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래의 꿈

저마다 다르겠지만 대부분은 초딩 때쯤에 첫 스타를 갖게 될 것이다..

나의 첫 스타는 '혜은이'다..

어린이들이야 핑클의 노래로 알고 있을 '당신은 모르실꺼야'를 빅히트 시켰을 때가

내 대중가요에 대한 첫 기억이다..

그 다음이 요즘 '나무 자전거'의 멤버로 활약하고 있는 강인봉네 일곱 형제로 구성되었던

작은별가족 쯤..

 

작은별가족의 '나의 작은 꿈'이야 내 또래의 미소년의 또랑또랑한 목소리에 매료되었다 치더라도

혜은이의 여리여리한 '당신은 모르실꺼야'를 이해하기엔

초딩의 감수성에 그다지 적절하지는 않은 것 같다..

그 노래가 나의 첫 노래가 된 이유는 딱 하나이다..

라디오나 티비에서 가장 많이 흘러 나온 노래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게 억울한 것은 훨씬 내 감수성에 어울리는 혹은 성장해서

참 좋았지라고 추억할 수 있는 내 노래를 가질 수 있던 기회를 박탈당한 상황이었다는 것이다..

아주 아주 나이 들어서야 알게된 사실이지만..

70년대 들어서 노땅을 밀어내고 청년들의 문화가 주류를 장악하기 시작했고

(그래봤자 짝퉁 포크송이긴 하나.. 그래서 혹자는 굳이 내용의 계승이 전혀 보이지 않는 그것을 통기타음악이라고 이상스레 부르기도 한다..)

이와는 차별되기는 하나 대중음악의 한쪽엔 '신중현사단'이 맹위를 떨치기 시작했다..

그러니까 시대상황으로 봐서는 내 첫 대중음악은

'미인' 혹은 '커피 한 잔'.. 쯤이어야 적절하다..

버트.. 지멋대로인 청년들을 곱게 봐줄리 없던 군사정권은 70년대 중반

대마초 흡연..(이건 원래부터 불법이 아니었다..) 퇴폐문화 추방.. 왜색 추방 등의

다양한 이유를 들어 주류를 점령해나가던 새로운 문화에

철퇴를 가했던 것이다..

 

나는 영문도 모른 채..

내 음악들을 빼앗겼던 것이다..

그래서 나의 노래 리스트 1번은 '당신은 모르실꺼야' 혹은 '해뜰날'이 되버린 것이다..

이건 내 선택이 아니다..

어차피 가장 많이 전파를 타는 음악이 가장 인상에 남을 쉽상인 나이이긴 하나

이건 순리가 아니라 억지이다..

내가 억울해 하는 건 바로 그 지점이다..

게다가 훗날 알게 된 그 노래들이.. 내가 초딩 때 들었어야 했으나 아주 오랜 세월이 흐른 후에야

듣게된 그 음악들..

동시대 서구의 사이키델릭에 견주어 손색없을 그 몽환적 사운드..

한마디로 이런 장르야 라고 단정짓기엔 너무나 미묘한 것들을 내포하고 있는 락 사운드..

착착 감기는 그 음악들을 들으며 얼마나 전율했던가..

아 진짜 억울했다..

 

 

오늘 모 티비에서 신중현 라스트 콘서트를 방영했다..

마음이야 직접 가서 보고 싶었으나 현실이 그러기엔 너무 암울한 때였다..;;

다른 일이 밀렸음에도 끝까지 시청하는 인내를..

 

흠.. 담백하게 노장의 라스트 콘서트를 시청하기 보다는

앞서 장황하게 늘어놓은 회한을 가지고 본 것이야 뭐 그렇다치고..

보다 보니 또 더욱 억울해지는게다..

 

그의 목소리는 이미 그가 만들었던 콩나물을 그대로 표현하기엔 탁해져버렸고..

손수 나무판대기에 줄을 연결하여 기타 연습을 하여 일가를 이루었던 그의 명징했던 사운드는 녹슬어버렸다..

 

당연하게 받아들여야 하는 것일 게다..

수십년의 세월을 그가 지속적으로 음악하고 들으며 같이 늙어왔다면..

자연스럽게 흐뭇한 마음으로 받아들일 수 있었을 거다..

하지만 그는 가장 화려한 시기에 입에 재갈 물리고 두 손은 꽁꽁 묶여

대중들과 단절된 채로 수년을 보내야만 했다..

