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체성과 소외에 대한 물음은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을까?
서양 철학에서 주체성과 소외에 대한 물음은 세계와 나, 나와 세계의 근원적인 일치와 불일치에 대한 문제에 근거하고 있다. 내가 주체라는 것은 헤겔의 말처럼 내가 이 세계의 주인이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소외는 나와 세계 사이에 간격이 발생하고 내가 이 세계에서 주체로서 존립하고 있지 않다는 것을 말한다. 결국 소외는 나와 세계 사이의 어떤 불일치, 아직 일치에 도달하지 못한 어떤 상태에 있다는 것이다. 나와 세계 사이의 이러한 불일치를 해소하는 것, 나와 세계의 통일, 즉 일치는 곧 소외의 극복이다. 헤겔에게는 이러한 소외의 극복, 또는 해소가 일치를 위한 과정에서 필연적인 단계로 설정되어 있다. 맑스 역시 나와 세계의 간극, 불일치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소외는 필연적이다. 맑스가 공산주의를 과정으로서의 운동으로 제시하는 것은 이러한 소외의 극복이 곧 자본주의를 극복하는 운동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맑스에게 소외는 극복되어야만 하는 하나의 상태이지 극복을 위한 전제 조건이 아니다.

최근 생각하는 거지만 맑스의 이 소외는 굉장히 중요하고 재미있는 주제인데, 나는 왜 맑스를 건너뛰었을까? 그때 계속 맑스를 붙들고 파고들었더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 아마 나는 그런 끈기와 인내를 견딜 수 없었을 거라고 생각한다. 더 일찍 자빠졌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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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9/16 17:00 2016/09/16 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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