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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이 흘렀더구나

이 글은 '도키님의 2005년 8월 24일'과

              '버섯돌이님의 '1995년 8월 24일을 생각해 보면'에 엮인 글입니다.  

 

 

애 둘이나 있는 부모가 되었고, 직장 다니는 사람들은 중요한 직책들을 맡고 있었고
민주노동당의 고위간부가 된 사람도, 많이 배워서 더 배울게 없는 사람들도 생겼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고 하더니...
눈가에 주름 하나, 허리에 군살 한점, 귀밑머리에 잔설이 조금씩 더 잡히어 가도
하지만 언제 봐도 즐겁고 반가운 내 친구들, 동지들...

 

그게 벌써 10년이 되었구나 생각하고 반갑고 그리운 동지들과 가슴에 서리서리 맺은 회포는 풀었지만, 오늘이 별로 달갑지 만은 않더이다.

 

그 때처럼 그렇게 어리석게 당하지 말자는 반성을 하면서도 혹시 오늘 세상의 흐름에 대해서 둔감해 하지는 않는지, 과거를 그리워하며 살아오지 않았나 하는 후회를 하면서도 10년 전에 비해 단 한 걸음도 전진하지 못한 것 같은 현실이 자꾸만 뒤통수를 잡아끌고 있기 때문이다.

 

 



 

여름이라 잠깐 시간이 나서 집안 일을 도와주고 있었다. 집과 목욕탕 공사를 하신다고 하여 시간을 내서 오전 내내 도배하고 집안 청소하고 점심 먹고 잠깐 쉬고 있었는데...
웬 아저씨들 몇 명이 집안으로 몰려 왔다.

'오늘 공사 거 하게 하시나 봐. 인부들까지 다 부르시고..'
이렇게 생각하곤 웃옷을 벗고 있어서 옷을 입으러 내방에 들어 왔는데,
그 중 두 명이 따라 들어왔다. 그러면서 짧게 외쳤다.

"너희는 모두 잡혔다. 너도 따라와!"

 

순간 고개를 훽 돌리면서 쳐다봤는데, 뭔가 수첩을 꺼내 보이는 것이었다. 수첩은 2단으로 접힌 수첩이었는데 손바닥 윗 부분에 받쳐든 면만 보였는데, 그것은 운전면허증!
아마 손바닥에 아랫부분의 든 다른 면에 경찰증이 있지 않았을까 싶지만 아무튼 내 눈에는 면허증 밖에 보이지 않았다. (나중에 생각하니 상황이 좀 코믹했다. 속으로 이 놈들 사기꾼들 아닐까 하는 생각까지 했으니까...)

 

뭐 이런 놈들이 다 있어 하고 생각하면서도 혹시나 마음으로 내 방 유리창과 방충망 구조를 다시 살펴보고 이대로 달아나기 어렵다는 판단을 하면서 천천히 거실로 나왔다.

거실에는 형사 두 명에 둘러싸여 아버지께서 뭔가를 심각하게 읽고 계셨는데,
옆에 가서 보니까 긴급구속영장이었다.

 

'이거 정말이군'. 이미 형사들이 출구는 가로막고 있었고 저항해 봤자 어렵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러 가지 보위수칙들이 어지럽게 머리 속에 떠돌면서, 빨리 연락해야 한다는 생각, 가방 안에 수첩을 버려야 한다는 생각...

 

"수색영장을 안 갖고 왔는데, 어차피 니방 수색할텐데 너만 동의해 주면 지금 할 수 있다."

 

"안됩니다. 영장 갖고 와서 다시 하시죠...그리고 어머니께 죄송한데 인사만 여쭙고 가게 해 주세요..."

 

"그래"

 

엄마...를 부여잡고 한참을 바라보았다. 당황하고 황망한 엄마의 모습. 이미 핏기마저 가신 엄마의 어깨를 부여잡고 조용하게 죄송하다고 몇 마디 나누면서 곁눈질과 들리지 않는 소리로 '친구들한테 빨리 연락하고 내 가방 치워 주세요'

 

그리곤 곧장 수갑차고 얼굴에 검은 붕대 메고 그렇게 어딘지도 모른 데로 끌려갔다. 나중에 알게 되었지만 그곳은 홍제동 대공분실.

 

.........

 

그렇게 그 일이 있은 지 꼬박 10년이 흘렀다.

2015년에는 세상은 또 어떻게 되어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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