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드바 영역으로 건너뛰기

전족


                     

 



냥, 자료 찾다가 펐어요. 아..... ㅜ.-

Chinese Footbinding : The History of a Curious Erotic Custom


전족에 대한 연구중 가장 권위있는 클래식 텍스트라고 합니다. 구글에서 찾아서 올려봐요. 전족이 다시 언론에 등장하기 시작한게, 마놀로 블라닉 신으려고 발가락을 자르는 수술이 유행하게 되었기 때문이라죠?
미를 위해 자기 발가락을 자신의 의지로 자를 수 있게 된 현대여성, 왠지 씁쓸하군요.

 

-----------------------------------------



여자 아이들은 도대체 몇 살부터 전족을 하는가?
전족은 또 어떻게 하는가?
전족은 여자아이의 나이가 서너살이 되면서부터 시작한다. 모두 네 과정을 거치는데 약 삼 년이라는 시간이 걸린다. 이건 눈물과 고통으로 얽힌 기나긴 시간이다.

고통이 제일 심한 시기는 발가락을 발바닥에 쭈그려 붙이는 두번째와 세번째 단계이다. 이 단계에서 엄지발가락 외의 네 발가락을 부러뜨려 발바닥 밑에 닿도록 굽히고 힘주어 동여맨다. 그러면 발이 화농하여 출혈까지 생기며 티눈이 생긴다. 이 때에는 가만히 앉아 있어도 극통 때문에 몸부림친다. 만약 조심하지 않아 한 군데 다치기라도 하면 아픔이 온몸에 저려난다. 두번째 단계에는 식욕이 현저히 떨어지며 밤에는 잠을 잘 수 없게 된다. '전족 한 쌍은 눈물이 한 독'이라는 말은 여기에서 나온 말이다.

전족을 시작하기 전에 부모들은 딸을 보고 이렇게 타이른다.
"얼마나 큰 고통이 있다 해도 꼭 참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다음에 커서 시집을 못간다"
이렇게 백당부 천당부한 다음에야 전족을 시작한다.
여자아이를 의자에 앉혀 놓고 그릇에 물을 떠다 두 발을 먼저 깨끗이 씻어 준다. 그런 다음에 아이의 오른 발을 전족 수술을 하는 사람의 다리 위에 올려놓는다. 더운 물에 발을 씻을 때의 열기가 다 빠지기 전에 엄지발가락 외에 네 발가락을 발바닥까지 굽힌다. 그런 후에 발가락 사이마다 약을 바른다. 약은 피부를 수비게 수축시키고, 화농하거나 염증이 발생하는 걸 방지한다고 한다. 발가락을 발바닥 밑으로 후려 넣은 다음 천으로 동이고 바느질로 기워 맨다. 그리고는 전족에 신기는 양말과 끝이 뾰족한 신을 신긴다. 이것이 전족의 첫번째 단계이다. 발을 꽉 동이고 공기마저 통하지 않기 때문에 쉽게 열이 난다. 그래서 전족 수술은 시원한 가을에 한다.

두번째 단계는 조이는 과정인데, 반년 이상이 걸린다. 평균 사흘에 한번씩 발을 풀어 소독을 한 다음 다시 동인다. 그럴 뿐 아니라 점차 더 조여서 동인다. 그러니 아픔도 더할 수밖에 없다. 발가락을 발바닥 밑에 굽혀 넣고 동이기 때문에 티눈이 수비게 난다. 티눈이 나면 침으로 빼 낸다. 이 때 온 몸의 무게 중심은 발바닥 밑에 굽혀 넣은 여덟 발가락에 쏠리기 때문에 그 아픔은 알고도 남음이 있을 것이다.

여자아이를 놓고 보면 이 때가 가장 무서운 단계이다. 수술하는 사람이 물을 떠가지고 방에 들어서면 아이들은 무서워 울지 않으면 도망치려고 한다. 하지만 발의 아픔 때문에 뛰지도 못하고 붙잡힌다. 발을 감은 천을 풀면 발등의 피부는 이미 완전히 수축되어 있으며 고름이 흐르지 않으면 피가 흐른다. 수술하는 사람은 아이의 두 발을 약수에 담그고 깨끗하게 씻는다. 여자아이가 버둥질치면 티눈이 난 발가락을 때린다. 그러면 아이는 그 아픔 때문에 참고 견딘다. 수술을 하는 사람이 바늘로 티눈을 뺄 때마다 아이는 아파서 발질을 하고 울고 난리를 치지만 수술하는 사람은 개의치 않고 바늘로 생살을 이리저리 헤집는다. 그 날은 걷지도 못하거니와 통증 때문에 자지도 못한다. 이 때면 어머니도 가슴 아파 잠을 이루지 못한다. 아이의 발을 이불 밖으로 내놓아 시원하게 해 주면서도 말없이 눈물만 흘린다. 자식과 고통을 나누려는 어머니의 심정일 것이다. 이튿날, 자리에서 일어난 아이는 걸을 수 없게 된다. 하여 벽을 짚고 발 뒤축으로 걷는 연습을 한다.

계속 뒤따르는 것은 발을 더욱 수축시키는 제3단계 '긴축'단계이다. 이때 하는 수술 방법은 발 가운데의 뼈를 발바닥 밑에 오그려 넣는 것이다. 힘주어 오그리기 때문에 발의 모든 뼈들이 오그라든다. 이 단계도 약 반년이라는 시간이 걸린다. 제3단계에서는 발의 근육들이 수축되며 발등의 굳어졌던 피부가 벗겨지면서 피가 흐르고 화농하고 썩으며 경우에 따라서는 발가락까지 썩어 들 때도 있다. 시간이 흘러 죽은 부위가 떨어져 나가면, 작고 고운 발이 나타난다.

