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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틀 칠드런

  • 등록일
    2007/02/27 18:49
  • 수정일
    2007/02/27 18:49

인터넷 뉴스 기사를 보다 딱 두 단어를 보고 충동적으로 보기로 결심한 영화.

"불륜"

"유아기"

 

영화를 보는데 어쩜 또 이런 대사가 나오던지.

"내가 자초했어. 입을 꿰매버려야 해"

 

한편 결말은 진부한 나레이션으로 끝난다.

"과거는 후회해도 소용없다... 미래에는 더 잘 할 수 있다...  그러려면 지금 달라져야 한다..." 이런 식.



  현대의 어른들, 불륜으로 성장한다?
  [뷰 포인트] 불륜에 관한 흥미로운 해석, <리틀 칠드런>
 
  2007-02-26 오전 9:53:28
 
   
 
 
  
소리소문없이 개봉돼 서울 대학로에 있는 예술영화전용관 하이퍼텍 나다에서 상영중인 케이트 윈슬렛 주연의 영화 <리틀 칠드런>이 국내 영화팬들에게 조용한 화제를 모으고 있다. 단관개봉 영화여서 많은 영화팬들을 만나지 못해 아쉽지만 뛰어난 작품성과 배우들의 돋보이는 연기력에 대한 입소문이 끊이지 않고 있는 것. 영화의 내용은 무엇인지, 어떤 점이 관객들의 마음을 사로잡고 있는지를 알아 본다. - 편집자

  나체를 드러낸 두 주연배우의 이미지와 직접적으로 '어린아이들'을 가리키는 제목이 정면 충돌하는 포스터를 내세운 영화 <리틀 칠드런>은 인간 행위에 있어 그 역사가 유구한 대표적 금기 중 하나인 '불륜'이라는 행위에 대해 아주 재미있는 해석을 제공한다. 불륜을 다룬 기존의 텍스트들이 가장 흔하게 취한 입장이 열정적, 비극적 로맨티시즘을 극도로 과장하는 것이고, 그보다 좀 냉정한 입장에서는 인간을 억압하는 제도에 대한 일탈 욕망을 강조하는 것이라면, 이 영화가 취하는 입장은, 오히려 성장을 유예당한 현대 '어른아이'들이 겪는 성장통 중 하나로 불륜을 가정하는 것이다.
  
 
리틀 칠드런 ⓒ프레시안무비

  근대 산업사회, 그리고 대도시 중심 사회로 이행한 뒤 어느 날 문득, 자신이 "망망대해 위에 나무판자 하나와 함께 떠 있는" 존재임을 자각한 현대인들이 맞게 된 딜레마 중 하나는 이것이다. 사춘기가 점점 길어진다는 것. 기술과 의학이 발전하고 사회가 점차 고단위 자본주의화가 진행될수록 무한경쟁과 저성장, 고령화가 함께 진행된다. 전통적인 농촌사회에서 이미 '성인'이자 '어른'이었던 이들이 이런 사회에서는 여전히 '젊은이'로 분류되고, 몸의 성장은 이미 10대 때 다 겪었음에도 정신적 사춘기는 20대를 넘어 30대로까지 확장되었다. 그러나 이들은 20대부터 성인으로서 사고하고 행동할 것을 요구받는다. 자신이 "성인의 몸을 하고 있는 어린아이"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깨달은 현대인들 중 절대다수가 "신경쇠약 직전"의 공포와 불안을 느끼며 끊임없이 타인의 눈을 통해 자신의 존재를 확인받고 싶어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 그리고 이러한 욕망은, 자아 확립이 지상 과제인 사춘기 소년, 소녀들이 또래집단과 선배, 혹은 멘토를 통해 자아를 확인하고 싶어하는 욕망과 놀랍도록 닮아있다. 이 욕망은 자신의 존재를 인지하고 인정해주는 다른 존재에 대한 동일시와 합일의 욕망으로 진화한다.
  
  <리틀 칠드런>의 주인공들이 바로 이러한 딜레마 속에서 문제를 겪고있는 사람들이다. 그 누가 알겠는가, 아무리 봐도 애까지 딸린 아줌마, 아저씨가 정작 스스로를 '아이'로 여기며 두려움에 떨고있는 속마음을. 비록 겉으로는 아닌 척, 고상한 척, 능숙한 척 한다 하더라도. 사회적 성취를 꿈꿀 수 있고 그 기회가 열린 사회가 됐지만 여전히 출산과 양육의 의무에서 해방되지 못했기에 결국 자신의 꿈을 접으며 결핍을 느끼고 있는 여성, 자신이 능력있는 숫컷임을 스스로와 주변인들에게 증명하지 못한 남성은 자신의 존재목적을 확인하고 싶은 이른바 '자아 확인'의 욕망에 시달린다. 이 욕망은 자신의 생활 반경 바깥에 있는 이성 중 우연한 '접촉'을 공유한 상대와 물질적 – 육체적 교류를 욕망하는 형태, 즉 '불륜'의 모습으로 표면화한다. 여기에 감독은 소아성애자 로니 맥고비(재키 얼 헤일리)를 등장시켜 외적으로는 영화의 긴장감을 끝까지 유지시키는 한편 내적으로는 욕망이 유아기에 고착된 인간의 모습을 통해 이들이 겪고 있는 딜레마를 더욱 노골적으로 드러낸다.
  
