갸웃거렸다
분류없음 2024/12/03 11:33배우 정우성 씨가 “아버지로서 아들에 대한 책임은 끝까지 다할 것입니다” 라고 발언했다. 자신의 친자인 아들이 이 세상에 나왔고 따라서 아버지가 되었으니 책임을 다하겠다, 는 이토록 당연한 말이 왜 화제가 될까. 정우성이니까 그렇지, 혼외 관계 출산이잖아 등의 말들이 있지만 꽃개 생각에는 아마도 당연하지 못하게 행동하는 아버지들이 흔하디 흔한 세상이다보니 그렇지 않을까 짐작할 따름이다.
한편 정우성 씨의 아들의 친모, 문가비 씨가 정우성 씨의 동의를 득하지 않고 아이를 낳았다며, 이른바 "동의없는 출산"이라는 말이 몇몇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떠돌아다니는 것을 보았다. 꽃개는 고개를 한참 갸웃거렸다. "동의없는 성관계" "동의없는 촬영" "동의없는 공개" 따위의 말들은 들어봤지만 "동의없는 출산"은 정말이지 무슨 말인가 한참을 생각해야만 했다.
출산은 임신을 전제한다. (인간에게) 임신은 또 다른 행위를 전제한다. 남여 둘의 성적 관계 (intercourse) 혹은 성인 여성이 자신의 의지로 수행하는 IVF (In vitro fertilization: 인공수정/ 착상) 과정이 필요하다. 동정녀 마리아 이야기는 있지만 그것은 논외로 하자. 그리고 임신은 여성만이 한다. 아직까지 남성이 임신했다는 소식은 듣지 못했고 남성이 임신할 수 있는 생명과학기술의 플랫폼이 가능하다는 것 또한 금시초문이다. 즉, (아직까지는) 임신은 여성만 할 수 있다.
남과 여 둘의 성적 관계만을 놓고 얘기한다면 남과 여 서로의 동의는 임신에 이르는 과정 그러니까 성적 관계까지만이다. 임신 뒤부터는 사정이 달라진다. 이제부터는 동의를 넘어 책임의 단계로 접어든다. 굳이 "동의"를 따져보자면 남성 입장에서는 (혹은 그 남성을 지지하는 입장에서 보면) 매우 불평등하다. 불평등한 게 매우 정상이다. 그게 평등해지는 순간 여성의 몸은 여성의 몸이 아닌 것으로 되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임신의 순간부터는, 그러니까 여성이 임신한 것을 자각한 그 순간부터는 임신을 지속하여 출산할 것인지 혹은 중단할 것인지에 관해 그 여성만이 결정할 수 있다. 물론 주변의 충고와 조언을 청취할 수는 있다. 엄마가 머리끄댕이를 잡고 욕할 수도 있지만 잘 견디면 된다. 남친이 울면서 결혼하자 졸라도 낙태의 결심을 뒤집을 수 없다. 결국 여성이 결정하면 누구도 그것을 막을 수가 없다. 그 결정을 막아서고, 개입하려면 그 여성의 신체에 대한 자기결정권을 박탈해야 한다. 이것은 상상조차 하기 싫은 최악의, 핵전쟁 이상의 폭력이다. 따라서 "동의없는 출산"은 개소리다.
임신이 싫으면 그것이 동의가 안되면 방법은 의외로 간단하다. 성관계 (intercourse) 를 하지 않거나 "임신에서 자유로운 성관계 (피임)" 를 해야 한다. 중요하니까 반복하자. 성관계를 하지 않거나 피임해야 한다. 피임해도 임신할 수 있다고? 그게 걱정이면 그럼 아예 하지 말아야 한다. 혹은 정관수술을 해도 임신할 수 있다고? 그러니까 그게 걱정이면 아예 하지 말아야 한다. 그래도 하고 싶으면 최선을 다해 상대방을 설득하고 우성 오빠처럼 그 결과에 "책임을 끝까지 다하"면 된다.
꽃개는 문가비 씨의 결정 - 출산을 축하하고 지지하는 입장이다. 상대적으로 문가비 씨의 이야기를 들을 경로가 없어 다소 안타깝다. 정우성 씨의 (당연한) 선언도 지지하는 입장이다. 문가비 씨처럼 결혼없이 스스로 출산을 결정하는 여성들이 많이 탄생하기를 바라고 이러한 결정이 자연스러운 것이 되고 사회적 지원과 후원이 넘실거리는 사회가 되기를 바란다. 정우성 씨의 선언과 행동 또한 우리 사회를 좀 더 나은 방향으로 이끄는 지렛대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많은 아버지들이 보고 배울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