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눈물

분류없음 2015/01/24 07:21

1.

 

꾸준히 접속하는 한국어 사이트로 네이버야구뉴스와 프레시안이 있다. 언론사로서 프레시안은 부침을 거듭하긴 했어도 (제도) 정치 분야를 다룬 기사들에서 일정 흐름을 읽을 수 있어 불편한 가독성에도 불구하고 최선을 다해 읽고 있다. 최근 김세균 교수님이 어떤 모임에 참여하고 계시다는 기사를 읽었다. 관련 기사를 읽어보니 낯설지 않은 이름도 더러 있고 특히 모임의 명칭이 재미나다. '국민의 눈물을 닦아줄 수 있는 새로운 정치세력의 건설을 촉구하는 국민모임(국민모임)' 국민의 눈물을 정말 닦아줄 수 있는지 없는지 능력이나 여지는 차치하고 이 기치가 나온 배경에 주목하게 된다.

 

2014년은 그야말로 한국에서 평민(국민)으로 산다는 것을 근본적으로 회의하게 만드는 시간이었다. (개인적으로 물리적 육신은 한국 땅을 벗어나 있지만 나는 그래도 여전히 한국의 국민이다. ) 역사적으로 여당과 청와대의 무능력은 제1 야당 (혹은 재야세력)에 반사이익을 안겨주었다. 하지만 2014년의 정치공학은 -전혀- 그렇게 작동하지 않았다. 제 1 야당을 포함해 원내 의원을 두었거나 안 두었거나 야당(들)은 죄다 지리멸렬했다. 여당만큼이나, 아니 그 이상으로 무능했다. 여당과 박근혜가 줄기차게 자살골을 쳐넣는 사이 그들 역시 반대편 자신들의 골문을 향해 돌진했다. 평원에 버려진 국민들은 무엇을 할 수 있나. 없었다. 각자 살아남는 방법을 찾는 길밖에. 그 사이 분노와 증오, 국가가 나의 생존을 책임질 수 없다는 것을 자각한 이들의 원성이 하늘을 찔렀다. 한편, 노동운동을 위시로 비제도적 투쟁 정치를 만들던 세력 또한 다르지 않았던 것 같다. 그들 운동의 터전인 인민들의 삶이 바로 '평원에 버려진 삶'이었기 때문이리라. 국민모임은 바로 이 사이를 뚫고 나왔다. 레드오션 속에 홀연히 열린 블루오션. 

 

2.

 

관련 글들을 읽다보니 또 재미난 글이 있다. 

 

당적을갖자

 

국민모임, 진보 정당 재편에 불씨 댕길까

 

박상훈 씨가 쓴 첫째 글은 대단히 위험한 글이다. 나는 박상훈 씨를 모른다. 그가 무슨 일을 하는지 알 순 없지만 그의 글을 읽고나니 무슨 일을 하고 싶어하는지는 알 수 있을 것 같다.

그의 글은 시쳇말로 "링에 오르라"는 얘기다. 링 밖에서 훈수 두지 말고 글러브 끼고 링에 올라와서 "링의 룰"로 함께 하자는 말이다. 같은 편이 되든지, 적으로 만나든지 그것은 부차적인 일이고 일단 "판에 노름돈을 올린 뒤" 이야기하자는 말이다. 그의 글이 위험한 이유는 첫째, 그간 여당과 청와대, 야당(들)을 비롯한 제도정치활동이 왜 국민의 눈물을 닦아주지 못했는지 설명하지 못한다. 다시 말해, 이미 룰이 정해져있는 사각의 링에서 고군분투하시던 분들이 왜 자기들끼리만 고군분투하시면서 국민을 평원에 버려두었는지 변명조차 하지 못한다. 다만 링에 오르라고 할 뿐이다. 이것은 이미 게임의 룰이 정해져있는 제도정치를 유일한 디폴트값으로 상정하는 발상이다. 그의 정치의 영역에는 이것 외에 없다. 말인즉슨, 링 밖에서 훈수 두는 것은 정치가 아니라는 말이다. 

 

둘째, 따라서 링 밖에서 벌어지는 정치를 설명하지 못한다.

