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현의 자유

분류없음 2015/01/10 12:53

조현민 씨가 '복수하겠어' 라며 언니 조현아와 나눈 휴대전화 상 문자대화는 조현아의 기행과 불법 행위를 다루는 영역과 다소 동떨어진 부분이었다. 이걸 모를 리 없는 -몰랐다면 더 문제- 검찰이 이것마저 공개한 이유는 뻔하지 않나. 분노를 더욱 키우려는, 어렵사리 도마에 올린 공공의 적(들)이 얼마나 졸렬한지, 그리하여 이것이 '십상시의 난'보다 더욱 긴요한 사안임을 '국민 정서'로 확인하겠다는.

 

따라서 한겨레는 이것을 조금 더 세련되게 다뤘어야 했다. 왜 검찰이 이것을 공개했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정도의 멘트는 필요했다. 안타깝지만 어쩔 수 없다. 이것이 우리의 수준인 것을.

 

 

샤를리 엡도가 게재했던 -시쳇말로 사달을 제공한- 무하마드의 만평은 무슬림 세계관을 공유하지 못하는 나로선 그것이 왜 문제로 되었는지 가슴으로 이해하기 힘든 구석이 있(었)다. 무슬림 문화에서 선지자 무하마드의 초상화를 두눈 똥그랗게 뜨고 맞이하여 쳐다보거나 모사하는 것조차 금기라는 것도 이번에 알았다. 문화다양성은 어렵다. 신중해야 하는 근거가 되겠으나 따라서 또 실수의 가능성도 높다. 실수라면, 사과를 하면 된다. 그리고 반복하지 않도록 살필 일이다.

 

'I am Charlie' 'No Afraid' 등의 구호들이 이번 사태로 희생당한 이들의 영령을 위로하고 표현의 자유, 언론의 자유를 지켜야 한다는 기치 아래 퍼지고 있다. 표현의 자유. 동의한다. 그리고 그것은 가능한 한 존중받아야 한다.

 

 

한편, '서구 기독교 문화 Vs. 오리엔탈 이슬람 문화'라는 철저히 강자와 약자가 구분된 구도에서 강자 (서구 기독교 문화) 가 말하는 표현의 자유가 가당키나 한 일이냐는 목소리도 있다. 강자들이 말하는 자유란 인종차별의 자유, 소수자를 조롱하고 억압하는 자유라는 이유 때문이다. 설득력이 있다. 역시 신중해야 한다. '어차피 난 처자식이 없다' '쥐새끼처럼 사느니 차라리 죽음을 택하겠다 (I prefer to die than live like a rat)' 라는 말로 분노를 자극할 필요는 없지 않았나. 망자를 두고 하는 말이라 적잖이 조심스럽다. 모든 자유에는 책임과 그 대가가 따른다지만 표적사살이라니 이것은 아니구나 싶다. 그 총구가 종국에는 바로 그들의 성지 '메카'를 향할 수 있음을 왜 모를까. 돌아가신 분들의 영면을. 황색으로 변질된 우리 언론에 애도를.

2015/01/10 12:53 2015/01/10 12: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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