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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익 열사가 더욱 생각나는 요즘....

#1
난 김주익 열사를 잘 모른다. 그저 그 분이 수십미터 크레인 위에서 목을 매달았을때, 사람들과 함께 부산으로 내려가 집회에 참석했던 것 밖에 없다.

그리고 연달아 곽재규 열사가 몸을 던졌다. 그 이전 배달호, 이현중, 이해남.... 그야말로 열사 정국이었다. 나는 매일같이 종묘공원으로 출퇴근 하다시피 집회에 참석했다. 당시 집회에 참석했던 노동자들은 그야말로 무기력한 상태였다. 먼저간 열사의 뜻에 따라 더욱 힘찬 투쟁을 벌이기 보다는, '나도 오늘 집회에서 분신할란다' 하는 말들이 여기저기서 들릴 때였다. 심지어 노조차원에서 노조원 가방을 검사하다 1.5리터 병에 든 신나 병을 발견하기도 했다.

그러기를 몇 일, 내 바로 앞에서 사람 한명이 불에 타고 있었다. 차마 카메라를 들이 댈수도 없었고, 그저 망연자실했다. 이용석 열사 까지....
그렇게 2003년 열사라는 호칭을 단 이는 칸쿤에서 자결했던 이경해 열사까지 7명이었다.

난 2003년을 잊을 수가 없다. 내가 가장 치열하게 투쟁했던 시기이기도 했고, 가장 분노했던 시기이기도 하다. 인권변호사 출신의 대통령 집권 1년도 채 넘지 않은 시기였다. 그래서 나에게 노무현 정권은 추도할수있는 대상이 아니다.

#2
지난 주 금요일(이곳 시간으로...), 사람들과 모여서 영화를 보고 있는데, 누군가가 통화를 하고 오더니 "노무현이 자살했데!"라고 하는 소리에 깜짝 놀랐다. 밖으로 뛰어나가 인터넷을 검색해보니 사실이더라. 많이 놀랐고, 안타까웠던 건 사실이다. 영화가 끝나고 고구마를 구워서 먹고있는데 누군가 그러더라. "고구마가 넘어가?", 그래서 대답했다. "나 노무현 별로 안좋아 하는디...."

 

노무현을 별로 안좋아 한다고는 해도, 그의 죽음이 기쁘거나 무감각 하거나 한건 아니다. 그렇다고 슬픈것도 아니었다. 뭐랄까... 그의 죽음이 안타까웠던건 사실이고 (더더군다나 검찰의 비열한 수사 방식에 의한 죽음이기에), 뭐라 표현할 수 없는 그냥 그런 느낌이었다.

 

집으로 돌아와 진보진영의 반응이 어떤지 살펴봤다. 참세상은 건조한 기사 하나가 있었고, 레디앙, 프레시안 등은 노무현에 대한 칭송까진 아니어도 그의 죽음에 대해 자세하게 다루고 있었다. 물론 진보진영이 아닌 매체들은 그의 63년 생을 평가하고 있었다. 아름답게.... (물론 며칠이 지나자 자칭 진보진영 매체들 까지-내가 본것 중에서는 참세상만 제외하고-앞장서서 노무현을 정의의 사도로 그리기 시작했다. 지금까지도.... 세상은 그렇게 여론이 만들어져 버렸다. 그를 비판하면 안되는 것으로....)

 

이건 뭐가 아니지...라는 생각과 함께 진보블로그에 가봤다. 대문에 떠있는 누군가의 글. '자칭 진보라는 자들이 노무현의 죽음을 왜 애도하지 않는가'라는 류의 글. 이런 류의 글이 진보블로그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었다. 순간, 내가 이상한걸까? 며칠을 고민했다. 애도를 해야만 할것 같은 분위기....

그런 글들에 반대되는 나의 생각을 올려볼까도 했지만, 왠지 테러당할것 같은 분위기랄까?

 

한국의 TV프로그램을 찾아봤다. 노무현에 대한 다큐부터, 뉴스까지 노무현은 불의와 타협하지 않는 정의의 사도가 되어있었다. FTA 저지, 비정규법 반대 등 대부분의 매체가 신경쓰지 않았을때 우리의 목소리에 귀기울여 줬던 PD수첩 마저도 노무현정권시절의 이야기는 쏙 뺀체 그를 칭송하고 있었다.

연예인들도 하나, 둘 노무현의 죽음에 대한 애도 글들을 올리기 시작했고, 그런 연예인들은 또 기삿거리가 되어 무신 의식있는 연옌으로까지 그려지고 있다. 이준기... 이 사람은 스크린쿼터 집회때-멀리서이긴 하지만-봤었는데... 그리고 무신 스크린쿼터 토론회에도 나갔던 걸로 기억하는데... 그렇게 스크린쿼터제를 팔아먹은게 놈현 정권인데, 그때 일은 까맣게 까먹었는지.... 비유도 좋다.

