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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거와 관계

예전에 어딘가에 썼던 글이다. 요즘들어 다시 이런 생각들이 들어찬다. 모든 관계들,미래를 함께 도모하자는 것에 대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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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 겨울,
낯선 마을에 방이 만들어졌다
방과 방에 살아갈 사람들을 설계했다

2003년 이른 봄,
방을 채웠다
방은 총 6개였고
처음엔,
방에 사는 사람은 4명이었고
4명중에 2명은 1개의 방에 함께 살았고
방에 살지 않지만 방에 자신의 미래를 두고서
자신의 흔적을 두고 있던 1명이 있었다

그리고, 얼마후
4명이 2개의 방과 1개의 거실을 채웠다
방에 사는 사람은 그래서 8명이 되었다
그리하여, 방은 모두 채워졌고
삶이 채워지고 그것이 혹시 미래의 자리일거라는
의미가 돋아났다

그러던, 언젠가
방에 살지 않지만 미래를 두었던 사람의 방에
다른 사람이 살겠다고 낯설게 들어왔다
그리고는 그 방에 미래를 두었던 이는
미래를 거두어 가는듯 그 방에 드나듬을 중단했다
그래서 방 하나가 비워지고
다시 채워졌다

그때, 하나를 배운다
방은 그냥 현실을 사는 것이지 미래를 보관하는 곳이 아니었다는 것!

그리고, 또 어느날
4명이 방 2개를 비웠다
기획된 삶의 한켠이 부서지는 듯한 아픔이 밀려왔다
아니 어쩌면, 이 방들의 미래가 느껴졌기 때문이리라

그때, 또 하나를 배운다
삶의 조건이 다른 이들이
방을 채우고 산다는 것은 어렵다는 것이고
그 다른 삶의 조건을 서로가 이해하기에
우리의 의식은 내면화되지 못한 형식으로 떠돌았음을...
그리고, 그렇게 떠나가는 것이
오히려 더 나은 삶으로 만날 수 있다는 것을...

그리고, 또 어느날
낯선 눈빛으로 들어온 한 사람이 방을 비웠다
늘, 낯설게 머물다가 아마도 낯선 눈빛들속에서 외로웠는지도 모른다

그때, 또 하나를 배웠다
서로의 삶에 연대할 의지없이
방만 채우며 산다는 것이 허함을...
그 삶에 연대한다는 것이 감당하기 버거울 때
우리는 거리두기라는 명목으로
그 사람의 지독한 아픔을 외면해왔다는 것을...
그건, 어쩔 수 없는 세월의 몫이었던 것이고
우리의 의식이라는 것이 아직은 익지 않았음을...

그리고, 언젠가
갈 곳이 없어 난감해하던 어떤 사람이 방을 채우러 왔다
머물다 갈 것이라는 전제하에서...
함께 산다는 것을 판단하는 것이 이미 쉽지 않게 된 우리들의 경험이
그렇게 결정했다

그러다가, 또 그 사람이 방을 비웠다
집안일 때문에 더이상 여기 머물수 없었다

그때, 또하나를 남긴다
이렇게 이 방을 채웠다가 비워내는 사람들도 있을 수 있구나
그 방의 의미가 새롭게 하나 세워졌다
그리고, 역시나 세월이 옅은 사람과의 관계에서
늘 타인처럼 서로 배회했던 기억,
그것이 편안했던 기억이 ...우리의 마음열기가 참으로 멀다는 걸 확인하고
함께 산다는 것, 미래를 도모한다는 것은 더욱 그러하다는 걸,,,

그리고, 누군가가 잠시 2달동안 방을 채웠다가 비웠다
자신만의 방을 구할때까지...
이 집, 이 방들의 의미가 그럴 수 있다는 것이
고맙게 느껴지는 경험이었다
잠시 답답한 이들에게...잠시의 머물 곳...방이 그걸 했다

그리고, 어떤 이는 방이 없어
짐을 맡겨두었다
자신 한몸 들어갈 방은 있으나
그 짐을 들여놓을 방이 없는 사람들도 있더라
사람은 늘 짐을 데리고 다니므로...
그런 사람들에게
이 집, 이 방들이 숨통이 되어주었다

그리고,어떤 사람들이 주말이나 휴일에
이 집 마당을 채우고
사람이 살지 않는 방들을 채웠다 비웠다를 하곤 했다
그것도 이 집 방들의 역할이었다

그리고, 지금
방이 하나가 비워졌다
이제 6개의 방중에 3개의 방만이 사람이 산다
비워진 방에는 이제 먼지가 살것이다
혹은 앞서서 이 방들을 채웠다 비웠다했던 것 처럼
그런 사람들이 드나들 수 있다

애초에 방 2개와 사람 4명이 통째로 비워졌을 때보다 더 큰
고통이 이 집에 다시 흐르고 있다
방이 비워졌던 그 어떤 역사보다
가장 고통스러운 아픔이 지금 흐르고 있다
그건 아마,
이 집에 방을 설계할 때부터
미래를 함께 설계했다고 믿었기 때문이리라

여기서, 또하나 배운다
미래라는 것은 기획대로 되지 않는다
너무 가까이에서 너무 많은 것을 보는 사람들일 수록
조금은 더 멀리 서로의 의미를 설정할 필요가 있다
의미는 사람마다 다르게 두는 것이다
의미에 대한 착각에서 벗어나는 것이
덜 아픈 길이다
변화에 유연한 관계가 되기 위한 방법론을 배워야 한다


방이 비워질 때마다
사람이 비워졌다
때로는 작은 생채기나 약간의 허전함정도를 남기고 비워지기도 했고
이처럼 눈물과 생채기가 진한 비워짐도 있다

생채기는 새살이 돋듯 아물 수도 있다
깊은 상처로 패일 것인가
더욱 아름다운 새살로 돋을 것인가는
어떻게 사는가에 달려있을 것이다
마음이 건강하게 되면
그만큼 회복력이 높을 것이고
지지리 비관적으로 살면
깊은 상처로 남길 것이다

방이 하나 비워지고
사람이 비워지고
미래의 한 켠이 비워지는 이 시간을 지나면

자기안에 미래가 다시 그려질 것이다
그러나 미래는 방향일 뿐이고
또렷한 그 무엇이 아니어야 하며
현실안에서 발을 굳건히 딛고
하루하루를 또박또박 사는 것이어야 할 것이다

그러다 보면, 사람이 비워진 자리에
자신의 존재감이 들어찰 것이며
그래야 사람이 비워질 때 유연해 질 수 있을 것이다

그럴 때, 비로소
이 많은 빈방들이
채움과 비움을 반복하며
방 그 자체로 존재하게 될 것이다

방은 방이다
사람이 쉬고 널부러 질 수 있는 그저 그런 방이다
방에 지나친 의미를 두지 말자
오지 않은 미래를 보관하지도 말 것이며
이미 비워진 의미를 애써 묶어놓지도 말 것이며
방에 묶여 삶을 억압하지도 말아야 한다

집이나 방은
낡은 츄리닝에 헐렁하고 빛바랜 티셔츠를 입고 돌아다니며
뒤엉킨 머리털을 하고
세수안한 푸석한 얼굴을 드러내며
냄새지독한 방귀도 끼고
푹퍼져 뒹굴거릴 수도 있는
제 한몸과 맘을 그냥 퍼질러 놓을 수 있으면 된다
그런게 집이다
그런게 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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