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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가 남겨준 숙제

1리터의 눈물, 이라는 드라마를 보고 있다. 아니, 이제 최종화인 11화를 남겨두고 '다' 보았다. 결국, 진짜 힘겨운 상황이 닥쳤을 때 피를 나눈 가족 밖에는 없다. 그래서, 그 누구보다도 가족이 소중하고, 가족이 우선이 되어야 하는 것이 당연하다. 그리고 이것은 드라마 때문이 아닌 실제 삶이 그러하기 때문에 진실이다. 

 

아버지가 입원하셨다. 고질적인 심장질환이다. 다행히도 빠른 조치 덕에 크게 이상은 없겠지만 당분간은 입원치료를 받으셔야 한다. 10년 전의 심장병이 10년 후를 옥죄고 있다. 우리 집은 결코 가난하지는 않다. 하지만,(아니, 어쩌면 그래서) 결코 내가 운동을 하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그 어느 집이나 마찬가지겠지만, 내가 운동을 하는 그 자체가 아버지의 심화를 돋구는 꼴이 되어버렸다. 내가 학교 다닐 때 하도 속을 썩여대서 아버지가 그렇게 되었다는 말에 입에 열 개라도 할 말이 없어 혼자 나와서 조용히 담배를 입에 물었다.

 

한 동안 아버지가 병자라는 것을 잊고 살았는데, 얼마 전에도 아직 일어나지도 않은 일을 가지고 아버지께서는 화를 내셨다. 제대하면 학생운동이니 노동운동이니 그런 건 그만두라는 그 말에, 내가 "예" 라는 대답을 하지 않아서이다. 아버지는 불안하셨던 것이다. 아직도 어리고 과히 똑똑하거나 유능한 구석이 없는 아들이, 누가 보더라도 한 몸의 안위와 거리가 먼 길을 가면서, 아버지의 기준으로 볼 때 - 사실 이 한국 사회에서의 대다수의 사람들이 볼 때 - 결코 성공적이지는 못한 인생을 사는 것이 싫으셨던 것이다.

 

돈도, 사회적 힘도 없는 인생이 얼마나 무시받는 인생인지, 실질적인 능력 없이는 친구도 동지도 없다는 것을 너무나 잘 알기에, 아버지께서는 "혹여라도" 내가 좌파운동을 통해서 그러한 길을 갈 우려 자체를 배제하고 싶으셨던 것이다. 그냥 눈 딱 감고 내 한 몸만 잘 챙겨서 공부 열심히 해서 돈 잘 벌고 지위도 좀 있는 좋은 직장에 취업해서 괜찮은 아가씨와 결혼하고 떡두꺼비같은 손자 낳아드리겠다는 그런 확답을 받고 싶으셨던 게다.

 

이미 하루 이틀 벌어졌던 일은 아니다. 하지만 아버지의 심장병이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만든 것은 사실이다. 내가 어떤 식으로 살아야 하는지에 대해서, 물론 모든 결정의 책임은 전적으로 나에게 있지만 적어도 그 결정을 내리는 고민의 과정에서 한 가지 요인으로 작용할 수는 있는 것이다. 돈을 벌어서 효도하겠다는 차원이 아니다. 어떤 식으로 살아야 아버지와 어머니의 마음을 편하게 해 드릴 수 있는 길인지, 그렇게 사는 데에 있어서 운동이 장애가 된다면 그 문제를 어떤 식으로 해결할 수 있을 것인지를.

 

그것을 고민하게 되었다.

 

가족의 마음을 편하게, 가족이 나 때문에 고민하지 않게 하면서 내가 좌파로서의 삶을 지속시킬 수 있게 하는 것. 아버지의 발병이 내게 남겨 준 진지한 숙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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