 

그래서 난 속이 불편하다. 민주노총을 비롯한 진보진영까지도 언제그랬냐는 듯 그를 민주주의의 사도로 만들어버리는 것이 말이다. 물론 그의 죽음이 안타깝기는 하지만, 그가 재임기간동안 한 짓들을 생각하면, 모두들 뭔가에 홀린것 처럼 행동하는 사람들이 불편하다.

왜 모르는가?

비정규직 확대, FTA 협상, 공기업 민영화 등이 모두 노무현이 추진해왔던 것이라는 것을.... 

 

#3

그래서 그런지 나는 요즘 얼굴 한번 본적 없는 김주익 열사가 자꾸 생각난다. 노무현 정권에 의해 희생된 7명의 열사들이 생각난다. 그리고 비정규법을 막아보겠다고, 추운 겨울 국회앞에서 물대포 맞아가며 싸웠던 그 겨울이 생각난다. 그때만 생각하면 아직도 속이 끓는다.

나라면 노무현을 추모하느니 용산에 한번이라도 더 가보겠다. 모두들 노무현을 추모하고 있는 이 시점에도 용산엔 보란듯이 철거가 진행되고 있으니....

 

#4

김진숙 지도위원이 썼던 김주익열사 추도사가 생각나는 요즘이다.

 

작년 한진중에서 밀려난 아저씨를 우연히 길에서 만난 적이 있었습니다. 30년 일해 온 일터에서 명퇴란 이름으로 강제로 밀려난 아저씨는 술이 한 잔 들어가자 박창수 위원장 이야기를 하며, 아무 것도 잘못한 게 없는 아저씨가 자꾸 미안하다며 울었습니다.

50이 넘은 사내가 10년도 더 지난 일로 술잔에 눈물 콧물을 빠뜨리는 걸 보면서 우리 모두에게 박창수란 이름은 세월의 무게로도 덮을 수 없는 아픔이구나 생각했습니다. 박창수 하나만으로도 우린 아프고 무겁습니다.

두번쨉니다. 대한조선공사를 한진중공업이 인수한 이후 여섯 명의 위원장 중 두 명은 구속 이후 해고되고, 한 명은 고성으로, 율도로 하루가 멀다 하고 쫓겨나고, 두 명은 죽었습니다.

지난 번 위원장 선거가 끝나고 어떤 아저씨가 그러셨습니다. "내는 김주익이 안 찍었다. 똑똑하고 아까운 사람들, 위원장 뽑아놓으면 다 짤리고 감방가고 죽어삐는데, 내가 진짜로 좋아하는 김주익이를 우째 또 사지로 몰아넣겠노?"

우리가 뭘 그렇게 잘못했습니까? 뭘 그렇게 죽을죄를 저질렀습니까? 조양호 회장님, 조남호 부회장님, 얼마나 더 하실 겁니까? 이 소름끼치는 살인게임이 몇 판이 더 남았습니까?

노동자의 목에 빨대를 꽂고 더운 피를 마시는 이 흡혈게임이 얼마나 더 남았습니까?

LNG선상 파업으로 김주익 지회장이 구속됐을 때 인권변호사의 이름을 팔아 그를 변호했던 노무현 대통령 각하! 노동자의 가련한 처지를 팔아 따낸 권력의 맛이 꿀맛입디까? 조중동 그 찌라시들의 꼬봉노릇이 그렇게 안락하더이까?

대기업 노조가 나라를 망친다했습니까? 21년차 노동자 기본급 105만원, 손에 쥐는 건 80만원, 그마저도 가압류로 12만원, 129일을 크레인에 매달려 절규를 해도 청와대, 노동부, 국회의원 누구하나 코빼기도 내미는 놈이 없었습니다.

동지 여러분 죄송합니다. 이럴 줄 알았으면, 이렇게 될 줄 알았다면, 민주노조 하지 말걸 그랬습니다.

교도소 짬밥보다 못한 냄새나는 깡보리밥에 쥐똥이 섞여 나오던 도시락 그냥 물 말아 먹고, 불똥 맞아 타들어간 작업복 테이프 덕지덕지 넝마처럼 기워입고, 한 겨울에도 찬물로 고양이 세수해가며, 쥐새끼가 버글거리던 생활관에서 그냥 쥐새끼들처럼 뒹굴며 살걸 그랬습니다.

한여름 감전사고로 혈관이 다 터져 죽어도, 비 오는 날 족장에서 미끄러져 라면발 같은 뇌수가 산산이 흩어져 죽어도, 바다에 빠져 퉁퉁 불어 죽어도, 인명은 재천이라던데 그냥 못 본 척 못 들은 척 살걸 그랬습니다.

노동력에 대한 정당한 대가도, 내일에 대한 희망도, 새끼들에 대한 미래 따위 같은 건 언감생심 꿈도 꾸지 말며, 조선소 짬밥 20년에 100만원을 받아도, '회장님, 오늘도 일용할 양식을 주셔서 얼마나 고마운지 모르겠습니다' 그냥 그렇게 감지덕지 살걸 그랬습니다.