마지막 단계는 발을 오그리는 것인데 이 때의 통증은 그리 심하지 않다.
역시 반년이라는 시간이 걸린다. 이 때에는 발등을 더욱 동그랗게 올라오게 하며 엄지발가락과 네 발가락을 함께 오목하게 들어간 발바닥 밑에 후려 넣는다. 이렇게 하여 발의 길이가 십 센티미터 정도가 되면 가장 이상적인 발이 된다.

아이는 무려 이년이라는 시간을 보내야 고통의 댓가로 시집갈 수 있는 자격과 미녀로 인정받을 수 있는 조건을 얻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남자의 노예가 될 수 있는 준비를 끝낸 셈이다. 이 외에 영원히 뒤따르는 것은 사흘에 한번씩 발을 동인 천을 풀고 티눈을 빼고 발을 씻고 발톱을 깎고 다시 천으로 동이는 등 귀찮은 일들이다.

 


 

전족의 고통에 대한 회고담>

일곱 살 되던 해 정월, 나는 여자라면 귀에 구멍을 뚫고 전족을 하는 두 가지 고통을 겪어야 한다고 들었다. 전족은 다음 달인 2월에 행해졌다. 전통에 따라 어머니가 吉月이라 여겨졌던 달을 택한 것이었다. 나는 울면서 옆집으로 숨었지만 어머니는 나를 찾아내어 꾸짖으며 집으로 끌고 왔다. 어머니는 목욕탕 문을 닫고 물을 끓였다. 그리고 상자에서 전족에 쓰일 붕대와 발, 칼, 바늘, 실 등을 꺼냈다. 나는 어머니에게 하루만 연기하자고 애원했다. 어머니는 이런 나에게, "오늘은 길한 날이란다. 오늘 발을 묶는다면 절대 아프지 않겠지만 내일 한 면 몹시 아플거야"라고 말했다. 어머니는 내 발을 씻고 명반(백반)을 뿌린 다음 발톱을 깎았다. 그리고는 길이 10피트, 폭 2인치의 천으로 발가락을 묶어 발바닥 쪽으로 향하게 했다. 먼저 오른발을 하고 이어 왼쪽 발을 했다. 어머니는 다 묶은 다음 나보고 걸어보라고 했지만, 나는 그렇게 하는 데 너무도 극심한 고통을 겪어야 했다.
그 날 저녁 어머니는 내가 신발을 벗지 못하게 했다. 내 발은 불 위에 있는 것처럼 화끈거려 잠을 잘 수 없었다. 어머니는 운다고 나를 때렸다. 이튿날 나는 숨으려 했으나 어른들의 명령으로 쉬지 않고 걸어다녀야 했다. 내가 반항할라치면 어머니는 손과 발을 때렸고, 또 붕대를 느슨히 하기라도 하면 어김없이 매질과 욕설이 퍼부어졌다. 사나흘 후 발을 씻고 명반을 바른 다음 더 단단히 감았다. 이렇게 몇 달이 되자 엄지발가락을 제외한 나머지 발가락이 발바닥 안쪽으로 구부러져 달라붙었다. 생선이나 고기를 먹을 때마다 내 발은 어김없이 부풀어오르며 고름이 흘러내렸다. 어머니는 가끔 붕대를 벗기고 내 발에 묻은 피와 고름을 닦아주며, 고름이 흘러 발에 있는 살이 다 녹아야 발이 날씬하게 예뻐질 거라고 말했다. 잘못해서 발을 어디에 부딪히기라도 하면 피가 시냇물처럼 흘러내렸다. 엄지발가락은 작은 천조각으로 묶어 마치 초승달 모양으로 굽어 위로 향하게 했다.
그 동안 매 2주마다 새 신발로 갈아 신었다. 물론 그새 신발은 더욱 작아졌다. 새 신발을 신는 것은 몹시 고통스러웠다. 새 신을 신으면 고통으로 거의 까무러칠 정도였지만 어머니는 그런 나를 다그쳐 계속 걸어다니라고 했다. 그렇게 10켤레 이상의 신발을 갈아신 고 난 다음 내 발은 4인치로 줄어들었다. 내가 한 달 정도 전족을 하고 있을 때 내 동생도 전족을 시작했다. 주위에 아무도 없을 때 우리는 서로를 붙들고 울곤 했다. 여름이면 고름과 피 때문에 심한 악취가 났으며 겨울이면 혈액순환이 되지 않아 언제나 마비상태에 가까운 심한 동상에 시달려야 했다.
이렇게 해서 네 발가락은 마치 죽은 나방처럼 안쪽으로 구부러졌다. 모범적인 3치의 발이 되는 데까지 꼬박 2년이 걸렸다. 내 발톱은 마치 얇은 종이처럼 살을 파고들었다. 심하게 구부려진 발바닥은 가려워도 긁지 못했고 아파도 어루만지기조차 못했다. (Levy, Howard S., Chinese Footbinding : The History of a Curious Erotic Custom, New York, Bell, 1966)

- 취재진들이 직접 만난 전족을 한 여성들은 걷거나 계단을 오르내리는데 아무런 문제가 없어 보였으며, 아마도 오랜세월동안 그 같은 신체 상황에 적응이 되었기 때문으로 보인다. 많은 여성들이 전족을 행하고 있으나 이상적인 3인치 발을 갖는 것은 그 중에서도 소수에 불과 했다. (또 다른 기사조각.)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