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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로 연극 포스터 붙이던 사내 / 박종윤

대학로 연극 포스터 붙이던 사내


성균관대 학생도 아닌 것이 대학로에 괜시리 많이 가게 된 것은 아마 대학교 1학년이 끝나갈 무렵의 겨울, 대학로 모 처의 술집에서 미팅을 하고 나서부터였을 것이다. 소싯적부터 음악에 관심이 많은 성격은 어느새 문어발식 확장을 계속하여 영화에까지 도달하였고, 1학년 때 운 좋게도 독특한 취향의 벗들을 많이 사귀어 소위 우리가 말하는 ‘작은 영화’라는 것에도 관심을 가질 무렵이었다. 어린 시절 어머니가 많이 데리고 갔던, 지금은 작은 영화들을 많이 상영해주는 ‘동숭 아트 홀’에 발을 들여놓게 된 이후 틈만 나면 대학로에 가서 영화를 한편 보고 가까운 후배들과 밥을 먹거나, 잔을 기울였다. 그 것이 2005년도, 2학년 여름방학 때의 일이다. 그 짧지만 기억에 남는 순간을 목격했던 것은 아마 그 무렵이지 싶다.


대학로 마로니에 공원을 지날 때였다. 서울에서 가장 많은 소극장이 밀집되어 있는 대학로답게 마로니에 공원 앞에서 혜화역 쪽으로 쭉 걸어나가면 심심치않게 연극 혹은 뮤지컬 포스터를 볼 수 있다. 수수한 낮의 대학로에서 두 명의 남자가 게시판에 연극 포스터를 붙이고 있었다. 빈자리가 없자 처음 들어온 듯한 사내가 선배로 보이는 사내에게 곤란하다는 듯이 말했다. “여기에는 붙이면 안되지 않나요?” 그러자 선배로 보이는 사내는 말했다. “이 위는 괜찮아.” 남이 애써 붙여놓은 포스터 위에 자기들 연극 공연 포스터를 붙이다니! 라고 혼잣말로 지껄이고 다시 한번 게시판 쪽을 쳐다보았을 때, 이상한 광경을 볼 수 있었다. 화려한 문구로 장식된, 당시 잘 나가던 뮤지컬 공연 포스터 위에는 포스터를 덧대고 있는데, 마치 비슷한 사정으로 보이던 투박한 몇몇 연극 포스터 위에는 덧대지 않는 것이었다.


“이 위는 괜찮아.”라는 말은 뻔뻔함이 아닌 자조였다. 일전에 연극하는 친구와 술한잔 했을 때 들었던 소극장 연극계의 현실은 쉬운 종류의 그 것이 아니었다. 많은 자본이 투하된 공연들이 매체에서 떠들어대는 “전회매진! 뮤지컬 ㅇㅇㅇ!“라는 선정적인 카피의 홍보 문구와 보도 자료들을 보고 있자하면 아무리 그 계통에 일자무식인 나라도 눈이 가기 마련이다. 마케팅과 자본의 차이는 필연적으로 규모와 관객 수의 차이를 가져오게 된다. ”이 위는 괜찮아.“라는 짧은 구절에는 ”우리가 이런다고 이 밑은 그리 타격을 받지 않는다“는 경멸과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먹고 살 수 없다“는 절박함이 함께 묻어있었다. 불평등한 현 상황에 대한 작은 저항이었다. 하지만 그런 현실에서도 비슷한 처지의 극단을 생각하는 마음에서였을까, 덧대면 큰일날 것 같은 소규모 공연의 포스터 위에는 자신들의 포스터를 덧대지 않았다. 그 와중의 작은 미소였을까.


1년이나 지난 날의 짧은 일화를 꺼내보다 문득 현 정부의 과업처럼 추진하고 있는 자유무역협정이 떠올랐다. 그리고 다시 한숨을 쉴 수 밖에 없었다. 자본의 차이, 규모의 차이, 불평등한 현 상황... 많은 것들이 머리를 괴롭혔다. 그리고 “덧대면 큰일날 서민과 농민들을 과연 생각하면서 협상이 이뤄지고 있는 걸까?“라는 의문이 생겼다. 자유무역협정에서 작은 미소, 작은 관용이라는 것이 있기는 한걸까? 오늘도 대학로 앞, 조그마한 공연들의 포스터를 보면 마음이 씁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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