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식민의길 1

분류없음 2018/09/02 03:16

이주 전에 시작한 한 주말 잡. 올해 3월까지 일하던 곳에서 작년 12월까지 꽃개의 매니져였던 G의 제안으로 시작했다. 얘기가 길어질 수 있겠으나 나중에라도 정확하게 기억하기 위해 여기에 남기는 게 좋겠다, 싶다. 

 

올해 3월까지 일하던 곳 (비영리사회복지 법인 C) 은 시의 펀딩을 받아 2016년 초, 새로운 프로그램을 시작했다. 평온한 다운타운 도시 한 가운데 자리잡은 탓에 주민들의 반대가 심했다. 정신질환, 중독질환을 동반하는 홈리스들이 자기들 마을에 들어오는 것이 싫었던 것이다. 하지만 시의회와 진보적인 풀뿌리 사회운동가들, 나름대로 대화가 통하는 주민들, 그리고 이것을 주도적으로 조직한 비영리사회복지 법인 C 의 노력으로 결실을 맺을 수 있었다. 그리고 나의 매니져, G 는 헤드헌터 고용 프로세스를 통해 프로그램 매니저 일을 그해 8월에 시작한다. 매니저 G 가 가장 먼저 시작한 일은 자기 자신과 함께 일할 사람들을 고용하는 일이었다. 비영리사회복지 법인 C 에서 십 년 넘게 일하던 사람들은 이것을 반기지 않았다. 기존에 일하던 사람들이 있는데 뭘 또 새로운 사람을 뽑나, 그냥 일하던 사람들 - 알고지낸 사람들을 그 자리에 앉히면 되는 거지. 더구나 노동조합이 있었기 때문에 조합원들의 불만은 더 높았다. 기껏 십 년 넘게 일했는데 재주는 우리가 넘고 돈은 새로 들어온 "듣보잡" 들이 챙기겠다는 거냐! 

 

G의 생각은 다소 달랐던 것 같다. G 는 전혀 새로운 팀을 꾸리고 싶었다. 잡포스팅을 냈고 이력서를 걸렀고 그리고 본격적인 잡인터뷰를 시작했다. 꽃개는 2016년 9월 말에 잡포스팅을 보고 이력서를 냈고 10월 초에 인터뷰에 초대받았다. 그 때까지 꽃개는 G 가 누구인지 전혀 알지 못했다. 인터뷰는 순조롭게 진행됐고 바로 리퍼런스 명단을 제출하라는 전화를 받았고 일주일 뒤 잡오퍼를 받았다.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그리고 10월 말 (아마도 2016년 10월 26일이었던 것 같다), 오리엔테이션을 시작으로 본사에서 업무를 시작했다.  

 

텃세가 심했다. 꽃개처럼 새로 고용된 사람들, 그들 또한 노동조합원임에도 기존 노동조합원들의 견제와 사보타지는 극에 달했다. 다행히 꽃개를 비롯한 두어 명의 신규고용인들은 새로운 프로그램이 위치한 다운타운 내의 로케이션으로 옮겨갈 예정이었기 때문에 크게 의미를 두지 않고 버틸 수 있었다. 본격적인 업무를 시작한 2017년 1월부터 있었던 일들을 일일이 기록하는 것은 큰 의미가 없을 것 같다. 어쨌든 견결히 버티며 자신의 일을 하던 나의 존경하는 매니저 G 는 11월 말에 전체 인트라넷 메시지를 보낸다. "또다른 비영리사회복지 법인 M 에서 픽업을 받아 12월 4일자로 회사를 그만둔다. 그동안 함께 새로운 프로그램이 온전히 정착할 수 있도록 애쓴 이들과 커뮤니티에 감사말씀 드린다." 꽃개는 그 때 당시 건강히 많이 좋지 않아 1월 경에 간단한 수술을 앞두고 있었고 앞에서 설명한 내부 정치 (internal politics) 와 이보다 더 무능할 수 없는 노동조합을 목격하면서 심각한 스트레스에 시달리고 있는 와중이었다. 꽃개에겐 G를 말리거나 그의 결정을 되돌리만한 힘이 없었다. 상황을 직시해야만 했다. G 가 떠나면 그 기존의 사보타지 그룹이 매니지먼트 파트를 물려받을 것은 자명한 일이었다. 그들은 나를 직접 고용한 사람들이 아니다. 나는 다시 그들에게 적응해야만 했다. 