노예가 품었던 인간의 꿈. 그 꿈을 포기해서 박창수 동지가, 김주익 동지가, 그 천금같은, 그 억만금 같은 사람들이 되돌아 올 수 있다면, 그 억센 어깨를, 그 순박하던 웃음을 단 한번이라도 좋으니 다시 볼 수만 있다면, OO이 OO이에게, OO이, OO이, OO에게 아빠를 다시 되돌려 줄 수만 있다면, 그렇게라도 하고 싶습니다.

자본이 주인인 나라에서, 자본의 천국인 나라에서, 어쩌자고 인간답게 살고 싶다는 꿈을 감히 품었단 말입니까? 애비 잘 만난 조양호, 조남호, 조수호는 태어날 때부터 회장님, 부회장님으로 세자책봉 받는 나라.

이병철 회장님의 아들이 이건희 회장님으로 부자 1위가 되고, 또 그 아들 이재용 상무님이 부자 2위가 되는 나라. 정주영 회장님의 아들이 정몽구 회장님이 되고 또 그 아들 정의선 부회장님이 재계순위 4위가 되는 나라.

태어날 때부터 그 순서는 이미 다 점지되고, 골프나 치고 해외로 수백억씩 빼돌리고, 사교육비로 한 달 수천만원을 써도 재산은 오히려 늘어나는 그들이 보기에는 한 달 100만원을 벌겠다고 숨도 쉴 수 없고 언제 폭발할지도 모르는 탱크 안에서 벌레처럼 기어 다니는 우리가 얼마나 우스웠겠습니까?

순이익 수백억이 나고 주식만 가지고 있으면 수십억이 배당금으로 저절로 굴러들어오는데, 2년치 임금 7만5,000원 올리겠다고 크레인까지 기어 올라간 사내가 얼마나 불가사의했겠습니까?

비자금으로 탈세로 감방을 살고도, 징계는커녕 여전히 회장님인 그들이 보기에 동료들 정리해고 막겠다고 직장에게 맞서다 해고된 노동자가 징계철회를 주장하는 게 얼마나 가소로웠겠습니까? 100만원 주던 노동자 짤라내면 70만원만 줘도 하청으로 줄줄이 들어오는 게 얼마나 신통했겠습니까?

철의 노동자를 외치며 수 백명이 달라들어도 고작해야 석 달만 버티면 한결 순해져서 다시 그들의 품으로 돌아오는 게 또 얼마나 같잖았겠습니까?

조선강국을 위해 한 해 수십명의 노동자가 골반압착으로, 두부협착으로, 추락사고, 감전사고로 죽어가는 나라. 물류강국을 위해 또 수십명의 화물 노동자가 길바닥에 사자밥을 깔아야 하는 나라.

섬유도시 대구, 전자도시 구미, 자동차 도시 울산, 화학의 도시 여수 온산. 그 허황한 이름을 위해 노동자의 목숨들이 바쳐지고 그들의 뼈가 쌓여갈수록 자본의 아성이 점점 높아지는 나라.

50이 넘은 농민은 남의 나라에 가서 제 심장에 칼을 꽂고 마지막 유언마저 영어로 남겨야 하는 세계화된 나라. 전 자본주의가 정말 싫습니다. 이제 정말 소름이 끼칩니다.

1970년에 죽은 전태일의 유서와 세기를 건너 뛴 2003년 김주익의 유서가 같은 나라. 두산중공업 배달호의 유서와 지역을 건너뛴 한진중공업 김주익의 유서가 같은 나라.

민주당사에서 농성을 하던 조수원과 크레인 위에서 농성을 하던 김주익의 죽음의 방식이 같은 나라. 세기를 넘어, 지역을 넘어, 업종을 넘어, 국경을 넘어 자자손손 대물림하는 자본의 연대는 이렇게 강고한데 우린 얼마나 연대하고 있습니까? 우리들의 연대는 얼마나 강고합니까?

비정규직을, 장애인을, 농민을, 여성을, 이주노동자를 외면한 채 우린 자본을 이길 수 없습니다. 아무리 소름 끼치고, 아무리 치가 떨려도 우린 단 하루도 그들을 이길 수 없습니다.

저들이 옳아서 이기는 게 아니라 우리가 연대하지 않음으로 깨지는 겁니다. 맨날 우리만 죽고 천날 우리만 패배하는 겁니다.

아무리 통곡을 하고 몸부림을 쳐도 그들의 손아귀에서 한시도 벗어날 수가 없습니다. 이 억장 무너지는 분노를, 피가 거꾸로 솟구치는 이 억울함을 언젠가는 갚아줘야 하지 않겠습니까?

어버이날 요구르트 병에 카네이션을 꽂아놓고 아빠를 기다린 OO이. 아빠 얼굴을 그려보며 일자리 구해줄 테니 사랑하는 아빠 빨리 오라던 OO이. 그 아이들이 살아갈 세상은 좀 달라져야 하지 않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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