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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영화 잔치는 시작됐다_한겨레21

민영화, 잔치는 시작됐다

공기업 수익사업 쪼개서 팔 방침…기업엔 꿩 먹고 알 먹기, 공공서비스 훼손은 어떻게 하나

 

▣ 조계완 기자 kyewan@hani.co.kr
▣ 사진 박승화 기자 eyeshot@hani.co.kr·▣ 류우종 기자 wjryu@hani.co.kr

 

전국경제인연합회 산하 한국경제연구원은 대선을 앞둔 지난해 10∼11월 세 번에 걸쳐 방대한 정책과제집을 펴냈다. ‘차기 정부의 공공부문 개혁 방향’ ‘선진한국을 위한 선택: 잘사는 나라, 행복한 국민’ ‘규제개혁 종합연구’ 등이다. 각 보고서마다 차기 정부의 대표적인 정책과제로 요구한 내용은 대대적인 공기업 민영화다.

 

 

 

 

시장형·준시장형 공기업 대부분

 

탱고춤을 추려면 두 사람이 필요한 법이다. ‘비즈니스 프렌들리’를 표방한 이명박 대통령직 인수위원회는 벌써부터 산업은행 민영화 방식까지 사실상 확정했다. 올해 안에 산업은행의 투자은행(IB) 업무를 떼내 대우증권에 묶은 뒤 금융지주회사(가칭 산은지주회사)를 설립하고, 이 지주회사 지분을 경영권 매각 방식으로 민간에 팔 계획이다. 산업은행이 민영화되면 기업은행·수출입은행 등 다른 국책은행들도 최소한의 공적 기능만 제외하고 민영화될 가능성이 크다. 특히 산업은행 민영화 방안은 상징적인 ‘재벌 프렌들리’ 정책인 금산분리 완화와 맞물려 있다. 산업자본 컨소시엄과 연기금이 금융업에 진출할 수 있도록 해놓은 뒤 산업은행 민영화를 추진하는 구상이다. 산업은행 민영화 추진에 따라 이명박 새 정부 들어 공기업 민영화가 다시 속도를 내고 있다.

영국에서는 1979년 대처 보수당 정권이 들어서면서 처음으로 대대적인 민영화 작업이 시작됐는데, 우리나라에서도 이명박 새 정부 들어 공기업 민영화가 갑자기 추진되고 있는 건 아니다. 사실 김대중 정부는 1998년 외환위기라는 특수한 조건 속에서 대대적인 공기업 매각에 시동을 걸었다. 당시 포항제철·한국통신·한국담배인삼공사·한국중공업 등 8개 공기업이 완전 민영화되고, 한국전력·가스공사·지역난방공사 등이 부분 민영화됐다. 공기업의 67개 자회사도 매각됐다. 당시에는 경제위기 상황이라서 재벌기업이라 해도 대규모 공기업을 인수할 만한 여력이 없었고, 재벌의 공기업 인수는 기업 구조조정 흐름에서도 어긋나는 것이었다. 외환위기를 극복한 뒤인 2002년 초, 참여정부 출범 때 전경련은 공기업 민영화를 정부 정책과제로 다시 제시했다. 그러나 참여정부는 민영화를 사실상 중단하고 소프트웨어적 공기업 개혁(내부혁신 및 경영평가)에 주력했다. 역설적이게도 공기업 민영화 작업은 이명박 새 정부가 ‘잃어버린 10년’으로 규정한 김대중·노무현 정부 10년 가운데 김대중 정부의 정책을 계승하는 양상을 띠고 있다.

이명박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경제팀은 올 상반기 중 공공기관 민영화 기본계획을 확정할 방침이다. 기획예산처에 따르면 현재 국내 공기업 수는 총 102개이고, 이 중에서 시장형 공기업이 6개(가스공사·전력공사·인천국제공항공사·부산항만공사 등), 준시장형 공기업이 18개(한국관광공사·한국마사회·한국지역난방공사·대한주택공사·한국도로공사·한국철도공사 등), 준정부기관이 78개(국민건강보험공단·한국노동교육원·한국교육학술정보원 등)이다. 새 정부에서 민영화 대상으로 거론되는 공기업은 △산업은행·기업은행 등 국책은행 △한국전력·가스공사·지역난방공사 등 에너지 공기업 △한국토지공사·대한주택공사 등 부동산 공기업 △한국도로공사·인천국제공항·한국공항공사·인천항만공사 등 교통 공기업 등이다. (준)시장형 공기업 대부분이 포함돼 있다.

