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소설가 목수정을 만나 본 적이 없다. 목수정의 소설을 읽은 것도 아닌데, 나는 이 사람이 마음에 든다. 경향신문에 연재하고 있는 글을 매번 찾아 읽는다. 나는 목수정이 똑똑한 여자라고 생각한다. 이런 여자와 연애하고 싶다. 그러면 생활이 '생글생글'할 것 같다.

베스트셀러 오른 좌파후보 공약집 (경향신문, 2012. 2. 4)
/ 목수정

바야흐로 프랑스는 선거철이다. 대선이 3개월 앞으로 다가섰다. 사상 최초로 신용등급이 강등당한 프랑스로선, 이젠 모두에게 명백해진, 잘못 들어선 길을 서둘러 나오게 해줄 혜안을 가진 선장을 찾는 게 절실하다.

바로 이 시점에서 사람들은 어떤 책을 읽을까. 아마존 사이트 정치·사회 분야를 어슬렁거리다가 놀라운 사실 하나를 발견한다. 정치·사회 분야 3위(종합순위 13위)에 올라있는 책은, 차마 책이라고 부르기도 어색한, 좌파전선(Front Gauche·프랑스공산당과 좌파당의 연합)의 대선후보 장 뤽 멜랑숑의 공약집!

단돈 2유로. 95쪽. 저렴한 가격이지만, 선거철에 쏟아지는 홍보물을 쓰레기통에 버리기 바쁜 이 시절에 간 크게도 공약집을 돈 받고 팔고 있는 멜랑숑의 지지율은 고작 7%이다. 녹색당과 더불어 5, 6위를 달린다. 그럼 지지율 1위를 달리는 사회당의 후보 올랑드는? 멜랑숑의 공약집이 지난해 10월 출간된 것과 달리, 올랑드는 지난 주말에야 공약의 골격을 처음 발표했다. 출간된 공약집 따위는 없고, 올랑드의 자서전만 100위 바깥에 간신히 얼굴을 들이민다. 지지율 23%로 2위인 사르코지는? 오로지 사르코지 정부의 무지막지한 실정을 폭로하는 책들만 드글거릴 뿐.

‘물론 가능하다. 인류는 지금까지 수많은 재앙을 극복해 왔다. 우리 앞에 지금 펼쳐지고 있는 자본주의 체제의 위기 이면에는 신세계에 대한 새로운 가능성이 있기도 하다. 우린 바로 그 가능성을 포착해야 한다…생태적 재앙, 불평등, 고용 불안정, 빈곤의 폭발, 반복되는 민주주의에 대한 유린, 연대와 협력에 기반하는 인간관계의 거부. 이 모든 것은 우리 시대를 지배하는 금융자본주의의 독재라는 공통 원인을 토대로 이뤄진 결과들이다.

금융자본주의의 지배는 겉으로는 견고해 보이지만, 실제로는 아주 허약한 구조다. 국민의 선택에 의해 뒤바뀔 수 있는 정치적 결단에 좌우되는 구조이기 때문. 금융자본 지배의 장벽을 넘어선다면, 우리는 신속하게 우리의 미래를 찾을 수 있다.’

<인간이 먼저>(재뤼출판사)는 모두가 처해 있는 이 괴로운 시대의 핵심원인을 명쾌하게 진단한다. 그리고, 가장 먼저, 넘치는 부, 그러나 한 곳에 치우쳤던 부를 분배하고, 사회적 불안과 불평등을 해소하는 방법들을 제시한다.

최저임금 250만원, 모든 기업에 대한 급여 상한제, 공공분야 80만 비정규 노동자의 정규직화, 임대료 상한제, 향후 5년간 연 20만 임대주택 건설. 은행과 금융시장이 점한 무소불위의 위험한 권력을 빼앗아 오는 것도 공약의 중요한 부분이다. 시중은행의 투기 통제, 부자 감세를 위해 설치했던 세금상한제 폐지, 금융천국에서 벌어지는 자본의 자유로운 흐름 통제, 기업의 금융소득에 세금 부과. 전기·가스·원자력·석유 등 환경과 에너지 산업을 국유화하는 내용도 담겨 있다.

한 치의 모순없이 견고하고 아름답게 들어맞는 진단과 대안에 독자들은 무릎을 치지 않을 수 없다. 모두가 행복해지기 위해, 이뤄야 할 유토피아를 위한 과제의 목록들이 그 안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사르코지의 실정에 대한 반사이익을 톡톡히 보고 있는 제1 야당 사회당의 후보 올랑드가 지난 주말 선보인 공약들에는 멜랑숑의 향기가 묻어 있었다. 이상과 현실의 차이를 단박에 뛰어넘는 진보. 그걸 우린 혁명이라 부른다. 멜랑숑은 이 책에서 선거를 통한 시민혁명을 호소한다. 그리고, 이 빛나는 생각들로 이 가벼운 책자를 통해 하나둘씩 사람들을 설득해낸다. 이미 그렇게 혁명은 시작되었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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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2/05 21:36 2012/02/05 21:36

 

사용자 삽입 이미지

 

얼마전부터 가끔식 들러곤 하던 떠돌이의 노래_오도엽 블로그에서 살짝 가져왔다. 한동안 어디를 가도 "기업하기 좋은 도시" 이런 현수막이 곳곳에 꽂혀 있는 것을 보았다. 심지어 버스를 타고 차창 밖으로 보이는 농촌의 논두렁에조차 "기업하기 좋은 마을" 이런 식으로 꽂혀 있는 것을 보았다. 이건 사실 대놓고 "착취하기 좋은 도시", "착취하기 좋은 마을"이라고 내 거는 것과 같은 말이다.