 

2018년 새해가 밝았다. G 가 떠난 뒤 그동안 G 가 지원하던 모든 서폿은 중단되었고 클라이언트 서비스의 질도 현격하게 떨어졌다. 클라이언트들이 가장 먼저 반응했지만 그들은 또한 적응력이 뛰어난 사람들이다. 눈치도 빨랐다. "꽃개, 너도 떠날 거야?" 문득문득 별안간 아무 맥락없이 질문하는 사람들이 늘어갔다. 별 개소리를 다한다는 식으로 매우 시큰둥하게 반응했고 동시에 새로운 매니저에게 적극적으로 협조하며 적응했다. 꽃개는 오히려 더 잘 적응했다. 오히려 꽃개와 함께 일하던 시프트 파트너, J 는 길을 잃은 듯 보였다. 하루에도 몇 번씩 꽃개에게 불평불만을 늘어놓았지만 꽃개가 할 수 있는 조언은 "우리, 우리 주제를 알자" 정도에 불과했다. 그러던 와중, 2011년부터 일하던 곳 (그 때 꽃개는 주말 포지션을 그 곳에서 이어가고 있었다) 에 주중 퍼머넌트 풀타임 포지션이 열렸다. 지원하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2월 중순 인터뷰에 초대받았고 언제 일을 시작할 수 있겠냐는 질문을 받았다. 비영리사회복지 법인 C 에 "2주일 노티스" 를 이메일로 보냈다. "그동안 꽃개를 돌봐주신 비영리사회복지 법인 C 사람들에게 감사말씀과 함께 굳바이 인사를 드립니다. 꽃개는 2주일 뒤에 이 회사를 그만둡니다." 물론 시프트 파트너인 J 에게 미리 언질을 했고 J는 축하해주었다. 새로운 풀타임 직장을 확정한 뒤 존경하는 매니저 G 에게 편지를 썼다. 구구절절 말은 필요없었고 간단하게 3월 1일 자로 회사를 관두고 다른 곳으로 옮긴다는 인사였다. G 역시 축하해주었고 계속 연락을 하고 지내자며 격려를 아끼지 않았다. 

 

그리고 몇 달이 흘렀다. 정신없이 일하다가 주말을 통채로 쉬게 되자 허전했다. 처음엔 어안이 벙벙했고 갑자기 주어진 시간을 어찌 써야할지 막막했다. 그리고 8월 중순 경, G 에게 업그레이드한 이력서를 첨부한 이메일을 보냈다. "꽃개는 주말 파트타임을 찾고 있습니다. 당신의 디파트먼트에 혹은 당신 회사 내 다른 프로그램에서 정직하고 진실하게 일할 주말 파트타이머를 찾고 있다면 바로 꽃개를 고려해주시기 바랍니다. 그것은 당신에게도, 당신 회사에도, 그리고 꽃개에게도 가장 최상의 결과를 줄 것입니다". 한국말로 옮기고 나니 정말 괴이하지만 어쨌든 이메일을 보낸 뒤 십 분도 되지 않아 "너는 고용되었다 (You're hired)" 로 시작하는 답장을 받았다.  그리고 그 주에 바로 주말 잡을 시작하게 되었다. 

 

*탈식민의길2로 이어서 쓴다. 트랙백을 한다. 

 

 

2018/09/02 03:16 2018/09/02 0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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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Tracked from 꽃을물고뛰는개 2018/09/02 04:18 DELETE

    Subject: 탈식민의길2

    꽃개님의 [탈식민의길 1] 에 관련된 글 새로 시작한 업무 가운데 두 시간 동안 의자에 가만히 앉아 있는 일이 있다. 업무사항에 그렇게 하도록 자세하게 되어 있는 것은 아닌데 현장에서 업무를 그런 식으로 고정해 버렸다. 나는 풀타임도 아니고 그 회사에 처음으로 새롭게 고용된만큼 사단을 일으키지 말고 조용히 적응하는 게 낫다. 그냥 하라는대로 하는 게 좋은 거다. 어쨌든 클라이언트들이 잠들어 있는 동안 그들을 "감시 (?)" 하는 일이다. 4명의 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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