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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12일차] 버스를 타다

7월 27일

 

오늘은 버스를 타고 miramar까지 가기로 했다. 주인아저씨가 직접 정류장까지 데려다 주고는 'P-4번' 버스를 타란다. 한참을 기다리니 버스가 왔다. 근데 완전 우리 출근길 버스다. 문에 달라 붙어설라무네...

그거야 뭐 내 전공이니까 그냥 낑겨탈라 그랬는데, 버스 안내원이(쿠바는 우리 60~70년대 처럼 돈을 받는 버스 안내원이 있다. 그런데 우리처럼 여자만 하는건 아니다.) 내 앞에서 짜르는거 아닌가...

오늘은 기필고 타고 말리라... 그래서 한대 보내고 조금 더 기다리니 버스가 온다.

이번엔 안내원이 여자다. 1페소를 주니 여자가 뭐라뭐라 하는데 눈치를 보아하니 어디를 가냐고 하는것 같길래 "parque miramar"라고 하니 안간단다. 그러면서 베다도에서 P-1번을 타야 한단면서 돈도 안받는다.

곰곰히 생각해보니 숙소주인은 내게 베다도에 가는 버스를 가르쳐 준것 같다. 내가 베다도에서 버스타고 미라마르까지 갈꺼라고 하니까 "P-4"를 줄창 얘기 했으니까... 난 그게 parque miramar 갈꺼라고 생각한거고...

어쨋든 공짜로 버스 탔다. 히히...

그리곤 다시 P-1번 버스를 기다리는데 이번엔 버스가 더 심하다. 문이 안닫힐 정도로 사람이 낑겨간다.

왠만하면 시도해 볼려 했는데 혁명기념일에 주말까지 겹쳐 환전소가 문을 안여는 바람에 주말까지 쓸돈을 한꺼번에 환전하기 위해 300cad를 주머니에 넣고 있어서 조금 불안해서 그냥 포기하고 택시탔다.

 

부에나비스타쇼셜클럽이 영화에서 인터뷰했던 장소로 가서 조금 앉아 있다가 거리를 걸었다. 그 쪽 지역은 대사관들이 많은 지역이라 그런지 쿠바에서 보기드물게 신호등이 있다.

이 많은 대사관중에 왜 우리나라는 없을까. 그러니까 내가 사고를 못치자너...

 

바닷가로 향하니 사람도 드물고 시원하고...

아이들은 엄마 손 붙잡고 나와 수영을 즐기고 연인들은 물속에서 키스를 나눈다.

나도 양말을 벗고 바지를 걷고 물속에 발을 담그니 저절로 웃음이 나온다. 게다가 전날 얼려놓은 물을 한모금 마시니 언제 쿠바가 더웠냐는 듯 시원하다.

여기가 오아시스군...

수영을 못하는게 한이 된다.(한국에 돌아가면 꼭 수영을 배우고 말리라..)

 

어떤 남자가 말을 건다. 곧잘 영어도 한다. 뭐 이남자와 얘기하는게 나쁘지는 않다.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누다 헤어져 노천카페에 앉아 맥주를 마시는데 어느새 그 남자가 따라와 내 앞에 앉아도 되냐고 묻는다. 그러라고 하고 또다시 얘기를 나누는데,

그 왈 "나는 다른 나라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상상을 해. 그리곤 꿈을 꾸지. 그들과 얘기하면 날고 있는것 같아.."

오... 감수성이 풍부한데?

그는 음악을 좋아한다. 메탈리카 이야기를 하며 공감대도 형성됐다. 게다가 그가 나에게 맥주까지 사주는게 아닌가? 지금까지 들러붙으면서도 맨날 얻어먹던 인간들과 조금 다르자너... 게다가 그는 끈적거리지도 않고, 이야기도 재미있고...

그런데 이 인간이 맥주 2병을 먹더니 눈이 풀려서리 끈적거리기 시작하는게 아닌가? 뭔가를 기대한 내가 잘못이지...

처음엔 나랑 여행을 같이하고 싶단다. 자기는 쿠바사람이라 자기랑 다니면 더 싸다고... 내가 싫다고 하자, 나를 안건드린단다. 그저 이야기만 한다고...

남자들의 작업 방식은 다 똑같군... 단호하게 "NO!"라고 했다. 그러길 잘했지...

그때부터 그의 본성이 나타나는데 내 눈꼽을 떼어 주는 척 하며 얼굴을 만지질 않나, 모기물린 다리를 만지며 은근슬쩍 더듬질 않나...

안되겠다 싶어 피곤하다면 집에 갈라하는데 이 남자, 계속 따라온다.

나는 계속 "bye, bye"를 외치고 그는 "just talking"을 외치며 따라오고...

한참을 그러며 걸으니 옆을 지나가던 경찰이 그를 불러 세운다. 역시 쿠바다. 관광객을 조금이라도 귀찮게 하면 바로 잡아간다더니 정말 그렇네...