그런데 이 사진의 구호인 "노동하기 좋은 나라"가 왠지 중의적인 느낌이 든다. 노동하기 좋은 나라는 곧 '착취하기 좋은 나라'처럼 들리기도 하고 '일하기 편한 나라'처럼 들리기도 하고. 아마 노동과 착취를 연관시킬 수밖에 없는 이 체제를 민감하게 살고 있기 때문이고, 노동이 곧 착취이기 때문이 아닐까?

'일하기 편한 나라'도 그러고 보면 중의적이다. 일하기 편하다는 것은 일이 어렵거나 복잡하지 않아 하기가 쉽다는 뜻도 되지만 일이 억압적이거나 강제적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의미처럼 들리기도 한다. 하지만 일이 편하다는 말은 더 가혹하게 들린다. 노동이 곧 강제이고 억압인 사회에서 편한 일이 어디 있겠는가? 내가 편안한 일을 하는 동안 타인은 거친 일을 하지 않을 수 없다. 타인의 행복이 나에겐 불행인 나라. 나의 이익이 곧 타인의 불이익이요 나의 부가  타인의 착취를 댓가로 해서만 가능한 사회에서 편한 노동, 노동하기 좋은 나라가 어디에 있겠는가.

일과 놀이가 같은 단어이고 싫은 일을 하는 것은 비도덕적인 행위로 지탄받는 나라. 그런 나라는 어디에?

 

하나 더, 하필이면 저렇게 헐벗은 여자의 사진 앞에서 사진을 찍었을까? 이 사진을 하나의 문화 텍스트로 분석할 수도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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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2/03 00:03 2012/02/03 00:03

선거의 시대다. 마치 민주주의의 척도가 투표율이라도 되는 것처럼 반드시 투표하여 심판하자는 말들이 난무하고 있다. 지난10월 재선거에서부터 기세를 올리고 있는 이 망할놈의 투표 운동이 끝나려면 올 한해가 다 가고 내년이 지나도 불가능할 것 같다는 생각조차 든다. 이명박 찍은 놈들 손가락 잘라라고 아무리 외쳐도 손가락을 자를리 만무하지만 그 손가락 탓하는 사람들의 입을 꿰메는 편이 더 낫겠다.

선거와 투표에 올인하자고 나대는 사람들의 대부분은 패배자들일 텐데 그들은 꿈도 희망도 버린지 올래다. 오직 자신의 현세적 바람을 타인의 잘못을 탓하면서 대리보충하려는 속셈이다. 꿈도 희망도 없는 사람들의 마지막 처신은 종교에 귀의하는 것이다. 그래서 그들에게 투표일은 거룩한 종교의식을 치르는 기념일과 같다. 붉은 잉크로 얼룩진 투표 용지는 신전에 바치는 헌화인 셈이다. 거룩한 참여가 그들에게는 유일한 안식이기 때문이다.

블로그 communist left의 "우리를 위한 투표가 아니다 (1%를 위한 투표일 뿐이다)"를 읽고 오래전 쓴 글을 떠올리고 댓글로 달았는데, 잊어버리지 않기 위해 여기 올린다.


반드시 투표를 해야 하는가?

아니다. 나는 오히려 투표 행위를 부정해야 한다고 말하고 싶다. 투표 행위는 지배자들의 정기적인 파티에 들러리를 서는 것과 같기 때문이다. 나는 학생회에서 투표를 독려하는 것을 보면 좀 화가 난다. 학생들의 정치 의식이 지배적 통념을 넘어서지 못하고 오히려 지배적 통념을 재생산 하는데 협력하고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

최근 선관위에서 유명 배우와 심지어는 축구 선수들까지 동원하여 투표 독려에 애쓰고 있다. Tv 광고가 짜증스럽다. 우리가 누군가를 찍어야 된다고 주장하는 그들의 의도가 가증스럽다.

거리 곳곳에 장식된 출마자들의 포스터를 보면 저들은 분명 우리와 다르다는 것을 안다. 정치가 이제 다른 많은 직업들처럼 하나의 직업이 되었다. 저들은 인민에 대한 지배를 직업으로 삼고 싶어하는 사람들이다. 그래서 저들은 인민 위에 군림하고 인민의 수고를 자신들의 전리품으로 가져갈 것이다.

이런 말이 정치적 허무주의를 유포시킨다고 비난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한 번 생각해보자. 왜 우리는 투표를 해야 하는가? 뭐 굳이 민주주의 사회에서 투표를 거부하는 것도 권리 행사라고 말하는 것은 아니다. 왜 국가는 투표를 독려하는가? 투표율이 높고 낮다는 것은 뭘 의미하는가?

투표율이 높으면 저들은 웃으면서 지배를 정당화할 것이다. 투표율이 현저하게 낮으면 어떤 반응을 보일까? 물론 저들은 불안해할 것이다. 왜냐하면 저들은 언제나 민주주의를 내세우며 인민들에게 저들의 억압에 기꺼이 동의할 수 있느냐고 물어오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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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1/27 18:27 2012/01/27 18: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