어느 해였나, 국회의사당을 바로 정면에 두고 집회대오가 한가득 여의도에 모였다. 추운 겨울이었다. 의사당에서는 (에프티에이였나, 뭐였나 의제가 잘 기억나지 않지만) 의원들이 뭘 결정할 찰나였다. 전국에서 모인 노동자, 농민, 시민사회단체 활동가들이 의사당대로를 가득 메우고 있다. 농성장이 차려졌다. 추운 겨울임에도 불구하고 경찰은 물대포로 진압에 나섰다. 집회대오 이상의 연인원을 동원한 경찰은 그래도 노동자농민들의 저항을 막지 못했다. 결과적으로 국회의원들은 원안을 밀어붙일 수 없었다. 원안을 반대한 결과적 다수자들의 변명은 "국민적 저항이 심각하다" 였다. 그리고 그 변명은 거짓이 아니었다. 

개인적으로 이 일은 두고두고 내 마음에 남았다. 머릿속에서 하염없이 되뇌이던 제도를 넘나드는 비제도적투쟁, 노동(자)정치라는 것에 관해 거듭 생각하게 된 계기였다. 

국회 안에 있던 자들에게 국회 밖 사람들은 동원의 대상 혹은 압박의 기제 정도였을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그 역학을 반대로 읽는다. 국회 밖 사람들에게 국회 안 사람들은 정치적 방편이나 수단일 따름이라고. 세상을 좀 더 인간답게 만들기 위한 과정에 필요한 부스러기 정도일 뿐이라고. 현실을 지양해나가는 정치운동에 필요한 지향적 요소들 가운데 하나일 뿐이라고. 

 

이른바 '국회 안' 투쟁 (제도적 투쟁, 링 안에서의 투쟁) 만이 유효하다고 선언해버리거나 경계를 그어버리면 "정당이 사회에 뿌리를 내려야 민주주의가 건강하게 발전할 수 있다"1는 신념을 갖게 되고 그 신념은 "링 위의 투쟁"만을 완소 가치로 삼는 지표로 작동한다. 그러니 당적을 가지라고 -- 기웃거리지 말고 판에 뛰어들라고 하는 것이다. (그들 시선으로 링 밖의 사람들이 '기웃거린다'는 건 그들이 그것밖에 보지 못하는 탓이다. 따라서 그 언설의 한계는 바로 그들의 탓이다). 평원에 국민들을 내동댕이친 채 자살골만 일삼던 까닭이 그 '당적' 때문이라는 것은 전혀 기억하지 못한다. 

 

3.

 

국민모임, 진보 정당 재편에 불씨 댕길까

 

시사인의 이 둘째 기사는 박상훈 씨의 첫째 글이 주는 묘한 하울링에 공명하는 부분이 있다. 정의당 천호선 당대표와 노회찬 전 의원의 전언. 한 마디로 "드르와". 조금 신경질적으로 읽으면 국민모임의 움직임이 눈에 거슬린다는 거다. 애써 태연한 척 하고는 있지만 또 역시 링 밖에서 기웃거리다가 훈수두는 것으로 끝날까봐 짜증나는 거다.

사/각/의/ 링/에/ 갇/힌/ 그/들

 

비록 제도정당 해산이라는 초유의 헌재 결정에 치명상을 입은 엔엘세력이지만 언젠가는 열 명 이상의 원내 의원을 꽃놀이 패로 쥐고 호시절을 구가했던 적이 있다. 바로 그 때 그들과 손을 잡았던 양반들이 그 당에 지금 계시지 않나. 목적을 위해서라면 뭐든지 할 수 있어. 그래서 그들이 '개방형 진보정당'을 표명할 수 있는 거다. (종내엔 박근혜와도 연대할 수 있지 않을까 --  내 의심은 거기에까지 이른다. 아주 오래전, 엔엘들이 대거 민노당에 들어갈 때 나는 "그들이 엔엘과 손을 잡지 않을까?" 하고 의심했던 적이 있었다.) 

 

노동당은 잘 모르겠다. 그러나 기사로 보아 '진보혁신회의'라는 것도 해본 것 같으니 뭐가 되든 뭐를 하기는 하겠지. 하지만 글쎄, 구 사*당 친구들이 다수가 되거나 당권을 쥐는 순간 어떤 격변 (upheaval)이 이뤄질 지 모를 일이다. 모를 일이긴 하지만 --- 그것은 아주 예전에 민노당이 자기개조를 (당)하면서 당명에 '통일'이라는 글자를 집어넣는 과정에서 이미 목도했던 그 파탄의 21세기 실사판이 될 것 같기는 하다. 

