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셋째날, 변산반도.

  • 등록일
    2007/01/18 18:59
  • 수정일
    2007/01/18 18:59
잠을 잘 못 자서 컨디션은 축 쳐졌다.
찜질방 락커에서 옷을 꺼내 보니 다들 축축하다. 하긴, 이 비좁고 밀폐된 락커 속에서 마를 새가 없었겠지. 찜질방 안에서 먹은 미역국은 맛도 양도 별로였다.

밖으로 나와 시 외곽으로 빠져 나가려는데 또 길을 몰라 좀 헤맸다.
결국 타야 하는 도로를 잡아타고 페달질을 하는데
영 컨디션이 시원치 않다.

아니 그것보다 더 갑갑한 것은 지도가 제대로 맞지 않는다는 것.
내가 지금 가고 있는 방향이 맞는 것 같기는 한데 지도상으로는 분명하지가 않다는 게 문제였다.
자전거를 타고 천천히 가는 할아버지께 지도를 보여주며 지금 이 길이 지도상의 이 길이 맞냐고 여쭈었더니
"이 길은 김제 가는 길이여~ (지도 이런건) 난 몰러~."

방향은 대충 맞게 잡았나보다 싶어서 일단 갔다.
(나중에 보니 지도가 너무 앞서 나간(?) 지도였다;)

군산에서 김제로 가는 길. 만경강과 동진강 유역.
여기야말로 진정한 '평야'인 듯  했다.
뿌옇게 안개가 끼어 있으면서도 지평선 저 아득히에는 무엇이 있는지 알 수 없었다.
가끔씩 '지평선축제'라는 현판이 있는 걸 보니 정말 여기가 평야이긴 평야인 것 같다.

도무지 힘이 안 나는 것은 밥을 덜 먹었기 때문이라고 판단하고 결국 중간의 한 식당에 들어가 이른 점심을 먹었다.
김치찌개. 반찬들도 맛있었구. 왠지 힘이 났다.
그래서 다시 열심히 부안을 향해 페달질.
가는 길 도중, 전깃줄 위에 까마귀떼 수십 마리가 앉아 있었다.



새만금. 거대한 프로젝트.

여차저차 하여 드디어 변산반도로 진입.
바닷가와 만나기 시작하자마자 '새만금'이 눈에 들어온다.



총 33km의 방조제를 연결해서 갯벌을 메우고 땅을 늘린다는 간척사업.
어민들의 반대시위도 있었지만 이제는 물막이는 일단 다 끝난 상황.
전국지도를 펼쳐 놓고 보면 정말 엄청나다.
오죽하면 세계 최대 길이의 방조제라고 할 정도니...



하지만 여전히 생태운동의 반대도 이어지고 있는 듯 했다.
새만금 가까이 다가가다 보면 한 해변에는 이렇게 갯벌을 살리려는 염원이 자리잡고 있다.







문득 저 넓게 조성된 토지는 누구의 소유가 될까 싶었다.
새만금 개발은 농지 확보, 용수 확보, 관광 산업 개발 등 다양한 목적을 가지고 있다. 만약 저기에 농지가 생긴다면 그 주인은 누구일까. 새로 생기는 저 넓은 땅은 과연 누구의 이익이 되는 것일까 하는 생각들이 지나갔다.

이 땅의 신자유주의적 정책들은 농업을 희생시키겠다는 방향인 것 같은데 농지 확보가 목적이라는 것은 어떻게 해석해야 하나.

밤에 TV를 보니 전북지역 발전을 위한 TV토론회를 하고 있었다. 전북도지사가 나와서 새만금 개발 완료가 1차 과제라고 목소리를 높인다. 토론회에 나와서 늘어놓은 내용들이란 철저히 경제발전을 위해 자본가들의 요구와 이해를 담은 것들이었으니 말 다 했지. 전북도청 미화원 해고자들이나 빨리 복직시켜라.


격포에서. 낙조


변산반도의 낙조가 전국에서 손꼽히는 절경이란 소리에 서둘러 격포항으로 향했다.
채석강과 적벽강 같은 명승지와 해수욕장, 항구가 어우러진 격포.
다행히 늦지 않게 도착했고 멋진 일몰을 감상할 수 있었다.











말 그대로 해가 완전히 지는 시점엔 오히려 이렇게 되더군.


파도와 바람이 만들어 낸,
인간의 능력으로는 만들어 내지 못할 절벽



간조 때는 그 모습을 드러내고, 만조 때는 모습을 감춘다.
이 곳에도 누가 이렇게 귀여운 돌탑을...^^

여기가 채석강. 다음 날 아침에 다시 돌아보았다. 그 전 날 나는 채석강인 줄 알고 열심히 사진을 찍었는데 그게 채석강이 아니었더라구 ㅡㅡ;

저 겹겹이 쌓인 지층(?) 사이에는 얼마나 많은 이야기들이 잠들어 있을런지.