이와 관련해 민영화를 둘러싼 정부 부처의 태도도 급선회하고 있다. 그동안 “시장에서 경쟁 여건이 성숙되기 전에는 해당 산업부문의 공기업 민영화를 추진하기 어렵다”는 일관된 방침을 고수해왔던 기획예산처는 1월8일 인수위 업무보고에서 한국전력과 한국가스공사의 분할 민영화 검토를 보고했다. 건설교통부도 인수위 보고에서 철도사업의 경우 여객과 화물사업을 분할하고, 시설과 운영을 완전 분리해 경쟁체제를 도입하겠다고 보고했다.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경제팀 관계자들의 말을 종합하면 새 정부의 민영화 방침은 “시장이 할 수 있는 건 시장에 맡기고, 국민 생활에 필수적인 기반시설은 정부가 운영한다”는 구상이다. 예컨대 산업은행의 경우 정책금융 기능은 정부에서 계속 맡고 투자은행 영역은 민간이 수행한다는 것이고, 철도는 레일 등 대규모 기반시설은 국가에서 그대로 운영하고 여객·화물수송과 판매 서비스 부문은 민영화한다는 것이다. 이달곤 인수위 법무행정분과위원(서울대 교수)은 “일시에 대규모로 민영화를 추진하기는 어렵고, 몇 개 산업부터 단계적으로 해야 한다”며 “민간기업이 시장에서 공기업과 유사한 사업으로 경쟁하고 있을 경우 정부가 밀어주는 공기업에 비해 경쟁에서 불리한 상황에 있다. 이럴 경우 시장에서 경쟁이 돌도록 민영화를 추진해야 한다. 대규모 투자가 필요한 부문은 정부가 그대로 맡고, 판매서비스 운영은 민간이 맡는 것을 공기업 민영화의 대략적인 얼개로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공기업에서 상업성을 분리해 이를 민간에 파는 것인데, 공익적 기능과 수익사업을 쪼개서 민간이 인수 욕심을 낼 수 있는 기능만 매각한다는 것이다. 공익적 기능을 정부에 계속 맡기는 구상은 지난 2001년 전력산업이 사유화된 뒤 발생한 캘리포니아 대규모 정전사태나 영국 철도 민영화 이후 철도 사고가 빈발한 사례를 사전에 막기 위한 것이라고 볼 수도 있다. 이는 민간기업이 공기업을 인수한 뒤 수익 확대를 위해 설비투자를 축소하고 유지보수 비용 지출을 줄임에 따라 초래되는 민영화의 폐해를 차단하는 목적도 있지만, 사실은 거대한 시설투자가 필요한 부문, 즉 투자 대비 수익을 내기 어려운 부문은 국가가 계속 수행하고, 이윤을 낼 수 있는 요금 형태의 수익사업 부문만 떼내 민간에 맡긴다는 방안이다. 철도의 경우 돈이 될 수 있는 부문은 노선별로, 즉 민간 대자본이 탐을 낼 만한 상태로 쪼개 판다는 구상이다. 한나라당 김기현 의원(전 이명박 선대위 공공분과 위원장)은 “발전의 경우 송전은 어마어마한 네트워크망 비용이 필요하기 때문에 공기업 한전이 망임대료를 받는 식으로 유지하고, 6개 발전 자회사들은 완전 민영화하고 배전 부문도 (지역별로) 민간자본에 맡기는 것이 전력 민영화의 최종 목표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인수위 쪽은 “한전과 가스공사 등 기간산업 민영화는 신중을 기하겠다”고 밝혔지만 “그래도 일부 기능은 민영화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철도 노선과 한전의 발전 자회사도

 

 

 

 

인수위 경제팀의 민영화 구상은 전경련이 끊임없이 요구해온 민영화 방안과 거의 흡사하다. 전경련 쪽은 농구를 예로 들어 “이미 공기업이라는 거구의 장신 센터가 골 밑에 버티고 있는 산업에 민간기업이 새로 진입해 경쟁을 할 수 있겠는가? 공기업을 민영화하지 않는 한 민간이 이런 사업에 뛰어들기는 불가능하다”며 “정부가 보유하면서 독점 수입을 내고 있는 마사회 같은 공적 기관은 민영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국경제연구원 조성봉 연구조정실장은 “한전의 저소득층 미납자에 대한 단전 유예 등 공익적 성격은 소비자들이 요금 형태로 공동 부담할 것이 아니라 국가 예산으로 감당해야 한다. 공기업은 공공적 기능과 수익성 추구가 뒤섞여 있는데, 수익성을 따로 분리해서 민간에 위임하는 식으로 기능을 재조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공기업 민영화는 경제에서 국가의 역할을 대폭 축소하고 대신 시장경제 활동 영역과 시장규율을 확대하자는 것으로, 이명박 새 정부의 ‘시장주의’ 철학의 완결판이라고 할 수 있다. 곽승준 인수위 기획조정분과위원(고려대 교수·경제학)은 “시장과 마찰을 일으키는 공기업은 시급히 민영화해야 한다. 공기업을 통째로 민영화하긴 어렵지만, (공적 기능을 제외하고) 섹터별 민영화를 추진하는 방안이 유력하다”고 말했다. 공기업의 기능을 세부적으로 따져보면 민간이 담당할 수 있는 영역이 많다는 얘기다.