 

뭐가 되었든 게임의 룰을 따르기로 한 이상 그 안에서 할 수 있는 일을 잘 해냈으면 좋겠다. 자꾸 왼쪽에 있는 링 밖의 사람들에게 링으로 들어오라고 하지는 않았으면 좋겠다. 따지고보면 링 안에 사람들이 훨씬 많다. 그들에게 말하라. 함께 하자고.

비보호 우회전이 우세한 나라에서 나고 자란 결과, 우측 깜빡이 켜고 좌회전하는 것보다 좌측 깜빡이 켜고 우회전하는 게 더 위험하다는 결론. 너무 어렵나? 왼쪽에 있는 사람들보다 오른쪽에 있는 사람들을 향해 말하시라고요. 왜 자꾸 당신들의 게임룰을 강요하시나요. 이미 그 룰에 익숙한 사람들에게 말씀하시라고요. 

 

4. 

 

이미 제도정당운동에 올인한 분들이나 집단이야 그렇다고치고 - 어차피 게임의 룰에 따라 움직일 수밖에 없으니 - 제도정당운동을 전술적으로 고려하는 분들은 어떻게 지내고 계시는지 몹시 궁금하다.

이번에 김세균 교수님 동향을 비롯해 여러 기사들을 관심있게 읽게 된 이유는 바로 그 궁금증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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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록. 김세균 교수님에 얽힌 개인적 일화 

 

김세균 교수님은 나에게 잊지못할 기억을 안겨주신 분이다. 대학생 때, 신자유주의가 뭔지 이런 신조어가 대체 뭔지 들어본 적조차 없을 때 월간 "현장에서 미래를"에 실린 김세균 교수님의 글을 읽고 정치토론이란 걸 했었다. '신자유주의'는 지금도 물론 그렇지만 당시에는 참으로 해괴망측한 말이었다. 어떤 단어를 들으면 좋다/나쁘다, 우리편/네편, 판단을요함/보류 뭐 이런 정도의 구별은 할 수 있을 만큼의 어감을 품게 되는데 '신자유주의'는 전혀 그렇지 않았다. (적어도 내게는 그랬다.) 직접 드러내어놓고 '학우대중'과 교감할 수 있는 단어가 전혀 아니었다. 즉 이론, 혹은 학문적 바운더리에서는 폭넓게 쓰일 수 있는지 몰라도 (쓸 수밖에 없겠지) 정치언어로, 대중의 수사로 자리잡기에는 거시기하다고나 할까. 

 

어쨌거나 김세균 교수님과 그 분의 글, 말씀은 -- 개인적으로는 브레이버맨 (Harry Braverman) 의 "노동과 독점자본 (Labor and Monopoly Capital)"을 김세균 교수님의 강연과 몇몇 글 꼭지를 통해 이해할 수 있었다. 따라서 어떤 의미에서 나에게 신세계를 알려주신 분이랄까. 

 

고학년이 된 어느날, 일학년 후배들과 함께 종묘 어디쯤 성당에서 열리는 토론회에 갔다. 김세균 교수님이 연사 중 하나였다. 귀에 쏙쏙 들어오는 그 강연을 듣고 후배들과 함께 떡볶이를 먹으러 갔다. 어땠어? 후배 중 하나가 강연을 들으며 그림을 그렸다는데 -- 시커멓고 네모난 '김'과 '세균'을 입체적으로 그려낸 것. 기가 막혔다. 너무 잘 안 들려요. 감기 걸리신 것 같아요. 어려워요. 이 놈들, 사람 이름을 가지고 그런 몹쓸 장난을 치면 되겠냐. 이건 좋은 세균이에요. 유산균 같은 거. 

 

 

 

 

 

 

 

  1. 이 말은 틀린 말은 아닌데 또 옳은 말도 아니다. 그러니까 그냥 좋은 말이다. 뒤집어 말해보자; "민주주의가 건강하게 발전하면 정당이 사회에 뿌리를 내린다."텍스트로 돌아가기
2015/01/24 07:21 2015/01/24 0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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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Tracked from 꽃을물고뛰는개 2015/06/06 07:15 DELETE

    Subject: 예상한대로

    꽃개님의 [국민의눈물] 에 관련된 글 5개월이 걸리긴 했지만 짧지도 길지도 않은 시간. 적절하다. 손 잡았어 최상이자 최악의 시나리오. 어떻게 이 양반들은 중간이 없냐. 한국형 사민주의 실험의 성공을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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