해식동굴들.


어느덧 깜깜한 가운데 가방 속에서 차가운 김밥으로 저녁을 대신한다.
하루종일 흘린 땀을 싸구려 등산자켓은 고스란히 품고 있다.
춥다. 춥다. 사람들이 겨울에 자전거로 다니면 춥지 않냐고 하는데 솔직히 하나도 안 춥다.
땀 나서 덥다. 그렇지만 몸을 움직이지 않고 가만히 있을 때, 옷이 다 젖었을 때부터는 감기 걸리기 쉽상이다.

그 때 우연히 발견한, 해변가 수퍼마켓에서 각종 나무 쓰레기들을 태우는 불길 하나를 발견!
어찌나 반갑던지. 여기서 한 시간 동안 붙어 있으면서 옷을 다 말렸다.

열심히 옷을 말리고 있으니 역시 관광객 여러 무리가 잠깐씩 불을 쬐고 간다.
걔 중 한 젊은 커플. 둘이서 자알 놀다가 남자가 말을 건다.
자전거로 여행 중이냐고. 그래서 이런저런 얘기 나누고, 사는 데가 어딘지도 물어보고..
그 남자는 자기도 해보고 싶었는데 마음 뿐이라며 자전거로 여행하는 것 정말 멋있다고 했다. 한 번도 아니고 연거푸, 박수까지 치면서. 이거, 너무 민망하잖아?

방 하나를 잡고, TV를 틀어놓고, 짐 정리를 하고(쓸데 없는 것들 너무 많이 가져와서 무거워 죽겠어~ 하고 투덜대면서-)... 그리곤 팩소주 하나를 까 먹고는 해롱해롱한 상태로 잤다.
밤에는 대체로 심심하다. 이번이 두 번째 음주였다. 첫 날 밤엔 맥주 한 캔.


오르락 내리락, 바닷가를 돌아 변산반도를 나온다.

다음 날 아침.
격포를 떠난다.
배를 타고 위도로 들어가도 좋을텐데, 조금은 아쉽다.

격포항.



바닷가를 따라 모항, 곰소를 지나 변산반도를 빠져 나간다.
격포까지 올 때와는 다르게 끊임없는 오르막과 내리막. 서울 남산 정도는 아무 것도 아니었다. 경치 하나는 멋있었지만, 힘들긴 힘들었다.

그래도 페달을 밟으면서 이리저리 스쳐가는 생각들.
지난 날의 활동에 대한 반성. 떠난 사람들에 대한 소회.
앞으로의 계획과 결심. 한편으로는 불안감.
인간관계에 대해서.. 사랑과 연애에 대해서..


여기가 솔섬. 낙조가 멋져 사진작가들이 많이 찾는다지.



고갯마루의 바닷가가 내려다 보이는 경치좋은 곳이면 항상 이런 가게들이 자리잡고 있다.
시야를 가로막으면서.
가게 안에 들어가면 바다가 보인다.
여행객의 입장에서는 좋은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가건물들이 답답해 보이지만,
다들 먹고 살려는 것 때문 아닌가.
자본주의가 아닌 다른 세상이라면, 관광지에서 느끼는 불편함과 답답함도 덜어질 수 있을런지?





중간에 내소사가 나오는데 지난 번에 청평사에 한 번 가 본 이후론 절에 대한 관심이 떨어져서... 그냥 패스.
곰소란 곳이 나온다.
여기는 염전이 있고, 젓갈이 유명한가 보다.

곰소 염전.





이제 바닷가와 멀어지는 지점에서 어느 학교 안에 들어가 잠깐 쉬었다.
학교 정문 바로 안에 세워져 있는 비석.
"꿈이 있는 곳에 길이 있다."

멋지다. 그래. 학창시절은 우울하기도 했지만 한편 막연히 희망을 그리기도 했었지.
운동 현실은 어렵지만
꿈을 가진 모든 이들은 길을 만들어 가고 있다.

원래 넷째 날의 계획은 변산반도를 빠져 나와 곧바로 담양으로 직행하는 것.
꽤 먼 거리이므로 해 지기 전에 담양읍에 도착하는 게 원래의 계획이었다.
하지만 첫날 공주 우금치에 들린 탓에 일정은 바뀌었다.
지도 상에 나와 있는 동학 전적지와 동학혁명기념관을 둘러보기 위해
나는 정읍으로 목표를 바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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