그리고 나는 어쩌면 나의 첫 스타가 될 수도 있던 사람을 모르는 채로 살아야 했다..

대신 오후 5시만 되면 어김없이 들려오는 애국가에 발길 멈추고 손은 가슴에 얹고

경건한 마음으로 길거리 어디에든지 서있어야만했다..-_-);;

 

뭐 공식적 발표야 대마초 흡연이었으나

실제 사연은 박정희를 찬양하는 노래를 만들어줄 것을 거절한 괘씸죄라는 건

이제 알만한 사람은 다 아는 사실..

 

아.. 지금 '아름다운 강산을 부르는 중이시다..

이제는 관변행사의 단골곡이 되어버린 노래.. 흑

이 노래는 괘씸죄에 걸린 후 어케 면죄부라도 받을까 싶어서

만든 노래란다..(믿거나 말거나)

 

처음으로 좋아했던 꽃.... 무궁화

처음으로 존경했던 위인.... 이순신, 신사임당;;

처음으로 이땅의 대통령이어야만 한다고 생각했던 정치인.... 박정희 대통령 각하~!!!!

통일주체국민회의 결과가 반대표 2표인가 나온거 보고서 분개했었다..

처음으로 서럽게 울어본 첫 경험..... 박정희 각하 서거하셨을 때..

선생님한테 가장 많이 맞아 본 경험.. 각하 서거했을 때 우리 반 아이가 이성을 잃고 '간첩식별요령'을 찢어버렸는데 그거 언능 고쳐놓지 않았다고(각하 돌아가신 마당에 이런게 뭔 소용이냐며 찢었음)

 

기타등등 기타등등...

 

내가 모르는 사이에

나의 첫 경험이 될 수 있던 수많은 것들을 빼앗기며 살았을까?

'신중현의 음악' 뿐이겠는가?

내가 모르는 사이에 바껴버린 나의 첫 경험의 대상들..

지금도 수많은 것들을 낚인 채로 살아가고 있는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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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7/25 02:12 2006/07/25 0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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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덜 투덜 2006/07/25 06:08 URL EDIT REPLY
쌩뚱맞기는 한데요. 신중현이 '아름다운 강산'의 작곡에 대한 변(?)은 다중적인 듯해요. 이드님이 이야기하신 정부에 대한 면죄부용도 있고, 정부를 찬양하느니 금수강산(?)을 찬양하는게 훨났다는 의미로도 알고있어요.(이노래 첫TV공연 때 장발을 머릿기름을 좌악발라 숨기면서까지 머리를 깍지않았던 해프닝마냥) 관변행사용 노래로 많이 사용되지만, 이선희가 88올림픽때 부루기전까지는 그런 용도로 사용되지는 않았던 것으로 알고 있어요. 관변행사용 노래로만 축소하기엔 아까운 노래기도 하구요. 아님말구용 ㅠ.ㅠ
이드 2006/07/25 11:55 URL EDIT REPLY
앗 수지의 주인이시네요.. 반갑습니다 예전에 수지에 관한 글 읽고 맘 짠해졌던 기억이...
글쵸.. 노래라는 게 세상에 나오는 순간.. 그 창작자의 본 뜻과는 무관하게 되버리죠.. 스스로를 위로하고자 만든 노래가 수용자들에 의해 민중의 뜻을 담은 노래가 되기도 하고.. '아름다운 강산'처럼 관변행사용으로 주로 쓰이기도 하구요..
거기에 창작자가 개입할 수 있는 여지는 거의 없어지는거죠.. 그럴 필요도 없구요.. 문제는 쌍방향이 아닌 일방적 소통 아닌 소통인거죠..쩝
EM 2006/07/26 09:11 URL EDIT REPLY
"아름다운 강산"에 그런 뜻이 있는줄은 몰랐네요..^^;
암튼 신중현 선생의 원곡 연주는 참 멋지죠..
그나저나 이드님 글을 보니 저도 참 "최초의~"를 많이 빼앗기고 산 것 같습니다...
글고 보니.. 그시절에 "이승복 어린이 글짓기" 행사에서 상받은 기억도 나네요. (-_-)
이드 2006/07/27 00:37 URL EDIT REPLY
EM 님/ 그렇죠.. 저도 반공글짓기에서 아주 비분강개하면 북녘을 비판하는 통일 염원의 글로 상받았던..;; 그런데 아직도 우리는 많은 뺏기고 있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