 
 
리틀 칠드런 ⓒ프레시안무비
 

  에로틱한 탕녀 혹은 남자들에게 끌려다닌 줏대없는 여성의 대명사 정도로나 여겨지곤 하는 보바리 부인에 대하여, 영화의 주인공 새라는 '스스로의 선택을 통해 자신이 처한 현실에 정면으로 맞서 싸운 여성'으로 해석한다. 브래드와의 불륜은 새라에게 있어 지나가는 짧은 호기심이나 일탈의 욕구, 혹은 쾌락의 충족을 위해서가 아니라 처절할 정도로 절박한 자기 확인을 목적으로 하기 때문이다. 새라가 자신의 존재를 확인할 수 있는 대상은 브래드가 유일하기 때문에, 그를 향한 새라의 욕망은 더욱 집요해질 수밖에 없다. 주말 휴가를 떠나는 브래드를 새라가 몰래 훔쳐보는 장면, 브래드가 풋볼경기에서 터치다운으로 역전을 이룰 때 어느 순간 나타나 환호하는 새라와 이를 본 브래드의 표정에 일순간 스쳐지나가는 당혹감을 묘사하는 장면을 상기해 보라. 약간 유머러스한 감각으로 묘사된 이 장면들은 새라의 소녀적 측면을 그대로 드러낸다.
  
  그러나 새라에 대한 브래드의 욕망은 새라와는 달리 그렇게까지 절실하지 않다. 그는 새라를 아름답고 능력있는 아내 캐시(제니퍼 코넬리)와 끊임없이 비교한다. 이는 그가 새라 외에도 여러 가지 통로로 자신의 자아 확인 욕망을 충족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는 캐시로부터 소외당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오히려 그의 바람을 감지한 그녀와 장모로부터 감시를 당한다), 원치 않음에도 친근하게 접근하는 래리(노아 에머릭)가 있고, 그를 통해 풋볼팀에 소속되며, 일정한 성취를 통해 풋볼팀에서의 소속감을 확실하게 인정받는다. 그러니 '도망치기로 한' 그 날 밤 집을 나선 그가 자신을 부르는 스케이트 보더들에게 어이없을 정도로 쉽게 정신을 빼앗기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 (그는 집을 떠나고 싶지 않았다. 그리고 역시나, 이 장면에서의 브래드는 주책맞고 철딱써니 없게 묘사된다.) 새라를 향한 그의 욕망에는 새라만큼의 절박성이 존재할 필요가 없다. 그러나 애초에 그가 '자신의 취향이 아님에도' 새라를 욕망하게 된 계기는, 놀이터에서 자신에게 처음으로 말을 걸어준 이가 바로 그녀라는 사실 때문이다.
  
 
 
리틀 칠드런 ⓒ프레시안무비
 

  든든하게 자신을 보호해주었던 어른 – '어머니' – 의 존재를 상실한 후, 어른이 아닌 '착한 아이'(good boy)가 되기 위해 성기를 스스로 절단하는 로니의 모습, 감독은 '그것이 바로 현대인의 모습'이라고 강변하는 것이 아닐까. 유아기에 고착된 그는 사회 안에서 자신의 욕망을 통제하고 타협하는 방식을 배우지 못한 채 결국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데, 거세라는 이 행위 자체는 그가 스스로 선택한 행동이지만, 마을의 모두가 그에게 암묵적으로 강요하며 당연시하던 일이기도 하다는 것을 우리는 기억하고 있다. 결국 감독은, 현대 사회가 아무리 '성인이 되지 못한 성인'을 뜻하는 '피터팬 콤플렉스'니 '키덜트'니 하는 말들을 통해 마치 책임을 지기 싫어하는 개인들 스스로가 한심하게 선택한 일인 것처럼 포장을 하고 그들을 질책하는 뉘앙스를 담고 있다 하더라도, 실질적으로는 이들이 어른이 되지 못하도록 붙잡고 있는 것이 보이지 않는 사회의 암묵적인 강요임을 웅변하는 듯하다. 그렇기에 공식적으로는 손가락질 당할 만한 브래드와 새라, 로니, 또한 래리의 사연을, 얼마간은 살짝 놀리는 듯한 터치가 분명 존재한다고는 해도 전체적으로 이들의 고통과 절망을 연민과 위로의 손길로 감싼다. 비록 이들이 타인에게 고통을 주거나 폭력을 행사하는 방식으로 자신의 어린아이적 특성을 드러낸다 하더라도. 그리고 이들은, 이러한 일탈의 끝을 스스로 정리함으로써 성장통을 넘긴다. 허겁지겁 집으로 돌아와 아이를 안고 미안하다며 연발하든, 자신이 (가장이 될 수 없는) 무능력한 남편임을 순순히 받아들이고 아내를 부르든, 자신의 성기를 스스로 잘라내든, 그를 부여안고 생애 가장 빠른 속도의 운전으로 병원으로 달려가든.
  
  그러므로 신이시여, 제발 이 가련한 "어린 아이들(Little Children)"을 굽어 살피소서.
   
 
  김숙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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