나는 뒤도 안돌아보고 계속 걸어갔다.

조금 뒤 어느새 그가 다시 온다.

아씨, 이럴줄 알았으면 경찰한테 그 좀 잡아가라고 할껄... 사실 보복할까 두려워서 그냥 모른채 하고 갔더니 이런 불상사가...

그는 경찰한테 뭐라고 거짓말을 했는지 모르겠지만, 나에게 뻔한 거짓말을 한다.

"저 경찰 내 친구 아버지야. 그냥 인사한거야..."

됐고요... 난 집에 가겠다고요~~~

그래도 그는 계속 남자친구 있니, 남자 안좋아 하니, 너에게는 쿠바 남자가 필요하다 등등 쓸데없는 소리를 한다.

나는 남자 싫다, 혼자가 좋다를 계속 반복하고...

그러자 그가 묻는다.

"너 레즈비언이니"

그래서 옳타쿠나!

"엉"

그랬더니 그제서야 "미안하다"는 말을 반복한다.

그를 겨우 떨어뜨려 놨다.

 

그래도 마지막까지 찝적대는게 쿠바식으로 인사를 하잔다.

그래서 볼을 맞대려고 하는데, 얼굴을 돌려 입을 맞추려고 하는게 아닌가. 그래서 순간적으로 그의 얼굴을 잡아 비틀어 버렸다.

하여간 남자가 찝적대는건 한국이나 20시간을 날아온 지구 반대편의 쿠바나 별로 다를게 없구나...

오늘 터득한 또하나의 여행팁은 남자가 찝적댈땐 "나 레즈비언이야"라고 하는게 그를 떼어놓는데 직빵이라는거...

 

말레꼰으로 걸어나오며 수영을 즐기는 쿠바인들을 구경하다가 어제 환전했던 호텔로 향해 환전을 하고 엘모로 성으로 향했다.

엘모로성은 입장료가 아깝지 않을 만큼 볼만하다. 아바나에서 입장료가 아깝지 않은 것은 아마도 혁명박물관과 이곳 엘모로성인것 같다.

엘모로 성은 스페인 침략을 막기위해 견고하게 쌓은 성이다.

이곳 저곳을 구경하고 있으니 등대에서 늙은 남성이 올라오라고 손짓한다. 또 가이드 해주고 돈 달라는것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갖고 올라갔다.

그는 단번에 나를 보고 "corea!"한다.

내가 놀라며 "si."라 하자 그는 중국인, 일본인, 한국인이 다 다르게 생겼단다. 뭔가 연륜이 묻어나는데?

그는 망원경으로 이곳저곳을 보여주고 쿠바 역사까지 자세하게 이야기해준다. 그곳에는 각 국의 깃발도 갖고 있었는데 태극기도 있다.

내가 왜 이 많은 깃발을 갖고 있냐고 묻자 그는 이쪽을 지나가는 배들이 SOS를 치거나 하면 그 나라 깃발을 내걸기 위해서란다.

그리고는 쿠바에 대한 자랑이다. 근데 그의 말이 가슴에 와 닿는다.

"쿠바는 꼬뮤니즘이다. 쿠바는 아시아, 아프리카, 아메리카 등 모두가 하나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들도 꾜뮤니즘이 되어야 한다. 쿠바는 그것을 위해 아프리카, 베네수엘라, 볼리비아 등에 의학, 교육 등 도움을 주고 있다."

 

그의 말을 재미있게 듣고 있는데 그와 함께 일하는 시큰둥한 젊은 남자가 문닫을 때 됐다며 그를 재촉한다. 그러자 늙은 남자가 쿠바 역사에 대해서 더 알고 싶은것 없냐고 묻는다.

사실은 많지... 당신은 연륜으로 보아하니 당시 혁명에 같이 했을 것 같은데 그 때 어땠는지... 지금 피델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는지 등등...

그러나 젊은 남자한테 눈치가 보여, 그저 당신 사진한장 찍어도 되냐고 하니 애써 폼까지 잡아준다.

그가 하는 말들은 관광객을 위해 교육받거나, 책을 읽듯이 하는 말이 아니다. 정말 쿠바를 자랑스러워하고 다른 나라들도 쿠바처럼 꼬뮤니즘을 지향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가슴에서 우러나오는 말들이다.

반면에 젊은 남자는 그런거에 관심도 없고, 그저 근무시간 채워서 빨리 집에 가고 싶어하는 듯한 표정.

2007년 한국 역시, 70~80년대 격동의 시대를 견뎌온 선배그룹들과 90~2000년대 젊은이들과의 간극....

그것이 쿠바의 노인과 젊은 등대지기의 모습과 다를바가 없어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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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겨우 쓰레기장에서 나와서 세상좀 보니까, 더 큰 쓰레기장이 나오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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