리에 앉아서 비디오 보는 것 처음이야. 신난다~” 참고로 우리 일행의 좌석은 1번부터 6번. 드디어 비디오가 돌아가고, 제목이 떴다.

으악. 제목인즉 ‘신냉혈십삼매’. 싸구려 중국 무술영화의 결정판이다. 코메디영화인지, 액션영화인지, 무술영화인지, 신파영화인지,,, 구분할 수 없는, 어쨌든 어처구니 없는 스토리, 대사, 영상 덕에 유쾌하게 1시간반 떼웠다.

강남터미널에 도착하자마자 박인서는 막차 끊어진다며 곧바로 택시타고 양재터미널로 떠났고, 남은 선수들은 그냥 헤어지기가 못내 서운해서 바로 그, 박인서 뒷다마를 까며 우동 한그릇씩을 해치웠다.

집에가는 버스를 타기 위해 지하도를 건넌다. 드뎌, 다리근육이 당겨온다. 다음은 눈꽃핀 산에 가자는 게 대체적 의견인 듯.... 음.... 언제가 좋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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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06/05 00:23 2005/06/05 00:23
Posted by 흐린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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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6/09/15 23: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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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띠 생각나... 특히 퍼붓던 눈의 예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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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흐린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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