인수위 경제팀은 민영화의 명분으로 공기업의 방만하고 비효율적인 경영, 철밥통, 대국민 서비스 질 저하를 지목한다. 김기현 의원은 “노무현 정부에서 민영화 대신 공기업 내부 개혁을 추진했지만 실질적 성과는 없었고, 낙하산 사장과 노조 간의 결탁이 더욱 심화됐다”며 “자발적인 내부 개혁을 통해서는 공기업이 안고 있는 비효율의 30∼40%밖에 제거할 수 없다. 과감하게 시장에 맡겨야 비효율이 100% 제거될 수 있고 경쟁체제가 도입되면 자연스럽게 요금도 내려가고 국민들에게 더 좋은 품질의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다”고 말했다. 민영화와 ‘시장의 힘’을 통해서만 공기업의 비효율을 치유할 수 있다는 얘기다.

그러나 민영화는 국가의 공공서비스 기능을 시장에 팔아 사유화하는 것으로, 민간 대자본에 이윤 획득의 기회를 제공하는 ‘친재벌 정책’의 대표 격이다. 이종태 금융경제연구소 연구위원은 “공기업이 ‘공공의 적’처럼 인식돼 있기 때문에 민영화를 추진하면 이명박 새 정부의 인기가 더 올라갈 수 있다. 따라서 다분히 포퓰리즘적인데 민영화의 폐해, 즉 공공서비스 기능의 훼손과 요금 인상 우려는 전혀 제기되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주인 없는 민영화는 안 된다?

 

 

공기업 민영화는 전체 매각과 부분 매각이 있고, △특정 기업에 매각 △다수인에게 매각 △다수의 기업들로 구성되는 컨소시엄에 매각 △기존 경영진과 종업원에게 매각 △다수 국민에게 분산 매각(공모주 매각)등의 방식이 있다. 포항제철·한국통신 민영화는 국민주 공모 방식이었다. 국민주 방식은 중하위 소득계층에게 우량주식 보유 기회를 줘서 재산 형성에 도움을 줄 수도 있다. 그러나 인수위 경제팀은 지배주주에게 경영권을 매각하는 이른바 ‘주인 있는 민영화’를 유력한 방안으로 잡고 있다. 흥미롭게도 전경련 역시 오래전부터 ‘주인 없는 민영화’를 강하게 비판하고 있다. 조성봉 실장은 “KT와 포스코는 ‘주인 없는 민영화’로 인해 민영화 효과가 크지 않고, 특정 기업에 인수된 두산중공업은 성과가 훨씬 낫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한국개발연구원 임원혁 연구위원은 “그동안 공기업이 제공해온 서비스의 가격과 품질을 놓고 국민들이 불만을 제기한 적이 있었는가?”라며 “민영화하면 (다수의 소액주주들이라도) 주주가 다 있는 것인데, 주인 없는 민영화란 게 대체 무엇을 뜻하는 것인가? 포스코와 KT가 민영화 이후 과연 수익을 못 내고 비효율적인가?”라고 반문했다. 사실 공기업의 시장 독점에 따른 이익은 모두 세금 재원으로 활용돼왔는데, 민영화되면 독점 이익을 그대로 민간 대자본에 넘겨주는 격이 된다.

조성봉 실장은 “시장 경쟁 여건이 성숙될 때까지 민영화를 늦추면 안 된다. 영국에서 대처 정부 초기에는 민영화의 조건이 좋지 않았으나 민영화 작업이 진행되면서 공기업의 매각 가치도 높아졌다”고 말했다. 민영화에 빨리 드라이브를 걸어야 한다는 주장인데, 대통령직 인수위의 산업은행 조기 민영화 발언은 재계의 이런 요구에 대한 화답인 것일까? 게다가 조 실장은 “민간자본에 매각해도 공익적 기능을 고려해 요금 규제나 정부 간섭이 필요할 수도 있을 것”이라며 “적자 공기업이라도 (요금 규제하에서도) 어느 정도 적정 가격을 책정하도록 해준다면 수익을 올릴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현재 공기업이 수행하고 있는 ‘돈 되는 사업’을 민간이 맡을 수 있다면 어느 정도의 요금 규제도 수용할 수 있다는 것일까? 사실 민간기업은 이윤 추구가 유일한 동기이므로 공기업처럼 생산비 이하로 상품을 판매하지 않을 것이고, 요금 인상은 불가피하다.

이명박 당선자가 지향하는 ‘작은 정부’와 감세는 민영화와 직결돼 있다. 이명박 새 정부는 법인세를 25%에서 20%로 삭감하는 방안을 이미 제시했다. 이에 따른 세수 부족은 공기업을 매각한 대금으로 보전할 수 있다. 실제로 김대중 정부는 8개 거대 공기업 매각을 통해 총 14조3500억원(2001년 11월 기준)의 매각 재정수입을 올렸다. 이럴 경우 민간 대자본은 꿩 먹고 알 먹고가 되고, 공기업 민영화는 끊임없이 특혜 시비에 휘말리게 될 공산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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