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와 오늘이 다르지 않다고 생각하는 사람에게는 내일이라고 오늘과 별반 다르지 않을 것이다. 신년이라고 오랜만에 만난 친구와 시답잖게 주고받는 이야기들이 수년이 지났어도 별반 다르지 않을 경우 산다는 게 뭘까, 이런 시답잖은 생각도 하게 된다. 살아간다는 것. 이렇게 하루하루를 살고 있다는 것. 관성의 법칙이 삶의 법칙이 되어 버린 것일까?

지난학기 학생들에게 "여러분들은 매일매일이 새롭고 하루하루 살아간다고 말하지만 나이가 마흔이 넘으면 매일매일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죽어간다."고 말했더니 썰렁한 분위기가 되고 말았다. 마지못해 인간 수명이 80년 정도라면 40부터는 죽음을 향해 달려가는 거라고 덧붙였더니 더 썰렁해졌다. 다들 눈알 굴리는 소리가 자갈 구르는 소리처럼 들렸다.

밤에 잠들고 아침에 일어나는 시간은 달라도 매일 동일한 일과를 반복한다. 나처럼 특수한 직업을 가진 사람들이라고 일반화가 어려운 것은 아니다. 누구나 자신의 하루를 반복하는 것이다. 이런 상태에서 일상의 아주 미세한 순간들을 우리의 '정상적'인 눈으로 포착한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아주 가끔 이런 반복을 벗어나기도 한다. 아주 아주 아주 아주 가끔이라고 해야겠다. 

들뢰즈라면 우리가 일상의 정상성에서 벗어난다면 새로운 어떤 것들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할 것이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가장 뻔한 짓은 술을 마시는 것이다. 술에 취하면 세상이 달리 보이는데 이는 우리의 감각이 일상의 억압에서 벗어나고 있다는 증거다. 다음으로, 연애를 하면 된다. 그 사람은 그 누구와도 다른 사람이다. 그 사람은 토마스의 말처럼 "백만분의 일의 상이한 특징"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토마스가 매번 새로운 여자를 발견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그런데 사실 토마스는 매번 새로운 여자를 만나는 것이 아니다. 토마스는 수많은 여자들에게서 그녀들만의 특이성을 발견하는 재미를 알고 있다고 말해야 한다. 물론 토마스처럼 할 수 있기 위해서는 아무래도 특별한 감성을 소유하거나 스스로 계발하지 않으면 안 된다.

내가 오래전에 로버트 실버버그의 <다잉 인사이드>를 읽고 메모 해 놓은 것을 발견했다.


그녀는 애시드가 자신의 신경계를 통과하면서 벌이는 작용에 대해 그때그때 나에게 알려주었다. 나는 그녀가 종이에 연필을 긁적대는 것이 정신을 혼란스럽게 한다고 지적할 때가지 메모를 계속했다. 시각 효과가 진행되고 있었다. 벽이 약간 오목하게 파인 것처럼 보였고, 벽토의 홈들이 예사롭지 않은 질감과 복잡함을 띠기 시작했다. 모든 사물들의 색채가 비현실적일 만큼 밝았다. 더러운 창문을 통해 들어오는 한 줄기 햇빛은 무지갯빛을 띠며 마루 위에 분광을 흩뿌려놓았다. 그녀가 가장 좋아하는 음반들로 체인지에 걸어둔 음악은 묘한 강렬함을 새로이 얻었다. 그녀는 선율 라인을 잘 따라가지 못했고, 마치 턴테이블이 가다 서다를 반복하는 듯 보였지만, 사운드 자체는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밀도와 손에 잡힐 듯한 현실감으로 그녀를 매혹했다. 또한 그녀의 귀에 마치 공기가 뺨을 스치고 휙 지나가는 듯한 휘파람 소리가 들렸다. 그녀가 생소함이 가득한 목소리로 말했다. "난 다른 행성에 와 있어." 그렇게 두 번 말했다. 그녀는 홍조를 띠었고 흥분되면서도 행복해 보였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2012/01/17 23:11 2012/01/17 23:11
https://blog.jinbo.net/greenparty/trackback/204
YOUR COMMENT IS THE CRITICAL SUCCESS FACTOR FOR THE QUALITY OF BLOG POST
[로그인][오픈아이디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